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앙카 항공 52편 추락 사고
[image]
사고 6개월 전에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진.
[image]
사고현장 사진, 왼쪽 아래에 사고기의 등록번호(HK2016)가 보인다.
[clearfix]
1. 개요
1990년 1월 25일, 콜롬비아 보고타를 출발하여 메데인을 경유 후 뉴욕으로 향하던 아비앙카 52편이 연료 부족으로 미국 롱 아일랜드 코우브 넥 마을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 9명 중 8명, 승객 149명 중 65명이 사망했다. 항공사는 콜롬비아 국적의 아비앙카 항공, 기종은 보잉 707.
비행기에 고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연료를 덜 실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연료가 떨어져서 추락한 어이없는 사고이다.
2. 경과
아비앙카 52편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를 출발하여 메데인에 경유한 후, 뉴욕을 향해 다시 날아 올랐고 별 문제없이 뉴욕 상공에 도달했다. 이제 착륙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기상악화 및 공항 혼잡으로 인해 아비앙카 52편의 활주로 진입이 많이 지연되게 되었다. 안개와 바람 때문에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의 이착륙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있었고, 착륙할 비행기가 많이 밀려 있었다. 때문에 아비앙카 52편은 뉴욕 근처의 해변 위에서 1시간 넘게 대기 비행을 하게 되었다. 뉴욕 상공에 도착 당시에는 충분한 연료가 남아 있었지만, 하염없이 해변 위를 선회하며 날다보니 예비 연료도 점차 바닥나고 있었다.
최초에 공항 상공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바로 뉴욕을 포기하고 근처의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으로 향했더라면 충분히 회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종사들은 대기 지시를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먼저 대기하고 있던 몇몇 비행기들이 착륙하는 것을 보았기에, 52편도 곧 착륙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NGC에서 방영한 항공 사고 수사대에 따르면 조종사들은 보스턴 공항의 회항 여부를 관제탑에 질문했고, 관제탑은 수많은 비행기 대기 상황에 치여 이를 잠시 잊다가, 아비앙카 52편의 조종사들이 재차 질문하자 이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에 최대 30분 내로 착륙 할 수 있다며 다시 대기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날씨가 나빴던데다가 윈드 시어[3] 까지 있어서 예상과는 달리 52편기의 착륙은 계속 지연되었다. 대기한 지 73분이 지났을 때, 지상관제탑은 얼마나 더 대기할 수 있는지 조종사들에게 문의했다. 부기장은 5분 정도라고 답했으며, 보스턴 공항으로의 회항이 대안이었지만 너무 오래 대기하고 있었기에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52편에 연료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제탑에서는 다른 관제사에게 52편의 관제를 넘겼다. 아마 착륙의 시급함을 알지 못했던 듯 하다. 시시각각 줄어드는 연료에도 불구하고 인수 인계를 하다보니 지연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지연 자체도 문제지만 그로 인해 조종사들은 더 불안해졌을 것이고, 그로 인해 효율적인 비행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3. 추락
연료가 거의 바닥난 시점, 드디어 새 관제사는 22L 활주로로 접근 허가를 내렸고, 아울러 460 m 고도에 윈드 시어가 있음을 알렸다. 52편은 계기착륙장치를 따라 착륙을 위한 하강 비행에 들어 갔고, 마침내 착륙하게 되는구나 싶었는데…하필 그 때, 150 m가 채 안되는 고도에서 비행기는 윈드 시어를 만났다. 그로 인해 비행기는 예정된 활공 각도보다 급격하게 하강했고, 활주로에 못 미친 땅 위로 거의 충돌할 상황까지 몰렸다. 다시 착륙 시도를 할 연료가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조종사들은 어쩔 수 없이 착륙을 포기했다.
조종사들은 관제사에게 연료가 바닥나고 있음을 알렸다. 그에 대해 관제사는 상승하라고 지시했고, 부조종사는 안된다고, 연료가 없다고 다시 응답했다. 잠시 후, 비행기가 여전히 지면에 매우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4번 엔진이 꺼졌다. 연료가 완전히 바닥난 것이었다. 곧이어 나머지 3개의 엔진도 모두 꺼졌다. 추진력이 없어진 비행기는 고도를 잃고 공항으로부터 24km 떨어진 롱 아이랜드 북부의 코우브 넥 마을에 추락했다. 기체는 땅에 부딪힌 후 마을의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고, 언덕 맨 아래에 다다랐을 때 기체가 두동강이 나 있었다. 충돌시 충격으로 조종석은 기체로부터 떨어져나와 30m 떨어진 곳으로 튕겨져 나갔다.
외딴 산악 지역에 추락했기 때문에 구조대 도착이 쉽지 않았다. 사고 지역으로 통하는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 한 것 또한 구조대 도착을 방해했다. 도착한 구조대의 수색 작업 역시 쉽지 않았는데, 날씨가 안 좋았고 한밤중이라 깜깜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구급차들은 현장에 도착해서 부상자들을 구조했다. 워낙 많은 구급차들이 모여들어 현장에서 교통 체증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사고로 인해, 73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사망했고, 승객 84명과 승무원 1명 총 85명이 부상당했다. 생존한 승객 84명 중 80명이 중상을 입었고 4명만이 경상에 그쳤다. 승무원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선임 스튜어디스 1명도 중상을 입었다.
4. 사고 원인
사고 원인은 불명확한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당시 조종사들은 "우선(Priority)" 착륙을 요청했는데, 우선이라는 것이 영어와 스페인어에서 어감이 서로 다른 단어었다. 스페인어로는 "우선"에 "비상"이라는 어감이 있었고, 스페인어가 모국어였던[4] 조종사들이 뜻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영어를 쓰는 관제사들에게는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았고, 따라서 비상상황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 원인을 조종사 잘못으로 결론지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규정대로 연료 비상임을 관제사에게 '''조종사가 명시적으로 통보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정상적인 교신이라면 'Mayday Mayday Mayday' 또는 'PAN-PAN PAN-PAN PAN-PAN'을 선언하고 트랜스폰더를 'squawk 7700'으로 바꿔야 한다.
미국교통안전위원회는 또한, 운항 추적도 없었고 아비앙카 항공사의 운항관리사[5] 와의 교신도 없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악천후에서 붐비는 국제공항으로 비행하는 것을 도와 줄 시스템이 없었던 것 또한 사고의 부가적인 원인으로 보고하고 있다. 누군가 비행기 운항을 추적하고 있었더라면 연료가 떨어진다는 것이 관제탑으로 명확하게 전달 될 수 있었을 것이다.
5. 사고 이후
아비앙카 항공은 미국 연방 항공우주국(FAA)에 소송을 걸었다. 관제사들이 관제를 소홀히 해서 조종사의 보고를 잘못 알아들었다는 이유였다. 반면 FAA는 비행기가 추락하기 직전까지 조종사들이 한번도 연료 비상을 선언하지 않았으며, 우선적인 착륙을 요청할 때 남은 연료량을 보고한 적도 없었기에 올바르게 순위를 조정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미국 정부와 아비앙카 항공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미국 정부가 보상금의 40% 정도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아비앙카 항공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타결했다.
이 사고는 운항관리사가 적극적으로 비행 추적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항공 사고 수사대 시즌 2 5화 '타임오버(Missing Over New York)'로 영상화되었다. 또한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서도 이 사고에 대하여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와 함께 언급하였는데, 이 책에서는 사고의 주 원인을 조종사 측이 JFK 공항 관제사의 고압적인 태도에 조종사가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았고, 그로 인해 비상 상황을 제때 선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