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서사시
1. 개요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보다 1500년 가량 많이 앞선 것으로 여겨진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8세기경 우루크를 126년 동안 지배한 왕이며, 신화에 따르면 3분의 1은 인간, 3분의 2는 신인 영웅이라고 한다.
1852~1853년 영국의 탐사 팀이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세운 니네베 도서관에서 아카드어로 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을 발굴하였다. 그 후 1872년 홍수에 관련된 내용이 번역되면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학계의 큰 화제가 되었다. 나중에 발굴된 수메르어 판본은 아카드어 판본과 내용에 조금 차이가 있다.
본디 입에서 입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기 따로 수천 년을 전해지던 길가메시 이야기들을 처음 채록한 이들은 수메르인이다. 그러나 그때엔 따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뿐이라서, 지금처럼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서사시가 아니라 일종의 시리즈물이였다. 이렇게 파편적으로 채록된 이야기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바빌로니아 시대에 시간 순서대로 줄거리를 짜 서사시로 정리한 것이 현재의 길가메시 서사시이다. 길가메시의 생일이 당시에 중시되던 춘분점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수메르 시대의 춘분점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시대의 춘분점인 황소자리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이런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2. 줄거리
길가메시는 도시국가 우루크의 왕으로 반신(半神)이었으며, 잘생기고 총명한 데다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이 인간. 온 세상을 둘러보고 우루크로 돌아온 후, 자신보다 강한 자가 없다는 사실에 취해 자만에 빠져 허구한 날 강제 노동을 시켜 백성들을 괴롭히고 싸움 좀 한다는 남자들은 다 두들겨패며 악행을 일삼았다. 그중 몹쓸 짓이라 할 만한 게 초야권으로, 결혼하는 처녀들의 첫날밤을 자신이 대신 치렀다.
참다 못한 백성들이 천신 아누에게 길가메시를 벌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자 아누는 창조의 여신 아루루를 시켜 엔키두를 만들었다. 엔키두 역시 매우 강했으며 몸통은 온통 털로 덮여 있었고 여인처럼 긴 머리칼이 소의 몸 같은 그의 신체 위를 덮고 있었다.
문명화된 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엔키두는 동물들과 같이 풀을 뜯고 물웅덩이 근처에서 살았다. 얼마 안 가 희한한 짐승이 있다는 이야기가 우루크에 퍼졌다. 이 와중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으나, 결과적으로 이슈타르 신전의 사제인 샴하트가 엔키두와 6박 7일을 동침하여[1][2] 그의 야수성을 벗겨내었다. 샴하트와 일주일간 쉬지도 않고 관계를 맺은 엔키두가 본래 친구들인 짐승들에게 다가가자 짐승들은 엔키두를 피했고, 이제 엔키두는 그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예전처럼 그들을 쫒아갈 만큼 잘 달릴 수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처럼 지혜로워졌다.
이에 샴하트가 말하길 "당신은 지혜로워졌어요, 엔키두. 이제 당신은 신처럼 되었어요. (중략) 아누와 이슈타르의 신성한 신전으로, 길가메시가 사는 곳으로 모시고 갈게요. 왕은 워낙 강해 야생 황소마냥 젊은이들에게 자기 힘을 과시한답니다."
엔키두는 그녀의 안내에 따라 우루크에 도착하고, 백성들의 호소를 듣고 분노하게 되었다. 곧 그에 대한 이야기는 길가메시의 귀에도 들어간다. 길가메시는 어느 누가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겠냐며 엔키두에게 결투를 신청하지만, 길가메시가 먼저 무릎을 꿇어버리고 어린애처럼 주저앉아 울어버린다.[3] 둘은 화해하고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그 후 둘은 영웅으로서 온갖 행적을 남긴다. 엘림(삼목) 산의 훔바바를 무찌른 것도 이때. 태양신 샤마쉬는 자신의 신전을 그 산에 짓고 싶었으나, 엔릴의 명령으로 산지기가 된 훔바바를 직접 죽일 처지는 아니었다. 엔릴이 신들의 실권자이고, 그에게 7개의 후광과 명령을 받아 산을 지키던 자가 훔바바였기 때문이다. 결국 샤마쉬/우투는 때마침 그 구역까지 영토를 넓히고 싶었던 길가메시를 부추기는 방법을 썼고, 길가메시가 엔키두와 함께 훔바바를 무찌르러 가 실제로 무찔렀다. 자세한 과정은 훔바바 문서 참고.
엔릴 신의 대리자로서 7개의 후광을 가진 훔바바는 길가메시에게도 버거웠는지라, 길가메시는 정면 승부를 피하고 친구가 되자느니, 여동생을 아내로 주겠다느니 온갖 감언이설로 방심하게 만든 뒤에 기습해서 쓰러뜨렸다. 이에 훔바바는 '''"영웅이라는 놈이 속임수를 쓰다니!"'''라고 비난했다.
길가메시가 훔바바를 무찌르러 가자고 할 때는 조목조목 반대하며 만류했던 엔키두는, 정작 훔바바를 잡은 길가메시가 훔바바의 애원에 측은함 내지는 죄책감을 느껴 살려주려고 하자 "후환이 두려우니 당장 죽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승에 따라서는 길가메시가 자비를 베풀어줄까 했지만 엔키두의 설득에 마음을 바꿔 훔바바를 죽였다고 하기도 하고, 엔키두의 반대에 화가 난 훔바바가 엔키두를 욕하자 엔키두가 그 자리에서 훔바바의 목을 쳐 죽였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이 일은 이후 엔키두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엔키두는 이성 없는 짐승으로 지낼 시절, 훔바바와 친구였다고 한다. 이후엔 그 산에다 우투/샤마쉬의 신전을 지었다.
그 명성이 하늘까지 알려질 정도가 되자, 사랑과 풍요의 여신 이슈타르의 눈에 길가메시가 들어왔다. 이슈타르는 길가메시에게 구애를 하지만 길가메시는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그녀를 무시한다. 이때 이슈타르에게 퍼부은 언사는 '''"당신의 옛 애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내가 다 아는데 어떻게 사귀겠는가?"'''쯤 된다.[4] 화가 난 이슈타르는 아버지인 아누에게 부탁해[5] 하늘의 황소를 지상에다가 풀어놓는다.
하늘의 황소는 대지를 황폐하게 만들고 성을 부숴 많은 백성들이 고생하게 된다. 결국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나서서 하늘의 황소를 무찌르게 되는데, 길가메시는 신의 짐승이라 망설였으나 엔키두가 나서서 황소를 죽여버린다.[6] 그걸 본 이슈타르가 기가 막혀 하자 엔키두는 자신의 친구에게 손 끝 하나 대지 못할 것이라며 황소의 넓적다리를 잘라 이슈타르에게 던지며 그녀를 모욕한다.
결국 하늘에서는 황소의 죽음과 이슈타르의 징징으로 인해 회의가 열린다. 길가메시는 '''신의 피가 섞인지라 죽일 수 없었으므로''', 결국 그들의 창조물인 엔키두가 죽는 걸로 결정이 된다. 결국 엔키두는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 때 길가메시의 '''품에 안겨서''' 죽었다고 하며 이후 시체에서 '''벌레'''가 나올 때까지 그 시체를 길가메시가 안고 있었다고 한다. 애통해하던 길가메시는 죽음에 대해 무언가 느낀 게 있는지 불사를 추구하게 된다.
길가메시는 불사의 방법을 얻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7] 여행 중에 시두리라는 이름의 여관 주인을 만났지만 여관 주인은 "그런 허무한 생각은 버리고, 차라리 궁궐로 돌아가 노는 게 낫다. 신들은 불로불사지만 그런 즐거움은 누리지 못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그 충고를 무시하고 우트나피쉬팀의 거처를 수소문하여 찾아간다. 우트나피쉬팀을 찾아 애원하자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다면 영생의 비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 하였으나, 길가메시가 중간에 잠들어버려서 실패로 돌아갔다. 그냥 깜박 잔 것도 아니고 며칠을 내리 잤다고 한다. 깜박 잠들었다면서 핑계댈지 모른다며 우트나피시팀이 아내에게 길가메쉬가 잠든 시점에 빵을 만들게 하는데, 그 빵이 상할 정도로 오래 잤다고... 우트나피시팀 왈 "잠을 못 이기면서 어찌 죽음을 이기려 하는가."
그러나 길가메시가 불쌍해 보였던 우트나피쉬팀의 아내가 남편더러 길가메시에게 선물을 주라고 부탁했고, 아내의 부탁으로 우트나피쉬팀은 불로초가 있는 곳을 가르쳐준다. 불로초를 얻은 길가메시는 이 불로초를 그자리에서 혼자 먹을 것이 아니라 우루크로 가져가서 모든 노인들에게 나눠주어 모두 회춘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연못에서 목욕하다가 뱀이 불로초를 몰래 훔쳐먹어 껍질만 남겨두고 도망가는 바람에,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우루크로 돌아와서 한탄만 실컷 하다가 잠이 든 길가메시는 꿈 속에서 신들을 만나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죽으면 저승의 왕이 될 수 있으니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꿈에서 깬 길가메시는 자신의 여태까지의 행적을 돌에 새긴 후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의연하게 죽는다.
- 그렇다하여 슬퍼해서도, 절망해서도,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너는 이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고난의 길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너는 이것이 너의 탯줄이 잘려진 순간부터 품고 있었던 일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날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인간의 가장 고독한 장소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멈추지 않는 밀물의 파도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피할 수 없는 전투가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로 인한 작은 접전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그러나 너는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갖고 저승에 가서는 안 된다. (김산해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2부에서)
3. 여담
- 조지 스미스가 길가메쉬 서사시의 일부분을 대영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하여 읽게 된 때는, 호르무즈 라삼이라는 발굴가가 앗씨리아의 수도 니느웨에서 이 유물을 발견한 뒤로도 20년 동안 방치되어 먼지가 쌓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전한다. 김산해의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를 보면 저자는 2003년 4월 29일 영국 BBC 방송 인터넷판의 기사도 소개해 두었다. 서사시에서 묘사된 것과 너무나도 유사한 무덤이 발굴된 것이다. 하인리히 슐리만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노래한 전설 속의 트로이를 실제로 발굴해냈고, 베레쉬트에서 히브리 저자가 감추어두듯 기록한 수메르의 전설적인 도시들도 거의 다 발굴되었다. 학자들에 의해 길가메쉬는 전설적인 영웅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인 영웅으로 우리 앞에 나섰다.
- <길가메쉬 서사시>저자들은 수천 년 동안 꾸준히 표절과 개작을 해왔다. 그 와중에 히브리의 저자들도 있었고 그리스의 저자들도 있었다. 사실 표절과 개작은 메소포타미아 문학의 특징이었다. 수메르에서 그리스와 이집트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은 소아시아와 가나안이었다. 이 서사시는 수메르어, 악카드어, 히타이트어, 후리어, 엘람어, 히브리어 등으로 쓰였다. 히브리의 <베레쉬트>,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일과 날들>, 그리고 <아라비안나이트> 등에서도 그 흔적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최초의 문명국 수메르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사회의 전통과 관습, 그리고 세계관을 알려주는 문화적인 코드라고 볼 수 있다
- 서구에서 이 이야기는 모든 스토리의 원형으로 생각되며 중시된다. 서구에서 이 서사시를 이토록 중시하는 것은 단순히 이 이야기가 기록된 것 중에는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토리를 형태적으로 분류하는 학문에서 인간의 이야기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무언가에 대한 추구'를 이야기로 엮은 것으로 생각하며, 그러한 추구의 이야기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 가의 첫 번째 완성작이며, — 서구 입장에서 —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구의 스토리 중에는 상당수가 '추구'에서 이야기 원형이 만들어진 것이 많다. 참고로 추구의 이야기 원형 중 길가메시 서사시 이외에 중시되며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돈키호테나 이아손의 황금 양털 등이 있다.
- 2015년 10월 이라크에서 소실된 부분의 일부를 찾아내었다고 한다. 근데 이 내용에 따르면 야성이 사라지기 전의 엔키두는 훔바바와 친구였다고 한다.
- 한편 이후 Fate 시리즈의 길가메쉬가 유명해지면서 본의 아니게 수혜를 본 작품이기도 하다. 가령 일본에서 해당 작품을 오디오북으로 출간했을 때의 성우가 해당 캐릭터의 성우였던 세키 토모카즈였고 [8] 길가메쉬 서사시(김산해 역)를 냈었던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리커버판을 새로 내었을 때에도 길가메시 서사시 리커버판 + 국내도서 3만원 이상 구입시 길가메시 엔키두 이름 설형문자 키링을 주었는데 #1 #2 이것이 트위터에 있는 달빠들의 지갑을 열어 알라딘 기준 2020년 6월 19일경 판매순위 13위를 기록했으며 이에 출판사 막내 편집자가 알라딘 주간 순위 10위 위로 판매 순위가 올라가면 페이트 그랜드 오더에 입문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후 2020년 6월 24일 길가메시 서사시가 알라딘 주간 순위 3위에 오르면서 출판사측에서 공약을 실천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링크# 물론, 이러한 서브컬쳐에서의 유행이 원본 길가메쉬 서사시의 명성을 흐린다는 지적도 존재하지만,[9] 역으로 서브컬처를 통해 원본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배워나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1] 고대의 신앙은 섬기는 신에 따라 사제들이 혼인하지 않고 정절을 지키거나 심지어 거세를 하는 등 성적인 접촉을 엄격히 금지하는 곳도 있었지만, 사제들이 종교적 절기에 따라 순례자와 동침하거나 약물에 취해 예언을 하게끔 하는 교단도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아프로디테의 여사제들은 순례자와 동침하는 것이 일상 수준이었다는 말이 있고, 예언으로 유명한 아폴론의 여사제 퓌티아는 지대에서 새어나오는 유황 가스를 마시고 취해서 예언을 했다는 설이 있다. 이런 사제들은 주로 영접이나 그렇고 그런 쪽의 일을 했다고 한다. 이슈타르는 아프로디테의 원형으로 여겨지기도 하니, 샴하트 역시 이런 유형의 사제였다고 볼 수 있다.[2] 이후에 새로 발굴된 점토판에는 6박 7일이 아니라 '''13박 14일'''이었다고 적혀 있다.[3] 단, 오히려 길가메시가 이기는 판본도 있다.[4] 여기서 이슈타르가 한때 좋아하다 차버린 남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줄줄이 나오는데, 날개 부러뜨리기, 동물로 변신시키기, 죽이기... 등등 다양하다.[5] 이때 이슈타르가 자신을 돕지 않으면 지하의 망자들을 내보내 산 자들을 뜯어먹어 세계를 멸망시키겠다고 해서 길가메시 서사시야말로 가장 오래된 좀비물이라 카더라. 그런데 사실 저승의 주인은 이슈타르가 아니고 이슈타르의 언니인 에레시키갈인데 이슈타르가 갑자기 지하의 망자들을 푼다는 게 좀 이상하다. 그리고 길가메시를 유혹할 때 쓰는 말들이 장례 절차와 비슷한 것들이 많아, 이슈타르의 등장을 사랑의 유혹보다는 죽음의 고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 서사시 한정으로 이슈타르 = 에레시키갈이라고 보면, 저승의 여왕으로부터 유혹을 받았다는 것을 길가메시가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6] 판본에 따라서는 엔키두가 황소를 붙잡고 길가메시가 찔러 죽였다고도 한다.[7] 우트나피쉬팀은 대홍수와 관련된 인물로, 큰 홍수가 날것을 신이 미리 알려줘서 방주를 만들어 살아난 사람. 후에 신들이 영생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모티브인 듯하다.[8] 트위터 티저[9] '청소년을 위한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역자인 김산해는 옮긴이의 말에서 "수메르 신화에 대한 냉대와 <길가메쉬 서사시>에 대한 소홀은 그렇다치더라도 더 안타까운 일이 있다.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일본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길가메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거기에 나오는 길가메쉬의 모습은 원본과는 '상당히' 다른 면이 있다. 따라서 그들의 머릿속에 먼저 책을 통해 접한 길가메쉬가 있어야 될 텐데, 상황은 그렇질 못하다."라고 국내의 수메르 신화에 대한 저조한 인식에 대해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