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트 피시
'''"I like children; they are tasty."'''
'''"난 애들이 좋아, 맛있거든."'''
'''"한 개인이 이러한 모든 성적 이상증세를 보유했다는 기록은 법학이나, 의학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피시의 정신감정을 담당한 프레드릭 워댐 박사의 말.
1. 개요
미국의 연쇄살인 범죄자. 그레이맨(Gray Man), 웨스터리의 늑대 인간(Werewolf of Wysteria), 브루클린 흡혈귀(Brooklyn Vampire), 월하의 미치광이(Moon Maniac), 망태할아범(The Boogey Man)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끔찍한 연쇄살인범으로 남아있는 연쇄살인마.[2]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프로파일러들 역시 알버트 피시의 사례를 '''연쇄살인범 사례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사례'''로 꼽으며 알버트 피시를 미국 역사상 희대의 살인마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동 연쇄 유괴 살인이라는,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를 넘어서 그 이상의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2. 생애
알버트 피시는 1870년 5월 19일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난 후, 피시는 어느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거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할 것을 강요당하는 등 심각한 학대를 당했다. 그렇게 고아원에서 2~3년을 지낸 후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가 생활하게 되는데 얼마 뒤 체리나무에서 떨어져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된다. 그 후 현기증과 두통을 경험했다. 이때의 사고가 그의 이상 성격을 형성하게 된 원인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는 성인에 비해 두개골이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정도가 1/8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 추락으로 전두엽 피질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의학계에서는 전두엽 피질이 손상되면 공격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단순 마조히스트에서 잔혹한 살인마가 되었을지도.
알버트 피시는 낮은 수준의 공교육을 받았고, 페인트공이나 잡역부로 공사현장에서 일을 했다. 스물여섯 살의 피시는 열아홉 살의 여자와 결혼했지만 피시의 아내는 바람이 나게 되는데 그 상대는 자기 집에서 하숙하던 잡역부였다. 피시는 아내에게 그 사내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자야 할 매트리스까지 가지고 사라졌다. 그 일 이후 피시는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달빛 아래에서 알몸으로 '''"난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거나 생고기를 씹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아내 때문에 미쳤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 전에 이미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 후 자학 행위는 점점 심해졌고 여자들에게 익명으로 성희롱 편지를 발송하거나, 어린아이에게 강간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체포되어 교도소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악마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성은 남아있었는지 후술될 그의 잔악 행위들을 자식들에게 하지는 않았다. 특히 피쉬의 자식들은 피쉬가 상냥한 아버지였다고 법정에서 증언할 정도였다. 다만 자신을 때려 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다.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태어난 집안이 불우했다. 피시 일가는 그의 조상들, 할아버지와 아버지부터 정신병력이 있었으며 가정에서도 부모에게 학대당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그가 이후 저지른 범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3. 살해 수법
피시가 그토록 악명을 떨치게 된 이유는 전술했듯이 '''아동을 유괴,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후 잡아먹는 미친 짓을 했기 때문이다.''' 훗날 체포된 후 본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아이들의 살이 맛있다며 '''아이들을 잡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아이들에게 대바늘을 몸에 쑤셔넣는 행동을 한 뒤''' 신체를 분해하여 살들을 스튜로 끓여 먹거나 오븐에 구워 먹었다. 그러고서 그는 그 음식의 맛을 '''그 어떤 고기도 이만큼 달콤하고 맛있을 수가 없다'''고 말해서 조사관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자궁 같은 생식기도 먹었지만 남자아이의 성기는 질겨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변기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 번에 죽이지 않고 살려둔 채 먹을 부위만을 해체한 뒤 과다 출혈로 죽게 내버려 뒀다.'''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상황에서도 그는 개의치 않고 눈을 파내고 성기를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파헤치거나 이빨로 신체를 물어 찢는 등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짓을 자행했다. 본인은 훗날 이렇게 잔인한 일을 한 이유를 '''자신이 피에 대한 갈증이 엄청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 그레이스 사건
연쇄살인범으로서 피시의 악명을 드높인 또 한가지 이유는 그의 체포 과정이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아이들을 죽이고 먹어치우는 생활을 하던 피시는 어느 날 신문에 광고를 실었다. 프랭크 하워드(Frank Howard)라는 가명을 쓰고 자신을 농장주라 하며 거짓 구인 광고를 낸 다음, 광고에 응답하는 청년을 사로잡아 죽일 생각이었던 것. 이 당시 피시는 노인이었지만, 숙련된 살인 경험으로 건장한 청년도 간단히 무력화할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에드워드 버드(Edward Budd)라는 18세의 젊은이가 광고를 보고 피시에게 연락을 취했고, 피시는 에드워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갔다. 추후 진술에 따르면 이미 이 때 청년을 잡아 묶어놓고 거세하여 천천히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할 구상을 해 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집에서 에드워드의 여동생인 그레이스를 만난 후 목표를 그쪽으로 수정한다.[3] 피시는 그레이스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조카가 이 근처에서 생일파티를 열고 있는데 그레이스를 데려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마땅찮아 했지만, 아버지는 상류층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기회라며 피시가 그레이스를 데려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실로 안타까운 결정이었다. 그레이스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피살당했으며, 피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에 연락하고 나서야 그레이스의 가족들은 피시가 쓴 이름이 가명이고 신문 광고에 나온 농장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타깝게도 그레이스의 생사는 피시가 잡힌 뒤에 그가 다 털어놓고 나서야 밝혀질 수 있었다.
당시 퇴직을 1년 앞둔 노형사 윌리엄 킹(William King)은 퇴직까지 반납하며 이 사건에 6년간 매달렸지만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조치로 수사를 종결했다는 가짜 기사를 신문에 싣게 된다. 그러자 피시는 안심했는지 그레이스 가족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는데 자신을 합리화하는 동시에 그레이스 가족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내용 번역본. 내용이 끔찍하니 혐오주의
편지 내용은 식인에 대해 담고 있었고 '내가 네 딸을 먹은 범인이다'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는데, 지금이야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알버트 피시가 어떤 인간이고 저 편지를 왜 보냈는지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사람들과 형사들은 저 편지의 내용을 쉽사리 믿기 힘들었고, 정말 범인이 보낸 편지가 아니라 악질적인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킹은 저 편지가 정말 범인이 보낸 편지이고, 믿고 싶지 않지만 범인은 그레이스에게 정말로 식인이라는 악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벌어진 사건들의 편지와 필체도 비슷했고, 편지의 세부적인 내용도 범인이나 그 당시 현장에 없었던 사람이 알기 힘든 내용들이 많았다. 킹은 이 편지의 발신인이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수사를 계속했다.
몇 년 만에 추적할 만한 단서가 잡혔지만 추적은 쉽지 않았다. 피시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편지에 주소를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편지 봉투는 추적이 가능했는데, 범인이 보냈다고 추정되는 이 편지 봉투는 뉴욕 택시 기사 노조의 편지 봉투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뉴욕 택시 기사 노조의 회원들이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인상착의나 필체나 범인과 일치하는 인물이 없었다. 이에 킹은 '누군가가 편지 봉투를 밖으로 가지고 나갔고 이를 범인이 주워서 쓴 거다'라는 추리를 한 후 편지 봉투와 편지지를 사적으로 이용한 분이 계시냐 물었다. 다행히, 용기있게 건물 관리인이 자신이 집으로 가져가 이 봉투와 편지지를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관리인이 마지막으로 편지 봉투와 편지지를 가져간 곳은 낡은 하숙집이었는데, 이곳으로 가 목격된 범인의 인상착의를 물어보자 주인은 '''이틀 전''' 그런 인상을 가진 '알버트 피시'가 두달 동안 하숙집에서 묵다가 나갔다고 말한다. 이때 킹과 형사들은 피시의 생계 수단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는데, 피시는 아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킹은 우체국에 연락을 했고 직원들의 협조로 우체국에서 아들이 피시에게 보내는 편지와 돈을 가로채는 데에 성공한다. 이 말은 피시는 아직 어딘가로 달아나지 않았고 이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며 아들이 보내준 돈이 없으니 돈이 없어진 피시는 다시 이 값싼 하숙집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였다. 킹은 피시가 다시 돌아오면 꼭 전화를 달라고 말했는데, 한 동안 전화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마침내 피시가 왔다는 하숙집 주인의 전화를 받고는 형사들과 함께 하숙집으로 달려나간다.
하숙집을 박차고 들어간 킹은 피시와 마주치게 되고, 그는 침착하게 알버트 피시가 맞냐고 그에게 물어본다. 알버트 피시는 맞다고 대답했으나, 현재 그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본능적으로 빠르게 알아채고 주머니에 있던 흉기로 저항하려고 했으나 킹과 형사들에게 금세 제압당했다. 킹은 그를 체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image]'''"넌 이제 잡혔어."'''
'''"I've got you now."'''
알버트 피시와 윌리엄 F. 킹(William F. King) 형사.
5. 체포
체포된 피시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자신의 모든 범행을 깨끗하게 털어놓았는데, 이때의 자백 내용중 일부는 검열되어 알려졌음에도 대단히 충격적이고 혐오스러웠다. 피시의 자백으로 인해 다른 미국 지역의 미제 사건이나 음란편지들의 발송자가 누구인지 밝혀졌다. 그리고 피시는 단순히 살인 이외에 상상을 초월하는 자학으로도 수많은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는데, 그 수법으로는 '''요도에 장미 줄기 삽입하기, 항문을 불로 지지기, 사타구니에 대바늘 29개 박아넣기''' 등이 있었다. 심지어는 자식들에게 못이 달린 주걱으로 자신을 때려서 피가 나게 해달라고 하거나, 손톱 밑에 날카로운 물건을 넣어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상적인 자학을 정상인이라면 믿기 어려웠고, 형사나 워댐, 심리상담가들 또한 피시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정신병자로 위장하려는 속임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사타구니에 대바늘을 박아넣었다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정말로 이십여개의 대바늘이 그의 골반 안쪽에 박혀 있었다.'''(...) 그래서 관계자들이 이를 보고는 전부 경악했고 웬만한 영화나 매체에 나오는 가공의 사이코패스들보다 훨씬 지독한 인물이 현실에 나타난 셈이다.
6. 희생자들
알버트 피시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약 100명의 아이들을 죽이고 식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심리상담가들은 그가 17명 정도의 아이들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의 증언 가운데 상당 부분은 허언증으로 추정된다. 피시에 의해 피살된 것이 명백하게 확인된 피해자는 단 3명. 이외 6명의 아동 및 청소년이 실종됐는데 이들도 살해된 것으로 추정했지만 피시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으며 관련 조사를 끝내기 전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생사조차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6.1. 살해된 것이 확인된 피해자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레이스처럼 피시가 죽였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증거로 증명이 됐을 때만 확인됐는데, 워낙 시간이 오래 흐른지라 인정된 사례가 얼마 되지 않는다.
- 프란시스 X. 맥도넬 (8세) 1924년 7월 15일
- 빌리 개프니 (4세) 1927년 2월 11일
- 그레이스 버드 (10세) 1928년 6월 3일
6.2. 의심되는 피해자
검찰은 이들도 모두 피시에게 살해된 걸로 보고 있고 피시도 순순히 인정했지만 시신이 발견되지도, 사망했다는 확고한 증거도 나오지 않아 결국 기소되지 않았다. 종신형 선고 등을 통해 추가조사를 할 기회를 갖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배심원들은 3명 살해에 대한 죄만으로 사형을 확정하였다.
이들은 모두 피시에게 넘겨졌으며, 이 시간대 이후로 피시 말고 이들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 에마 리처드슨 (5세) 1926년 10월 3일
- 예타 아브라모 위츠 (12세) 1927년
- 에밀 아일링 (4세) 1930년 7월 13일
- 로빈 제인 리우 (6세) 1931년 5월 2일
- 메리 엘렌 오코너 (16세) 1932년 2월 15일
- 벤자민 콜링 (17세) 1932년 12월 15일
7. 재판
피시는 자신에게 넘겨진 뒤 생사불명 상태인 사람들을 죽인 걸 전부 다 인정했으나, 검찰은 그레이스 버드처럼 잡아먹힌 게 확실하게 증명되는 등 3명에 대해서만 살인죄로 기소했다. 보통 정신병자인 척하는 연쇄살인마들이 많지만 피시는 진짜로 정신병자가 확실했고 담당의사들도 진지하게 소견서를 작성해 피시를 정신병원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역시 정신병을 근거로 그의 무죄를 주장했다.
8. 사형 선고
그러나 아무리 미쳤다고는 하지만 교활한 방법을 통해 수사망을 피하고 자기 몸을 지킬 줄은 알았던 인물이라 완벽한 정신병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때문에 당시 판사와 배심원들은 유죄 판결 유무를 놓고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정상인은 아니지만 자기 책임능력은 있다고 판단해서, 유죄 판결이 내려짐과 동시에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 방법은 당시 재판이 이뤄진 주에서 사형집행을 위해 쓰던 전기의자형. 그런데 알버트 피시는 그런 사형 판결이 내려지자 오히려 흥분하며 기뻐했고 그런 사형판결을 내려 준 판사에게 감사했다.
법정에서 피시는 내내 체념한 듯이 행동했고 재판의 결과에도 관심이 없었다.[4] 다만 그는 잠깐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은 그 누구도 이런 삶을 또 겪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나를 붙잡아서 되돌려준 사람이 지옥 제일의 악마라면 세상의 어떤 악마도 사실은 천사일지 신이 시키신 일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판결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 배심원은 이렇게 말했다.'''"전기의자에 앉게 되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스릴이 될 것이다(Going to the electric chair will be the supreme thrill of my life)."'''
사실 알버트 피시는 사형 판결에는 불만을 표했지만 집행 방식이 '''전기의자형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을 짜릿하게 할 수 있는 경험이라면서 기대감을 보였다'''고 한다."그 사람이 미쳤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지만, 우리 앞에 있는 ''''그것'을 살려둬선 안 된다는 공포감이 사형을 선고하게 만들었다.'''"
알버트 피시는 싱싱교도소(Sing Sing Prison)에 이송이 되었는데 변호사와의 면담에서 '''자기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것은 자기가 시도해 보지 못했던 유일한 스릴(It will be the only thrill I have not tried)'''이라며 다시 한번 전기의자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즉 전기의자가 자신을 짜릿하게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었다 한다.
9. 사형 집행
1936년 1월 16일에, 피쉬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 하지만 피쉬가 사형 당일에 한 행위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 마지막 식사로 주어진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어치운 후, '''사형 집행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제발로 스스로 나와서는 교도관들과 함께 별다른 부축도 없이 사형 집행장에 씩씩하게 걸어서 도착했다.[5] 그는 오히려 전기의자형이 기대된다며 사형 집행을 준비하는 교도관들을 직접 세심하게 도와주고 전극을 붙이는 집행을 담당하는 교도관들과 함께 스스로 몸에 전극을 붙이는 등 죽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자학적인 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다른 죄수들은 눈을 가리는데 알버트 피시는 눈을 가리는 것을 거부했다. 전기의자에 앉은 소감을 묻자 "말로만 듣던 전기의자에 앉게 돼 더 할수 없는 스릴과 희열을 느낀다" 말했고 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고 묻자 '''"이봐 난 지금 최상의 스릴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으니 멍청한 소리 말고 어서 빨리 시작해!"'''라며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형이 집행될 때 연신 웃으면서 스릴을 느끼면서 죽었고, 스스로 사타구니에 박아넣은 이십여 개의 금속 바늘 때문에 회로 합선이 일어나면서 형 집행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전기 충격을 한번 더 주고 나서야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는데, 원래 미국의 전기의자형은 두 번의 전기 충격으로[6] 형을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실제로 그는 대부분의 다른 사형수와 마찬가지로 전기의자에 앉은 지 3분 만에 죽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미국 역사상 가장 잔혹한 연쇄 살인마의 죽음으로 이 전대미문의 살인극은 종료가 되었다.
10. 편지 공개 요청 거부
피시는 그의 변호사에게 언론 등에 공개해 달라면서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전했다. 이때 기자들이 그 편지를 공개해 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피시의 변호사는 이 편지를 절대로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자가 그 이유를 물어보자 변호사는 '''"자신이 태어나서 이렇게 음탕하고 더러운 내용의 문체는 도저히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뒤 변호사가 죽었으나 피시의 편지는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11. 여담
이 전대미문의 살인자가 저지른 이 살인 행각의 이야기는 Newgrounds와 유튜브에 Secrets of Wysteria라는 곡으로 올라와 있다. Geometry Dash의 한 게이머이자 크리에이터인 TriAxis가 이 곡으로 Wysteria라는 맵을 만들었는데, 재현도가 매우 높다. # ##
[1] 컬러복원 사진[2] 다만, 대중매체에서의 모습이나, 사회적 영향력 자체는 흉악범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잭 더 리퍼나 찰스 맨슨, 에드워드 게인이 더 큰 편이다.[3] 위에는 본인이 무슨 숙련된 킬러인 양 허세를 떨었지만 막상 에드워드가 너무 건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작 에드보단 함께 지원한 왜소한 체형의 에드 친구에 눈독을 들였다나.[4]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재판을 방해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5] 미국은 사형수 본인에게 사형 집행 일정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으로, 마지막 식사를 본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당연하지만 사형수들은 덜덜 떨다가 주어진 식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공포로 다리에 힘이 풀려 교도관들이 부축해 사형장으로 이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기 싫어서 집행 직전까지 난동을 부려서 교도관들이 끌고 가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6] 처음에 빠르게 고전압의 전류를 흘려 의식을 잃게 함과 동시에 심폐기능을 정지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 후, 두 번째로 다소 낮은 전압의 전류를 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흘려 뇌와 내장을 비롯한 주요 장기를 전부 구워버려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소생의 가능성을 없애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