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27
1. 제원
2. 개요
Boeing 727
보잉에서 개발한 중, 단거리용 협동체 3발 여객기. 1990년대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민항기 타이틀을 지녔던 기종이다.[1] 더불어 보잉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트라이제트이자 엔진이 기체에 붙은 여객기이다. 1963년 2월 9일 초도 비행에 성공했으며 동년 10월 29일에 유나이티드 항공에 인도되면서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었으며, 1964년 2월 1일 이스턴 항공에 처음으로 상업 운항을 개시했다. 1984년까지 총 1,832대가 생산되었다.
2.1. 탄생과 성장
보잉 707은 보잉의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한 여객기였으나 좀 어정쩡한 거리에 위치한 국내선 중, 소규모 공항에 취항 시키기에는 상당히 부담되는 기종이었다. 비용적인 측면을 제외하더라도 4발기인 데다가 당시로서는 상당한 대형 기종이었던 탓에 이착륙 거리도 길어서 당시 중소규모 공항의 짧은 활주로에는 이착륙이 어려웠다. 항공사들은 아무래도 좀 더 효율적인 항공기 운용을 원했기 때문에 국내선에도 투입할 수 있고 적당한 거리의 국제선에 투입할 수 있는 기종을 원하고 있었다. 사실 북미 내륙 운항이라면 쌍발엔진 여객기로도 충분히 그 요구사항을 구현할 수 있었으나, 미국 항공사들의 경우 수익이 제법 짭짤한 바다 건너 카리브 해 노선까지 취항할 수 있는 여객기를 원했고[2] , 이 경우에는 당시 ETOPS/LROPS 규정으로 인해 쌍발 엔진 여객기는 투입할 수 없었다. 결국 보잉은 동체 끝부분에 세 번째 엔진을 장작한 3발엔진 여객기 디자인을 항공사에 제시하였고 항공사들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즉시 개발에 착수하였다. 주익의 엔진을 후미로 옮긴 것은 이착륙 거리와도 관계있는데, 엔진을 후미로 옮기고 주익 전체에 플랩과 슬랫을 달아 양력을 극대화했다. 덕분에 707과 비슷한 탑승인원을 가지고도 보다 짧은 거리에서 이착륙이 가능해져서 중소규모 공항에도 취항할 수 있었다.
1963년 2월 9일 초도 비행이 이뤄졌고 동년 10월 29일, 유나이티드 항공에 최초로 인도되면서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었다. 첫 상업운항은 1964년 2월 1일, 이스턴 항공에서 '플로리다 마이애미 - 워싱턴 D.C.' 노선이 시발점. 당시 보잉 707이나 DC-8과 같이 4발엔진 중대형 여객기를 굴려야했던 항공사들은 전천후 여객기로 쓸 만한 727이 등장하자 환호성을 올리면서 마구 질러대기 시작하였고, 항공화물을 취급하는 물류업체에서도 역시 전천후 화물기로 굴릴 만한 727을 마구 질러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보잉은 계속 늘어나는 주문량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면서 727을 열심히 찍어댔고 단종될 때까지 무려 1,831대가 생산됐다.
727이 한참 활약하던 70년대 ~ 80년대 초중반까지는 쌍발 엔진 여객기가 영 힘을 못 쓰던 시기였다. 특히 쌍발 엔진 여객기의 경우에는 안전과 기계적 신뢰성 문제 등으로 인해 60분 이내 회항 규정으로 족쇄가 어느 정도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예를 들어 ETOPS-60 규정이 적용되는 기체라면 비행하는 동안 항상 1시간 이내에 비상 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을 끼고 다녀야 했다. 그냥 대륙을 비행하는 상황이라면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나 '''바다 좀 건너 보려면''' 온갖 애로사항을 꽃피워댔다. 실제 미국 항공사들이 3발엔진 여객기 개발을 의뢰한 것도 쌍발기로는 캐리비안 쪽에 취항할 수 없어서였다.[3] 이로 인해 항공사들은 빡빡한 규정 때문에 쌍발 엔진 여객기는 띄울 수가 없어서 그나마 4발엔진 여객기보다 좀 더 효율적인 3발엔진 여객기를 지르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727은 주력 단거리 여객기로서 좋은 실적을 올리게 되었다.
2.2. 민항기 시장에서의 퇴장
하지만 엔진과 항공기 기술이 더욱 발달되어 안정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ETOPS 수준도 올라가며 쌍발 엔진 여객기로도 충분히 대양을 건널 정도가 되자 3발 엔진 여객기의 인기는 급속도로 식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엔진이 하나 더 있냐 없냐가 연료 효율과 정비성[4] 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항공사들은 쌍발 엔진 여객기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유가 파동을 거치면서 기름 값이 오르자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게다가 중, 소형 기체치고 '''소음이 무지무지 환상적'''인 것도 혐오받는 이유 중 하나였다. 727은 같은 3발기지만 광동체 기종인 DC-10이나 L-1011에 비해 크기도 작고 협동체였는지라 적은 추력의 엔진을 장착했었고 당시 기술력의 한계상, 터보 제트나 다름없어 소음이 심한 저 바이패스 구조의 터보 팬 엔진을 장비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엔진이 동체 가까이 몰려 있었는지라(...) 같은 삼발기 장르지만 광동체 기종인 DC-10이나 L-1011에 비해 소음도 요란했다. 이런 날카로운 소음도 727의 이미지를 깎아먹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727은 1984년에 공식적으로 생산이 중지되었다.
727의 시장 내 위치를 계승한 후계 기종은 보잉 757이다.[5] 아랫급인 737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727만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1천대 이상을 판매하면서 적어도 미국 국내선만은 주름잡는 기종이 되었다. 이후 21세기에 들어와 737의 수송력이 커지면서 단종되었다.
2.3. 아직도 현역인 친구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727이 2000년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였다. 다만 어마어마한 양의 727 화물기를 가졌던 페덱스는 2013년에 보잉 727을 보잉 757로 대체하며 전부 퇴역시켰고, 남은 727도 기체 한계 수명이 다함에 따라 일부 군용으로 사용되는 기체를 제외하면 조만간 항공 업계 일선에서 전부 퇴역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2018년 12월 기준으로 -100형 2대, -200형 55대가 운용 중이다.
2019년 1월 14일 이란 아스만 항공의 B727-200이 마지막 비행을 마치면서 세계에서는 더 이상 현역인 여객형 B727을 볼 수 없게 되었다.
2.4. 대한민국에서는
대한항공에서 727-100과 727-200을 운용했는데, 전량 자체주문분이 아닌 일본항공(727-100)과 전일본공수(727-200) 출신의 기체를 중고로 들여왔거나 임차한 것들이며 1990년대 중반에 모두 처분했다. 그중 165석 규모의 727 1대는 1991년 10월 오치르바트 당시 몽골 대통령의 방한 때 대한민국과 몽골 양국이 합의한 경제 및 항공 교류 촉진 방안에 대한 지원책의 하나로 1992년 7월 9일 미아트 몽골항공에 아무런 조건 없이 무상 기증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미아트 몽골항공에서 처음으로 도입되는 제트기이다. 727 덕분에 몽골에서 대한항공은 '선조들이 타고 다니던 말을 비행기로 바꿔 준 은인'으로 불릴 정도.[6]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직접 보기 어렵지만, 인하공업전문대학에 기내 실습용으로 갖다 놓은 것이 하나 있다.[7]
1987년 대한항공에서 활동했을 당시의 나고야 비행장[8] 에서의 착륙 영상(39초~2분 21초)[9]
2.5. 사건, 사고
여객기와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충돌한 사고로 여객기의 기종이 727이다.
여기서 충돌한 psa 182편의 기종이 727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사고 이후 인하공전에 보존되어 있다.
난기류인 마이크로버스트에 의한 사고.
댈러스-포트워스와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 간의 정기편이었던 델타항공 1141편이 이륙하는 도중 추락한 사고.
많이 팔린 기체이다 보니 하이재킹 피해도 당했는데, 역사에 남은 사건으로는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과 D.B. 쿠퍼 하이잭 사건이 있다.3. 형식
3.1. 72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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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727의 표준 모델. 여객형 기준 최대 149명이 탑승 가능하다. 총 572대 생산.
3.1.1. 727-10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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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터블('''C'''onvertible) 모델. 필요에 따라서 여객용/화물용 환장이 가능한 모델로 기체 좌측 전방에 커다란 화물 로딩램프가 달려있다.
3.1.2. 727-100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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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환장('''Q'''uick '''C'''hange) 모델. 컨버터블 모델과 유사하지만 기체 바닥에 롤러 베어링이 깔려있어 30분 내로 여객용/화물용 환장이 가능하다.
3.1.3. 727-100Q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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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음 화물기('''Q'''uiet '''F'''reighter) 모델. UPS의 요구로 기존 프랫&휘트니 JT8D 터보팬 엔진 대신 롤스로이스 plc RB183 Tay 터보팬 엔진을 장착했다. 엔진 교체 요구가 들어온 이유는 기존 엔진이 '''하도 시끄러워서'''(...). 즉 이 버전이 딱히 조용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기보다는 다른 버전들의 소음 문제가 너무 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1.4. 727-100 Super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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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을 개량하고 윙렛을 추가한 모델. 덕분에 연비가 향상되고 최대속도가 약 50mph(80km/h) 증가하였다.
3.2. 72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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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100의 동체연장 모델. 약 20피트(6.1m)가 늘어났다. 여객형 기준 최대 189명 탑승 가능. 총 1,259대 생산.
3.2.1. 727-20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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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200의 컨버터블('''C'''onvertible) 모델.
3.2.2. 727-200/A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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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200의 내부 개량형으로 최대 이륙중량과 항속거리가 증가되었다.
3.2.3. 727-200F/A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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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200/Adv의 화물기('''F'''reighter) 모델.
3.2.4. 727-200 Super 27
[image]
727-200의 개량형.
4. 보존 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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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오브 플라이트 첫 생산 727-100. 1963년 프로토 타입으로 제작된후 유나이티드 항공으로 인도되어 N7001U기 활약을 하다가 1991년 퇴역한 후 보관되어 있었다. 박물관 앞에서 2016년 복원을 마친 뒤 FAA으로부터 15분 간 비행 허가를 받았다. 보잉의 공장이 위치한 에버랫 활주로에서 박물관이 위치한 보잉 필드까지 자력으로 비행했다.
- National Museum of Commercial Aviation ex-FedEx 727 애틀랜타 공항에 보관되어 있다.
- Kansas Aviation Museum, Wichita, Kansas ex-FedEx 727-100C
- 플로리다 항공 박물관 ex-FedEx 727 전시 중
- 테네시 주립대학에 의해 (KMBT)에서 ex-FedEx 727가 보존되어 있다.
- 인하공업전문대학 - 옛 전일본공수→대한항공 727기 실습 기체 활용 겸 전시 중.[13]
- 강진 구 성화대학 - 엔진이 없는 채로 녹슨 채 방치되어 있다. 델타항공에서 운영하던 비행기였다.[14]
- 어느 밀림에 한 사람이 보잉 727을 개조해 집으로 만들었다.
5. 여담
GE사에서 개발한 UDF 프롭팬 엔진을 장착하고 시험비행을 한 적이 있다.영상[15]
6. 참고 링크
7. 관련 문서
[1] 과거형인 이유는 현재 이 타이틀을 보잉 737이 보유 중.[2]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의 인기 휴양지 1위로 꼽히는 곳이 이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이다.[3] 현재 미국 연방항공국은 카리브해 노선에 75분의 ETOPS를 요구한다.[4] 3발기의 경우 2번 엔진을 727처럼 동체 꽁무니에 달든지 혹은 DC-10과 같이 동체 위로 올려야 한다. 어느 쪽으로든 날개 파일런, 하다못해 동체 옆에 노출된 엔진보다 정비나 교체가 어렵다.[5] 수송력과 항속거리 면에서는 737-400만 해도 727-200과 동급이나, 이는 737-100과 727-200이 각각 향상된 구도로 보는 게 타당하다.[6] 이후 칭기즈 칸 국제공항의 관제 체제를 싹 다 뜯어고쳐 주는 등 몽골 정부와 급속도로 친해진 대한항공은 울란바토르 노선을 자기네들의 밥줄로 만들었다. 이거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은 울란바토르에 좀처럼 발을 들이지 못했었고, 겨우 겨우 부산 가는 운수권을 받아 에어부산이 부산 - 울란바토르 직항을 취항했으며,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초에 운수권을 받아 동년 7월에서야 인천-울란바토르 노선에 취항하였다.[7] 기체 등록번호는 HL7350. 이 기체의 자세한 과거를 알고 싶다면 대한항공 376편 동체착륙 사고 문서 참조.[8] 2005년에 센트레아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이 생기기 전에 있던 공항. 현재는 고마키 비행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9] 기체넘버는 위 각주에 상술한 인하공전에 전시된 HL7350이다. 1988 서울 올림픽 특별도장이 칠해진 것으로 확인 가능.[10] 정작 가비리아는 사고기에 타지 않고 살았으며,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뭐병...[11] 참고로 사진 속 기체는 문서 상단 대한항공 기체와 동일기체이다. 대한항공으로 팔려오기 전, 일본항공에서 운영하던 시절 사진.[12] 동체가 짧다 보니 721은 뚱뚱해 보인다.[13] 대한항공 376편 동체착륙 사고의 바로 그 기체이다.[14] 구 버전에는 KLM에서 운용하던 기체였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KLM은 B727을 운용한 적이 없다.[15] 당연히 실용화 되진 않았다. 애초에 프로펠러는 고속비행에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엄청난 소음은 여객운송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시프롭엔진을 사용했던 1930년대 항공운송이야 엔진출력이 아무리 높아봐야 1200마력 정도고 엔진소음도 자동차와 다를게 없었지만 터보프롭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