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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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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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roën Traction Avant / 7CV / 11CV / 15CV'''

1. 개요


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 시트로엥에서 1934년부터 1957년까지 생산한 자동차이다. 차급은 E세그먼트로 분류된다.

2. 상세


이 차량은 당시 앙드레 르페브르(André Lefèbvre, 1894~1963)가 설계를 맡았는데, 외부 충격을 분산하면서도 차체를 가볍게 하기 위해 모노코크 차체[1]로 개발했고, 1930년대 당시에는 비주류였던 구동방식인 전륜구동을 채택하면서 '''세계 최초로 모노코크 전륜구동을 채택한 차량'''이자 양산형 전륜구동 차량이 되었다. 정확히는 최근들어 많이 쓰이는 가로배치 전륜구동이 아닌 세로배치형 전륜구동[2]이다.[3][4] 그리고, 변속기가 엔진보다 앞쪽에 달려 있다. 이후 플라미니오 베르토니[5]가 외관을 디자인하고 프랑스어로 전륜구동이라는 뜻의 트락숑 아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1934년에 출시되었다.
세부적으로 7CV, 11CV, 15CV로 나누어졌으며, 1.3L 엔진이 탑재된 7A 세단형[6]이 먼저 출시되고 이후 1.5L 사양인 7B[7], 1.6L 사양인 7C가 출시되었다. 같은 시기에 1.9L 엔진이 탑재된 11CV[8]도 추가되었다. 이후 1938년 6월에는 2.9L 직렬 6기통 엔진이 탑재된 15CV[9]가 출시되었다. 하지만 잦은 결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졌고 이 차를 개발하는 개발비와, 새로 공장을 짓는 건설비 등을 너무 막대하게 투자한 바람에 사세가 휘청여버렸고, 이로 인해 정작 이 차를 야심차게 개발하고 프로젝트를 이끈 창업주인 앙드레 시트로엥은 이 차가 출시된 지 얼마 안되어 회사가 파산하고 미쉐린으로 넘어가자 불과 6개월 후에 홧병으로 사망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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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당시로써는 꽤 강한 엔진인 3.8리터 V8 엔진을 얹은 22CV도 있었으나 이는 양산되지 못했고, 시제차로만 4~5대 정도 만들어져서 본사에서 보관했다가 나중에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이 차량의 모노코크 전륜구동 레이아웃은 변속기와 차체 결함으로 곤욕을 겪었고 당시 고객들의 선택도 후륜구동 차량이 여전히 주류였지만, 이후에 2CV타입 H 등 시트로엥의 다른 모델들은 물론, 수많은 자동차 제조사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수많은 승용차에 이러한 모노코크 바디와 전륜구동 조합의 레이아웃이 이용되면서 차체 구조의 주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4도어와 2도어 세단, 2도어 컨버터블, 5도어 왜건[11]등 다양한 차체 라인업이 등장했으며, 특히 왜건 기반 라인업인 꼼므시알르(Commerciale)[12]는 해치백의 선례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판매 기간 중에는 "도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35년 10월에 등장한 1936년형 차량은 그릴을 크롬도금 대신 페인트로 마감하고 제대로 된 트렁크 뚜껑을 설치했으며[13] 이때 연료 주입구 수도 2개에서 1개로 줄였으며, 후미등 디자인도 변경하고 번호판도 스폐어타이어가 있는 중앙에서 왼쪽 뒷펜더로 옮겼다. 2달 후에는 기존의 "Pausodyne" 서스펜션[14]을 개량해서 원뿔 모양의 고무 링을 앞바퀴에 추가했다. 1936년 5월에는 기존의 "worm and roller" 스티어링을 대신하는 랙 앤드 피니언 스티어링을 도입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된 후에는 나치 소속 당원들과 독일군의 차로 애용되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트렁크 형상을 바꾸고(1952년) 하이드로뉴매틱 유압 서스펜션을 추가(1954년)[15]해 1957년 7월까지 꾸준히 생산, 판매되었다. 후속 모델은 1955년에 나온 시트로엥 DS/ID[16]이며, 그쪽도 트락숑 아방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다.

3. 둘러보기




[1] 자동차에서 모노코크 차체가 쓰인 것은 1924년의 란치아 람다가 최초이다.[2] 다만, 일반적인 자동차의 상식과는 달리 변속기가 엔진보다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3] 한국에서는 대우 아카디아쌍용 이스타나가 이 방식의 전륜구동이었고, 현재까지도 이 전륜구동 방식을 활용하는 대표적 메이커 중 하나는 아우디인데 A4, A6, A8 중 콰트로 모델을 제외한 일반형에다 적용한다. 다만, 트락숑 아방의 변속기가 엔진 앞쪽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차들의 변속기는 모두 엔진보다 뒤에 위치하고 있다.[4] 가로배치형 전륜구동은 독일 DKW(현 아우디)와 영국 미니가 원조다.[5] 시트로엥 트락숑 아방 외에도 2CV, DS, 아미의 디자인도 담당했다.[6] 2.9미터 휠베이스의 4도어 세단으로, 2달 동안 약 7천대가 생산되었으며 1934년 6월에 7B가 등장했다.[7] 엔진을 바꾼 것 외에도 앞창문 와이퍼를 1개에서 2개로 늘렸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차체 균열과 변속기 파손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1934년 9월까지 15620대가 생산되었다.[8] 나중에는 7C의 작은 차체를 얹은 11BL("légère", 즉 경량 사양)과 11B로 라인업이 세분화되었다.[9] 7~15라는 숫자는 출력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프랑스의 세금 제도에 따라 붙은 이름인데, 15CV는 실제론 16CV급 세금이 부과되었다.[10] 경영상으로 문제가 많아지면서 기울기 시작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르노의 책략에 넘어가게 된것이 계기가 되었다. 라이벌 르노가 최신식 공장을 완공하고 앙드레 시트로엥을 초대해서 대놓고 조롱했던 일이 그것인데, 이에 열등감을 느끼게 된 앙드레 시트로엥은 기존에 잘 있는 건물을 허물어 버리고 새 공장을 화려하게 석 달 안에 완공시켰다. 하지만 자동차의 막대한 연구비와 공장의 무리한 신축으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 개인의 단독 돌파가 자책골이 된 셈. 결국 앙드레 시트로엔이 물러났고, 이듬해 앙드레는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에 프랑스의 유명 타이어 기업인 미쉐린에 인수되어 지속적으로 자동차를 생산, 판매한 결과 경영 실적이 좋아지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된다.[11] 파밀리아레(Familiale)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휠베이스를 늘리고 3열 9인승 시트를 장착했다.[12] 처음에는 해치게이트가 2조각으로 나누어진 클램셸 타입과 비슷한 구조였으나, 1954년부터 해치게이트를 하나로 통합했다.[13] 이전까지는 차 안에 들어가서 뒷좌석을 젖혀 화물을 꺼내야 했다.[14] 토션 바와 위시본을 사용한 독립식 앞바퀴 서스펜션으로, 뒷바퀴에는 강철 빔 액슬과 파나르 로드, 트레일링 암, 토션 바를 사용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구성이라는 평가가 주이다.[15] 후속 차량인 시트로엥 DS의 서스펜션으로 쓰였다.[16] ID는 DS의 보급형 및 간략화 버전이며, 이 차가 등장하면서 트락숑 아방도 단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