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07
1. 제원
2. 개요
Boeing 707
보잉에서 개발한 중, 장거리용 협동체 4발 여객기.[7] 보잉이 민항기 업계의 큰손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기종이다.
더불어 보잉 여객기의 7x7 이름 패턴을 고착시킨 주인공이다. 그런데 정작 707은 그냥 보잉에서 제트 엔진 수송기에 700번대 형식번호를 부여했고 본격적으로 민항기 시장에 뛰어들면서 의미 없이 앞이 7이니 뒤에도 7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3. 개발
707은 1954년 제트 엔진 버전의 군용수송기 겸 민항기의 프로토타입으로 제안된 367-80을 모태로 하고 있다. 사실 그 이전까지 보잉은 군용기 시장에서 굵직한 계약을 따내면서 수익을 올리고 있었으나 민항기 시장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보던 상황이었고, 707의 프로토타입인 367-80 역시 미국 공군의 발주를 노리고 제작한 기체였다. 요컨대 민항기 시장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밑밥을 한 번 뿌려본 것으로 먼저 노린 것은 군용 항공기였고, 결과적으로 367-80의 가치를 인정한 공군에서 C-135 스트라토리프터를 발주하면서 1차적인 목표는 달성하였다. 이후 파생형으로 나온 KC-135가 대박을 터뜨리게 되는데, 이건 조금 미래의 이야기이다.
한편 민항기 시장에서는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 원형기 367-80의 동체가 3,350mm로 너무 좁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작해야 좌석을 4개밖에 배열 못 하는 보잉의 원형기를 쓸 바에야 6개까지 좌석배열이 가능한 더글라스사의 여객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보잉은 KC-135의 설계를 참고하여 좌석이 6개까지 배열 가능하도록 동체를 3,660mm로 넓히는 선택을 했는데, 더글라스에서 DC-8을 내놓으면서 동체 크기를 3,730mm로 더 넓히는 센스를 발휘하였다. 이에 보잉은 "질 수 없뜸!"을 외치면서 3,760mm로 넓히는 것으로 응수하였다.
이렇게 양사의 자존심 싸움으로 동체가 점점 확장된 결과 개발 및 연구비용이 더 증가하였으나 여러 항공사에서 707을 쓸 만한 여객기로 인식하고 관심을 보이면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후 1957년 12월 20일 초도비행에 성공하고 팬암과 아메리칸 항공에서 본격적인 오더를 넣으면서 1958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항공사에 인도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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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하여 환대받는 Clipper America
1958년 10월 26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한 팬 아메리칸 항공의 'Clipper America'[8] (기종 : 707-120, 기체 등록번호 : N711PA)가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에 착륙함으로써 세계최초 제트 여객기 대서양 횡단 노선을 개척했다.
이후 콴타스의 요구에 따라 비행 거리를 조금 늘린 707-138이 생산되어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대륙 간 비행이 가능한 707-320 기종이 개발되어 국제선 장거리용 여객기로도 투입되기 시작하였다.
팬암의 보잉 707 홍보영상
특히 팬암의 경우 707을 공격적으로 도입하여 국제선 노선에 마구 찍어바르는 기행을 보이면서 미국발 국제선을 사실상 독점했으며, 그 결과 민항기 제작 시장에서의 보잉과 항공여객 시장에서의 팬암의 성장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후 보잉 747의 경영 방식처럼 항공기의 크기의 따라 탑승률도 늘을 것이라 믿고 방만 경영을 했다가 망했다.
한편 707이 활주로 길이가 짧은 중/소규모 공항에 취항시키기 힘들다는 불평이 들어오자 707 초기 형식을 기준으로 탑승객 수도 줄이고 동체를 약간 개조하여 경량화시킨 720을 내놓았으나, 투자한 돈에 비해서 재미는 못 봤다.[9] 하지만 이런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707은 아주 성공적인 기종이고 항공사에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면서 꾸준히 생산이 이루어졌다.
공식적으로 보잉의 707 사업은 1979년에 중단하였으나 1994년까지 꾸준히 생산분이 인도되었으며, 모든 707 버전을 합쳐 총 1,010기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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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한 707 형식들은 엔진 꽁무니에 연꽃 모양으로 구멍 숭숭 뚫린 물건이 달려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소음 경감장치 허쉬-킷(Hush-Kit)이라 불리는 소음감소 장비인데, 터보제트 엔진소음이 가히 귀가 나가 버릴 수준인지라 장착했다고...
707의 설계가 워낙 성공적이었던 까닭에 707 이후에는 보잉 737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707의 설계를 상당 부분이 반영이 되었으며, 보잉 727과 보잉 757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707의 설계가 참고가 되었을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에 707 이후에 개발이 되는 많은 보잉 사의 여객기에 영향을 끼쳤다. 그 예로 보잉 727과 보잉 737의 기수 모양은 서로 비슷하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민항기 시장에서는 하나 둘 퇴역하기 시작하였다. 707의 중단거리 국내선 수요는 720의 실패 이후 보잉 727과 보잉 737이 물려받았고, 중/장거리 국제선 수요는 보잉 747이 물려받았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기종답게 주요 항공사에서 안 굴린다 뿐이지 아직까지 707을 여객기나 화물기로 쓰는 항공사들이 남아 있으며, 아예 707을 안 버리고 예비기로 보존 중인 회사들도 여럿 있다고 한다. 미 공군의 경우도 운용 중인 707 계열기의 부품확보를 위해 중고 707 매물을 사들이곤 한다. 어쨌든 민항기 시장에서의 비중은 아주 낮은 편이고 707은 군용기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1965년까지 생산되어 현역으로 운용되는 공중급유기 KC-135와, 1992년까지 생산된 조기경보기 E-3,E-8 J-STARS 그리고 각국 공군에서 707 민항기를 개조하여 만든 공중급유기[10] 등이 그 예이다.
- 2014년 9월 사진
루프트한자는 아직도 처음으로 구입한 보잉 항공기인 707-430을 보유하고 있다.1959년 11월에 인도받은 기체인데,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소방 훈련용으로 사용한다.
이란의 사하 항공도 이 기체를 '''여객기로'''[11] 사용하고 있었다. # ...가 2013년에 운항정지 처분을 받았다.[12] 이란항공이 마지막 운용사인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나, 민간용으로는 사하 항공이 2013년 5~6월 퇴역시킨 기체가 끝이다.
여담으로, 초반 생산분인 B707-120이나 B707-320은 최고속력이 무려 '''1,000km/h''' 였다. 기체 크기는 작은데 착륙 속도는 220km/h로 웬만한 광동체기와 비슷해서. 착륙 시 조종난을 줄이기 위해 B707-120B/-320B에서는 최대속력을 973km/h로 하향조정했다.[13]
보잉 707을 과거 일본에 들여온 항공사는 전무하다. 일본은 주로 DC-8과 CV-880을 일본항공에서 투입해서 장거리, 단거리 포지션을 담당하였고, 전일본공수는 민항기 취항 초기 때부터 도입을 검토하다가 보잉 727로 등돌린 것으로 보인다. [14]
4. 형식
4.1. 36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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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최초의 제트 여객기 프로토 타입. 영어로는 Dash 80라고도 불린다. C-135 스트라토리프터와 707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에는 P&W JT3C 터보 제트 엔진을 탑재했지만 이후 개량을 통해 P&W JT3D 터보팬 엔진으로 환장했다. 현재는 스미소니언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 중이며 여전히 비행이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이게 다 보잉이 저지른 '''과잉 설계의 혜택'''인데 대한민국 공군이 진행할 예정인 KC-X에 응찰하려는 오메가 항공이 말하길 기골이 '''90년은 버틸 수 있다'''고 한다.
1955년 똘끼 넘치는 조종사 앨빈 "텍스" 존스턴(Alvin "Tex" Johnston)(1914~1998) [15] 이 25만 명의 에어쇼 관객들 앞에서 에일러론 롤을 두 번 돌아버린 일화가 유명하다. # 심지어 그걸 보잉사 사장이 밑에서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장 앞에 불려가자 존스턴이 한 말이 가관인데 '''판촉 활동'''[16] 의 일환이었다고... 해고 직전까지 갔으나, 그 뒤로 보잉의 매출이 30%나 늘었고, 결국 별 처벌 없이 끝났다.
4.2. 707-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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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최초의 양산형 모델. 367-80을 베이스로 덩치를 키워서 각 항공사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세계최초로 대양간 노선을 개척한 제트 여객기 형식이다. 56대 생산.
4.2.1. 707-1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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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형의 P&W JT3C 터보제트 엔진을 P&W JT3D 터보팬 엔진으로 개량한 형식. 72대 생산.
4.3. 707-1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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콴타스의 요구로 동체를 약 10피트 단축, 항속거리를 늘린 형식. 7대 생산.
그 중 1기는 존 트라볼타가 가지고 있으며(콴타스 구 도색)하술할 138B형으로 개수되었다.
4.3.1. 707-13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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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형의 P&W JT3C 터보제트 엔진을 P&W JT3D 터보팬 엔진으로 개량한 형식. 6대 생산.
4.4. 70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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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더운 공항에서 운용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hot and high) P&W JT4A-3 터보제트 엔진으로 파워 업한 형식. 엔진을 교체하면서 연비가 심각하게 나빠져 주문 항공사인 브래니프 항공(Braniff International Airways)이 5대 구매한 것을 제외하면 판매 실적이 없다.
4.5. 70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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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장거리 여객기이자 707의 최종 형식. 동체를 더욱 확장하고 엔진을 교체, 최대 이륙중량이 증가하여 항속거리를 연장시킨 형식이다. 69대 생산.
4.5.1. 707-3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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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320형의 P&W JT4A 터보제트 엔진을 P&W JT3D 터보팬 엔진으로 개량한 형식. 174대 생산.
이란의 항공사인 사하 항공에서 '''2014년까지 여객용으로 운용하던 중이었다.''' 실제로 항공기 매니아들이 이 항공기의 가치 때문에 일부러 탑승하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했었다.[20]
4.5.2. 707-32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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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B형의 환장형(Convertible) 모델. 필요에 따라 여객용, 화물용으로 전환하여 사용 가능하다. 좌측 전방동체의 커다란 카고 도어가 특징. 335대 생산.
-이 문서 상단의 사진 속 대한항공 구도색 기체이자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사건기인 HL7406이 이 기종에 속한다.
4.6. 70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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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항공(당시 BOAC)의 요구로 자국산 RR 콘웨이 508 터보팬 엔진을 장착한 형식. 37대 생산.
4.7. 720(707-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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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을 베이스로 중/단거리 노선에 특화시킨 축소형. 최대 이륙중량이 줄어들면서 작은 변두리 공항에서도 용이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65대 생산.
4.7.1. 720B(707-0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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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항공(레바논 국적사)
707-020형의 P&W JT3C 터보제트 엔진을 P&W JT3D 터보팬 엔진으로 개량한 형식. 89대 생산.
4.8. 707-700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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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eing 707-700, N707QT'''
보잉 707에 당시 신형 엔진인 CFM56을 달고 나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규 기체는 매리트가 없고, 원래 있던 기체에 장착하는 사업 또한 개발 중이었던 보잉 757을 팀킬할 수도 있다는 높으신 분의 판단에 취소되었다.
하지만 해당 엔진은 1980년대에 기령이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KC-135A의 수명연장 프로그램에 의해서 장착되었다. 그 기체들은 지금의 KC-135R로 업그레이드된다.
5. 참고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보잉 707
- (영문 위키백과) Boeing 707
- (영문 위키백과) Boeing 367-80
- (영문 위키백과) Boeing 720
- 707 Model Summary by Boeing
6. 사건, 사고
- 1963년 12월 8일, 팬암 214편 추락 사고. 탑승자 81명 전원 사망.
- 1966년 3월 5일, 영국해외항공 911편 추락 사고. 124명 전원 사망.
- 1976년 8월 2일, 대한항공 642편 추락 사고. 탑승자 5명 전원 사망.
- 1978년 4월 20일,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탑승자 2명 사망, 107명 생존.
-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탑승자 115명 전원 사망.
- 1990년 1월 25일, 아비앙카 52편 추락 사고. 탑승자 73명 사망, 85명 생존.
7. 관련 문서
[1] 38은 콴타스의 커스터머 코드이다.[2] 저 미칠 듯한(...) 매연의 정체는 바로 '웻 파워(Wet Power)'. 간단히 애프터버너에서 연료 대신 물이 뿜어나와서 제트랑 섞인다고 보면 되지만 자세한 것은 애프터버너 문서 참조.[3] 등록번호는 HL7406으로 1971년식이며 대한항공에서 보잉에 직접 주문하여 인도받은 첫 번째 기체이자, 대한항공에 있었던 707들 중 유일한 자체 주문분이었다. 그래서 대한항공에 보잉의 고객 코드(BCC, Boeing Customer Code)인 "B5"라는 고객 코드가 부여되었다. 대한항공에 있었던 대부분의 707들은 월드 에어웨이즈에서 리스를 받거나 팬암에서 중고로 매입한 기체들이다. 1978년 4월 오를리에서 앵커리지로 가던 중 방향을 잘못 틀어 소련군에 피격된 후 비상 착륙한 KE902편 승객들을 헬싱키에서 태워서 김포로 귀국했을 때 이용된 기체이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 사건으로 미얀마 안다만 상공에서 폭파되어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사진은 1975년 5월 31일 파리(오를리)에서 찍힌 사진이다. [4] 엔진 흡입구에 주입할 물 2,700 리터를 추가로 적재할 수 있다(...)[5] 우월한 항속거리로 출시 당시에는 Intercontinental(인터콘티넨탈)이라는 별칭도 붙었었다.[6] 엔진 흡입구에 물을 뿌리면 13,500 파운드까지 출력이 늘어난다.[7] 이 특성은 훗날 에어버스 A321neoXLR이 물려받았다. A321XLR이 쌍발기라는 것을 제외하면 항속거리부터 시작해서 협동체라는 특성까지 보잉 707과 A321XLR은 서로 닮았다.[8] 팬 아메리칸 항공은 각각의 기체마다 애칭을 붙여준다.[9] <기체 크기와 항속거리를 줄인다>는 설계개념 자체는 희대의 망작 CV-880/990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이쪽은 베스트셀러를 기본 바탕으로 살짝 손만 봐준 물건인지라 상대적으로 예산이 적게 들어서 그럭저럭 넘어간 경우.[10] 미국, 프랑스 등에서 운용 중인 KC-135는 처음부터 군용기로 제작한 것이지만, 이스라엘이나 이란 등이 운용하는 707 Tanker는 민항기로 운용된 기체를 개장한 것이다.[11] 본래는 B707-320C, 이후에 잠시 공중급유기로 개조되었다가 다시 민간용으로 개수된 기구한 운명을 가진 항공기들이었다.[12] 이후 2017년에 다시 운행을 재개했고, 노후 여객기를 다 퇴역시킨 뒤 현재는 B737-300 3대만 운용하고 있다.[13] 뭐,유튜브에서 보잉 707 착륙영상을 보면 매우 빨라 보이고 감속에 활주로 거의 전체를 쓰기도 한다.[14] 대한항공도 DC-8을 2대 운용한 이력이 있었다.[15] 707 테스트형인 367-80 이외에도 B-52, 심지어 죽기 4년 전인 1994년에 80세의 나이로 '''777의 테스트 비행'''까지 맡았다. 그 당시 보잉사의 시험비행 파일럿 최고참인 존 캐시맨이 앨빈 존스턴에게 한 말도 유명하다. "No rolls." [16] 제품의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벌이는 홍보 활동. '''마케팅'''과 유사하다.[17] 벨기에의 항공사. 1991년에 폐업.[18] 38은 콴타스의 커스터머 코드이다.[19]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항공사. 2006년 말 캐러비안 항공에 흡수.[20] 다만 2013/2014년 이후로 사하 항공은 항공기 고령화 등의 사유로 운항 정지를 먹은 후 현재는 운항하지 않는 상태이다.[21]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영업한 항공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