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앙카 항공 203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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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7년 전에 찍힌 사고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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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약 장사에 방해되는 대통령 후보를 살해하기 위해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벌인 테러.
1989년 11월 27일, 콜롬비아 보고타 엘도라도 국제공항을 출발해 칼리로 향하던 아비앙카 항공 203편은 이륙 5분만에 연료 탱크 근처에 설치되었던 폭탄이 폭발해 기수와 꼬리가 분리되었다. 승무원 6명을 포함하여 탑승자 107명 전원이 희생되었으며, 지상에 있던 3명도 파편에 맞아 숨졌다.
2. 테러의 원인
'''대통령 선거 후보를 암살하기 위해서.'''
1989년의 콜롬비아는 과장을 조금 섞어서 말하자면 정부보다 마약 카르텔들의 힘이 강한 곳이었고, 그 중에서도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힘이 가장 강했다. 경찰들은 매일 죽어났으며 에스코바르는 마이애미에 마약을 갖다 팔면서 떼돈을 벌고 있었다. 그렇지만 에스코바르 자신은 선거에 나서서 정계에 진출했다가 내쫓겨서 여러모로 분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나 비리행위를 고발한 사람을 잡아 족치고 있었고, 또한 자기가 직접나서서 메데진과 인근 지역을 장악하고, 이미 게릴라나 카르텔간의 협잡질이나 전쟁 등에 진이 빠진 정부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정국은 매우 불안했고, M-19가 정부와 협상하면서 합법화하는 대신에 무장을 푸는 등의 호재가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약상들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콜롬비아의 치안 상황은 매우 암울했다. 이런 와중에 치러지게 될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의 지지율이 제일 높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마약 카르텔들에 의해 벌어진 치안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마약 전쟁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고, 그 방법에는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 조약도 들어 있었다. 마약 카르텔, 특히 파블로 에스코바르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당선되어서 자신을 잡아 가둔다면 콜롬비아가 아닌 미국의 감옥으로 가게 될 것이었고, 그게 불안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갈란을 암살해 버렸다!
사실 갈란 암살 사건뿐만 아니더라도 1990년 콜롬비아 대선 자체가 피로 얼룩진 선거였는데 M-19에서 콜롬비아 정부와 협상을 통해 합법정당으로 전환한 다음에 자체적으로 후보를 냈는데 그 후보가 암살당해서 대체후보를 내서 겨우 선거를 치를 지경이었고, 콜롬비아 공산당에서도 애국동맹이라는 정당연합을 구성해서 후보를 내려고 했지만 결국 수백명의 전직 게릴라 대원들이 보복 암살당하는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을 정도였다.
콜롬비아 자유당에서는 대체 후보로 세사르 가비리아를 내보냈고, 이 사람도 당연히 마약상과의 전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에스코바르는 그래서, '''이놈도 죽여버리면 되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 세사르 가비리아가 유세를 위해 아비앙카 203편에 탑승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해서 폭파시킨 것이다.
하지만 세사르 가비리아는 아비앙카 203편에 타지 않았고, 동정여론에 힘입어 1990년 대선에서 47%의 득표율로 국가구원연맹과 M-19, 보수당 등 야당후보들을 넉넉하게 따돌려서 콜롬비아의 28대 대통령이 되었다.
3. 이후
이 항공편에는 미국인 2명이 타고 있었고, 덕분에 빡돈 아버지 부시가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제거하기 위한 첩보 지원을 하게 된다.
폭파의 주범인 라 퀴카(La Quica)[3] 는 나중에 체포되어서 파블로 에스코바르 밑에서 한 모든 범죄행위까지 같이 처벌을 받고, 10번의 종신형+45년형을 받고 미국의 감옥에서 썩고 있다.
4. 여담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나르코스에 의하면, 이 사건 때문에 파블로 에스코바르에게 빡친 아비앙카 항공이, 나중에 에스코바르의 가족이 해외로 도피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정부기관측에 모두 알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