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마르크

 



Deutsche Mark
1. 개요
2. 연방은행 이전은행권
2.1. 연합군정부 발행권 (1기)
2.2. 주정부 발행권 (2기)
3. 독일연방은행권
3.1. 주화
3.2. BBkⅠ,Ⅰa (1차, 3기)
3.3. BBkⅡ (2차, 미발행)
3.4. BBkⅢ, Ⅲa (3차, 4기)


1. 개요


[image] 독일서독에서 사용하던 통화. 기호는 DM, ISO 4217기호는 DEM이다. 보조단위로 '''페니히(Pfennig)'''가 있었다(100₰ = 1DM). 그리고 페니히의 기호는 ₰. 유로와의 교환비는 1.95583DM/EUR라서 일반적인 거래에서는 대개 2DM/EUR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환율은 약 650~750원/DM 가량.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유로전환 직전인 2001년 12월 인플레가 1.4%)이고 환율이 센 통화였다. 일본 엔파운드 스털링을 제치고 제 2의 기축통화이기도 했으며, 1995년 기축통화 비축률이 15.8%에 달할 정도로 신뢰도도 높았다. 그래서 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일부 국가가 부담없이 가져다 쓰기도 했다. 공식적으로는 코소보, 비공식적으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몬테네그로. 이들은 독일 본국이 유로로 변경하자마자 그대로 계승했다. 태환 마르카불가리아 레프가 독일 마르크와 각각 1:1로 환율이 고정되어 있었기도 했다. 발권 주체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있는 독일'''연방'''은행(Deutsche Bundesbank, 그냥 분데스방크라고도 함)이다. 유로화 도입 이전의 기존 로고는 유로동전 뒷면에도 있는 독일 국장.
전신은 제국 마르크이고, 동독의 통화는 동독 마르크를 참조하자. 여담으로 전신인 제국 마르크는 1948년 붕괴 이후 4개의 통화로 갈라졌으며, 그 중 독일 마르크의 교환비는 굉장히 복잡하므로 생략한다.
2001년 12월 31일 법화로서의 기능은 정지되었고 2002년 2월 28일부터 모든 통용이 중지되었다. 다만 현찰로 가지고 있는 마르크화는 계속해서 유로화로 교환해 준다고 한다. 공식적인 마르크화의 교환 기간은 다른 유로 이전 화폐[1]와 달리 기간의 정함이 없이 유로로 교환이 가능하며 아래에서 처럼 하기가 곤란하다면 하나은행 본지점에서 비고시 추심 신청이 가능하다. 독일 국내에 있는 독일연방은행 지점에 직접 방문하거나 독일연방은행 마인츠 지점으로 우편으로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독일연방은행 홈페이지에 있는 마르크를 유로로 바꾸기 위한 신청서(Exchange DM for Euro)에는 마인츠 지점의 주소가 명시되어 있다. 해당 신청서의 빈 란을 다 채우고 마르크화 현찰을 넣어 보내면 신청서에 쓰인 계좌번호로 유로가 들어온다. 단 1948년 이전 발행권, 1951년 발행 2마르크 동전은 교환이 불가능하다. 일반우편으로 보내면 지폐 기준으로 1000원을 안 넘는다. 500유로(=64만원) 가치를 지닌 1000마르크 지폐는 매우 희귀해서 이베이 거래가가 평균 100만원(미사용)을 훌쩍 넘는다. 헌 것이라도 거의 70~80만원 선. 다만 걸레짝이라면 유로로 바꾸는게 낫다. 2013년 독일연방은행은 여전히 1억 7000만 마르크 상당량의 지폐와 그것보다 더 많은 동전이 회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2. 연방은행 이전은행권


연방은행 설립 이전에는 독일 주은행(Bank deutscher Länder, BdL)에서 발행했다. 이후 독일 주은행은 그대로 분데스방크가 되었다.

2.1. 연합군정부 발행권 (1기)


1948년 제국 마르크 붕괴 이후 급히 도입한 임시통화.

2.2. 주정부 발행권 (2기)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가 1948년 6월 20일 일요일에 발표하였다. 발권 주체는 BdL. 구권과 교환할 당시 정황이나 상황, 재산의 소속에 따라 0.65 ~ 10제국마르크/DM라는 변동값으로 책정하였고, 전 국민에게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60마르크를 배포했었다. 이 때 까지는 미국프랑스의 간섭이 있었던 탓인지 미국 달러프랑스 프랑을 섞어놓은 듯한 디자인이었다.

3. 독일연방은행권


이 때부터 분데스방크가 발권을 시작했다.

3.1. 주화


주화는 1, 2, 5, 10, 50페니히, 1, 2, 5마르크가 발행되었다. 10마르크 주화도 있었지만 통용화가 아닌 기념주화. 주화의 도안은 첫 등장부터 끝까지 거의 바뀌질 않았고, 재질만 몇 번 바뀌었다.
주화를 자세히 보면 알파벳 A, D, F, G, J 중 하나가 찍혀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A는 1750년, 나머지는 1870년대부터 사용해온 유서깊은 알파벳이다. 다름 아닌 각각의 동전을 생산한 조폐창의 민트 마크다.[2] A는 베를린, D는 뮌헨, F는 슈투트가르트, G는 카를스루에, J는 함부르크 조폐창이다. 서독 시절에 A는 없었으나, 통일하면서 동독측의 베를린 조폐창에서도 기존의 서독 마르크 주화를 생산하면서 추가되었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민트 마크는 현재 발행중인 독일의 유로 동전에도 새기고 있다.
환율상 10원도 안 하던 1페니히 동전도 도태시키지 않고 유로 전환까지 사용했기로 유명했다. 유로 전환 이후에도 일부 유로존 국가가 1, 2센트 동전을 포기하고 스웨덴 반올림을 적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금도 1, 2센트 동전을 잘만 사용하고 있다.
액면

발행기간
재질
앞면
뒷면
1 ₰
[image]
1948년 ~ 2001년
1948~1949 : 강철청동 코팅
1950~2001 : 강철에 구리 코팅
호밀 이삭과 액면가
상수리나무의 새싹
2 ₰
[image]
1950년 ~ 2001년
1950~1968 : 청동
1968~2001 : 강철에 청동 코팅
호밀 이삭과 액면가
상수리나무의 새싹
5 ₰
[image]
1949년 ~ 2001년
강철에 황동 코팅
호밀 이삭과 액면가
상수리나무의 새싹
10 ₰
[image]
1949년 ~ 2001년
강철에 황동 코팅
호밀 이삭과 액면가
상수리나무의 새싹
50 ₰
[image]
1949년 ~ 1971년(톱니)
1972년 ~ 2001년(민무늬)[3]
백동
액면가
상수리나무를 심는 여인
1 DM
[image]
1950년 ~ 2001년
백동
상수리나무잎과 액면가
독일 국장
2 DM
[image]
1951년[4]
1957년 ~ 2001년
백동
1951년 : 호밀 이삭과 액면가
1957~1971 : 막스 플랑크
1969~1987 : 콘라트 아데나워
1970~1987 : 테오도어 호이스
1979~2001 : 쿠르트 슈마허
1988~2001 :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1990~1994 :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1994~2001 : 빌리 브란트
독일 국장
5 DM
[image]
1951년 ~ 2001년
1951~1974 : [5]
1975-2001 : 백동
액면가
독일 국장
10 DM
[image]
1987년 ~ 2001년

매우 다양함
독일 국장을 기본으로 매우 다양함

3.2. BBkⅠ,Ⅰa (1차, 3기)


1960년 발행, 2002년까지도 유효했던 시리즈이다. 대부분은 도이치 3번째 시리즈로 보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연방 마르크의 첫번째에 해당한다. 500(약 35만원), 1000마르크(약 70만원)는 굉장한 고액권이라 이 시절부터 그다지 쓰이지 않았지만 끝까지 탈락시키지 않았고, 이로 인한 문제도 별로 발생하지 않았다.
BBk 1
앞면
뒷면
[image]
5DM
베네치아의 아가씨
(알브레히트 뒤러 작)
상수리나무가지
[image]
10DM
청년
(알브레히트 뒤러 작)
고르히 포크(선박)
[image]
20DM
앨스베트 투처
(알브레히트 뒤러 작)
바이올린클라리넷
[image]
50DM
한트 우르밀러
(바르텔 베함 작)
홀스타인의 토르 대문
[image]
100DM
세바스티안 뮌스터
(크리스토프 암베르거 작)
독수리 한 마리
[image]
500DM
남자
(한스 밀러 슈와츠 작)
엘츠 성
[image]
1,000DM
요한 쇤너
(루카스 크라나흐 작)
림부르크 성당

3.3. BBkⅡ (2차, 미발행)


서독과 고립되어버린 서베를린의 사정을 고려해 본토용과 별도로 준비되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출하시킬 예정이었지만, 무언가 어른의 사정으로 계속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결국 실제로 투입되진 못했다. 정리하자면 '''투입 전에 문제없이 통일되어 버려서'''(...) 버려진 케이스. 목적이 목적이다 보니 디자인 자체는 1차 시리즈와는 크게 다르지 않고, 발행년도도 1960년으로 되어 있다.

3.4. BBkⅢ, Ⅲa (3차, 4기)


1990년 동서독 통일 시점부터 2002년 유로 도입시까지 사용한 마르크화로, 최초이자 최후의 통일 마르크이다. 경제력 대부분을 서독이 지원했기에 그런지 서독의 디자인을 대체로 계승하였고, 시리즈 자체도 서독쪽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부분 주 정부 발행 시리즈를 포함시켜 4번째 시리즈로 보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3번째에 해당한다. 쓸만한 100마르크와 너무 비싼 500마르크 사이에 200마르크 권을 새로 추가시켰고, 결과는 일단 유통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더더욱 500, 1000마르크의 존재감이 공기화 되어 버렸다(...)
자체적으로 워낙에 강력했던 통화이면서 심플한 디자인 때문에 이후 등장하는 세계 각국의 신권 모습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디자인 하면 빼놓지 않는 스위스 프랑, 네덜란드 길더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이쪽 것들은 예술감각을 많이 중시하거나 난해한 디자인을 자주 내놓았는지라 미투상품(?)이 거의 나오질 않았다. 한국 원화 신권(5차) 또한 이것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BBk 3
앞면
뒷면
[image]
5DM
베티나 폰 아르님
소년의 마술피리
(아르님의 민요집 중)
뷔퍼스도르프 성
브란덴부르크
괴테와 아르님 간의 서신
[image]
10DM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정규분포[6]
괴팅겐
육분의
하노버 왕국의
삼각 측정 지도
[image]
20DM
아네테 폰 드로스테-휠스호프
메아스부르크 시[7]
깃펜
너도밤나무
그녀의 저서를 상징하는
[image]
50DM
요한 발타자르 노이만[8]
제도용 자
뷔르츠부르크 시
뷔르츠부르크 주교관의
계단 및 설계도면
[image]
100DM
클라라 슈만
라이프치히
리라(악기)
그랜드 피아노
프랑크푸르트 고등 음악원
5개의 소리굽쇠
[image]
200DM
파울 에를리히
프랑크푸르트
아르스페나민의
(살바르산)모형구조
현미경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image]
500DM
안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뉘른베르크
곤충 한 마리
민들레
나방 애벌레, 나비
[image]
1,000DM
그림 형제
카젤
문자 "A"의 규격그림
독일어 사전
베를린 국립도서관
별을 담는 소녀의 그림
  • 50, 100, 200마르크는 홀로그램이 없는 버전도 있다. 있는 버전이 Ⅲa시리즈.
  • 크기는 122 * 62(mm)부터 가로 8mm, 세로 3mm씩 증가한다.

[1] 프랑스 프랑이나 오스트리아 실링과 비교하면[2] 베를린은 프로이센, 나머지는 독일 제국 시절부터 써온 것이다.[3] 발행 초기에는 테두리가 톱니였으나, 도중에 민무늬로 변경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10엔 동전이 있다.[4] 이때의 2마르크는 1마르크와 너무 비슷하다는 평이 많아 결국 1957년에 도안이 교체되었다.[5] 주요 국가중 가장 늦게까지 은화를 발행했는데, 영국이 1946년,일본,호주가 1966년,이탈리아가 1967년,캐나다가 1968년,프랑스가 1969년(50프랑 은화까지 합치면 1980년도까지이긴 한데 이 50프랑 동전은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 미국이 1970년까지 은화를 발행한 것과 비교해봐도 매우 늦은 편이다.[6] 통계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분포로, 수능 표준점수를 내는 식이기도 하다. 가우스가 처음 (만든건 아니고) 정립했기 때문에 가우스 분포(Gaussian Distribution)라고도 한다.[7] 스위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보덴호(Bodensee)의 도시.[8] 대천재 수학자 폰 노이만과는 다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