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해
申不害
? ~ 기원전 337년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이자, 법가 사상가이다. 하남(河南) 출생으로 본래 정나라(鄭)의 미관말직이었으나, 한나라 소후(昭侯)의 재상이 되어 부국강병을 주장하여 15년간 나라를 태평스럽게 다스렸다. 사마천은 신자의 학문은 황로(黃老)에 근거를 두고 형명(刑名)을 주로 하였다" 고 하였다.申不害者,京人也,故鄭之賤臣。 學術以幹韓昭侯,昭侯用為相。 內脩政教,外應諸侯,十五年。終申子之身,國治兵彊,無侵韓者。 申子之學本於黃老 而主刑名。著書二篇,號曰申子。
신불해는 경읍사람으로 원래 정나라의 말단 관리였다. 법가의 학술을 배워 한나라의 소후(韓昭侯)에게 간하자 소후는 그를 상국에 임명했다. (그는) 안으로는 정치와 교육을 정비하고 밖으로는 제후들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며 15년간 집정하였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엔 나라가 부강해지고 군대가 강했으니 제후국들 중 어느 누구도 한나라를 침공하지 않았다. 신자[1]
의 학설은 황제와 노자(黃老)의 학설을 근본으로 하나, (한비자의 사상인) 형명(刑名)을 주장하였다. 두 편으로 된 저서가 있는데 그것을 『신자(申子)』라고 부른다.
『사기』 열전. 이것이 남아있는 신불해의 기록 전부다.
저서로는 신자(申子)가 있지만 지금은 전부 사라졌고, 군서치요(群書治要),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에서 신자에서 전해지는 기록을 인용하여 담은 책이 전해져 내려온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조조의 정치를 평가하면서 "신불해와 상앙의 법술을 본 받았다." 고 하였다.
미디어에서도 등장한다. 중국의 드라마인 대진제국에서 한나라의 재상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상앙이 좋지 않은 평가를 한다. 법가의 끝은 새로운 병기를 개발하며 군사훈련을 시키는 신군(新軍)의 창설과 영토 확장인데, 이것은 비밀리에 진행해야 하는 것이라는 논리. 그리고 빠르게 법망을 세우기만 하는데 그쳐서 실제적인 효력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해서 수도인 신정이 포위되어 이를 간신히 지켜냈는데, 병사들이 전부 죽어버린 허무한 광경에다 병사들이 깨어나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환상을 보고 비통함에 자결하는 것으로 퇴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