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 준로

 

[image]
이름
아난 준로(阿南 準郎)[1]
생년월일
1937년 9월 2일
출신지
일본 오이타현 사이키시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6년
소속팀
히로시마 카프(1956~1967)
긴테츠 버팔로즈(1968~1970)
지도자 경력
긴테츠 버팔로즈 2군 내야수비 코치(1971)
긴테츠 버팔로즈 수비 코치(1972~1973)
히로시마 도요 카프 코치(1974~1985)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1986~1988)
''''''히로시마 도요 카프''' 역대 감독'''
고바 타케시
(1975~1985)

'''아난 준로'''
'''(1986~1988)'''

야마모토 코지
(1989~1993)
1. 소개
2. 프로야구 시절
3. 기타


1. 소개


일본의 前 NPB 프로야구 선수/감독/코치.

2. 프로야구 시절


오이타 현에서 태어나 오이타 현립 사이키 가쿠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56년 히로시마 카프에 입단했다. 입단 1년차엔 유격수로 활약했고, 1960년 3루수를 맡고 있던 오키츠 타츠오1루수로 전환하면서 3루수로 보직 변경. 당시 카프의 주전 유격수 고바 타케시와 철벽수비 콤비를 이루면서 근성이 넘치는 수비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그후 오키츠가 1962년 3루수로 복귀했지만 그후로도 내야수의 준레귤러로 활약하였다.
1964년엔 원래 이름이었던 '''아난 준이치(阿南 潤一)'''에서 '''아난 준로(阿南 準郎)''' 로 개명하였고, 코사카 요시타카를 대신해 2루수를 맡으면서 그해 생애 유일의 규정타석 만족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후엔 고바 타케시가 2루수로 전환하면서 내야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1968년 긴테츠 버팔로즈로 이적하여 2루수로 활약 후 1970년 은퇴했다.
'''통산 성적은 1415시합 3740타석 746안타 34홈런 254타점 43도루 타율 .218'''
성적을 보듯이 타격 성적은 별로 뛰어나지 않았고[2] 빠른 발을 가진 선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규정타석을 딱 1번밖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나름 뛰어난 수비로 팀을 지탱한 수비형 선수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긴테츠 버팔로즈의 코치를 맡다가 1974년 모리나가 카츠야 당시 감독의 요청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3] 코치로써 돌아온다. 그후 1975년 2군 코치를 맡던 중 런동해버린(...) 조 루츠 감독을 대신해 고바 타케시가 감독대행으로 취임하자 1군 코치로 전임. 그 해 카프의 첫 센트럴리그 우승에 공헌한다. 이후에도 1군 코치로 활약하면서 고바 타케시 감독을 도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70~80년대의 황금기를[4] 이끈다.
1986년 고바 타케시의 후임으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으로 취임. 그해 센트럴리그 우승을 달성하였고 일본시리즈에서도 세이부 라이온즈를 상대로 1무 3승으로 우승 목전까지 갔으나... '''그 후 거짓말 같은 4연패를 당하면서 우승에 실패하고 만다(...)'''[5] 이후에도 팀을 리그 상위권으로 이끌었지만 1988년을 끝으로 퇴임. 이후 프런트로 전임해 활약했다.

3. 기타


유니폼 이름의 영어표기가 '''ANAN'''으로, 당시 유명 여성 패션잡지 an·an 의 이름과 똑같아서 '''앙앙 감독''' 이라고 부른 사람이 있던 모양이다(...)
[1] 1964년 개명한 이름. 그 이전까지의 이름은 '''아난 준이치(阿南 潤一)'''였다.[2] 특히나 장타력.. 이 사람의 현역 시절 대부분을 지낸 카프의 홈구장이었던 히로시마 시민구장이 너무나 작았기 때문에 '''투수들의 무덤, 탁구장(...)''' 등으로 놀림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게다가 긴테츠의 홈구장이었던 일본생명구장도 시민구장만큼 작았다.(펜스는 4M 정도로 더 높았지만(...)[3] 1968년 마쓰다가 구단 경영을 맡게 되면서 당시 회사명이었던 '''도요공업(東洋工業)'''의 "도요" 를 따 팀명을 바꿨다.[4] 일본시리즈 우승 3번. 리그 우승 5번.(그중 리그우승 1번은 아난이 감독으로 성취)[5] 거기다 하필 이 해가 미스터 아카헬 야마모토 코지의 은퇴연도였는지라(...) 본의아니게 은퇴하는 마지막 길에 찬물을 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