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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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고대 그리스어: Νῶε (Nôe, 노에)
아랍어: نوح (nūḥ, 누흐)
아르메니아어: Նոյ (Noy, 노이)
영어: Noah
라틴어: Noë
한국어: 노아 / 노에[1]
히브리어: נח (nóakh, 노아흐)[2]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너무나 썩어 있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하느님 보시기에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땅 위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 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것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기로 하였다. 너는 전나무로 배 한 척을 만들어라. 배 안에 방을 여러 칸 만들고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여라."'''
'''"나는 너희와 계약을 세워 다시는 홍수로 모든 동물을 없애버리지 않을 것이요,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으리라." 하느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너뿐 아니라 너와 함께 지내며 숨쉬는 모든 짐승과 나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계약의 표는 이것이다.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공동번역 성서, 창세기 8장 11-13절
2.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내용
성경에 의하면, 당시 세상은 세속적인 카인의 후예들과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결합하면서 극도의 타락상을 보이게 되었다. 야훼는 이에 슬퍼하며 대대적인 홍수로 이들을 이 땅과 함께 멸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경건하고 의로운 아담의 삼남 세스의 직계 자손인 노아가 있어서, 홍수가 나기 전에 노아 일가에게 미리 거대한 방주를 만들게 하고 그 방주에 '''모든 종류의 동물'''을 싣게 했다.[3] 노아는 야훼의 명을 받아 세 아들과 함께 열심히 삼나무로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다.
그 후, 과연 대대적인 홍수가 일어났다. 방주에 실으라는 것들을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들짐승, 가축, 땅에 기는 것들, 새들'이었다. 노아와 그의 일가족 및 방주에 탄 동물들은 살아남았지만, 그 밖에 모든 인간들과 동물들은 홍수로 멸절되었다. 생각해보면 잘못은 인간들이 한 건데, 육상 동물들까지 쓸려나간 셈이다. 물고기들도 멸절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래 내용 참조.
비가 그친 후, 노아는 물이 빠졌는지 알아보려고 까마귀를 날려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았고, 이어 비둘기를 날려 보았는데 곧 되돌아왔다.[4] 이후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더니 '''올리브 나무 가지를 물고 돌아와''' 노아는 물이 빠져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더니 돌아오지 않았으며, 노아와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된다.
나온 직후 노아는 감사의 제사를 드렸고, 야훼는 "'''내가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 라고 선언하며, 인간의 대표인 노아에게 약속의 징표로 무지개를 만들어주었다.
홍수 이후 노아와 일가족은 세계를 재건하는 큰 일을 하는데, 포도 농사를 지은 노아가 포도가 잘 익어서 그걸 따서 포도주를 마신 뒤 취해서 그만 옷을 벗고 자는 일을 저질렀다. 이때 그 모습을 본 차남인 함은, 이런 아버지를 보고 조롱한 반면, 장남인 셈과 3남 야벳(야펫)은 뒷걸음질로 들어가서(아버지의 나체를 보지 않기 위해) 노아에게 옷을 덮어주고 나왔다. 다음 날 깬 노아가 노발대발해서 "'''함, 네 아들 가나안은 저주받아서 형들 자손들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고 하고, 셈과 야벳에게는 복이 내릴 것이라고 칭찬한다. 훗날 히브리인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그 땅의 주민들을 노예로 남기면서 이 저주는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은 멸족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가나안 주민들을 전멸하라는 야훼의 명령에 대한 거역이지만, 한편으로는 상기한 저주의 실현,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시험(사사기 3장)이라는 목적으로 야훼가 허락한 것이기도 했다.
창세기에 기록된 족보에 따르면 노아는 홍수 이후에도 350년을 더 살았고 바벨탑의 사건도 겪은 것으로 나온다. 성경 족보 기록대로라면 노아가 죽은 시기는 아브라함의 나이 58세 때다.
3. 노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과학이 발달하기 전, 기독교/이슬람권에서는 공룡으로 대표되는 중생대 동물의 화석은 노아의 방주를 얻어 타지 못한 동물들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또한 대홍수 이후 달라진 날씨 때문에 멸종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창세기에 의하면, 노아의 가족 이외의 모든 인류는 전멸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이 각각 황인, 흑인, 백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함의 자손 중에 '구스'가 있는데, 이후 성경에서 아프리카인[4] 을 구스인으로 칭한다는 것이 근거. 물론 '함'의 경우는 베르베르나 투아레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일대의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을 쓰는 민족들을 가리키는 경우도 많았다.
창세기에는 이후 이들의 후손의 족보가 대략 나오는데, 셈의 후손은 나중에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 되는 히브리인과 아랍인, 그 외에 이들과 혈통이 유사한 몇몇 유목계 민족의 조상이 되었을 뿐이며, 함의 자손은 의외로 흑인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인[5] 과 아시리아인, 이집트인,[6] 히브리에게 정복당하는 가나안의 여러 민족이 되었다고 나온다. 게다가 야벳의 후손 중 일부는 해안에 거주하는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각각의 노아의 아들이 그대로 각 인종의 조상이 되었다는 얘기가 '''성경에 없으며''', 당시 유대민족의 세계관은 그야말로 오리엔트 문명권 전역(全域)이면 큰 편이다. 동양인은 동방의 사람들, 정확히는 오리엔트(중근동 일대)에 해당된다고 봐야 하며, 그들은 코카소이드(아랍 및 이란 백인)일 확률이 높다. 또한 노아가 저주를 내린 대상은 가나안의 후손이었지, 함의 모든 후손이 아니다. 일례로 구스(에티오피아) 역시 함의 후손이지만, 오히려 기독교 초창기에 벌써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언급이 신약에서 나온다. 노아의 저주는 훗날 이스라엘인의 가나안 정복과 연관시키는 게 차라리 더 타당하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 남부 지역에서 흑인 노예제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시도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에도 흑인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급진적인 진화론자' 라고 한다. 어떻게 6천 년도 안 되는 사이에 흑인, 백인, 황인이 다 나오냐면서. 가능성이 있는 것은 노아의 셈, 함, 야벳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바벨탑 사건 후에 서로 여러 지역으로 퍼지면서 세 인종이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라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있다.
다만 흑인이 함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미국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왜냐면 '''중세 후기'''의 무슬림 역사가 이븐 할둔이 쓴 '역사서설(مقدّمة)'에 당시 이슬람 세계 계보학자들이 흑인을 함의 후손으로 봤다는 서술이 있기 때문.[7] 여기서도 함의 자손은 노예 운운하는 건 똑같다. 중동의 이슬람 문명은 유럽보다 빨리 흑인을 노예로 이용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설화가 나온 듯.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이븐 할둔은 '''근거가 전무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일축했다.
그리고 야벳의 경우는 함셈어족(아프리카아시아어족)보다 더 명확하게 구별되는 경우가 없다. 그냥 백인(코카소이드 또는 아리안)이라고 추측되는 경우일 뿐이며, 여기서 언급되는 그 "백인"의 경우도 시대마다 각 지역들끼리 서로 다르게 생각했었다. 여담으로 야벳은 후에 켈트 신화에 편입되어 피니언 대계의 투어허 데 다넌의 조상으로 언급된다. 이는 아일랜드에 온 수도자들이 적당히 켈트 신화를 짜깁기하면서 추가한 것으로 추정.
터키 남동부지방의 전통 후식 중에는 아슈레(Aşure)라는 음식이 있다. 아랍어로 10을 뜻하는 '아샤라'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데, 노아(Nuh)와 가족들이 홍수가 끝나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방주 안에 실어놓았던 식량들을 대충 집어넣고 죽을 끓여먹었던 데서 비롯된 요리라고 한다. 안에는 밀과 쌀, 보리, 석류,[8] 말린 살구, 건포도, 설탕, 헤이즐넛, 피스타치오 등 1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이 끓인 잡탕을 차갑게 식히면 푸딩처럼 굳게 되고 이것을 먹는 것이다. [9]
4. 노아의 홍수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생각하는 무신론자에서 분석한 노아의 방주
노아의 홍수에 대한 과학적/역사적 고찰을 대중이 알기 쉽게 설명한 매체로는, BBC 다큐멘터리 《Noah and the Great Flood》가 있으며, 대체로 아래 기술된 내용들과 논지가 동일하다.
단, '수권(水圈)'층 관련 부분 제외. 이 부분은 《Brown, Walt, 1997. In the beginning: compelling evidence for creation and the Flood》반박한 내용이 본 항목의 기술 내용과 유사하다. 아이러니하게도 Brown과 Walt는 창조설 지지자로, 지각 내 지하수론을 주장하기 위해 수권층을 깠다. BBC 다큐멘터리에서는 수권층 이론과 더불어 이 이론도 깠다.
근본주의자들이 가끔 반박을 시도하곤 하는데, 그 반박들은 대부분 신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식의 Ad hoc 논증을 벗어나지 못한다.
4.1. 방주의 제작
성경에 나오는 방주의 스펙은 이러하다. 길이 300규빗(약 135m), 폭 50규빗(약 22.5m), 높이 30규빗(약 13.5m). 선체는 측백나무로 만들고 안쪽에는 아스팔트(역청)[10] 를 칠했다. 지붕과 문을 달고 배 안은 3층이다.
4.1.1. 기술적인 한계
과거부터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어떠한 기술로도, 그만한 크기의 배를 순수 목재로 만들어 바다에서 운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문제는 목재의 강도가 부족하다는 것. 실제로 방주보다는 작지만, 실존했던 커다란 목재선박들은 모두 철을 보강재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목선은 통상 길이 100m, 배수량 2000톤 정도가 한계로 여겨져 왔다.[11] 바다의 비바람 및 폭풍, 파도에 약 1년간 버티며, 수없이 많은 짐승들을 수용할 만한 크기의 방주를 순수 목재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홍수 속에서 배에 가해지는 인장력, 압축력 등을 버티지 못하고 배가 두동강나기 십상이다.
운항이 아니라 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형 선박을 건조할 때에는 고려해야 하는 점이 많다. 한 예로 선체의 크기가 커지면 앞쪽에서 오는 조류와 뒤쪽에서 오는 조류의 차이로 인해 뒤틀리는 힘이 발생하는데 이를 견뎌내야 한다. 기타 파도나 바람에 대한 대응 등 선체의 크기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많아지기 때문에 그저 '''대형 선체가 구조를 유지하고 떠 있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조선공학이 따로 분리되어있는 이유다.
4.1.2. 그만한 선박이 있었는가?
일단 순수 목재로 만든 배 중에는 방주와 비슷한 크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실존했는지 의심스럽거나 크기에 대한 근거가 불확실한 배들까지 포함해도 여전히 방주가 제일 크다. 물론 어디까지나 실제로 바다에 띄울 수 있는 진짜 배 중에서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방주보다는 작지만 제법 크다고 나오는 목선들은 모두 주 재료가 나무일 뿐 철재를 사용해서 보강한 함선들이다.
근거가 불확실한 배들 중에 그나마 방주의 크기에 제일 근접한 배로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4세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테싸라콘테레스(tessarakonteres)라는 군함이 있었으니 노아의 방주도 가능 할 것이라고 일부 개신교인들이 주장하는데, 몇 안 되는 관련 자료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방주보다는 여전히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육지에서 살짝 떨어지는 것 만으로도 위태위태했고 실제 전투에 사용하기 보다는 국력 과시용 또는 적국의 사기를 꺾는 용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프톨레이마이오스 4세는 BC200년경의 인물이며, 이때는 이미 철기 시대에 접어든 지 한참이 지난 시기이다. 이미 쇠못이나 철판 같은 금속을 쓰던 시절이기 때문에 배를 순수 목선으로 제조하지는 않았다.
노아는 청동기 시대의 인물이고 철기 시대의 프톨레이마이오스 4세와는 2천 년가량의 시간 차이가 난다. 노아가 살던 시대의 선박 제조 기술과 프톨레이마이오스 4세가 살던 시대의 선박 제조 기술은 같지 않다.
20세기 초의 미국에 수치상으로만 보면 얼핏 방주에 근접한 크기로 보이는 와이오밍이라는배가 있긴 있었는데 이 배는 철재로 보강한 함선이다. 그리고 얼핏 길이가 140m에 달해 방주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건 바우스프릿 등 모든 걸 포함한 길이고, 실제 선체 길이는 100m 남짓밖에 안 돼서 만재배수량은 9천 톤 정도인 배다. 방주와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길이만 가지고 크기가 비슷하다고 하기는 힘들다는 뜻. 게다가 띄워놓으니 '''물이 줄줄 새어 들어와서''' 증기기관으로 물을 계속 퍼냈다. 결국 15년 후 폭풍을 만나 침몰했다.[12]
현대 네덜란드의 요한 휘버스란 사람이 방주를 재현했다. 이제 운항만 하면 완벽하지만 '''띄울 수가 없다.''' 물에 뜨지 않으니, 방주가 아니라 땅위에 세워진 목조 건축물일 뿐이다. 노아의 방주는 홍수를 버티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운항은 둘째치고 최소한 바다 위에 떠서 파도를 버텨줘야 하는데, 홍수 속 격랑은 커녕 일반적인 바다의 파도조차 버티질 못한다는 것이다. 이후 항해가 가능한 노아의 방주를 만든다 하였지만, 그 재현된 목선의 크기는 노아의 방주를 5분의 1로 축소하여 제작할 예정이라, 원래 크기인 목선 제작은 아직 없다.
4.2. 그 커다란 방주가 흔적도 없다?
터키의 아라라트산의 해발 4,000m 지점에서 방주의 일부로 추정되는 목재들이 발견되었다는 말들이 있다 서프라이즈에서도 한두차례 언급되었고 유튜브 동영상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사진과 동영상이 게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조작이라는 의견도 많다. 이쪽을 참고하자.[13] 그러나 정말 방주가 실재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곳은 "우라루트 왕국"이며 아라라트산과는 연관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창세기 8:4절에는 "'''창 8: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라고 하여, 분명히 "아라랏 산"이라고 명시되어 있다.그런데 한국판이 아닌 진짜 원판에는 아라라트가 정확하게 한 산으로 명시된 적 없다. 아라라트가 우라르투에서 나온 말로 추정된다.
어쨌든 거대 건축물들은 특정 이상 관리하지 않으면 없어진다. 설사 실존했더라도 몇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썩고, 부서지고, 건축자재로 가져가는 등 현존하더라도 절대 멀쩡할 리는 없다. 고인돌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면,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거나 엉뚱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훼손당할 확률이 높다. 특히 방주는 목선이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 심할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14] 그러나 정말 그만큼 거대했다면, 당시의 비슷한 문명이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한 점이다.
4.2.1. 동물 태우기
거의 모든 동물을 모았다거나 순간이동을 했다고 가정해도, 동물을 태우는 것 또한 상당한 문제가 된다. 17,600여 종의 동물, 절지류까지 포함하게 되면 대략 10만 종 이상일 텐데, 그 동물들을 한자리에 모으거나 방주에 전부 태우는 작업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적으로 계산하면 1주일 내내 탑승 작업을 할 경우 '''1종당 약 34초 내로 올라타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며[15] 게다가 모으는 과정에서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므로, 적어도 2~3일 가량은 걸린다. 허나 창세기 7장 13~14에는 "그 날에 노아와 (중략) 모든 들짐승이 (중략) 방주로 들어갔으니" 라고 명시되어 있다. 결국 하루안에 가뿐히 들어갔다는 뜻.
신학적 관점에서는 야훼의 권능으로 각 동물들이 방주로 모여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동물들이 스스로 왔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탑승 자체의 문제는 존재한다.
4.2.2. 언급되지 않는 식물
'''식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야훼는, "온갖 생물 가운데에서, 온갖 살덩어리 가운데에서 한 쌍씩 방주에 데리고 들어가, 너와 함께 살아남게 하여라" 하고 명한다.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노아의 홍수 때에 방주(배)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식물은 전멸했을 것이며, 유기물을 합성할 수 없어서 먹이사슬의 단절로 마침내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는 멸절됐어야 한다.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수중 식물도 수압이 너무 높아져서 살 수 없다.
참고로 홍수가 끝나고 오랜 시간 뒤에, 비둘기를 두 번째 보낼 때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어왔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그 정도 홍수였으면 방주 안을 제외하고 올리브 나무가 살아 있을 리가 없다.'''
식물도 일단 광합성도 하고 호흡은 하니깐 이걸 '생명'이라고 해석해도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으나, 노아가 모든 종류의 식물을 방주에 실었다는 구절은 없다. 더구나 야훼는, 모든 '''살덩어리''', 몸이 살로 이루어져 있는 '''동물'''들을 태우라고 했지, '''생명'''을 태우라고 한 것도 아니다.
이 것에 관해 창조과학회 측에서는 나무매트 이론#을 제시해 어떻게 식물이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홍수로 인해 물위로 둥둥 떠오른 나무들이 마치 거대한 섬 처럼 물위를 둥둥 떠다녔고 이 나무 매트 위에 방주에 타지 못한 곤충들이 서식하고 식물들도 이 위에서 살아남았을거라고 가정하는 가설이다. 모든 종의 곤충이 물위에 둥둥 떠다니는 통나무만 있다고 생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16] 식물이 무슨수로 나무에 뿌리를 내리는지 설명도 해놓지 않았다. 곤충과 식물들이 나무위에서 어떻게 생존을 했는지는 둘째치고 성경의 내용과도 충돌하는 주장이다. 창세기 7장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서, 내가 만든 생물을 땅 위에서 모두 없애 버릴 것이다'''라고 서술 되어있다. [17]
가끔씩 씨앗으로 살아남았다.라고 주장하는 창조주의자도 있지만 식물도 엄연한 살아있는 생명체기 때문에 씨앗은 적당한 습도, 온도가 유지되지않으면 씨앗 자체가 썩어버리고만다. 수백 년 전 사망한 미라의 유품에서 발견된 씨앗을 심었더니 파종이 잘 되더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이런 식으로 살아 있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모든 씨앗이 그렇게 오랜 기간 보존되는 게 아니다. 부추의 씨앗은 1~2년 내로 파종하지 않으면 발아력을 상실해버리며, 콩감자로 불리우는 '히카마(얌빈)'라는 식물종의 경우 이보다 더 해서, 종자의 수명이 매우 짧아 6개월 내로 파종하지 않으면 발아력을 잃는다고 한다. 하지만 홍수의 기간은 6개월이 족히 넘어가니 이 경우 얌빈같이 수명이 짧은 씨앗 종자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설명이 되지않는다. #
이런 문제는 당시 유목민들이 정말로 식물과 어류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해서 발생한 문제라는 추측이 있다. 특히 대홍수가 휩쓸고 갔는데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왔다는 구절을 보면, 식물은 홍수가 온 뒤에도 살아남아서 싹을 틔울 거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제로 이런 식으로 전 세계를 뒤덮을 홍수가 발생할 경우, 바다와 강이 서로 뒤섞인 탓에, 홍수가 끝난 후에는 땅에 남은 염분 때문에 식물들이 고사(枯死)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그대로 해석하면 분명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어왔다고는 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게 살아있는 올리브의 나뭇가지였는지 대홍수로 쓸려나간 올리브의 나뭇가지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즉, 비둘기가 그냥 쓸려간 나뭇가지를 주워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4.2.3. 언급되지 않는 어류
'''성경에는 어류에 대한 언급도 없다'''. 어차피 어류는 물속에서 살아가니 홍수가 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온 세상을 뒤덮고 가장 높은 산을 뒤덮을 정도의 홍수가 일어났다면 바닷물과 민물이 마구 뒤섞여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대부분의 담수어와 해수어는 지나친 염도 차이로 죽어나갈 것이다. 물론 성경 그 어디에도 노아가 방주 안에 수족관을 만들었다는 구절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담수어들이 해수에 어느 정도 버틴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 염도가 낮은 물이라면 해수어가 죽는다. 해수어는 외부에서 담수가 쏟아지는 정도의 민물과 섞인 바닷물에서도 못 버티고 죽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약간의 외부 환경 변화만으로 물고기 집단 폐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담수와 해수가 뒤섞인 환경에서 어류들이 무사히 생존하리라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뿐만 아니라, 해수면이 해저에서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해수면이 높아진 만큼 수압이 증가하므로, 그 자리에 남아 급작스럽게 증가한 수압에 깔려 죽든, 높아지는 해수면을 쫓아 올라가 먹이가 없어서 굶어 죽든, 대량의 어종이 멸종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는 고대에는 식물과 어류 자체를 생명으로 여기지 않았던 탓이다. 식물이 생명이라는게 밝혀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걸 기억하자. 당연히 고대인들은 이런 고증을 신경 못 쓸 수 밖에(...)
4.3. 동물들을 어떻게 관리했는가
'''그 많은 동물들을 다 방주에 태웠다 해도 과연 어떻게 모든 동물들에게 맞는 먹이를 모두 준비해서 먹이고 관리했을까?''' 코끼리, 하마 같은 대형 초식동물들은 엄청나게 많은 풀과 물을 섭취한다. 사자나 호랑이 등도 마찬가지로 많은 고기를 먹는다. 또한 오랫동안 좁은 방주 안에 있으니 스트레스가 쌓여 서로 공격하거나 사람도 공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유대인들의 전승 중에는 스트레스가 쌓인 사자가 말린 고기를 나눠주는 노아의 다리를 물어버리는 바람에 노아가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하는 내용도 있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부피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먹이들을 압축하고 다져 넣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오래 보관된 먹이를 먹지 않는 생물들도 많다. 예를 들어 뱀 같은 경우 오직 살아 있는 먹이(최소한 움직이거나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것)만 먹는다. 노아를 포함한 단 여덟 가족만으로 모든 동물들을 관리했다는 게 가능했을까?
또 겨울잠처럼 모두 수면 상태에 빠지게 했다고도 주장하나 이것도 최소한 어느정도의 영양 축적은 있어야 버틸 수 있다. 물론 전지구적인 대홍수설을 믿는 성서 근본주의자들은 당시 사람들은 8~900년 가까이 살았기에 엄청나게 오랜세월 축적된 지혜가 있어서 그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론이나 노하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 대홍수 이전에 멸종되지 않은 현대인이 모르는 식물종이 있어서ㅡ예를들면 강력한 마취제나 영양보충력이 강한ㅡ그것으로 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Ad Hoc 논증인데다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4.4. 환기 문제
'''그 거대한 방주를 어떤 방법으로 환기했는가?''' 창조과학회의 일부는, 성경의 창세기 6장 16절을 인용하며 18인치(약 45cm) 크기인 입구가 방주의 가장 위쪽에 있었기 때문에 환기가 충분히 되었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같은 창세기 6장의 14절~16절에는 방주는 3층, 분리된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기록된 방주의 크기가 정확하다면 방주의 부피는 약 41,000m³정도가 될 텐데, '''그 넓은 공간을 50cm쯤 되는 구멍 하나로 자연 환기를 할 수 있을까?''' 가령, 축사에 가면 24시간 내내 대형 환풍기를 돌리는 시설 내에서도 배설물이나 동물의 체취 때문에 코가 떨어질 듯한 악취가 풍긴다. 자연 통풍이 아닌 강제 통풍인데도 말이다. 거기다 방주 내에는 배설물을 처리할 장소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위생 상태가 끔찍한 방주 내에 전염병이 돌 것이다.
또 산소 부족 문제도 있다. 방주가 아무리 많은 양의 공기를 담을 수 있다 하더라도, '''방주 내의 동물은 최소 3만 마리 이상'''이다. 41,000m³라는 공간에[18] 그 3~4만 마리가 전부 산소 호흡을 하는 생물이라 가정한다면, 마리 당 약 1m³의 공간에서 호흡한다는 셈인데, 이러면 당연히 질식한다. 평균 수명이 900살을 넘어가는 성경의 인류 는 산소 부족 따위로는 죽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노아의 가족들은 몰라도 방주에 타고 있는 동물들은 전부 죽는다.
또 다른 주장으론, 명시만 안 되어 있을 뿐이지 식물도 함께 태워서 산소를 만들게 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동안은 태양을 볼 수 없는데, 그나마도 좁은 창문밖에 없는 방주 안에서 광합성은 어떻게 했을까.
4.5. 홍수를 일으킨 물의 출처
'''홍수를 일으킨 물은 어디서 왔는가?'''
대홍수가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길 정도였다면, 홍수 수위가 지구 대류권의 80% 가까이 차지하기 때문에 대기 내의 수증기로는 '''포화 상태여도 노아의 홍수는 만들 수 없다'''. 그 모든 수증기를 지구상에 쏟아 부어 봐야, 골고루 나누면 평균 강수량이 가랑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남극의 얼음이 홍수를 일으킨 물의 출처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 논리대로라면, 야훼가 홍수를 내기 위해서 되레 남극을 불바다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남극과 북극의 얼음을 다 합해도 지구의 모든 육지가 가라앉지 않는다.
창세기에서는 땅과 하늘에서 물이 나온다고 한다. 창세기 7장 11절-12절에는,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창조설자나 성경무오설자들은 큰 깊음의 샘들은 땅이나 바다 깊은 데서 물이 나왔을 것이라는 것, 하늘의 창들은 궁창[19] 으로 천지창조 당시 궁창 아래와 궁창 위로 물을 나눴다 하였는데, 궁창이 열려 궁창 위의 물이 땅에 비로 떨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하수로는 당연히 충당되지 않고,[20] 물층 또한 아래와 같이 반박된다.
4.5.1. 존재할 수 없는 물층
이에 대해 창조설자들은 물층이라는 것이 대기권 내에 존재했고, 이 물층이 쏟아져 내린 것이 홍수이며, 성경에 기록된 홍수 이전 사람들의 수명이 길었던 것도 이 물층이 자외선을 차단시켜 주어서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런 물층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아래에서 언급하겠지만 기체 상태의 물이라면 금성까지 물층이 존재해야하고, 액체나 고체 상태라면 무거운 물을 대기권 따위로는 지탱할 수 없기 때문. 거기다가 물이 마르면 그대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기화가 되어 결국 대기로 돌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부분 역시 설명할 수 없다.
또 이 가설에 근거한다면[21] 핵 방공호 같은 곳에서 24시간 생활한다면,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속칭 '창세기 초반의 인류들'처럼 1,000년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제까지 인류는 200년을 살았다는 기록조차 없으니, 이 간단한 장수법을 실천한 사람이 동서고금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
현대 수준의 자연 자외선이 배제된다고 인간이 더 오래 살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4.6. 물층에 대한 반박
존재할 수 없는 물층설(이하 궁창설)에 대한 반박이다.
4.6.1. 물층이 거대한 물 덩어리로 존재했을 경우
물층이 대기의 상부에 존재하는 경우 태양 자외선을 직접적으로 투사(投射)받아 급속하게 원자 단위로 분해되게 된다. 물론 우주는 진공이므로 우주선을 맞고 기화되는 성분도 많을 것이다.
물층이 모든 산을 뒤덮을 대홍수를 낼 정도의 많은 양이라면, 가시광선도 차단해버려서 '''아예 태양 자체를 볼 수가 없고''' 지구는 암흑 행성이 되어 광합성도 할 수 없다. 실제로 수중 수백 미터를 내려가면 빛이 안 들어와 어두워진다.
또한 이것이 유해한 방사선을 차단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었다고 하는데, 전술(前述)하였듯 사람이 방사선만 차단한다고 오래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리고 방사선은 지구의 자기장과 대기로도 충분히 감쇄된다.
4.6.2. 물층이 거대한 수증기층이었을 경우
이것은 위와 같은 안타까운 상황을 전부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동시에 몇 가지 더 난감한 상황을 불러오게 된다. 물인 상태에서 지구의 가장 높은 산까지 덮을 만큼 많은 수증기일 경우, 이 물층의 범위엔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의 금성까지 들어온다.
또한 수증기가 우주에서 그 기체 상태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거대한 얼음 안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러려면 달은 엄청난 양의 얼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햇빛이 통과될 정도로 옅은 수증기층일 경우는, 수증기층의 범위가 더 넓어진다는 것은 차치(且置)하고, 이번에는 기온 상승을 피할 수가 없다. 태양의 빛과 열은 지구에 도착한 다음에 다시 반사된다. 이것이 공기 중에 존재하는 온실가스에 의해서 다시 지구로 재복사되는 것이 지구온난화 현상이다. 그런데 이 온실가스에서 엄청나게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수증기이다. 온실효과에서 수증기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수증기의 비율이 일정하기 때문이지 그 역할이 적어서가 아니다. 여기에 막대한 수증기에 따른 기압[22] 까지 함께 한다면 생물이 지표면에서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다.
4.6.3. 물들이 대체 어디로 갔는가?
비로 퍼부어서 땅 속으로 들어갔다고는 볼 수 없다. 들어갔다는 근거는 찾아볼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엄청난 양의 물이 지층 속으로 들어갔을 경우 지층 속의 열을 견딜 방법이 없다. 그 경우엔 아마 화산 폭발이 아니라 물 폭발을 봤을 것이다.
성경에는 궁창의 물층과 지면에서 폭발한 물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고 나와있다. 이걸 근거로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노아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양이 없었고 궁창의 물층과 행성 내부에서 나온 물이 바다를 이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만, 이는 다른 성경 구절과 모순되는 주장이다.
즉 하늘 아래 지상의 물을 제외한 지하의 물 등이 따로 있다면 말이 되는데, 그런 언급이 성경에는 없다.개역개정 '''창세기''' 1장 9~10절: 하나님이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고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략)
반대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는 추측이 있는데, 물이 대기권 밖까지 날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큰 열이 필요하다. 어떤 창조과학자들은 이 물들이 극지방으로 가서 빙하가 되었기에, 빙하가 다 녹는다면 노아의 홍수처럼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지구상의 얼음을 다 녹여도 해수면에서부터 70m 위가 한계다. 물론 해수면이 70m만 상승해도 인류가 살고있는 거주지가 상당수 휩쓸리고 사상자수는 지구멸망이라고 표현해도 될정도겠지만, 70m로는 가장 높은 산 발목도 못 적신다. 서울특별시의 가장 대표적인 산인 남산의 높이가 해발고도 262미터다. 에베레스트 산은커녕 남산의 N서울타워 근처에도 못 온다.
성경의 묘사로 보면, 그저 '물 공급이 중단된 후 물이 줄었다'로 표현하는데, 이는 그 비들이 전부 증발했다는 설정을 채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하지만 모든 비들이 마찬가지로 증발했을 경우 위에 금성과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 개역개정 창세기 8장 1~5절
4.7. 세계적인 홍수가 일어났는가?
성경에 기술된 전세계적 규모의 대홍수가 실재했다는 증거는 전무하다. 빙하의 아이스 코어를 살펴봐도, '''4만 년간 전 지구적 규모의 홍수 기록은 전혀 없다'''는 데에 현재 거의 모든 주류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천지창조와 마찬가지로 성경과 코란 속의 신화다. 즉, 노아의 방주를 기록한 사가(史家)들도 이 사건이 정말로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실이라서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고 야훼에 대한 순명(順命)과 겸손을 상기 시키기 위해서, 혹은 일부 신학자들의 의견처럼, 과거에 실제로 벌어졌을 법한 유사한 사건이 구전(口傳)되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내용이 보태져서 지금의 이야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 사건이 당시 사람들이 '세계'로 인지하던 좁은 지역에서 일어난 더 작은 규모의 사건이라면 훨씬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전 세계가 아니라 한 지역 정도를 휩쓴 홍수는 과학적 설명도 크게 어렵지도 않고, 방주에 동물을 태운 것이 종의 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의 기반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이 경우 방주에 태운 동물들도 가축 등 일부로 한정되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실제 방주의 규모도 기록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작았을 것이다.[23]
예컨대 홍수로 한 도시가 완전히 침수되었는데 배를 탄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식의 홍수 설화는 각 지역마다 흔하게 있다. 한국에도, 남태평양에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홍수 설화가 동시 다발적인 대홍수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24] 세계 각지에 구전 또는 글로 전승된 홍수 설화를 모으다가, 실제로 전 지구적인 홍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에서 '홍수'만 떼어놓고 봤기 대문에 생긴 대표적인 오류다. 애초에 신앙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 즉 지진, 화재, 재난, 번개, 벼락, 낙뢰, 홍수, 해일, 돌풍, 화산 폭발, 흉년, 죽음, 전염병 등에 이유나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의 신화 중 '번개'나 '화재' 혹은 '수재'의 속성을 지닌 신이 등장하지 않는(그리고 이들이 이 힘을 지상에 쓰지 않는) 신화는 많지 않다. 홍수 설화도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명은 4대 문명을 비롯하여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러니 강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하게 되고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재난이 범람(을 일으키는 홍수)였고,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재난신의 등급, 속칭 '서열'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매겨진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평지인 경우, 다른 지역보다 벼락/화재/지진 등, 평지에서 일어나기 쉬운 재난을 상징하는 신의 서열이 높고, 바닷가라면 화재보다는 해일이나 풍랑, 태풍 등을 상징하는 신의 서열이 높다. 간단히 말해서, 지중해 근처의 그리스에서 써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포세이돈은 명실상부한 올림포스 2인자이며, 해일과 폭풍만이 아니라 지진도 일으키는 등 막강한 권능을 가져, 제우스를 제외한 모든 신을 합쳐도 포세이돈 하나에게 안 된다. 그 제우스도 포세이돈과 겨루면 꽤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25] .
반대로 러시아 내륙의 슬라브 쪽 신화에서 물을 상징하는 벨레스의 지위는, 포세이돈과 비교하면 비참할 정도로, 지하에 살며 물과 요술을 다루고 주신의 가축을 훔쳐 먹는 이미지다. 구약이 집필된 이집트 근방은 나일강의 범람에 따라 울고 웃는 사막 지역으로, 나일강의 범람, 즉 홍수는 문명의 발상지를 일구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그 양에 따라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그대로 인명의 중대한 손상으로 이어졌다. 노아의 홍수를 제하고 봐도, 야훼가 이루어내는 기적들 대부분(홍수, 화재, 벼락, '''메뚜기떼, 장자의 손실, 전염병''' 등등)은 해당 시기, 해당 지역에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던 재난과 연관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큰 홍수는 없었고 아마 지역적 사건이, 혹은 전통 설화가[26] 후대에 과장이 더해져 전 지구적 스케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해석에 보수 쪽 종교인들이 들고 일어나지만 다른 한 측에서는 실제로 지역에 한정된 사건이었다 해도 성경에서 홍수의 정도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죄에 물든 인간에 대한 심판이었기 때문에 굳이 아직 인간이 퍼지지 않은 다른 지역까지 처벌할 필요가 없으므로 무리없이 해석된다고 주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4cCnmo6qQ8
4.8. 노아의 홍수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현대윤리로는 아무리 인간의 죄가 너무나 극악하다한들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학살한다는 것 자체가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설명과 보완이 있고 도리어 멸족이 아니면 답도없는 인간들을 한계까지 참아내는 신의 인내심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의 학살에 대해서는 설득이 불가능하다.
단지 죄많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굳이 홍수라는 파멸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을까? 물에 쓸려간 엄청난 수의 식물은 그렇다쳐도 방주에 타지 못한 99.9999....%의 동물들은 무슨 죄로 홍수에 휩쓸려 죽어버려야했을까? 그들은 인격과 자아가 없으니 죽여도 된다는 논리는 빈약하다. 뱀이 자아를 가지고 인간을 유혹했다는 이야기를 창세기에 적어놓고 있는걸 보면 성경은 동물들도 동일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집트의 장자만 죽인 사건 등 신이 얼마든지 원하는 인간만을 단시간에 살해할 수 있다는 증거가 기록되어있고 굳이 이런기록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인간을 죽이겠다고 동식물을 덤으로 몰살시키는것은 전지전능한 존재의 해결방안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현대인의 눈으로보면 정신병자가아닌가 싶을정도로 과도한 방법이다. 사형수가 목장을 운영했었다고치면 사형 당일 목장안의 수백마리의 소들을 한쌍만 남기고 물에 빠트려죽이고 덤으로 목장 주변의 아무상관없는 야생동물까지 씨를 말려버리는것이나다름없다. 윤리 이전에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행동이다.
익사가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인것은 말할것도없으며 애완동물을 키우는사람이라면 신이 아무이유없이 자신의 강아지 등을 물에 빠트려 죽인다면 무슨 감정이 생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고대인들이 그러했듯 생명윤리에 별 관심이 없다면 종교적으로 딱히 모순되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현대로 갈수록 기독교에서 과학에 의한 환경오염 등을 비판하거나 동물복지, 자연과 환경등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방주의 일화는 이런 기조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것도 하느님의 행동으로!
환경오염따위로 죽거나 멸종한 동물보다 훨씬 하찮은 이유로 압도적으로 많은 생명을 학살한것이 신이며 이것이 성경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자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때 매우 흔하게 쓰이는 이야기라는것이 아이러니한점이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해석, 평가를 달리 할 수 있지만 홍수 사건은 아예 이 일 자체를 픽션이나 은유로 해석하지 않는 이상 엄청나게 많은 동물들이 별 이유도 없이 학살당했다는것은 다른 해석이 불가능하다. 동물의 한 쌍을 방주에 싣고 세상이 물로 뒤덮이는 자체가 이야기의 핵심뼈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홍수가 단지 한 지역에만 일어났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석해도 별 죄도 없는 동물들이 학살당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5. 초고대문명설
6. 한자 船과의 관계
"표의문자(表意文字)인 중국의 한자(漢字)에서 배를 의미하는 배 선(船)은 배를 의미하는 배 주(舟)와 여덟 팔(八) 그리고 입 구(口)로 구성된다. 구(口)는 인구수를 의미하는 글자이며, 팔(八)을 감안하면 선(船)은 8명이 탄 배에서 유래된 글자이다. 성경의 방주에 탑승한 사람은 노아와 노아의 아내, 세 아들과 세 며느리이며 총 8명이다" 라는 주장이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단체 카톡 등 SNS를 통해 널리 퍼지고 있다.
물론, 당연히, 船은 舟와 㕣(산속 늪 연)이 합쳐진 물흐를 연)에서 㕣을 발음 요소로 떼어 舟에 붙인 형성자일 뿐이다. 따라서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 뿐이지 성경이랑은 일절 관련이 없다.
7. 기타 해석
권력의 부패에 대한 경고로 보기도 한다. 부패한 권력층이 홍수라는 자연재해를 대비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노아 일가는 그나마 도덕적으로 건전했기에 미리 방주를 통해 홍수를 대비했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말고도, 권력의 부패가 어떻게 끝나는지를 경고하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같은 창세기 이야기인 소돔과 고모라, 신약에서는 예수의 성전 정화가 가장 유명하다.
노아의 행동은 생존주의에 부합된다고도 볼 수 있다.
창세기의 홍수를 모티브로 한 영화 에반 올마이티가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의 시작부터 홍수를 예견하는 등 기껏 빌드업을 했건만, 정작 말미에는 비가 찔끔 오고 그친 탓에 당시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물론 주인공인 에반마저 실망.[29] 하지만 이후 부실공사로 완공됐던 댐이 터지면서 홍수가 발생하였고, 방주는 그 홍수를 타고 그대로 국회 코앞까지 떠내려 오면서 법을 멋대로 고치려던 국회의원의 행동을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8.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후속작인 《에반 올마이티》[30] 등 여러 차례 재현된 바 있지만, 에반 올마이티는 결국 소포모어 징크스의 또 한 사례로 추가되기만 했다. 엔딩 크레딧의 “새로운 계명을 말한다. 모두 춤출지어다.” 《Everybody dance now》 집단 댄스 장면 정도만 인기를 끌었다. 다만, 상술한 도덕적 해석을 가미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또한 이 영화를 진화론을 부정하는 신자가 보면 참 골 때리는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노아가 천지 창조를 묘사하는 장면인데, 바다 속에서 물고기가 등장하더니 이내 뭍으로 올라와서 도룡뇽 같은 양서류가 되고, 몸이 비늘로 덮인 도마뱀 같은 파충류로 바뀌더니 포유류가 되고, 곧 유인원이 되어 나무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그 후 인류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섞어 만든 장면처럼 보인다.[31]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천사의 알에서는 방주에 대한 전승이 끝부분만 달라지는데, 노아가 보낸 비둘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작중에서는 여전히 물에 잠긴 세상을 무대로 하고 있었다.
한국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 에서도 대홍수가 과거 실존했던 사건으로 나오는데, 전통적인 방주의 이미지가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를 담고 노아 본인도 동면한 채 잠들어 있는 SF적인 잠수함의 모습으로 나온다.
미국의 재난영화 2012은 노아의 방주를 현대판으로 해석해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2007년에 나온 애니메이션도 있다.
니코 앙리숑이 그리고, 대런 애러노프스키와 아리 헨델이 글을 쓴 그래픽노블 '노아'와 이를 기반으로 한 2014년 영화 노아가 있다.
9. 게임
코나미에서 1992년 유럽에 발매한 패미컴용 게임 노아의 방주가 있다.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한 다른 게임과는 다르게 평범한 어드벤처 게임인데, BGM이 훌륭하고 중독성 있지만 난이도가 매우 높다.
개신교 종교게임 전문 개발사인 Wisdom tree에서 1991년에 패미컴용으로, 1995년에 세가 제네시스용으로 발매한 바이블 어드벤처라는 게임에서도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한 스테이지가 나온다.
그리고 역시 위즈덤 트리에서 1995년에는 울펜슈타인 3D 엔진을 사용해서 만든 <슈퍼 노아의 방주 3D>가 출시하였는데 AVGN이 2006년 성경 게임들에서 이를 리뷰한 적이 있었으며 2015년 20주년을 맞아(...) 스팀에 출시되었다.
10. 관련 문서
- 대홍수
- 새로운 아담과 이브
- 젊은 지구 창조설
-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 작중 등장한 아틀란티스인들의 초거대 우주전함(UFO)인 레드노아, 블루노아 (타르테소스), 그린노아 (아틀란티스)가 여기에서 이름을 따왔다. 설정상 노아의 방주가 바로 이 세 척의(혹은 블루노아 1척만) 우주전함들인 듯한데, 블루 노아의 내부에는 공룡 등의 유해들이 들어 있었고, 레드 노아의 내부에는 최초의 인간으로 만들었던 거인 아담의 시체와, 기타 완전한 인간 창조 이전의 실패작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 D.Gray-man - 노아의 일족
- 신의 발자국 - 책 내용은 과학 교수라는 박교수 라는 양반이 물층과 판게아가 50일 안에 찢어질수 있는 대지진으로(..) 현재의 지구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창조좀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