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파운드
1. 개요
아일랜드의 옛 법정통화. 현재는 유로를 사용하고 있다. 교환비는 0.787564파운드/EUR이며, 환전은 독일 마르크나 오스트리아 실링처럼 동전, 지폐 모두 무기한 가능하다.
별칭으로는 퀴드(Quid)라 한다.
ISO 4217코드는 IEP, 보조단위로 페니[1] , 기호는 IR£이다. 발행은 아일랜드 중앙은행(Banc Ceannais na hÉireann)에서 직접 했다.
아일랜드어로는 '''에이레 푼트(Punt Éireannach)'''[2] 이며, 아일랜드 파운드(Irish Pound)는 영어 명칭이다. 아일랜드는 엄연히 아일랜드어가 국어이고 영어는 그보다 지위가 낮은 공용어이므로 '에이레 푼트'가 정식 명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일랜드에서는 영어를 더 자주 쓰기에 "파운드(Pound)"를 더 익숙해 한다.
복수형은 핀트(Puint)이다.
1979년까지 파운드 스털링에 1:1로 페그돼 있었다. 그래서 파운드 스털링과 동일하게 1971년까진 10진법이 아니었다가 그 해 파운드 스털링과 동시에 10진법이 도입되었다. 1978년에 아일랜드가 유럽통화제도(EMS)에 가입했지만 영국은 가입하지 않아서, 1979년 파운드 스털링과 아일랜드 파운드의 페그가 폐지되었다.
2. 과거의 에이레 푼트
아일랜드 파운드는 역사가 매우 깊은 통화로, 최초라 확인된 등장 시기가 이미 천 년이 훌쩍 넘긴 997년이다.[3] 이때 이미 이 나라의 영향으로 1파운드=20실링, 1실링=12펜스의 체계가 잡혀있었다. 그러다 영국의 아일랜드 간섭이 강화되는 12세기 후반(1180년대)에 파운드 스털링 계열로 편입, 그러다 잉글랜드 내부의 문제로 1460년에 다시 역할이 분할되었으며[4] , 1701년부터 아일랜드 파운드를 조금 더 낮은 값인 12/13[5] 으로 책정하여 19세기 초까지 이어왔다. 그리고 1826년에 그냥 영국 파운드를 통용하게 되어 아일랜드의 경제주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자 발행 중지 후 100년 가량이 지난 1928년에 재발행되었다.
3. 현대의 에이레 푼트
아일랜드 중앙은행이 출범한 이후(1943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아일랜드 파운드라 하면 아래의 것들을 이야기한다.
3.1. A 시리즈 (Nótaí bainc sraith A, 1차)
공식적인 설정으로는 1928년에 도입된 시리즈로, 현대 아일랜드 파운드 유일한 비(非)10진법 통화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1938년 이후에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내걸 수 있었고[6] , 중앙은행도 늦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1943년, 혹은 분산된 은행들의 통합과정이 마무리 된 1953년[7] 부터가 시발점이라 볼 수 있다. 발행도 현재의 런던 데라루(De La Rue)사가 되는 워털루 앤 손스(Waterlow and Sons)가 담당하였다.
이 시리즈의 별칭은 '아일랜드의 강(江)'. 뒷면에 시원스럽게 흐르는 강의 물줄기...가 그려져 있지는 않고, 현재는 환경자치단체부(Department of the Environment, Community and Local Government)로 쓰이는 커스텀 하우스(Teach an Chustaim)의 내부에 그려진 강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에서 가져온 인물같은 그림들이 하나씩 박혀있다. 상세 명칭은 아래에.[8]
- 10실링은 10진법으로 전환하는 과정인 1968년 6월 6일에 단종되었다.
- 나머지는 1975년 ~ 1977년 교체하는 과정에서 짤렸다. 하지만 20푼트짜리마저도 (당시로선) 지나치게 고액이라 사용룰이 개떡같았던 이유로, 100푼트는 B시리즈로 계승되지 못했다.
- 크기가 무진장 크다. 50푼트, 100푼트의 경우는 203*114mm에 달한다(...).
- 고액권은 잔존수량이 정말 적어서 비싸게 거래된다. 특히 사진의 50푼트는 정말 비싸다.
3.2. B 시리즈 (Nótaí bainc sraith B, 2차)
1976년부터 1982년까지에 걸쳐 도입한 시리즈로, 처음으로 아일랜드에서 디자인하고 아일랜드에서 인쇄된 첫 시리즈이다. A시리즈에 비해선 작아졌긴 하나 여전히 크기가 상당히 크다.
10진법으로 변경된 후의 A시리즈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100파운드는 어른의 사정으로 계획만 하고 발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껏 통용금지시켰던 A시리즈 100파운드를 도로 회생시켰다.
주요 테마인 "아일랜드의 역사"에 걸맞게 글자 하나하나부터 화풍이나 구성까지 토속적인 중세 유럽풍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채용한 것이 특징이며, 시간 진행은 대체적으로 저액→고액의 흐름.
생존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의외로 거래 시세의 상승폭이 가장 낮은 시리즈이다.
3.3. C 시리즈 (Nótaí bainc sraith C, 3차(최종))
1992년~1996년에 걸쳐 도입한 시리즈로, 2001년 12월 31일까지만 쓰였다. 그나마 나라 사정이 좋아진 시기에 도입되었다는 것 말고는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만 쓰여졌고[18] , 고액권의 필요성이 워낙에 없었던 덕에 50푼트와 100푼트는 특히나 찔끔 나왔다가 폭풍회수 당하여 현존하는 수량이 다른 유로이전권에 비해 극악 수준으로 적은 편이다. 덕분에 환율값 대비로선 가장 악랄한 가격대로 거래되는 중.
1991년, 9명의 디자이너가 초대되어 제각기 특색있는 도안들이 제시되었는데 그 중에서 로버트 발라(Robert Ballagh)의 디자인이 선정되었었다. 대체적으로 폰트나 배경은 전통적인 기법을, 주요 도안은 현대적인 기법을 채용한 것이 특징이다. 테마는 "지금의 아일랜드를 만든 공로자".
A나 B시리즈에 비하면 가히 혁신적일 정도로 크기가 작아졌고, 위조방지장치의 수준도 놀랄만큼 높아졌다. 특히 당시로서 "테두리 여백"이 전혀없는 도안은 이것 외에는 핀란드의 마르카, 스위스 프랑정도밖에 적용되지 않았을 정도로 대담한 기술이었다.
[1] 아일랜드어 표기로는 Pingin (복수형 Pingini)[2] IPA로 적으면 Punt Éireannach는 pˠuːn̪ˠt̪ˠ ˈeːɾʲən̪ˠəx(푼트 에려너흐), puint는 pˠɪnʲtʲ(핀트).[3] 1998년 말에 파운드화를 폐기하기로 했으니, 그야말로 '''진짜 1000년 금생(金生)'''이다. [4] 이름이나 형태가 거의 같지만, 별개의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일종의 본교/분교 차별과 비슷하다.[5] 영국 1파운드 = 아일랜드 1파운드+'''1실링 8펜스'''. [6] 그 전까지는 자치령 파운드(Saorstát pound)라는 명칭이었다.[7]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쓰여졌던 권종이 별도로 존재하기는 하나... 관련자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8] 중앙은행 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9] 12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피지(皮紙) 위에 기록된 문서. 현존하는 아일랜드 최고(古)의 '''원서'''이지만, 전 소유자인 왕립학원의 보관부주의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책으로서의 복원이 불가능하게 되었다.[10] 9세기 인물로, 플라톤 철학자 겸 사상가 겸 시인.[11] 바이킹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11세기의 장식 시집.[12] 8세기경 만들어진 기독교 성서의 수필사본으로, 장식이 알록달록 빼곡하게 그려져 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는 평도 있다.[13]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태생은 더블린이나, 영국계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영국에서 초창기 시절을 보낸 덕에 영국과 아일랜드가 서로 자기네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14] Deirdre. 아일랜드 신화, 얼스터 전설에 등장하는 비극의 히로인인 디어드라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이다.[15] An tOileánach. 실물의 배경을 자세히 보면 글씨로 채워져있다. 그것이 이 책.[16] Toirdhealbhach Ó Cearbhalláin. 17~18세기 인물로, 시각장애 음유시인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작곡과 작사를 모두 해내는 비범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도 주로 애용하던 악기가 아일랜드의 상징인 '''하프'''라 범국민급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17] [image] 1095년에 처음 세워지고 1686년에 재건, 182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동한 역사깊은 이 교회는 클래식 하면 빠질 수 없는 헨델이 "메시아"를 처음 연주한 오르간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를 반영한 듯, 나무장식엔 수많은 악기들이 빈틈없이 조각되어있다.[18] 1998년에 유로화 교체를 정했기 때문에, 2000년(새천년) 초부터 아예 신권발행을 중단했다. 유일하게 마지막 해까지 발행된 것은 나중이 되어야 수요가 증가한 50푼트.[19] 19세기 인물이며, 수녀 겸 교육자.[20] 소설 "율리시스"의 작가.[21] 아일랜드 초대 대통령.[22] 아일랜드 국회의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