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반 슬라이크
1. 개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전 야구선수. 1990년대 초반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배리 본즈, 바비 보니야, 제이 벨로 일명 킬러비 타선을 유명했을 때 이들과 함께 벅스의 타선을 이끌었던 선수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15홈런 이상의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파워와 두자릿수의 도루를 기대할 수 있는 주루능력을 갖춘 5툴 플레이어였으며, 20-20을 두차례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수비력도 준수하여 1988년부터 92년까지는 5년 연속으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하였다.
2. 선수시절
고등학생이던 뉴 햇포드 센트럴 하이스쿨 시절부터 이미 올 아메리칸으로 선정 될 정도로 주목받던 유망주였으며, 이러한 기대에 힘입어 197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6순위'''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받았다.
이후 1983년 데뷔하였고 1루, 3루 외야 등을 전전하며 플래툰으로 활동하다가 85년부터는 당시 카디널스의 감독이었던 화이티 허조그의 '화이티 볼'의 주요 선수로 활약하며 13홈런 34도루를 기록, 하위타선의 복병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주전으로 발돋움한지 얼마 안 가 1987년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 되었다.
피츠버그로 이적한 이후에는 벅스의 붙박이 주전 외야수로 도약, 이적 첫해 OPS .866을 기록하며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 88년에는 21홈런과 34도루를 기록하며 20-20클럽에 가입하는 동시에 올스타에 선정, 생애 첫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를 수상하고 MVP 투표에서 4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하였고, 이후에도 10개 중반의 홈런과 두자릿수의 도루를 기록하며 피츠버그의 중심타자로 활약, 킬러비 타선으로 유명한 배리 본즈, 바비 보니야,제이 벨과 함께 강타선을 구축하였다.
특히 이 시기 그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강견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85년부터 88년까지 매년 1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4년간 1위를 하기도 했는데, 특히 당시 벅스의 홈구장이었던 쓰리 리버스 스타디움에서는 그의 수비범위에 해당하는 지역을 그의 이름을 따 '슬라이크 존'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90년대에 들어서도 1990년부터 92년까지 3년 연속 내셔널리그
중부 지구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 특히 92년에는 리그 1위에 해당하는 199안타, 2루타 45개를 기록하고 생애 두번째 실버슬러거를 수상하였으나 이듬해인 1993년을 기점으로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여 1994년을 마지막으로 피츠버그를 떠나 볼티모어 오리올스,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전전하지만 여기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은퇴한다.
3. 은퇴 후
2006년부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1루 코치로 4년간 활동하였으며, 이후 2014년에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코치로 선임되었으나, 2015년 로빈슨 카노 등의 선수들과 불화로 시즌 후 로이드 맥클렌던 감독과 함께 해고당했는데, 이후 라디오에서 시애틀 구단과 카노를 디스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작가로 활동하며 야구 관련 서적들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4. 여담
슬하에 아들을 4명을 두었으며 그 중 3명이 모두 스포츠 선수로 활동하였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1] 특히 그의 아들 중 하나인 스캇 반 슬라이크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는데, [2] 아빠만큼의 재능은 없었는지 빅리그 통산 .242 29홈런에 그쳤고 이후 2018년에는 조쉬 린드블럼의 조언을 받아 KBO 리그의 두산 베어스에 지미 파레디스의 대체 용병으로 입단했으나 저조한 성적만 남긴 채 퇴출되었다.
은퇴 후인 200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단 한 표도 받지 못하고 탈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