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라하시스

 


1. 개요
2. 내용
3. 역사성
3.1.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3.2. 역사적 배경에 관한 추측
4. 기타


1. 개요


기원전 18세기에 지어진 '''최초의 대홍수 신화'''의 등장인물.
수메르 신화에서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살아남은 인류의 조상으로 '지우수드라' 또는 '우트나피쉬팀'이라고도 한다.[1] 이름의 의미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 '수메르노아방주'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2]

2. 내용


아트라하시스로 불리는 판본에서 독립된 이야기로 존재한다. 홍수 이전에 신들이 가뭄과 질병을 발생시켜 지상의 인구 수를 줄이려 했다고 한다.[3][4]
대략적인 내용은 수메르 신들의 실권자 엔릴이 지상의 난잡함[5]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 지상에 대홍수를 일으키려고 했다. 이에 신들을 불러들여 '인간에게 누설하지 않음'을 전제로 '홍수가 나는 동안 신들만 잠시 지구 밖으로 대피하자'는 사실을 비밀리에 알렸다. 이에 대부분의 신들은 찬성하였으나, 인간 창조에 관여한 엔키만은 생각이 달랐다. 엔키는 엔릴에 계획에 반대하였고 엔릴과 설전을 버리지만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인간들에게 알려주지 않겠다고 멩세한다.하지만 어떻게든 인간을 살리려는 생각으로 '''인간에게 직접 누설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라는 자의적인 판단하에, 그의 충실한 사제이자 도시의 왕이었던 아트라하시스를 갈대벽 밖에 세워두고 '갈대벽'에게 혼잣말을 하여 그가 엿듣게 하는 편법으로 그에게 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동시에 아트라하시스에게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 정육면체에 이층 구조인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 이후 아트라하시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방주를 건조, 엔키에게 예고받은 그날 마을 사람들과 방주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들 및 동원할 수 있는 동물들을 모두 배에 태우고 하늘에서 해가 뜰 때 그 문을 봉했고, 신들이 우주로 대피함과 동시에 홍수가 시작됐다.
그날 이후 40일간 홍수가 지속되었고,[6] [7]아트라하시스 부부는 맨 처음 비둘기를 날렸으나 비둘기가 다시 돌아와 물이 덜 빠진 것을 알았고, 다음 제비를 날렸으나 제비가 다시 돌아와 물이 덜 빠진 것을 알았고,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날려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드러난 뭍[8]에 배를 정박하고 (방주의 동물들 중 하나를 잡아) 하늘에 번제를 드리자, 비축해둔 식량이 다 떨어졌는지 굶주림에 시달리던 신들이 주변에 파리떼처럼 몰려들었다.[9]
결국 살아남은 인간이 있음을 엔릴이 알게 되고, 엔키를 추궁한 끝에 그가 결과적으로 맹세를 어겼음을 깨닫고 분노하나, 엔키가 "비밀을 폭로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단지 우트나피쉬팀에게 나타나 꿈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신들의 비밀을 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의 처우에 대해 상의해보도록 하자!" 는 식의 억지스러운 달변으로 그를 달랬다. 엔릴은 화가 났으나, 자기들을 대신해 노동을 해주는 인간들이 없어지면 자기들도 굶는다는 걸 깨달은 엔릴은 아트라하시스 부부에게 영생을 약속하며 태양이 뜨는 곳이자 신들의 낙원 '딜문'에 거처할 권리를 부여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가 그에게 불사의 비법을 물으러 갔을 때 길가메시가 1주일 동안 잠을 참는다면 비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지만, 사흘째 되는 날 잠들어버려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만 '손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예의'라는 아내의 간청으로 길가메시에게 젊음의 풀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 풀은 가시가 있었고 또한 물 속에 자라고 있었다. 길가메쉬는 자신의 다리에 무거운 돌을 묶고는 돌에 끌려 물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손은 가시에 찔렸지만 그 식물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얻은 불로초를 길가메쉬가 샘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이 몰래 가져가 버린다.

3. 역사성



3.1.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그러나 이런 퇴적층이 국지적인 홍수에 관해 증언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다른 유적지, 특히 우르에서 12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처녀지까지 발굴이 이루어진 에리두에서조차 "대홍수"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고고학은 여러 시기에 일어난 지역적 홍수의 흔적은 드러내 주었지만 메소포타미아 전체에 영향을 미친 홍수의 실재를 확인해주지는 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조르주 루,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 한국문화사, 2013/12/10, P.142

그러니 텔의 밑바닥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초대형 대격변의 증거를 찾으려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비교적 자주 일어나며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자연 현상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조르주 루,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 한국문화사, 2013/12/10, P.144~P.145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성과에서 수메르 문명 이후라고 추정된 시기에 이라크 남부지역에서의 대홍수와 관련된 것에 한정되어 생각하면) 실제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전세계 곳곳에서 대홍수와 관련된 설화나 대홍수와 연결되는 설화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에 대규모의 홍수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3.2. 역사적 배경에 관한 추측


1. 이 목록에서 대홍수는 수메르 도시국가 전체에 대한 슈루파크의 우선권이 끝나는 시점을 나타낸다.

2. 메소포타미아 대홍수 이야기의 새 판본에 나오는 영웅은 슈루파크의 왕이나 왕자이다.

3. 슈루파크(텔파라)에서 고대 왕조 시대 초기에 있었던 중요한 홍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4. 마지막으로, 슈루파크는 기원전 제3천년기에 문화적 중심지였다. 수메르학 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파라의 토판들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기원전 2900년경 슈루파크에서 일어난 끔찍한 홍수는 이 도시의 우선권을 잃어버리게 한 패전과 동시에 일어난 것 같다. 이 두가지 재앙(분명 신들의 노여움 때문으로 인식된다)이 이상하게도 함께 일어난 사실을 지역 서기관들이 기록했고, 이것이 나중에 슈루파크 왕조와 함께 수메르 제왕 목록에 첨가되었을 것이다.

이렇나 가설의 맥락을 따라 좀 더 가설을 세워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슈루파크는 이 시대에 크게 확장되어 있었는데, 이 재앙이 발생할 당시 그곳에 인구 과잉과 기근이 있었다면 이 도시의 사제들은 우리가 『아트라하시스』에서 읽었던 교훈적인 이야기의 원형을 구성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어 대홍수 사건과 대홍수 신화는 서로 결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영속화된 것은 신화와 그 영웅이었다. 히브리 전승을 거쳐, 그리고 나중에는 유대교-기독교 전승을 거쳐 전해져 내려온 이 신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열광시키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조르주 루,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 한국문화사, 2013/12/10, P.145~P.146

종합해 볼 때,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신화이나 역사적인 배경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나오고 세계에도 대홍수 이야기가 나오니 실제 대홍수가 일어났을 겁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4. 기타


  • 근본주의를 고수하는 일부 개신교 측에서는 애초에 대홍수 설화는 세계 각지에 퍼져있어서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고,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이와 엇비슷한 설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를 베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고대근동신화와 성경이 비슷한 것은 대홍수에 대한 서로 다른 기록일 뿐, 성경이 이를 베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측의 논리대로, '대홍수의 기억은 인류 문화사의 공통된 기억[10]이어서 동일 기억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각이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해보더라도, '왜 이야기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아트라하시스와 성경은 닮아 있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신이 특정 인간에게 홍수를 대비하라고 계시를 내리고, 그 인간이 방주를 건설해서 동물들을 짝으로 보존하여 홍수를 피한다는 구체적 설화는 아트라하시스에서 최초로 기록하고 있으며, 성경은 이러한 이야기 구성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이를 볼 때, '사소한 부분이 다르니 참고하지 않았고 참고하지 않았으니 다른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일단 믿어라'는 일부 개신교인의 논리는, 아트라하시스와 성경에서 대부분의 이야기 구성이 참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유사한 점은 결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궤변에 불과하며, 이런 내용이 나온 기존의 고고학적 증거들을 무시하려는 비과학적 태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서비평학을 소극적으로 수용하거나 전혀 인정하지 않는 근본주의 혹은 보수주의 개신교의 주장으로,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는 다른 기독교 종파에서는 창세기의 천지창조나 노아의 홍수 이야기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히브리인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권에서 살았고, 바빌론 유수라는 사건을 겪었다. 유배 도중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가진 뛰어난 문화나 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야훼 신앙이 흔들리는 가운데, 야훼가 결코 메소포타미아의 신들보다 뒤떨어지지 않으며[11]오히려 그들이 신들로 여기던 해나 달과 같은 천체들은 히브리 민족의 신인 야훼가 만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신앙을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그대로 인용함으로써 고백했다고 성서학자들은 해석한다. 또한 창세기의 창조 설화나 노아의 홍수 같은 이야기들은 인류의 역사 연대를 벗어나있다는 점에서 신화로 분류한다. 애초에 유대 민족의 세계관은 당대의 다른 중근동인들이 보는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대 민족이 성경을 기록하면서 한 일은, 당대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다신교 신앙에 맞서 그들만의 유일신 신앙을 확립한 것이다.
  • 카발라 경전에서는 아트라하시스가 아인 소프 오르라는 떡밥을 남기기도 했다.

[1] 아트라하시스는 수메르 지우수드라 이야기의 아카드어 버전으로 보이며,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우트나피쉬팀으로 등장한다. 헬레니즘 시대에 쓰여진 그리스어 버전에서는 크시수트로스라고 나온다.[2] 그런데 유대교를 믿는 히브리인들도 어차피 활동반경이 수메르 근방이었으니 수메르 신화에 영향을 받아 노아의 방주 설화가 생겨났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건 없다.[3] 현 버전에서는 불필요하다 여겨 삭제되었으니 r15 ~ 19판 참조.[4] 간략하게 말하자면 엔릴이 인간의 수를 줄이려고 가뭄과 질병의 신들을 시켜 괴롭했으나 이 때 엔키가 아트라하시스의 기도에 답해 질병과 가뭄을 일으키는 신들에게 온갖 제물을 바치라고 했고 이 때마다 질병과 가뭄을 일으키던 신들이 인간들이 바친 수많은 제물을 보자 미안함과 창피함 때문에 질병과 가뭄을 거두었다는 내용이다.[5] 요약하면 단순한 울부짖음 이상의 난교. 심지어 인간의 원본인 신들도 여기에 가세해(...) 혼혈이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6] 이 홍수의 여파는 워낙 광범위하고 비참해서 인간을 낳은 산파의 여신 닌후르쌍조차 엔릴의 말에 찬성한 것을 후회하며 오열했다고 한다.[7] 판본에 따라 기간이 다르다.[8] 일부 판본에서는 니시르산이라고 한다.[9] 이 시점에서 이미 신들은 자기들이 실수했다는 걸 알았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인간이 일을 해서 제사를 바쳐야 신들도 먹고 사는 설정인데, 일꾼들을 싸그리 전멸시키려 했으니...[10] 어느 지역이나 홍수는 있을 수 있으니까, 자연에 대한 고대인들의 공통된 기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11] 고대 중근동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곧 패배한 국가의 신이 승리한 국가의 신에게 패배한 것으로도 여겨졌다. 즉 고대의 신앙관에 따르면 히브리 민족의 바빌론 유수는 야훼가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에게 패배한 것으로 여겨져 히브리인들에게 커다란 혼란을 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