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나라에서

 

'''아침의 나라에서'''
''In the morning country''
朝の国から(あさのくにから)

[image]
'''제작'''
1986년 5월 20일
'''작사'''
박건호
'''작곡'''
길옥윤
'''노래'''
김연자
'''앨범'''
김연자 4.5집 <아침의 나라에서>
'''음반'''
지구 레코드
1. 개요
2. 내력
3. 일본에서
4. 기타
5. 바깥 고리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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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건호 작사, 길옥윤 작곡, 김연자 노래.
서울올림픽 주제가를 위해 탄생했고, 주제가에 선정됐지만, 주제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김연자는 이 노래로 일본에 재진출하며, 이 노래를 시작으로 김연자는 일본에서 성공가도를 달린다.
1987년 한국 건전가요 대상 수상.

가사를 보면 인류, 세계, 평화 같은 긍정적이고 냉전의 종식을 암시하는 느낌이 나는데 이를 통하여 당시 올림픽 위원회가 추구하던 바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으며, 뒤에 나왔던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의 가사에 그대로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가사 펼쳐 보기 & 접기 】
'''1절'''
모두가 다정한 친구처럼 모두가 다정한 형제처럼
우리의 가슴이 열리는곳 오 서울 코리아
사랑이 넘치는 거리에서 바람이 시원한 강변에서
인류의 꿈이 넘쳐난다 오 서울 코리아
저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깃발은
세계가 하나로 뭉쳐지는 평화의 손길
모이자 모이자 아침의 나라에서
모이자 모이자 우리 함께 달리자
'''2절'''
나라와 나라는 이웃처럼 나라와 나라는 가족처럼
모두가 하나로 이어진곳 오 서울 코리아
찬란히 떠오른 햇빛아래 언제나 이땅은 아름답고
지구의 미래는 밝아온다 오 서울 코리아
저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깃발은
세계가 하나로 뭉쳐지는 평화의 손길
모이자 모이자 아침의 나라에서
모이자 모이자 우리 함께 달리자

모이자 모이자 우리 함께 달리자||}}}

2. 내력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서울올림픽 테마곡 모집을 하면서 올림픽 행사 극대화에 사용할 곡 가사를 일반 공모했으나 당선작이 안 나오자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유명 시인과 프로급의 작사가 9명에게 노랫말을 의뢰했다. 이리하여 1985 년 11 월에 박건호가 작사한 <아침의 나라에서>가 채택됐다.
이 가사에다 9~12명에게 작곡을 맡긴 끝에 3명의 작곡가 길옥윤, 김희갑, 이범희의 곡이 1차로 뽑혔다. 각 작곡가들이 자신의 노래를 부를 가수를 뽑았다. 작곡가와 가수가 한 팀을 이루어 3 팀이 한달간 매주 방송에서 경합했다. 문화방송(MBC) 주말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생방송으로 시청자의 엽서 투표 끝에 당시 C팀 이었던 길옥윤 작곡 ⦁ 김연자 노래의 <아침의 나라에서>가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주제가[1]와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가로 선정됐다.
김연자 왈 “저는 트로트 가수이기 때문에 핸디캡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뽑혔다는 결과가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TV로 중계된 최종 선발대회에서 펑펑 울었어요.”
그런데 이 노래가 전파를 타고나간지 하루도 안 돼 대구에 산다는 여자가 자신의 가사를 표절했다며 이의 제기했다. 박건호의 가사가 자신의 작품 <우리는 한가족>과 <서울 인 코리아>를 합성해 만든 거라는 주장이었다. 난처해진 MBC는 박건호가 상금으로 받은 작사료 100만원을 그녀에게 위로금으로 주자고 박건호에게 제의했으나 박건호는 명예 문제라며 동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그녀는 청와대에 투서를 하면서 일이 꼬여갔으며, 박건호가 고소까지 당하자 박건호는 무고죄로 맞고소 했다. 한데 정작 재판에 원고가 출두하지 않아서 피고 박건호가 승소했다. 일각에서는 아침의 나라에서가 올림픽 주제곡으로 채택되자 무명 작사가가 표절 시비를 걸어 그 유명세를 타고 고소를 하는 등 합의금과 유명세를 얻으려는 속셈일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당시 MBC는 해당 여성에게 박건호가 받은 작사료를 위로금으로 주자고 제의했는데, 그렇게되면 박건호는 표절한 것이 되고 표절을 주장한 여성이 작사가로 인정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거절하고 무고죄로 맞고소 한 것이다. 여성이 고소를 먼저 했기에 여성이 원고로 재판이 열렸는데 해당 여성은 불참해서 패소한다. 이에 자신의 가사를 표절했다고 주장하여 유명세를 얻으려고 표절이라고 주장 했다가 박건호가 무고죄로 맞고소하자 포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결국 박건호는 표절이 아니었다고 잠정 결론이 나서 자신도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는지 그 여성에 다한 고소를 취하했다. 문제는 이 표절시비로 인해 올림픽위원회에서 아침의 나라에서를 주제곡에서 탈락시키고 새롭게 주제곡을 선정한 것이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이다. 워낙 급하게 주제곡을 선정하다보니 손에 손잡고는 외국 작곡가에게 의뢰를 하여 작곡이 되었기에 당시 해당 여성에 대한 성토가 언론을 타는 등 해당 여성에 대한 여론이 대단히 안좋았다. 인터넷이 전국에 보급된 현재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면 그 여성은 신상이 털리고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발표 당시 이 노래가 "촌스럽다", "뽕짝스럽다"라는 비난이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 1986년 5월 20일. 지구레코드는 1985년에 발매한 김연자 4집에 <아침의 나라에서>, <씨름의 노래>를 추가해서 4집을 다시 제작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때부터 공식 주제가로 사용되어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의 개막식에 연주되었다. (라고 하는데 1986 아시안 게임 개막식 때 <대회가>라고 나온 것은 다른 음악이다.#) <아침의 나라에서>는 개막식 후반에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뒤에 합창되었다. #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때는 캘거리와 서울을 위성으로 연결한 "우리는 올림픽" 생방송에서 소개되었으며, 캘거리 동계 올림픽 폐회식에서도 연주가 되었다.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약칭 SLOOC)에서 음악 저작권 협회 회장이었던 작곡가 길옥윤의 음주 문제와 저작권 협회 돈 횡령 등 문제가 심각하고 당시 계획인 노래에 무용단이 부채춤을 추는 것이 인원도 많을 뿐더러 한국의 모습만 보일 뿐 세계화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작품성이 아닌 다른 이유만으로 주제가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아침의 나라에서>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버림 받고, 세계적으로 판매 네트워크를 가진 음반 기획사들에게 일종의 지정 공모를 하는 방식으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회사를 선정하는 것을 골자로 올림픽 주제가 계획을 수립했으며 올림픽 개최가 2달밖에 안 남아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외국 작곡가한테 의뢰했다.
  • 실은 이런 모든 이유와 과정은 허울뿐인 명분일 수 있다. 1986년도부터 폴리그램사는 스위스에 살던 코리아나 매니저 김영일을 내세워 올림픽조직위와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음반사 폴리도어(폴리그램)가 올림픽 주제가 제작, 유통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하며, 가사 저작권을 헌납하고, 판매량 1백만장부터는 장당 3%의 인세를 조직위원회에 지불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조직위원회도 돈까지 벌 수 있으니 폴리도어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1987년 9월 계약을 체결한다.
결국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가 스위스의 폴리그램사에 제작 의뢰하여, 이탈리아의 조르조 모로더(Giorgio Moroder) 작곡하고, 미국의 톰 윗록(Tom Whitlock)과 한국의 김문환 교수가 공동 작사하고, 외국에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한국인 4인조 보컬 그룹 코리아나가 노래한 "손에 손 잡고"가 올림픽 주제가로서 탄생했다.
내·외신 기자 100여 명을 초청하여 1988년 6월 21일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발표했다. 이후 100여 국이 넘는 각국 언론과 방송 매체를 통한 홍보와 음반, 카세트, 비디오 등을 통해 올림픽 공식 주제가로서 보급되었다.
올림픽 주제가가 외국인의 곡으로 교체되었다고 발표되자 반대가 극심했다. 연예계는 보이콧을 으름장 놨으며, 음악계는 한번도 외국인의 노래로 올림픽을 한 경우는 없다면서 한국인의 노래로 정할 것을 요구했다. 길옥윤과 박건호다. 이미 올림픽 테마곡으로 지정됐는데, 그럴 수 있냐며 이의 제기했다. 하지만 올림픽조직위원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인가가 난 상태로 번복할수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밝힌 주제가 변경 이유는 전세계인이 주목하는 국제적인 행사이므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의 채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국제적으로 공모할 계획도 있었으나 사무적인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고, 미국, 일본, 스위스의 3개국 프로모터 중 스위스의 폴리그램사를 선택하고 그후 대중가요 관계자를 포함한 음악인들과 논의를 거쳐 결정을 했다고 한다. (상술했듯이 이는 변명이고 결국 돈이 원인일 수 있다.)
한편 KBS는 별도로 <올림필 응원가>를 선정 발표했다.
올림픽에서 한국 핸드볼팀이 우승하는 순간 울려퍼진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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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이 끝난 후 (다음날인 10월 3일 개천절로 추정됨) 88체육관(KBS아레나)에서 88 영광 서울 코리아라는 행사에서 김연자가 <아침의 나라에서>를 불렀다. 이 행사에서 다른 가수들도 다른 노래들을 불렀다.

3. 일본에서



NHK 홀 리사이틀 朝の国から
김연자는 <아침의 나라에서>가 올림픽 주제가니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본 재진출을 결심한다.
요시오카 오사무(吉岡治)가 작사한 <朝の国から>란 제목의 싱글로 발매됐다. 1988년[2] 5월 일본 バップ VAP 레코드사에서 1절은 한국말, 2절은 일본말 가사로 취입하였으며[3], 서울 올림픽 공식 주제가로 발표되고, 5월25일 도쿄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제목으로 88 서울 올림픽 공식 가요 발표회를 가졌다. 올림픽 찬가를 부른 가수가 일본에 왔다고 홍보하며 활동했다.
1988년 6월 21일 갑자기 올림픽 주제가 변경이 발표된다. 자신의 노래가 올림픽 주제가로 선정되어 흥분과 감격 속에 지내왔던 김연자는 크게 상심한다.
"일본의 방송계와 음악계의 사람이 이렇게 일관성 없는 올림픽 행정이 어딨냐고 할 때는 창피하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그저 허무하다는 생각뿐. 최선을 다했지만 할 수 없죠.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더 좋은 곡이 있다면 그 노래로 잘 치러지기를 바랄 뿐."
1988년 7월 1일 요미우리 신문에 한국 가수로서 극히 이례적으로 "한일 문화 교류와 그녀의 일본 공연 현황"이 상세히 보도되었다.
어쨌든 이노래는 시판 2개월만에 10만장 이상 팔리며 히트한다.
1989년 제 40회NHK 홍백가합전에서 서울 올림픽 찬가로 불리며 김연자가 공연했다.
일본 데뷔 후 실패했었던 김연자에게 일본 성공의 시작이 된 곡이며, 지금까지도 인기가 있다.
뒤이어 발표한 다른 노래들도 성공해서 김연자는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며 스타가 되고 이후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다.

<朝の国から>
• 1절
風が風で あるように
人間(ひと)が 人間(ひと)で あるように
熱い想い 結び合って
おお ソウル コリア
愛は街に 満ちあふれ
風は川に きらめいて
夢は たかく 花開く
おお ソウル コリア
世界はひとつ 願いをこめて
五輪の旗の下 みな集う
友よあつまれ 朝の国から
モイジャ モイジャ
さあ駈けてゆこう
• 2절
国と国は隣り同志
痛みわける家族同志
心開くこの街で
おおソウルコリア
燃える太陽燦々と
いつの日にも美しく
山よ川よ君の瞳
おおソウルコリア
世界はひとつ願いをこめて
五輪の旗の下みな集う
友よあつまれ朝の国から
モイジャモイジャ
さあ駈けてゆこう
友よあつまれ朝の国から
モイジャモイジャ
さあ駈けてゆこう

4. 기타


  • 손에 손 잡고와 비교해서 호불호가 굉장히 많이 갈리는 곡이다.
  • 의외로 9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은 이 노래를 많이 아는데, 학교 운동회에서 이 노래로 집단 안무 등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군대 행진곡으로도 쓰였다.
  • 불후의 명곡응답하라 1988 덕분에 어린 세대에게도 인지도가 생겼으며, 2017년 즈음부터 김연자가 아모르 파티로 인기가 높아져 덩달아 인지도가 높아졌다.

5. 바깥 고리



6. 관련 문서



[1] 1986 아시안 게임 개막식 때 <대회가>라고 나온 것은 다른 음악이다.# <아침의 나라에서>는 개막식 후반에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뒤에 합창되었다. # 아시안 게임 때도 사용된 것은 맞으나 아시안 게임 "공식 주제가"였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공식 주제가가 꼭 하나여야 하는 법은 없으니, 여러 곡일 수도 있고 우두머리 주제가는 아니더라도 공식 주제가일 순 있겠지만. 아시안 게임 때도 이 곡을 사용할 것이다라는 얘기가 주제가로 와전된 것은 아닐까. [2] wiki에는 1987년 발매로 표기됐지만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3] NHK 홀 리사이틀 朝の国から 에서는 1절을 일본말 2절을 한국말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