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 나오마사

 

'''도쿠가와 사천왕'''
사카이 타다츠구
혼다 타다카츠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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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가문의 문장. 히코네 귤.
井伊直政 (いい なおまさ)
1561년 3월 4일 ~ 1602년 3월 24일
'''이이의 붉은 귀신(井伊の赤鬼)'''[1]


1. 소개


일본 전국시대 무장. 아명은 토라마츠. 흔히 도쿠가와 막부의 창업 공신이자 도쿠가와 사천왕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에야스의 고참 가신이라는 인상이 있지만, 사실 생년을 보면 알겠지만 도쿠가와 가신단 중 다소 늦게 합류한 신진 가신이다.
토토우미국(遠江国) 이이노야(井伊谷)(현 시즈오카하마마츠)에서 태어났다. 이이 가문은 대대로 지방영주였다. 이이노야는 위로는 다케다 신겐, 오른쪽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 왼쪽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력 사이에 낀 지역이었다. 어느쪽이든 가신이 되어 그 수하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이 가문은 당시 세력을 확대하고 있던 이마가와 가문의 세력권안에 들어가버렸기에 어쩔 수 없이 이마가와를 섬기게 됐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가신이었던 양할아버지 이이 나오모리는 1560년 오다 노부나가를 쳐들어갔던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싸우다 전사. 당주를 이은 아버지 이이 나오치카는 세력을 불린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붙었다는 모반의 의심을 사서 나오마사가 태어난 다음해인 1562년 요시모토의 아들 이마가와 우지자네에게 죽음을 당한다.
이이 가문은 남성이라고는 이이 나오마사만 남게 되었고, 아버지의 사촌여동생이자 한때는 약혼녀였던 지로호우시(또다른 이름은 유우엔니)가 그의 양모가 되며 이름을 이이 나오토라로 개명하여 당시 어렸던 나오마사를 대신하여 당주 역할을 하였다. 나오마사는 8살까지 나오토라가 맡아 기르다, 미카와(현 아이치현)의 절에 맡겨져 15살 때까지 교육을 받았다.
다케다 신겐이 죽고 다케다 세력이 약해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토토우미 지역을 안정시켰다. 이에, 나오토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 되기로 결심하고, 절에 맡겼던 15살의 나오마사를 불러와서 157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게했다. 이에야스는 만치요(万千代)라는 이름을 주고 자신의 시종(小姓)으로 삼고, 영지를 갖는 것을 허락했다. 당시의 풍습으로 두 사람은 중도관계였다는 설이 있다.
여담으로 이에야스의 장모인 시나(첫아들 마츠다이라 노부야스의 외할머니)는, 나오마사에게는 친할아버지의 누나다. 두 사람은 먼 친척 사이다.
시종으로 일한지 1년 뒤인 16살 때, 이에야스를 암살하려고 침입한 암살자를 발견하고는 그와 맞서 싸워 단칼에 베어버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공으로 기존의 10배인 고쿠다카 3천석을 받았다.(이이가전기의 기록)
이후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이에야스가 싸운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小牧・長久手の戦い)에서는 빨간 갑옷이 특징인 특수부대인 이이 적비(井伊赤備)[2]를 조직하고 여러 전쟁에서 도쿠가와군의 주력으로 활약하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이이의 붉은 귀신(井伊の赤鬼)'''. 선배 무장격인 혼다 타다카츠가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고 했던 것에 반해 그는 장군임에도 전장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면서 맹렬히 활약하여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고 한다.[3] 그래서 보다 못한 타다카츠가 "장수된 자는 몸도 좀 사릴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는 그가 태어날 무렵 여러 사건으로 집안 남자들이 잇달아 살해당해 전멸하다시피 하는 바람에[4] 이는 그가 5살 무렵 이이 나오토라가 여성의 몸으로 당주가 돼야 했던 기막힌 상황에서 비롯되는 성격이다. 나오마사가 너무 어리고 대를 이을 다른 남자들도 없으니 이이 나오토라가 여성의 몸으로 집안을 이끌어가야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이이 가를 재건할 마지막 희망으로서 태어나자마자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랐을 그가 얼마나 사명감과 부담에 시달렸을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것이다. 게다가 도쿠가와의 다른 중신들이 대대로 도쿠가와에 충성한 세록중신인데 반해 그는 신참자였기 때문에 입지를 만들기 위해 그는 미칠듯이 공을 밝히는 성격이 되고 말았다. 이후 온갖 공을 세우다 못해 아예 세키가하라에서는 아주 높게 쳐주는 이치방야리(적진에 첫 공격을 가한자에게 주어지는 공훈)를 차지하기 위해 원래 그 역할을 하기로 돼 있던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속여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공을 탐하는 성격은 결국 그의 사망원인이 되고 말았는데 서군 패배 확정후 서군에서 가장 이름 높은 무사중 하나인 시마즈 요시히로의 추격에 나섰다가 시마즈가의 자살 전술인 스테가마리(捨て奸)에 의해 저격당해 중상을 입고 만다. 이후 시마즈가의 처분을 논할때 그들의 영지를 보장해주고 화평을 유지함을 주장하는 개인적 원한을 넘어선 우수한 정치가로서의 모습을 보이지만 총상이 도져 사망하고 만다.
전장에서는 지휘관임에도 직접 병사들과 같이 최전선에서 싸우는 일도 많았고, 아예 단신으로 말타고 적진으로 뛰어들어서 싸우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안전을 우려한 부하 장수들이 제발 진중하라고, 장수가 군세를 떠나면 남은 병사들이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조언하자, "나보다 늦는 자는 앞으로 사내로 인정안한다"라고 대답했다.
또 나오마사는 '망나니 효부(人斬り兵部. '효부'는 관직명이다.)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이것은 전장에서의 활약 때문이 아니라 성격이 격하고 부하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면이 있어서 가신이 조금만 일을 실패해도 직접 베어 죽여버리는 일이 많아서 붙은 별명. 실제로 당시 이이의 군단은 도쿠가와 최강의 군단으로 용명이 높았으나 나오마사의 엄격한 군율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한 가신들이 혼다 타다카츠의 부대로 옮겨간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두고 '''성은 이이(いい, 좋다)인데 전혀 좋은 사람이 아니다'''라 평을 듣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얼굴이 꽤 곱상했는지 전국무장 치고는 거의 남색을 하지 않은 이에야스의 남색 대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나오마사의 상처에 이에야스가 직접 약을 발라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1590년 이에야스의 에도 입성에 동참하였다. 1600년 세키가하라 결전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1602년 세상을 떠났다. 전형적인 무골들인 다른 사천왕들과는 달리 정치적인 능력도 뛰어났기에 후사를 맡기려고 했던 이에야스는 나오마사의 부고를 듣고 크게 상심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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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코네의 마스코트 '히코냥'.
에도 막부 성립 이후 이이 가문은 막부 말기에 이르기까지 히코네 번의 번주로 군림했다. 후손으로 막부 말기의 다이로였던 이이 나오스케가 유명하다.[5] 지금도 히코네 시에서는 나오마사를 기리는 축제를 매년마다 열고 있을 정도로 히코네 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마스코트도 위에서 보다시피 이이 나오마사의 투구를 쓴 고양이 '히코냥'. 이이 나오마사의 아들 나오타카를 구해준 고양이가 모델이라고 한다. 히코네 성에 가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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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하사한 갑옷.

2. 대중매체에서



2.1. 슈팅 게임 바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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内府樣の御爲め... ここより先はお通し出来ませぬ。お覚悟を。

I will protect the Shogun. I will not allow you to go any further. Prepare yourself.

내 대신[6]

님을 위하여... 이 이상 앞으로 지나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각오하시길.

성우는 호리카와 진.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와 함께 등장. 처음에는 위 그림처럼 합체해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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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부분이 이이가 탄 부분.
계속 치다보면 좌우로 분리되는데(한 쪽을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합체패턴), 이이가 먼저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이이가 혼자 남으면 트레이드마크인 투구장식에서 직선으로 발사되는 U자형 레이저 공격을 시도한다. 코어 노출 이후는 빠른 탄환을 연속발사하는 공통패턴.

2.2. 노부나가의 야망태합입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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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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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출생연도가 늦은 편이라서 도쿠가와 사천왕 멤버 중 가장 등장이 늦다. 도쿠가와로 플레이시 제때 등용하지 못하면 다른 가문으로 가 있는 경우도 제법 있다. 일단은 맹장형이긴 하지만, 막부 성립 후 행정에서도 재능을 발휘했던 행적을 반영했는지 지모나 정치도 중간 정도의 능력치를 받는다.
천도에서의 특기는 '붉은 갑주'로 유명한 사람답게 적비. 도쿠가와가는 족경 가문인데 개인특기가 기마 특기라서 어떻게 보면 사용이 애매할 수도 있다. 그래도 족경 적성이 B인지라 나쁘지는 않아서 개인특기를 무시하고 족경부대로 굴려도 상관은 없지만.
삼국지 12의 노부나가 전생에 등장. 능력치는 당연히 높지만, 전법이 쓰레기 전군속공이라 병사 충전용으로 쓰인다.
창조에서는 통솔 89/무용 89/지략 76/정치 80으로 혼다 타다카츠와 함께 도쿠가와 가문의 투탑을 맡고 있다. 본인 전용 성장 특성을 부여받음과 동시에 초기부터 여록을 갖고 있어 성장이 빠르며, 그의 상징적인 닉네임과도 같은 '붉은 귀신(赤鬼)'이 개인 강화용 전법으로 나오는데, 수비를 제외한 난전,속도가 대폭 강화되는 효과[7]라 빠르게 접근하여 발동시키면 적 부대 병사 수가 더 많더라도 나오마사로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다. 디버프형 계통의 전법 사용 여부를 떠나서도 순수 댐딜만 놓고 보면 본작 최고의 난전 전법. 확실히 도쿠가와 가문을 플레이 하는 유저 입장에서 타다카츠와 나오마사 둘을 가지고 대합전에 뛰어들면 어지간히 진형이 꼬여 이간에 당하지 않는 이상 적군이 쓸려나가는 쾌감을 맛 볼 수 있다.
창조 PK기준으로 몽환처럼 시나리오에서 코슈 정벌에 성공하면 이벤트로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특성 적비를 얻고, 코마키 나카쿠테 전투 전국전 도중 무장록을 성공시키면 특성 귀신을 얻는다. 세키가하라 전투 전국전의 이벤트 무비에서는 선봉 후쿠시마 마사노리를 사람좋은 웃음으로 속여넘긴 후 정색하면서 선봉을 가로채는데 싸늘하게 변하는 표정이 일품.
초기작에서 일러스트는 적당히 맹장스러워 보여도 개성이 없는 일러스트였지만 천하창세를 기점으로 특유의 뿔 달린 투구와 붉은 갑주를 차고 그려지더니 창조를 기점으로 미청년으로 환골탈태했다. 전국무쌍 4 맹장전에 등장한 모습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도쿠가와 가신단 중에서는 신참 축에 속하는 인물이고 수명도 길지 않았으니 젊게 묘사되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2.3. 거짓말은 주군의 시작


일본만화 거짓말은 주군의 시작에선 주인공의 아내 키요히메의 아버지이나 작중 이미 사망했기에 이름만 언급된다. 세키가하라 합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딸인 키요히메는 무사들을 매우 싫어해 고자킥을 시전한다... 나오마사의 갑주는 어째서인지 아들인 이이 나오타카가 아닌 키요히메가 물려받았다...

2.4. 지휘봉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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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신장 180cm, 비주얼 연령 25세, 취미는 이름을 밝히는 방법과 등장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만쥬.
혼자서 전대물을 찍고 있는 열혈 정의 바보. 등장 대사는 '어둠 있는 곳에 빛이 있고 악이 있는 곳에 정의가 있다''어둠 있는 곳에 빛이 있고 악이 있는 곳에 정의가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보면 주요 전투시마다 나타나서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도쿠가와야말로 정의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으며, 패배시에는 정의가 왜 악에게 지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모리 군과 합류하기 위해 적진을 가로지르던 시마즈 군과 이시다 미츠나리를 기마대를 이끌고 추격하나 숙부 시마즈 요시히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시마즈 토요히사에 의해 일시 철퇴. 죽어서까지 자신의 앞길을 막은 토요히사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미츠나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천하를 넘길 때 세키가하라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기까지 했다.

2.5. 전국무쌍 시리즈


이이 나오마사(전국무쌍) 항목 참조.

2.6. 세키가하라(2017)


이에야스의 심복이자 잔심부름,정보수집까지 맡는 가까운 가신으로 등장한다.[8]
미츠나리가 칠본창에 쫓겨 이에야스에게 도움을 청할때, 미츠나리의 목을 치면 간단하게 끝난다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거나,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 이에야스에게 전투의 선봉은 이에야스의 직신(직계가신)이 아니면 직신들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간언해 이에야스가 첫 출진이엇던 나오마사의 사위에게 선봉을 맡게 한다.

2.7. 영걸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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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상매가강의 패라는 계보의 미등장 데이터로 남았다. 병과는 경기병. 능력치는 무력 89 지력 72, 통솔 87, 민첩 81, 행운 79. 본래 플레이어블로 등장할 예정이었다가 제작진이 능력치 논란을 우려해 일부러 등장시키지 않았다.

[1] 특수부대인 이이 적비(井伊赤備)를 조직하고 여러 전쟁에서 도쿠가와군의 주력으로 활약하였다.[2] 아카조나에(赤備え)라고 한다. 나오마사가 처음 창설한 것은 아니고 같은 이름을 공유하는 기마부대들이 일본 역사에 여럿 존재한다.[3] 이이 나오마사가 중장갑인데 비해 타다카츠는 경장갑을 선호했다고 한다.[4] 전사는 물론 줄을 대고 있던 이마가와 가문으로부터 이에야스에게 붙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서 배반자로 몰려 부자가 살해 당하는 등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5] 이 사람 역시 조상처럼 '이이의 붉은 귀신(井伊の赤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른바 '안세이의 대옥'이라는 대규모 옥사를 일으켰기 때문.[6] 内府란 내대신을 일컫는 말로, 영어 자막은 편의상 Shogun이라 번역되어 있지만 이 때는 도쿠가와가 쇼군이 되기 전이었다.[7] 난전 250%, 속도 100% 상승[8] 이예야스가 워낙 비대한 체형이다보니 살이 더 쪘다고 타박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