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그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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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mar.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국가로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이 세웠다.
모르도르가 멸망하고 사실상의 외적이 없어진 아르노르는[1] 초창기 천여년동안은 강성한 국가로 중간계 전역에 위세를 떨쳤으나 왕위를 놓고 자기들끼리 내분을 벌인끝에 10대 에아렌두르 왕을 끝으로 그 아들들이 나라를 세 개로 갈라먹었다. 각각 아르세다인, 카르돌란, 루다우르로 갈라졌고 세 나라들은 각각 자국이 북왕국 시조 이실두르의 진정한 후계자라 주장하면서 세력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이 중 아르세다인을 제외한 카르돌란, 루다우르에선 이실두르의 혈통이 끊겨버렸고 오직 아르세다인에만 계속 유지되었다.
이런 정세를 지켜본 나즈굴의 대장 마술사왕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강성한 남왕국 곤도르와 달리 분열을 일삼아 약해진 북왕국이라면 충분히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북왕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북쪽으로 왔고 에튼무어 이북지역 카른 둠에 앙그마르 왕국을 세운뒤 사악한 인간과 오크, 트롤, 고블린, 와르그등을 끌어모았다.[2]
마술사왕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루다우르의 국왕[3] 을 매수해 동맹을 맺었고 카르돌란, 아르세다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아르노르 17대 국왕 아르겔레브 1세를 전투중에 살해하는데 성공한 앙그마르는 아르세다인과 카르돌란에 대한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3시대 1409년 앙그마르 왕국에서 대군이 쏟아져나와 아르세다인과 카르돌란으로 쳐들어갔으며 아르노르 18대 국왕 아르벨레그 1세은 전사하고 팔란티르 신석이 있던 아몬 술 첨탑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카르돌란 또한 앙그마르 군에게 유린당했고 루다우르는 이즈음 앙그마르의 동맹국이 아니라 완전히 앙그마르의 수중에 떨어져 그나마 남아있던 두네다인들은 루다우르에서 완전히 달아나야만 했다 [4] .
이때 앙그마르는 북왕국을 완전히 멸망시킬뻔했으나 아르노르 국왕의 아들 아라포르가 회색항구의 조선공 키르단과 깊은골에 원군을 요청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3시대 1650년경에 아르노르 20대 국왕 아르겔레브 2세 재위시 에리아도르 남부 지역에 창궐한 역병으로 카르돌란이 멸망했으며 이제 앙그마르의 목표는 아르세다인 하나만 남게 되었다.[5]
3시대 1974년 다시 세력이 커진 앙그마르의 대공세에 아르노르 25대 국왕이자 최후의 국왕 아르베두이는 수도 포르노스트를 버리고 '쓰레기땅' 포로첼로 달아났다. 난쟁이들이 팠던 옛 굴 속에 숨어있던 아르베두이 일행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포로첼에 거주하던 설인[6] 롯소스 부족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아르베두이 일행에게는 도움을 받는 대가로 내줄만한 게 없었고 (보석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설인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었다), 설인들은 마술사왕을 두려워하여 처음에는 도움을 받지 못하다가 아르베두이 일행의 모습이 너무 수척한 점도 있고, 그들이 가진 무기가 무섭기도 해서 설인들이 집을 짓고 식량을 약간 나누어주었다. 아르베두이에게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남쪽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는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아르베두이의 아들인 아라나르스(Aranarth)는 키르단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키르단은 바로 배 한 척을 포로첼 만으로 보냈다. 오는 내내 역풍을 받아 시간이 오래 걸려서 키르단이 보낸 배가 도착했을 때는 겨우 얼음이 녹는 3월이었다. 설인들은 이런 배를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아르베두이 일행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배를 탈 수 있게 해안까지 수레에 태워 데려갔다. 그런데 이 때 롯소스 족의 족장이 위험을 감지한 듯이 '이 바다괴물에 올라타지 말라! 선원들에게 음식과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오게 하고 마술사왕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라. 여름에는 그의 힘이 약해지지만, 지금은 그의 숨결이 강력하고 그의 차가운 손길이 뻗어오니.'라고 충고를 했지만 아르베두이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배에 타면서 그 족장에게 '바라히르의 반지'를 주었다. 로소스 족장의 충고대로 배는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거대한 눈폭풍을 만나 얼어붙었고, 밤에 얼음이 배를 파손시키면서 그대로 침몰해버렸다. 이때 안누미나스와 아몬 술의 팔란티르도 같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7]
수백년에 걸친 공략끝에 아르노르를 완전히 멸망시켰지만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이 회색항구, 깊은골, 곤도르 연합군의 반격에 직면했고 쓰러져가는 약소국 아르세다인과는 달리 강대국이었던 곤도르와 요정의 군세에 대패해 카른 둠까지 밀려났다.
거기서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은 증오에 차 곤도르 왕자 에아르누르에게 저주를 퍼부은 뒤 모르도르로 달아났고 앙그마르는 아르노르를 무너뜨린지 불과 1년만에 멸망했다. 그래도 사우론과 마술사왕은 이것을 굉장히 큰 성과로 여겼는데, 그들에게는 그동안 치른 구릉인이나 오크들의 희생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였지만 곤도르나 엘프들에게 북왕국이 무너진건 굉장히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후 앙그마르의 잔당들은 3시대 1977년 북쪽으로 이주해 온 에오세오드족(로한의 조상들)에게 씨가 말려 완전히 와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앙그마르와 북왕국의 전쟁시기에는 샤이어는 북왕국의 영토였고, 호빗들도 그 신민들이였기에 궁수부대를 파병했다. 다만 귀환하지 않았다는걸로 봐서는 전멸한듯.
앙그마르 자체가 어떤 체제를 가진 국가였는지는 잘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입지부터가 북쪽 산맥지역에 있는데다가 아르세다인이 없어지자마자 망한 걸 보면 전형적인 약탈경제로 먹고사는 막장국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나름 사우론의 본거지라서 안정적인 경제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던 모르도르와는 달리 앙그마르는 아르노르 파괴에 이용한 도구나 다름없었기에 딱히 제대로 된 체제를 성립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 개요
Angmar.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국가로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이 세웠다.
2. 역사
모르도르가 멸망하고 사실상의 외적이 없어진 아르노르는[1] 초창기 천여년동안은 강성한 국가로 중간계 전역에 위세를 떨쳤으나 왕위를 놓고 자기들끼리 내분을 벌인끝에 10대 에아렌두르 왕을 끝으로 그 아들들이 나라를 세 개로 갈라먹었다. 각각 아르세다인, 카르돌란, 루다우르로 갈라졌고 세 나라들은 각각 자국이 북왕국 시조 이실두르의 진정한 후계자라 주장하면서 세력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이 중 아르세다인을 제외한 카르돌란, 루다우르에선 이실두르의 혈통이 끊겨버렸고 오직 아르세다인에만 계속 유지되었다.
이런 정세를 지켜본 나즈굴의 대장 마술사왕은 전성기를 구가하던 강성한 남왕국 곤도르와 달리 분열을 일삼아 약해진 북왕국이라면 충분히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북왕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북쪽으로 왔고 에튼무어 이북지역 카른 둠에 앙그마르 왕국을 세운뒤 사악한 인간과 오크, 트롤, 고블린, 와르그등을 끌어모았다.[2]
마술사왕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루다우르의 국왕[3] 을 매수해 동맹을 맺었고 카르돌란, 아르세다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아르노르 17대 국왕 아르겔레브 1세를 전투중에 살해하는데 성공한 앙그마르는 아르세다인과 카르돌란에 대한 공세에 박차를 가했다.
3시대 1409년 앙그마르 왕국에서 대군이 쏟아져나와 아르세다인과 카르돌란으로 쳐들어갔으며 아르노르 18대 국왕 아르벨레그 1세은 전사하고 팔란티르 신석이 있던 아몬 술 첨탑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카르돌란 또한 앙그마르 군에게 유린당했고 루다우르는 이즈음 앙그마르의 동맹국이 아니라 완전히 앙그마르의 수중에 떨어져 그나마 남아있던 두네다인들은 루다우르에서 완전히 달아나야만 했다 [4] .
이때 앙그마르는 북왕국을 완전히 멸망시킬뻔했으나 아르노르 국왕의 아들 아라포르가 회색항구의 조선공 키르단과 깊은골에 원군을 요청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3시대 1650년경에 아르노르 20대 국왕 아르겔레브 2세 재위시 에리아도르 남부 지역에 창궐한 역병으로 카르돌란이 멸망했으며 이제 앙그마르의 목표는 아르세다인 하나만 남게 되었다.[5]
3시대 1974년 다시 세력이 커진 앙그마르의 대공세에 아르노르 25대 국왕이자 최후의 국왕 아르베두이는 수도 포르노스트를 버리고 '쓰레기땅' 포로첼로 달아났다. 난쟁이들이 팠던 옛 굴 속에 숨어있던 아르베두이 일행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포로첼에 거주하던 설인[6] 롯소스 부족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아르베두이 일행에게는 도움을 받는 대가로 내줄만한 게 없었고 (보석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설인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었다), 설인들은 마술사왕을 두려워하여 처음에는 도움을 받지 못하다가 아르베두이 일행의 모습이 너무 수척한 점도 있고, 그들이 가진 무기가 무섭기도 해서 설인들이 집을 짓고 식량을 약간 나누어주었다. 아르베두이에게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남쪽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는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아르베두이의 아들인 아라나르스(Aranarth)는 키르단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키르단은 바로 배 한 척을 포로첼 만으로 보냈다. 오는 내내 역풍을 받아 시간이 오래 걸려서 키르단이 보낸 배가 도착했을 때는 겨우 얼음이 녹는 3월이었다. 설인들은 이런 배를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아르베두이 일행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배를 탈 수 있게 해안까지 수레에 태워 데려갔다. 그런데 이 때 롯소스 족의 족장이 위험을 감지한 듯이 '이 바다괴물에 올라타지 말라! 선원들에게 음식과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오게 하고 마술사왕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라. 여름에는 그의 힘이 약해지지만, 지금은 그의 숨결이 강력하고 그의 차가운 손길이 뻗어오니.'라고 충고를 했지만 아르베두이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배에 타면서 그 족장에게 '바라히르의 반지'를 주었다. 로소스 족장의 충고대로 배는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거대한 눈폭풍을 만나 얼어붙었고, 밤에 얼음이 배를 파손시키면서 그대로 침몰해버렸다. 이때 안누미나스와 아몬 술의 팔란티르도 같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7]
수백년에 걸친 공략끝에 아르노르를 완전히 멸망시켰지만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틈도 없이 회색항구, 깊은골, 곤도르 연합군의 반격에 직면했고 쓰러져가는 약소국 아르세다인과는 달리 강대국이었던 곤도르와 요정의 군세에 대패해 카른 둠까지 밀려났다.
거기서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은 증오에 차 곤도르 왕자 에아르누르에게 저주를 퍼부은 뒤 모르도르로 달아났고 앙그마르는 아르노르를 무너뜨린지 불과 1년만에 멸망했다. 그래도 사우론과 마술사왕은 이것을 굉장히 큰 성과로 여겼는데, 그들에게는 그동안 치른 구릉인이나 오크들의 희생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였지만 곤도르나 엘프들에게 북왕국이 무너진건 굉장히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후 앙그마르의 잔당들은 3시대 1977년 북쪽으로 이주해 온 에오세오드족(로한의 조상들)에게 씨가 말려 완전히 와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3. 기타
앙그마르와 북왕국의 전쟁시기에는 샤이어는 북왕국의 영토였고, 호빗들도 그 신민들이였기에 궁수부대를 파병했다. 다만 귀환하지 않았다는걸로 봐서는 전멸한듯.
앙그마르 자체가 어떤 체제를 가진 국가였는지는 잘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입지부터가 북쪽 산맥지역에 있는데다가 아르세다인이 없어지자마자 망한 걸 보면 전형적인 약탈경제로 먹고사는 막장국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나름 사우론의 본거지라서 안정적인 경제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던 모르도르와는 달리 앙그마르는 아르노르 파괴에 이용한 도구나 다름없었기에 딱히 제대로 된 체제를 성립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 곤도르는 하라드림, 움바르, 룬이라는 적들과 계속 전쟁을 벌였다.[2] 이 때가 대략 3시대 1300년경이었고 아르노르 16대 국왕 말베길 재위시에 벌어진 일이었다.[3] 진작에 이실두르의 혈통이 끊어진 루다우르는 사악한 언덕인 영주가 왕으로 즉위했다.[4] 루다우르에 남아 있던 언덕인들은 완전히 악의 존재로 전락했거나, 팽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5] 이 즈음 앙그마르는 회색항구와 깊은골의 군세에 눌려 잠시 위축된 상태였다.[6] 모르고스가 지배하던 시절의 추운 기후에 적응한 북부인 (Forodwaith)들의 후손. 눈으로 집을 짓고 살았으며 바퀴가 없는 수레를 끌었다고 한다. 적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포로첼 만에 모여 살았지만 때로는 남쪽의 산맥까지 내려와 야영지를 설치하기도 했다.[7] 바라히르의 반지는 훗날 두네다인이 돈을 내고 찾아오게 되어, 이실두르 가문의 반지는 화를 면하고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