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순

 


1. 의병장, 신영순
2. 개성특별시 출신 독립운동가, 신영순


1. 의병장, 신영순


성명
신영순(辛英順)
생몰
? ~ 1908년 7월 3일
출생지
미상
사망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석문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신영순은 전화춘(全化春)의 권유에 따라 김현국(金顯國)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횡성,홍천,평창 등지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1908년 7월 3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석문리에서 원주경찰서 순사대에 체포되어 신문을 받다가 총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신영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개성특별시 출신 독립운동가, 신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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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신영순(申永淳)
생몰
1892년 10월 9일 ~ 1983년 6월 6일
출생지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고려리
사망지
경기도 안양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신영순은 1892년 10월 9일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고려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8월 한일병합 후 일제가 언론·결사·집회·출판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을 때, 개성의 한영서원(韓英書院) 교사로 있으면서 이상춘(李常春)·정사인 등 동료 교사와 함께 청년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애국 창가(唱歌)를 교육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는 자신이 작사·작곡한 <영웅의 모범>, <구주동란>, <대한혼>과 같은 창가, 이경중(李敬重)이 간도지방에서 가져온 창가, 그리고 한말의 애국창가들을 함께 모아서 <창가집(唱歌集)> 제1권 40부를 인쇄하여 한영서원과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에게 비밀리에 교육하고 보급했다.
그러나 1915년 이 사실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1917년 9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지청천이 이끄는 대동청년단에 가담하여 선전부 위원을 맡았으며, 이후에는 안양으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83년 6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신영순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