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이 대옥
安政の大獄
1. 개요
1858년부터 이듬해 1859년까지 에도 막부의 다이로(大老) 이이 나오스케가 자신의 반대파 100여 명을 숙청한 사건. 당시 일본의 연호가 안세이였기 때문에 '안세이(安政)의 대옥사'라고 부른다.
2. 배경
당시 다이로였던 히코네 번주 이이 나오스케는 미국과 맺은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비준하는 현안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나오스케는 막부내 개국파들의 압력과 그 밖의 정치적 문제들로 인해 미일수호통상조약을 급하게 체결했는데, 이때 당시의 덴노였던 고메이 덴노의 칙허를 받지 않고 조약을 체결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고메이 덴노는 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제대로 격노하여 미토 번을 포함한 몇몇 양이파 다이묘들에게 무오의 비밀칙서를 내렸는데 이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당시 덴노가 정식절차를 거치지 않고 막부를 무시하고 다이묘에게 직접 칙서를 내리는 경우는 막부 체제를 흔드는 상황이었는데, 이 비밀칙서가 나오스케에게 발각되었다. 이이 나오스케는 즉각 대대적인 조사를 시작했고, 비밀칙서의 배후에 미토번과 히토츠바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들어갔다.
3. 결과
이 사건으로 히토츠바시 파와 요시다 쇼인 같은 양이론자 100여명이 숙청되었고, 이 숙청의 잔혹함을 비난하던 사람들에 의해 이이 나오스케는 조상인 이이 나오마사와 같은 '''이이의 붉은 귀신(井伊の赤鬼)'''[1]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이때 미토번의 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는 번주자리를 내놓고 칩거하는 형을 받았다. 졸지에 로닌 신세가 되어버린 미토번의 가신들이 분노하여 사쿠라다 문 밖의 변을 일으켜 이이 나오스케를 암살했다. 나오스케 암살 이후 연호는 1860년에 안세이(安政)에서 만엔(万延)으로 바뀌었다.
4. 여담
은혼의 칸세이 대옥사는 이것을 모티브로 삼은 것으로, 양이전쟁 도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