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에스코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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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Emilio Escobar Gaviria. 1949.12.01~1993.12.02.
1. 소개
2. 생애
3. 여담
4. 에스코바르에 대한 일화
5. 대중문화에서


1. 소개


'''콜롬비아의 세계 최대 마약 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보스'''이자 콜롬비아를 주름잡던 기업가이기도 했다. 마약 조직을 이끌면서 한편으로 지역 사회에 경제적인 기여를 해서 민심을 얻었다. 지역 인사가 되어 나중엔 정계에 입문한 뒤로도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감각을 보여주며 잘 나가는 듯했지만, 범죄 행위와 비리가 폭로되고 의원직에서 쫓겨난다. 이후 정부에 큰 반감을 가지고 각종 테러로 정치인을 비롯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가면서 콜롬비아 정부를 괴롭혔고 미국 정부까지 나서서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흐지부지되었다. 콜롬비아 정부가 사실상 항복을 하고 송환을 포기할 정도로 재력과 인맥을 동원하여 완강하게 대치했지만, 목적을 이뤄 놓은 뒤로는 여러 가지 허튼 짓을 하는 바람에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으며 명줄을 재촉했고 종국에는 끝까지 그를 추적한 특수부대에 사살당하며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경제지 포브스에 의하면 80년대 후반 당시 추정 자산이 '''300억 달러(한화 36조)'''에 달해 '''세계 7위 부자'''로 추정될 정도였으며 현재 '''2020년 환율로는 아무리 적어도 80조 이상'''에 해당되는 액수이다.[1]

2. 생애


메데인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학창 시절에 학생위원으로 메데인 시당국에 먹을 것과 교통비를 요구할 정도로 빈곤한 삶을 살았지만 성적은 우수한 학생이라서 라틴아메리카 자치대학에 입학했을 정도였다고 한다.(다만 마약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중퇴했다고.) 이러한 재능으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수완을 발휘하게 되고, 22세 때 이미 메데인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메데인의 마약왕으로 거듭난 후에 여러 조직들과 협작을 통해 1976년에 메데인 카르텔을 결성했고 미국 내 마피아 및 갱단과 연합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여 콜롬비아 수위의 재벌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여러 계열사들을 만들어서 추가수익을 올리기까지 했다. 얼마나 부자였냐면 가지고 있는 현금의 10%가 매년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쥐들이 돈을 갉아먹어서 그렇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돈이 썩어나게 많았다. 전성기 때는 '''일 년에 220억 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의 그의 갱단이 전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컨트롤하기도 했으며, 1주에 최소 4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현금 다발을 묶는 데 사용하는 고무줄 구매에만 매달 2,500 달러를 지출하기도 하였다. 공식적으로 범죄자이기는 했지만 웬만한 대기업이나 대지주를 '''훨씬''' 뛰어넘는 넘사벽급의 재벌이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기에 정재계와 검경, 반군 게릴라들, 심지어 자신에게 협조하는 서민들에게도 돈을 뿌려가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또한 메데진의 축구 클럽 아틀렌티코 나시오날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에스코바르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은 아니면 납[2](Plata[3] o Plomo)' 정책이었다. 그것은 경찰, 공무원, 정치인과 판검사들에게 '내게 협조해서 부자가 되거나 아니면 내게 적대해서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협조한 경찰이나 군인, 정치인, 기업인들에게 거액의 자금을 주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군사력을 이용하여 안전도 보장시켰줬지만, 협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납 세례를 확실하게 내렸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죽이고 그를 대신해서 나온 같은 정당의 또 다른 대통령 후보가 타기로 되어 있었던 여객기를 폭파하기도 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인 M19에게 돈을 주어 고등법원을 공격하게 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4] 다만 초창기에는 대놓고 식의 테러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고 테러노선을 걷게 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기는 했다.
여하튼 에스코바르는 마약밀매를 하고, 때로는 경쟁 조폭들과 게릴라들을 때려잡고 경찰관들을 뇌물로 매수하는 무자비한 행각을 보이면서도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서인지 메데인의 막장 상황에 여러모로 관심을 가졌다. 또한 마약을 통해 벌어온 돈으로 농장을 인수하고 건설업과 자동차 대행판매에도 손을 댔는데 이 사업들로 추가로 수익을 창출하는데도 성공하면서 '''단순 조폭 카르텔에서 메데인 그룹'''으로 키워나갔다. 에스코바르는 자신을 사회밑바닥에서 콜롬비아 수위급의 기업을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포장했고, 처음에는 콜롬비아 양대 정당에 정치자금을 대고 콜롬비아의 여러 게릴라 및 우익민병대와도 이합집산을 거듭했지만 자신이 스스로 정치인이 되어서 안정적인 사업을 벌여나가야할 필요가 있었고[5] 개인적으로도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정계진출을 결심하게 된다.
콜롬비아 정부가 당시 내전과 오일 쇼크로 인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마약을 팔아 더럽게 벌어온 돈 중 일부를 메데인의 사회 인프라와 복지 투자에 쓰고, 빈민층에게도 상당한 돈을 나누어 주었으며, 빈민층을 위한 학교와 병원을 건설했다. 또 노숙자들과 거지들을 위해서 무료 급식소도 열었고, 성당과 가옥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축구팀도 창설하였다. 자연스럽게 메데인 주민들의 삶도 나아지면서 에스코바르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심을 얻게 되자, 눈 가리고 아웅 격으로 '''가난한 자들의 로빈 후드'''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콜롬비아 자유당에 입당하면서[6] 1982년 콜롬비아 총선에 출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한때 차기 대통령을 꿈꾸기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경찰을 상대로 매수를 하는 등의 짓거리를 해오기는 했지만 적어도 사업가로나 정치인으로써나 재능은 있었기는 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주가를 올릴 때즈음에 법무부 장관이 그의 범죄행위와 경찰을 상대로 한 매수 등 비리행위를 폭로한데다가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합동 작전으로 결국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쫓겨났다. 그 길로 정치생명은 끝나고 추적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범죄자가 되어 쫓기는 와중에 본격적으로 각성하여 콜롬비아군과 경찰, 사법부, 정치인, 게릴라 등을 매수하고, 응하지 않으면 '''사지를 찢거나 불태워 죽이고, IED를 설치'''하는 등, 테러도 불사하는 잔혹한 짓을 저질렀으며, 수도인 보고타에 '''자신의 사병을 잠입시켜서 전투'''까지 벌이는 등 당시 콜롬비아 정부의 진을 뺐다. 현실적으로도 메데인 카르텔보다 돈을 많이 버는 대기업도 없었기 때문에 정치생명은 끝났어도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7]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추적당하는 신세가 된 그는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를 자신이 갚겠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의 눈치로 인해 콜롬비아 정부가 그의 사면을 거절했다. 그리고 협상을 거쳐 자수를 한 후 자신이 지은 교도소에 '''스스로 수감됐다'''. 그런데 그 교도소는 말이 교도소지 '''웬만한 특급 호텔보다도 시설이 좋았다'''. 면적이 무려 40만 평에 달했고, 교도관도 에스코바르 자신이 직접 선발했다. 교도소 안에는 '''정원, 수영장과 당구장, 볼링장, 나이트클럽, 바'''도 딸려 있었다. 게다가 외출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가서 외출하고 왔다. 이쯤 되면 수감 생활이 아니라 휴가를 보내는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게 에스코바르를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에스코바르는 이 호화 교도소에서 탈옥을 한다.
에스코바르가 자기를 체포, 방해하려는 관료, 기자까지 마구 죽여 대다 보니 콜롬비아 정부는 에스코바르의 범죄를 파헤칠 수가 없었다. 특히 에스코바르가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사회 고위층을 매수하거나 협박을 가해서 모가지가 날아갈 위험도 있었고, 더군다나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에스코바르를 잡으려 해봐야 에스코바르 자신이 상당한 경호원과 군사력 등을 가지고 있었기에 '''폭탄이나 총에 맞아서 죽을 판이었다.'''
당시 콜롬비아는 좌익 게릴라 상당수와 휴전상태에 돌입하려 했던 참이었지만 여전히 내부사정은 어지러웠다. 이런 이유로 에스코바르가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고, 매일 같이 춤추면서 놀아제끼는 삶을 살게 된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마약 밀매사업은 여전히 벌였다.
그런데 이때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 더욱 압력을 가한다. 미국은 미국에 코카인을 수출함으로써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미국 내 마약 중독자 수를 늘리는데 기여한 국가적 차원의 적이 감옥에 수감되지 않고 '''호텔에서 매일 밤 술 마시고 춤추고 놀며 자기 나라에 마약 밀매를 하며 지내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콜롬비아 정부에 에스코바르를 미국으로 보내라고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당시 콜롬비아 내에서도 에스코바르에게 당한 사람이 수천 명씩이나 있기 때문에 여론도 좋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에스코바르의 부하 조직원 두 명이 에스코바르와 시비가 붙어서 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콜롬비아 정부가 에스코바르를 다른 감옥으로 이감을 시키려고 했고, 결국 에스코바르는 탈옥을 하게 된다.
이제 수배자 신세가 된 에스코바르는 메데인 주민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도피 생활을 했다. 그런데 자기 가족이 독일에서 입국이 거부되자,[8] 콜롬비아 대통령궁 근처에 220파운드의 C4를 터트려버린다. 대부분 다친 사람은 어린이들이었고, 이제 모두 이 천인공노할 인간을 쫓아 죽여버리기를 원했다. '''자기 자식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여서'''[9] 보고타에 있던 아들과 약 20초 간 통화를 하다가 위치가 발각되어 DEA와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투입되었으며 1993년 12월 2일, 탈출 와중에 3발의 총알에 맞고 사망한다.
그는 경호원 엘 리몬과 같이 있었는데 총격전 와중에 리몬은 죽고 그도 지붕을 통해서 탈출하다가 총에 맞았다. 가장 치명상은 귀를 뚫고 간 총알이었는데 이것이 자살인지 확인 사살인지는 정확하지 않다.[10] 사살 기념 촬영('''시체 주의'''), 스티브 머피가 보인다('''시체 주의''').

3. 여담


에스코바르는 잔혹한 성격으로 살아 있을 동안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초기에는 마음에 안드는 깡패와 방해꾼, 마약 시장의 경쟁 카르텔 조직원들을 죽이는 수준이었지만. 국회의원직에 쫓겨나고 나서부터는 완벽히 악당 기질에 눈을 떠 정부나 언론사까지 테러를 벌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경찰[11]은 물론이요,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판사[12], 검사, 정치인들까지 죽여버렸다.
심지어 에스코바르의 카르텔을 소탕하려고 시도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후보 3명'''까지 무차별 암살하기도 했다. 원래는 후보 4명을 죽이려 했으나 나머지 4번째인 세사르 가비리아 트루히요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 에스코바르가 1989년 11월 27일 아비앙카 항공 203편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시켰는데 이 사람은 다행히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아 죽음을 면한 것이다. 하지만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107명과 밖에 있던 3명, 총 110명이 죽었다. 이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은 세사르 가비리아는 28대 대통령이 되었다.
또 9일 후인 12월 6일에는 보고타에 있는 콜롬비아 행정보안국(DAS) 건물 앞에 있는 트럭을 폭파시켜 52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이미 같은 해 5월 30일에도 DAS 관리직 요원인 미겔 마사 마르케스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 그 대신 4명이 사망, 37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즉 1989년에 에스코바르는 200일도 안 되는 기간에 3건의 테러로 166명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렇게 에스코바르가 죽인 사람이 무려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학살은 물론이고 기세 좋게 카르텔을 지휘해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수도로 진격한 적도 있으니 단순히 마약왕의 범위를 넘어서 군벌에 가까운 인물로 악명을 떨쳤다. 에스코바르의 형도 동생 덕에 한몫하면서 살았으나 감옥에 폭탄이 와서 다치는 등 정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에스코바르의 장남은 꽤 정상적으로 자랐다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극진한 나머지, 언론사와 인터뷰하던 도중에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그 개새끼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 내가 직접 죽이겠다."며 복수를 맹세하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서 아르헨티나로 망명을 가면서 이름을 바꿔야 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범죄와 비리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난 이후로 피해자들을 만나서 마약 밀매와 아버지의 범죄에 대해 손수 사과하고 있으며 건축가로 조용히 살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 나르코스에 대해 왜곡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자기 아버지의 범죄를 미화시켜서라고 한다.'''
위의 악명 때문에 묻히는 거지만 사실 잔혹한 행동만 했던 건 아니고 의외로 나름대로 동정심도 있던 성격이기는 했다. 에스코바르는 어렸을 때 하도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메데인의 환경 개선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하며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메데인의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시키는 공을 세웠고 당시 막장이었던 콜롬비아의 상황 속에서 빈민층들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풀어서 집을 지어주거나 병원을 지어주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꿈도 희망도 없던 실업자들을 손수 고용시켜서 당대 콜롬비아의 경제난을 그나마 완화시켰다는 점이나 좌파든 우파든 가릴 거 없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는 점에서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질도 나름대로 있었기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1년 넘게 피신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현재도 콜롬비아 내에서 에스코바르를 좋게 보는 빈민층들이 은근히 많고 메데인에서의 에스코바르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메데인 주민을 위해 나름대로의 공을 세웠다고 해도 그와 별개로 '''범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애초에 건실한 산업을 키우는 대신에 마약을 팔아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고, 메데인 빈민층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썼다 해도 타 지역 주민들에게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테러를 저질렀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 이미지가 좋지 않다.
그가 도시 빈민의 삶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케이블카와 도시철도 등의 인프라 건설에는 이렇다할 기여를 하지 않았다.''' 메데인의 도시 기반 전체가 파블로 에스코바르 덕분에 이루어졌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중의 무지에 충격을 받는 사람도 많다. '''메데인 도시철도는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판을 치기 전인 1979년부터 계획되었으며, 1995년 1차 완공되었다.''' 1979년 파블로 에스코바르 같은 속칭 "마약왕"들이 교외도시의 치안을 망쳐 놓는 것을 우려, 메데인 시 정부의 상위 기관인 Antioqia 지방정부에서부터 계획했었던 일이며, 이는 뉴욕, 리우 등 먼저 발전했었던 도시들이 교외 도시 공동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 대안으로 도시철도를 건설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들면, 부산 도시철도 4호선이라 할 수 있다. 반송동, 금사동, 서동 등 교외지역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어 견딜 수 없어질 지경에 이르자,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건설된 것이 부산 도시철도 4호선이다. 메데인 케이블카 역시 마찬가지. '''2004년 1차 케이블카가 완공되었으니, 이 역시도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연결하기는 힘들다.''' 가디언 지를 인용하자면 케이블 카를 건설한 후 "건설 지역의 살인, 강력 범죄율이 80%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공헌 아닌 공헌이라 볼 수 있겠지만, 그가 치안을 망쳐 도시를 지옥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이루어진 일이다.
전 세계에 10억 달러 이상 재산 소유자가 겨우 226명[13]이던 1989년, 에스코바르의 재산은 250억 달러로 세계 7위의 부자로 알려졌다. 1990년에 포브스지는 에스코바르의 재산을 300억 달러(약 33조원)로 추산했다. 1990년 기준이기 때문에 오늘날 싯가로 따지면 60조원 정도 된다고 한다. 참고로 삼성그룹 이건희의 재산이 14조원 정도다. 에스코바르의 현금은 죽을 때 일부밖에 회수되지 않았다. 수천만 달러가 콜롬비아 일대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전 세계의 특수부대 출신들이 보물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재산 액수가 과장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재산이 현금이 아닌 다음에야 정확히 평가하기도 힘들고, 에스코바르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평가한 사람이 없는 터라 신빙성은 없다.
정부가 흔히 자국 내 갱단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 위해 갱단의 실태를 과장하는 경향도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갱단 두목이었던 마이어 랜스키에 따르면 FBI등은 갱단이 취급하는 돈을 열 배 이상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고. 실제로 쿠바 혁명으로 미국 갱단이 입은 손실을 자체 조사한 결과 의외로 규모가 작아서 놀랐을 정도라고 한다.
앞서 나왔듯이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를 자신이 전부 갚는 조건으로 자신과 자신의 조직원들을 전부 사면해달라고 탄원한 적이 있다. 이 당시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는 대략 '''35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내전+오일쇼크+이자율 증가라는 3콤보가 겹친 결과물이었다. 이 많은 부채를 갚아주겠다는 건 아무래도 에스코바르의 허세로 보인다.
2012년에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14]가 콜롬비아 카라콜 채널에서 113부작에 걸쳐서 절찬리에 방영되었다. 2015년에는 넷플릭스가 그의 일생과 그를 쫒는 미국 마약 감시반 요원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 나르코스를 만들었다.

4. 에스코바르에 대한 일화


  • 인생에서의 첫 범죄는 무덤의 비석을 훔쳐 가난한 상주에게 판 것이라고 한다.
  •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들여올 때 보잉 727기를 개조해서 좌석을 전부 떼어낸 후에 마약을 운반한 적이 있다고 하며, 심지어 잠수함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마약 운반의 전성기 시절에는 1년에 10분의 1정도만 제대로 '공급'해도 충분한 이윤이 남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마약 단속 정책이 바뀌었을 정도다.
  • 콜롬비아 정부군과 미군의 합동 작전에 쫓겨 추운 콜롬비아 산맥으로 도주했을 당시에 약 2백만 달러의 지폐를 불쏘시개로 썼다고 한다.
  • 도주 시절 두 명의 측근에게 재산을 맡겼었는데, 두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 사살했다. 그러자 두 측근의 주변 인물들이 반발해서 에스코바르의 집과 모친, 친척들에게 보복으로 테러를 가했다고 한다.
  • 에스코바르의 무덤은 본인 확인을 위해 조카와 부인이 함께 한 가운데 다시 파헤쳐졌다. 그의 묘비명은 "미국에 있는 감옥보다 콜롬비아에 있는 무덤을 더 선호한다." (Prefiero una tumba en Colombia que una cárcel en Estados Unidos.)라고 적혀있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에도 기여를 했다. 미군이 에스코바르를 잡기 위해 콜롬비아에서 수색한 경험이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에스코바르를 잡기 위해 미국이 콜롬비아에 투입한 부대 중 네이비 씰 제 6팀이 이후 2011년에 빈 라덴을 잡는다. #
  • 남미 여러 나라의 국부인 시몬 볼리바르의 검을 가졌던 사람으로 추측된다. 에스코바르가 활동하던 당시 시몬 볼리바르의 검은 M-19라는 게릴라 집단이 1973년에 훔쳐간 상황이었는데[15], 이 M-19가 나중에 에스코바르를 도와 콜럼비아 정부에 테러를 가하던 과정에서 시몬 볼리바르의 검을 맡겼다는 주장이다. 단순한 설로 보기 어려운 게 그의 아들 후안이 자기 아버지를 회고할 때 시몬 볼리바르의 검이 자기 집에 있었다고 주장했다.(출처: 포르투갈어)
  • 에스코바르의 부하로 일하면서 청부살인을 자행했던 존 '파파이' 자이로 벨라스케스가 1989년 구속된 후로 25년간 감옥에 있었다가 출소했는데 출소 뒤에 각종 방송출연과 유튜브 방송등으로 에스코바르와 관련된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설명하면서 유명세를 탔다.[16] 그가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도 여럿 있는데, 자신의 죄를 반성하기는 커녕 에스코바르와의 추억을 회상하거나 자기 현역 시절의 살인을 미화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모습이 계속 나온다. 더 황당한건 이런 그를 보고 콜롬비아 국민들이 서로 악수를 청하거나 사진찍는등 유명인 대우를 실제로 해준다는것.[17] 이 와중에 정치활동을 벌이면서 성질을 못버리고 진보성향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을 보였다가[18] 2018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구속되어 감옥에 다시한번 가는 신세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이후 그는 2020년 2월경 감옥에서 사망했다. #
  • 에스코바르가 마약으로 번돈으로 개인 동물원을 지었는데 이때 사들인 동물들 중 하마들만 처분이 되지 않고 거기에 방생하게 되면서 현재 처음 4마리였던 하마들이 2019년 현재는 70마리 이상으로 늘어나서[즉] 현재 콜럼비아 생태계의 재앙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전문가들도 에스코바르가 콜럼비아에 끼친 최대 해악으로 이 하마들을 사들인 것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근데 이 하마들이 숫자도 늘어나고 원체 유명해지니까 일종의 지역의 관광명물이 돼서 콜롬비아 정부가 다 없애려고 하니 주민들이 반대했다. 실제로 한마리를 쏴죽였는데 동물보호 운동가들과 지역주민들이 맹반발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정부로선 난감한 상황이다.[19] 그래서 살처분 대신 중성화 수술이나 화학적 거세 등의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 에스코바르는 미국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를 우상으로 삼았고, 카포네가 탔던 자동차를 수집해 귀하게 취급했다.

5. 대중문화에서


  • 한국에 정발된 고르고13의 첫 에피소드[20]는 누가 봐도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모델이다.
  • 톰 클랜시 소설과 이걸 영화화한 작품 <긴급명령>(해리슨 포드 주연)에 등장하는 펠릭스 코르테즈의 모티브가 되었다. 배역은 미드 24 시즌 3에서 악역으로 나온 호아킴 드 알메이다가 맡았다.
  • 2014년에 개봉된 영화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에서는 마약왕의 조카와 사랑에 빠진 캐나다 청년의 시선을 통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삶을 그려내었으며, 베네치오 델 토로가 파블로 에스코바르 역을 맡았다.
  • 2017년 3월 7일 정식 출시된 유비소프트 파리의 고스트 리콘 시리즈 신작 고스트 리콘 와일드랜드에서 나오는 산타 블랑카 카르텔의 두목인 엘 수에뇨가 이 인간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둘 다 10대 시기부터 마약의 세계에 들어가서 밑바닥으로 시작해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인물상이고 볼리비아를 주 무대로 활동하면서 심지어 자국 정부조차도 하찮게 보는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며 모두 미국의 추격을 받아 자신의 카르텔이 개박살난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특수부대들에 의해 인생이 제대로 꼬인 점 등이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출신(혹은 출생)지[21], 시작했던 밑바닥의 분야(혹은 부문)[22], 지배하는 영역의 사이즈[23], 주민들의 교화 방법[24] 등으로 보면 메인 모티브로는 에스코바르 이 양반을 쓰고 호아킨 아르치발도 구스만 로에라[25] 같은 다른 유명 마약 카르텔 인물을 포함해 판을 키워서 완성을 시킨 듯싶다.
  • 메데인 카르텔 항공 운반책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2017)에서 등장한다. 다만 영화에서 꽤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온 것과는 달리 실제 인물은 에스코바르를 한 번밖에 못 봤다고 한다.
  • 박봉성의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원작 집행인 3부 말소인에서 주인공인 피터팬 최강타의 적수로 나오는 보스 파블로 가르비아는 배경이나 모든 걸 따져 봐서 이 인물을 모델로 했다. 미국조차 처리하기 힘든 인물이었지만 미국의 청부를 받은 피터팬에 의해서 밖으로 공격을 받고 내부에서 이간계를 당하는 등의 책략에 휘말려 부하의 반란으로 사망하고 그 부하는 다시 피터팬에 의해서 정리된다.
  • 2018년 11월 13일에 출시한 히트맨 2의 에피소드 3의 타겟 중 1명인 리코 델가도(Rico Delgado)의 모티브로 보인다. 콜롬비아 출신이라는 것과 악명 높은 카르텔이자 전 세계에서 최고의 마약왕이 되고 싶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또한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하마를 기르고 있었는데 작중에서 리코 델가도 역시 작은 유적지 근처에 하마를 기르고 있다. 현재 그 하마는 리코가 사람 시체를 먹이로 던져주는 통에 인육에 중독된 상태. 이를 이용해 리코 델가도를 하마 밥으로 만들어 죽이는 방법도 있다.

[1] 참고로 현재는 독재자, 범죄조직처럼 은닉자산이 많거나 왕족처럼 개인자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경우에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2] 전통적으로 총알을 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납은 곧 총알의 은유로도 통용된다. 물론 통짜 납이었다간 제1차 세계 대전 때처럼 중독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물렁물렁한 재질 특성상 강도 문제도 생기므로 지금은 구리로 씌우거나 혼합재질을 사용한다.[3] 콜롬비아에서는 은이란 단어 Plata가 돈을 의미한다.[4] 하지만 이때의 공격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해서 M-19 단원들도 상당수 사망한 데다가 애꿎은 민간인도 다수 희생된 탓에 여론이 나빠졌고 결국 1990년에 협상을 통해 합법정당 활동으로 노선을 전환하고, 보고타 시장을 배출하는 등 현재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다.[5] 이유는 면책특권 때문이었다.[6] 그가 죽였던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과 죽이려 들었던 세사르 가비리아도 자유당 소속의 정치인이다. 같은 자유당에서 한솥밥을 먹기는 했지만 국회의원직에서 쫓겨나면서 제대로 원한이 박힌 것이다.[7] 당연히 메데진 일대를 장악한 만큼 여러 정치인들과 인연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우리베 대통령이 있다. 에스코바르가 아주 돈이 많고 군사력을 지니고 있어서 에스코바르한테 찍히면 죽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사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다만 당시에는 소속 정당도 같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인프라 확충에는 도움을 주고 빈민층들에게도 돈을 나눠주다 보니 메데진에 나쁠 것이 없던 인간이다 보니 여러모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에스코바르 일당이 몰락하자 우리베는 에스코바르 딜당의 잔당을 일부 흡수해서 우익 민병대 조직을 창설하는데 앞장섰고, 2002년 대선 때 자유당을 탈당한 다음에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우리베는 에스코바르와는 별 관계는 없었다고 발뺌하기 바쁘기는 하다.[8] '''물론 파블로 에스코바르 본인이 입국이 지연되자 독일 대사관에 전화해, 모든 독일인들을 다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했기 때문이다.'''[9] 다만 에스코바르 아들 인터뷰를 보면 자기 자식에게는 매우 자상했던 아버지는 맞다. 어차피 바깥에서 망나니 짓을 해도 자기 자식이나 부모에게 자상한 부모, 효자효녀인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니 그렇게 이상할 것은 없다. 에스코바르는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던 탓인지 자식에게는 아낌없는 사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사랑이 너무 과한 탓인지 아들이 언론을 통해 아버지가 사살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그 개새끼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 내가 직접 죽이겠다."라면서 생방송을 통해 보복을 맹세했는데 결국 이름을 숨기면서 도피생활을 해야했다. 다만 아버지의 범행을 제대로 알게 된 이후로는 피해자에게 사과하면서 반성하고 있다.[10] 에스코바르의 아들은 아버지가 언제나 했던 말이 '절대 적에게 죽지는 않겠다'였다면서 자살을 주장하지만, 당시 DEA요원이였던 스티브 머피는 갖고 있던 총으로 자살했다면 근거리에서 총알을 맞게 되므로 화상이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서 자신이 사진을 찍을 때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면서 100% 확실하게 군인들에게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드라마 나르코스에서도 군인들이 복수로 확인 사살한 것으로 나온다.[11] 최소 1000명 이상 추정.[12] 200명 이상 추정.[13] 2012년 1425명이지만 23년 동안의 인플레이션율(특히 양적완화 정책이 이어진 08년도 이후의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하면 저 당시의 Billionaire는 지금의 trillionaire수준이다.[14] Pablo Escobar, el Patron del Mal. 평범한 체격인 나르코스와 달리, 현실처럼 에스코바르가 후덕한 체격으로 나와서 싱크로율이 더 높다.[15] 1991년에 콜럼비아 정부로 돌아왔다.[16] 당시 DEA 요원이었던 스티브 머피와 하비에르 페냐도 이 방송을 보고는 구라에 가깝다고 평가했다.[17] 물론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욕을 잔뜩 들어쳐먹기는 했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는 파파이의 부하들이 던진 수류탄을 되던지려고 잡았으나 폭발하여 팔을 잃은 전직 여경과의 만남이 주선 되었는데, 여경은 파파이를 실제로 만나보고는 자신을 모욕하기 위해 이자리에 나왔음이 확실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파파이가 말로는 죄송하다고 했으나 눈꼽만큼도 반성하는 태도도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그 테러를 기획했는지 세세하게 자랑하기 까지 한다.[18] 더군다나 진짜로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구스타보 페트로 시장이 유세를 나갔다가 일련의 암살시도를 당한 후에 한 말이라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즉] 이말은, 근친상간으로 번식했다는 소리다[19] 더 그랜드 투어 시즌 3 콜롬비아 스페셜에서 에스코바르의 하마들이 등장한다. 제레미 클락슨이 파블로 뭐시기라는 사업가 가 들여온 하마가 있다고 현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고 메데인에 방문하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인증했다.[20] 제목은 '메데인 카르텔'[21] 에스코바르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콜롬비아에 짱박혔고 수에뇨는 멕시코 출신이다.[22] 에스코바르는 길바닥 마약상으로 시작, 엘 수에뇨는 13세에 시카리오(원래는 히트맨, 즉 청부 암살자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꼬붕을 의미. 우리나라 조폭으로 보았을 때 직접 힘쓰고 폭력을 저지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조폭 구성원 부류의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로 시작.[23] 에스코바르는 아무리 잘나봤자 메데인 및 그 인근 지역만 완전히 지배, 장악 및 행정을 유지(운영)했다. 하지만 엘 수에뇨는 볼리비아 전토를 자신의 나와바리로 두는 차원이 다른 전국구급 스케일을 자랑한다. 거기다 멕시코에서 활동하는 자신의 카르텔 영역까지 추가를 하면 말이다.[24] 에스코바르 이 양반은 전술했듯이 주민들 복지 창출 정도밖에 안 된다면, 수에뇨는 아예 산타 무에르테 신앙을 이용한 종교적 교화까지 써먹고 있다.[25] 구스만 이 양반도 멕시코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