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키(메소포타미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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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신화 속 행적들
2.1. 인간 창조
2.3. 인안나(이슈타르)의 명계하강
2.4. 엔키두 불러내기


1. 개요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담수와 바다를 관장하는 물의 신(水神)으로 바다의 지배자이자 일곱 지배신 중 4주신 중 한 명.
수메르식 이름은 엔키고, 바벨로니아식 이름은 에아다. 달(조수간만의 차가 달에 영향임을 생각하면 가능하다)까지 관할하였다.] 수메르어로는 엔키( ^d^ EN.KI)[1]라고 부르고 아카드어로는 에아( ^d^ E.A)라고도 부른다. 역사적으로는 엔키( ^d^ EN.KI) → 에아( ^d^ E.A)[2] 수메르 여성들의 방언[3]에선 암안키로 서술됐다.
아누사생아[4]로 형제자매는 이복동생인 엔릴과 (윗누이로 추정되는) 출산과 땅의 여신 닌후르쌍이 있다. 태어난 순서로 따지면 의 자식 중 첫번째로 장남으로 보이지만 상술한대로 사생아이므로 서열은 엔릴에게 밀린다. 사실상 엔릴이 주신 역할을 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엔키와 엔릴은 서로 찝찝한 관계를 유지하며 은근히 서로 대립하는 관계이다. 또한 내색하지 않지만 엔키는 엔릴의 몰락을 원하고 있다. '주의 신화'에서 엔릴의 후계자 닌우르타에게 주를 상대하라고 꼬드기면서 고기방패로 만들려고 하거나, 신들의 정원 딜문에서 후계자로 만들 아들을 보기 위해 누나인 닌후르쌍과 동침했다가 딸만 여럿 본다거나.[5] 자신은 이미 왕위를 얻긴 글렀으니 먼저 아들을 봐서 대를 잇게 할 계획을 여럿 세웠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6][7]
지혜의 신이라서 신이나 인간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나서서 해결해주는 역활을 한다. 또한 신들이 정한 권능을 모아둔 '메'를 관리하기도 했는데, 후에 우루크의 번영을 위해 미인계를 쓴 인안나에게 빼앗기고 만다. 재밌는 점은 '''술김에''' 그 중요한 권능들을 죄다 공짜로 넘겨준 것. 당연히 술이 깬 뒤 메가 몽땅 털린 걸 알고 되찾으려 하지만 이미 늦은 일. 학자들은 엔키의 도시 에리두에서 우루크로 도시 권력이 넘어가던 시대를 반영한 신화로 보고 있다. 이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후 지하세계를 탐내다 메를 누이인 에레쉬키갈에게 전부 빼앗겨 산송장 신세가 된 인안나가 시종을 보내 다른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자 엔키만이 유일하게 그녀를 도왔다.[8]
한편 인류의 수호신이자 신들 입장에선 헬퍼이기도 하다. 주신 엔릴이 인간이 난잡하고 시끄럽다며 지상을 때려부수는 일을 주도하거나 방관한데 비해 엔키는 그런 인간들을 몰래 도와주거나 괴물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주는 등, 인간과 곤경에 처한 다른 신들을 옹호하는 면이 강하다.[9] 하여튼 이래저래 수메르 신화의 감초이자 진 주인공(?)격. 지혜의 신답게 기발한 방법으로 곤경에 처한 주인공들을 도와준다.
양의 여신 두트르와의 사이에서 포도주의 여신 게슈틴안나와 '양치기'이자 훗날 인안나의 남편이 되는 두무지를 낳는다. 닌후르쌍의 자식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에누마 엘리쉬에선 마르두크의 아버지로도 등장하지만 에누마 엘리쉬에서만의 이야기.
그를 뜻하는 수는 40이며, 같은 신화 속 엔키두와는 관련 없다.

2. 신화 속 행적들



2.1. 인간 창조


수메르의 신들 중 가장 먼저 땅(ki)의 지배자(en)가 된 신으로 땅에 최초의 도시, '멀리 여행하여 세운 거처'로 에리두(E.RI.DU/eridug ^ki^ )를 세웠다.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개척하고 신들이 거주할 곳을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혜의 신 엔키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엔릴은 성스러운 도시 니푸르에 모인 신들 앞에서 행한 연설에서 '엔키의 에리두 건설'을 축하하며 그를 '아버지'라고 칭송했다. 다음은 <엔키의 니푸르 여행>으로 명명된 점토서판의 117~129행에 적힌 엔릴의 대사다.
엔릴은 아눈나키 신들에게 연설했다. "여기 참석하신 위대한 신들 여러분! 회합 장소에 나온 아눈나키 신들! 엔키 왕이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가 산처럼(파손) 땅으로부터 에리두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는 즐거움을 주는 곳에, 에리두에, 순결한 땅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에 세웠습니다(파손). 이 모든 것을 이룬 아버지 엔키를 찬미합시다!"
또한 엔키는 이 일로 개척자인 동시에 창조자, 즉 누딤무드(NU.DIM.MUD/ ^d^ nudim₂-mud)[10]로 불리우게 되며, (지구) 개척이 본격화될 즈음 아래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간을 만들었다.
"작은 신들은 땅을 개척하는 노동에 지쳐 있었다. 큰 신들은 팔짱이나 끼고 지시하는 역할을 했을 뿐 노동의 고통은 작은 신들의 몫이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작은 신들은 흙 운반용 삼태기를 내던지고, 꼭두새벽부터 연장을 부수고는 신들의 통치자며, 의 후계자인 엔릴의 집으로 쳐들어 갔다. 신들의 비상대책회의가 열렸고, 큰 신들은 작은 신들의 노동을 대신할 원시 노동자로 인간을 창조하기로 결정했다. 작전은 신들 중 가장 지혜로운 엔키의 주도하에 결행되었고, 산파의 여신 닌후르쌍(아루루)이 투입되었다. 파업에 이어 폭동을 주동한 신의 피가 제공되어 흙[11]과 섞여졌으며, 엔키의 손에 의해 정화되었다. 정화된 신의 유전자는 '출산의 여신들' 자궁 속으로 안착되었다. '운명을 정하는 집'인 비트 쉼티(Bit Shimti)에서, '숨(SHI)을 불어넣어(IM) 생명(TI)을 만들어내는 집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담(A.DAM)은 '검붉은 흙으로 만든 존재'다. '검붉은 흙'인 아다마(adama)로 창조된 인간은 신들의 영혼을, 그들의 유전자를 간직한 위대한 생명체인 셈이다."[12] - 김산해(2005),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humanist
그러니까 신화에 따르면 사람의 조상은 대리모였다.[13]
직접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인류 탄생 기념파티에서 산파의 여신의 도발에 넘어가 장애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산파의 여신이 만들어낸 장애인들에겐 알맞은 운명을 정해 불행한 삶을 피하게끔 했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미숙아의 경우엔 상대인 산파의 여신이 이렇다할 운명을 정해주지 못해서... 당시 의술로는 조산아를 살릴 방법이 없었던 모양.

2.2. 대홍수


인간들의 난잡한 울부짖음에 짜증이 난 엔릴은 대홍수로 이들을 쓸어버리려 했으며, 신들의 회의에서 대홍수가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인간에게 발설하지 말 것을 맹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엔키는 자신이 창조에 관여한 피조물들에 애착이 있었고, 이에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만 안하면 되는거지?' 라며 맹세의 약점을 간파한 뒤, 자신이 아끼는 인간 사제이자 도시의 왕인 인간 우트나피쉬팀/아트라하시스를 자신의 거처 밖 갈대벽으로 불러들이거나 그의 집으로 간다. 그리고는 우트나피쉬팀이 엿들을 수 있는 어조로 대홍수가 난다는 사실과 방주의 치수를 혼잣말하듯 말했고, 이를 엿들은 우트나피쉬팀은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 대홍수 속에서 살아남게 된다. 그 후 하늘에 번제를 드리자 굶주린 신들과 함께 엔릴이 나타나 대노한다. 그리고는 이런 전적이 있는 엔키를 추궁했고, '내 혼잣말을 저놈이 엿들은 거임'하고 발뺌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트라하시스 참조.
사실 이 사건에는 전일담이 있다. 먼저 수천 년 동안 전염병으로 사람들을 죽어나가게 했는데, 여기에 엔키가 모종의 관여를 했는지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 다시 인류에게 심각한 가뭄을 수천 년 동안 안겨주었는데, 이때 엔키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자신의 거처가 있는 습지 일대로 도망치고[14] 나몰라라 했지만 결국 아트라하시스를 비롯해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서 몰래 무언가를 논의해서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다고 한다.[15] 이를 안 엔릴의 분노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 추궁당하고, 본인은 더 듣기도 지겹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엔릴은 홍수로 쓸어버릴 때 입 다물라는 서약을 하도록 요구했고, 엔키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엔릴이 화났다는 것을 알기에 들어줬다는 것이다.

2.3. 인안나(이슈타르)의 명계하강


사랑의 여신 인안나가 저승에 갔다가 에레슈키갈에게 죽어버리자, 땅위의 모든 것들이 불임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인안나는 저승으로 가기 전에 자신의 심복에게 3일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엔릴, 난나, 엔키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인안나가 알려준대로 심복이 신들을 찾아가지만, 둘은 거절하고 오직 엔키만이 인안나를 도울 방법을 생각한다.
저승에 갈 때는 문을 하나 지날 때마다 자신이 지닌 것을 놓고 가야하는데, 이 법 때문에 인안나도 마지막엔 벌거벗은 상태로 에레슈키갈에게 덤볐다가 죽었다. 이 법도를 피하기 위해, 엔키는 손톱에서[16] 인간 비슷한 생명체를 만들고, 이들에게 저승에 가서 인안나의 시체를 찾아오도록 한다. 찾아온 시체에 엔키의 생명수를 뿌리니 인안나는 부활하였다. 이슈타르 문서 참조.

2.4. 엔키두 불러내기


길가메시의 절친 엔키두가 저승에 갔다가 못돌아오는 일이 발생한다. 인안나가 길가메시에게 준 선물을, 길가메시가 저승으로 가는 구덩이에 실수로 떨어뜨렸고, 엔키두가 이걸 집어 오려다가 저승에 잡혀버린 것. 길가메시는 신들에게 엔키두를 돌려달라며 제사를 올렸다. 여기서도 엔릴은 한번 죽은 사람은 살려낼 수 없다고 거절하지만, 엔키는 지혜의 신답게 좀 다른 방법을 생각해낸다. 살려내는 건 안되지만 저승에 빛을 비추면 엔키두의 그림자가 이승에 나타난다는 것. 이 방법으로 길가메시는 엔키두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이슈타르 참조.

[1] 그런데 수메르어 '키'는 땅이라는 뜻으로 '엔.키'라는 이름은 '땅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처음 땅에 내려온 아눈나키들의 대장은 '엔,키'였으며, 첫 도시도 그의 통치지역이던 '에리두'였다. 일부 수메르 점토판에 따르면 '자신이 안의 장남이자, 지구의 통치자라고 항변하며, 왜 자신이 고라같이 막힌 바다를 가져야' 하는지 항변하는 내용도 있다.[2] 수메르 신화가 원조였으나, 후에 아카드 신화, 아시리아 신화, 바빌로니아 신화로 넘어갔다. 틀은 바뀌지 않고 내용만 조금 바뀌어서 메소포타미아 신화로 합쳐서 부르는 것.[3] 수메르에는 여성들만이 사용하는 어투가 있었다. 신화상에선 여신 인안나의 대사에서 볼 수 있다.[4] 다만 평범한 개념의 사생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현재 수메르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엔키가 수메르의 종교의식인 신성혼(神聖婚)과 같은 결합으로 태어났다고 보는 의견이 주류.[5] 이때 닌후르쌍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꽃의 여신 닌쿠라이다. 그런데 엔키는 이 닌쿠라와의 사이에서 직조의 여신 웃투를 보았고(즉 딸이자 손녀), 다시 이 웃투와의 사이에서, 그러니까 손녀와 통정하여 여덟 명의 자식을 보았다(...).[6] 하지만 엔키가 엔릴의 권력을 찬탈할 목적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닌우르타를 천거한 것은 엔키이며 닌우르타에게 '운명의 서판'을 훔친 괴조 '엔주'를 물리칠 방법과 무기를 준 것도 엔키이다. 그리고 괴조 '엔주'의 정체는 닌우르타의 형 '수엔'으로 추정되는데(수메르어 표기는 초기와 중후기 간에 표기순서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악한 '주'는 수엔이라고 불리던 난나르(난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생각해보면 엔키는 엔릴이 자신의 아들 중 형인 수엔(난나)을 제치고 동생 닌우르타에게 왕위를 주려하여 이에 반발한 수엔이 '운명의 서판'을 훔쳐 달아나게 되자, 닌우르타로 하여금 이를 되찾아오게 하여 왕권 계승을 공고히 하는데 도움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해석에서는 엔릴의 정식아내인 닌릴의 아들인 난나르(난나(메소포타미아 신화))가 후계자가 아니라 여자형제인 닌후르쌍과의 사이에서 낳은 닌우르타가 후계자인 이유는 후계자 분쟁에서 보다 순혈인 자가 후계자라는 것이라고 나온다.[7] 그리고 딜문 신화는 엔키가 닌후르사그(닌후르쌍)와 함께 만든 8가지 식물(이게 딸로 표현되기도 한다)을 몰래 먹어버려서 화가 난 닌후르사그에게 8군데에 상처가 나는 저주에 걸리게 되고, 후일 여우에 의해 서로 화해하게 되고 닌후르사그가 8군데의 상처를 치료하는 식물을 만들어 먹인다(상처를 치료할 자식들을 만들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아픈 부위 중에 갈비뼈가 있었고, 갈비뼈를 치료하기 위하여 만든 여신이 '''닌-티'''인데, 수메르어에서 '갈비뼈'를 뜻하는 단어인 '''티'''는 생명이라는 뜻을 중의적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엔키가 자식에게 왕위를 주겠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다만 엔키의 아들 마르두크가 아누와 엔릴의 자리를 찬탈하기는 하였다). 닌후르사그에게 '왕자의 대부인'이라는 말을 하는데 왕자는 엔키 자신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즉, 닌후르사그는 내 부인이라는 공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엔키에게는 닌키라는 정실부인이 따로 존재한다.[8] 이슈타르 항목 참조. 다른 신들은 구갈안나가 죽은 이유와 인안나의 바보짓을 알고 있었던 관계로 대놓고 인안나를 옹호할 수 없었다. 다만 엔키는 메를 빼았겨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으나 인안나가 없어 지상에 모든것이 사랑도 못하고 불구가 되버려 자멸할 위기에 쳐해 내버려둘수 없던 노릇이었다.[9] 대표적으로 대홍수 직전 (대외비 서약으로 인해 직접 알려줄 수는 없었지만) 우트나피쉬팀 부부가 벽에 대고 말하는 자신의 혼잣말을 엿듣게 해 방주를 제작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 저승의 권한을 노리고 저승세계로 갔다가 죽어버린 인안나를 되살려주기도 했다.[10] 누딤무드는 창조자라는 뜻이다.[11] 일부 책에선 털복숭이 짐승 묘사 때문에 이를 유인원으로 해석하기도 했다.[12] 여담이지만 국내의 일부 책에선 이 내용을 서술하면서 최고의 명대사(?)를 덧붙였는데 '''인류는 그 탄생부터가 (신들의) 혁명으로 시작됐다.''' ...역으로 생각하면 파업+폭동이란 죄를 지은 신의 피가 담겼으니, 원죄를 지닌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13] 다른 이야기 판본에 따르면 아눈나키들의 불평에 엔키가 그들이 말하는 존재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는 고고학적으로 현생인류의 조상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14] 지금은 전부 사막화되었지만 그쪽 일대는 당시만 해도 습지대였다고 한다.[15] 이 전일담을 놓고 보면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홍수가 벌어질 거라는 예측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16] 손톱의 때라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