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미랄 나히모프급 장갑순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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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дмирал Нахимов»'''
1. 제원
2. 개요
3. 상세


1. 제원


전장
103m
전폭
18.6m
흘수
7.7m
기준배수량
7,780t
최대출력
8,000hp
최대속력
16.3kt
항속력
10kt로 2,800해리
무장
20.3cm 연장포 4기, 15.2cm 단장포 10기, 4.7cm 단장기관포 12기,
3.7cm 단장기관포 6기, 6.4cm 야포 2기,
38.1cm 수상어뢰발사관 단장 3기, 기뢰 40발
탑재기 수
없음
승원
650명
동형함
없음

2. 개요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러시아 제국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동형함은 없다. 함명은 러시아의 해군제독인 파벨 나히모프의 이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1883년 12월 7일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조선소에 발주해 1884년 7월에 기공에 들어가 1885년 10월 21일에 진수 후 1888년 10월에 완공되어 취역하였다.

3. 상세


본함은 러시아가 자국의 연안방어를 위해 건조한 함이었는데, 영국 해군의 순양함인 <임페리우스>급을 참고하여 설계해서 원형은 23.4cm포 4문을 탑재였지만, 본함은 의욕적으로 구경은 20.3cm 로 작았어도 당시 주력함에는 희귀했던 냄비를 엎은 모양의 포탑에 수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해군에서 어뢰방어망을 도입한 최초의 함이기도 했다.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취역 후인 1889년 5월에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태평양함대의 기함이 되었다. 1891년 9월에 수리를 위해 러시아로 귀환한 후 공사가 완료되자 1893년 7월에 뉴욕툴롱을 방문한 후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왔다.
1898년에 러시아로 다시 귀환한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근대화 개장을 1899년 11월부터 실시한 후 다시 태평양함대로 돌아왔다가 1903년에 발트해로 이동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아드미랄 나히모프도 발트함대에서 차출되어 제 2 태평양함대 소속으로 1904년 10월에 극동을 향하여 출항했다. 본함은 다른 순양함들보다도 강력했기 때문에 3척의 구식전함(오슬랴바, 시소이 벨리키, 나바린)과 함께 제2 전함대에 소속되었다. 초장거리 항해에 앞서서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함대 총 회계를 맡게 되었다.

1905년 5월 27일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해군의 장갑순양함에게 30발 이상의 명중탄을 맞고 중파한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25명의 사망자와 51명의 부상자를 냈다. 하지만 반격에 나서 일본의 장갑순양함 이와테에게 20.3cm 주포탄 3발을 명중시켜 소파판정을 냈다.
야간에 잔존함이 일본해군의 구축함수뢰정의 공격을 받았을 때 서치라이트를 점등한 본함은 어뢰를 맞았다.

대파되어 화재가 발생했지만 아드미랄 나히모프는 응급수리로 인해 침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뢰파공으로 인한 침수와 소화용 해수로 인해 부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다음날 아침에 자침처분하고 말았다. 수병들 중 103명은 함재정으로 탈출했는데 523명은 일본의 가장순양함 <사도마루>에 의해 잡혀 포로가 되어 그 중 18명이 사망했다.

함대 총 회계를 맡았다는 이유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쓰시마의 해저 97m에 가라앉은 본함에는 다량의 금괴가 남아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인양작업을 둘러싸고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 '''
출처:해인사 <러시아/소련해군 순양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