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보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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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왼쪽에 있는 인물이 보니야다. 우측은 배리 본즈.
이름
바비 보니야(Roberto Martin Antonio "Bobby" Bonilla)
생년월일
1963년 2월 23일
국적
미국
출신지
뉴욕브롱스
포지션
3루수, 우익수
투타
우투양타
소속팀
시카고 화이트삭스(1986)
피츠버그 파이리츠(1986~1991)
뉴욕 메츠(1992~1995)
볼티모어 오리올스(1995~1996)
플로리다 말린스(1997~199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98)
뉴욕 메츠(1999)
애틀랜타 브레이브스(200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01)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color=#373a3c> '''1997'''
1. 소개
2. 선수 시절
2.1. 피츠버그 파이리츠
2.2. 뉴욕 메츠
2.3. 그 이후
3. 바비 보니야 데이
4. 여담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 피츠버그 시절 배리 본즈와 함께 일명 "Killer B"타선을 이루었던 것으로 유명하다.[1]국내 팬들에게는 1997년 월드 시리즈당시 플로리다 말린스의 우승멤버로 유명한 선수이다.

2. 선수 시절


고등학교를 졸업한 보니야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피츠버그에 입단한다. 피츠버그에 입단한지 얼마안가 보니야는 1985년 스프링캠프에서 팀 동료였던 빕 로버츠와 충돌해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이후 보니야는 1986년 오프시즌에 룰5 드래프트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으며 1986년 화이트삭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가졌다. 하지만 얼마 안가 시즌 도중 피츠버그가 화이트삭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보니야를 다시 데려오면서 보니야는 다시 피츠버그의 유니폼을 입는다.

2.1. 피츠버그 파이리츠


1987년부터 보니야는 피츠버그의 주전 3루수를 맡았지만, 그 후 2시즌 동안 무려 에러 '''67개'''(...)를 범하는 돌글러브가 되었고, 결국 보다못한 당시 감독 짐 릴랜드는 그를 우익수로 옮겼다.
하지만 타격 능력은 준수하여, 배리 본즈, 앤디 반 슬라이크[2]와 더불어 강타선을 구축했고, 팀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 연속 NL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보니야는 피츠버그에 몸담은 6년 동안 .284의 타율에 114홈런, 500타점을 기록했고, 1990년에는 장타 1위, 1991년에는 2루타 1위를 찍었으며, 1988~1991년 4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됐다.

2.2. 뉴욕 메츠


1991년 이후 FA가 된 보니야는 12월 2일 메츠와 5년 290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리그 최고 연봉 선수가 됐다. 그러나 메츠에서의 3년 반 동안 그의 타격 성적은 타율 .278, 91홈런, 277타점으로 기대 이하였고, 결국 1995년 7월 28일 트레이드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하게 된다.

2.3. 그 이후


보니야는 1996년 타율 .287, 28홈런 116타점을 올리며 볼티모어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을 도왔다. 이 해에 5년 계약이 만료된 그는 플로리다 말린스와 FA 계약을 체결, 짐 릴랜드와 해후하게 됐다. 계약 첫 해에는 17홈런 96타점에 그쳤지만 포스트시즌에서 준수한 타격성적으로 팀의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을 도왔다.
그러나 우승 직후 말린스의 파이어세일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어, 게리 셰필드, 찰스 존슨, 짐 아이젠라이히, 마누엘 바리오스와 함께 다저스로 트레이드됐다.[3]
다저스에서의 잔여 시즌은 타율 .237, 7홈런, 30타점에 그쳤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뉴욕 메츠 수뇌부는 보니야를 다시 데려올 생각을 했고, 1998년 11월, 멜 로하스[4]를 주고 보니야를 다시 데려왔다. 그러나 이듬해 보니야는 60경기에서 타율 .160, 4홈런 18타점에 그쳤다. 또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6차전에서는 클럽하우스에서 팀 동료 리키 헨더슨과 카드를 치기도 했다. 시리즈 전적 2-3으로 뒤지고 있어, 지면 바로 떨어지는 경기였는데도.
결국 메츠는 1년 만에 보니야를 방출했고, 2000년 애틀랜타와, 2001년 세인트루이스와 각각 1년 계약을 맺었는데 성적은 모두 형편없었다. 결국 2001년 시즌 종료 후, 출전시간 감소와 부상을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3. 바비 보니야 데이


1999년 뉴욕 메츠가 보니야를 재영입하고 1년 만에 방출할 때, 플로리다와 맺은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상태였으므로, 보니야의 잔여 연봉 59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메츠로서도 이를 한 번에 지불하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희대의 '''연금''' 계약이 탄생한다. 이른바 '이자 8%, 10년 거치 25년 상환 방식'으로 잔여연봉을 지급하게 된 것. 잔여 연봉 지급은 10년 뒤 2011년부터 2035년까지 25년 간 이루어지며 그 금액은 약 119만 달러(한화 약 13억 6천만 원)로, 매해 7월 1일에 지급한다. 단순합산하면 2980만 달러로 590만 달러가 복리 때문에 크게 늘었다.
이런 기상천외한 발상이 가능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보니야의 에이전트인 데니스 길버트가 생명보험 설계사 출신이었다는 점. 길버트는 마이너리그 생활을 잠깐 거치고 바로 보험회사에 취직했다가 에이전트로 전업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다른 에이전트보다 연금 제도에 빠삭했다. 보니야 역시 "구단에서 나를 방출하리란 걸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 또 이번 기회가 내가 목돈을 챙길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자식들의 미래까지 생각한다면, 남은 생애도 현역 선수처럼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보니야와 길버트는 590만 달러를 10년 거치 25년 상환 방식으로 달라고 메츠에 요구했다. 사실 길버트가 이런 제안을 한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1991년 보니야가 처음으로 메츠와 계약할 때도,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50만 달러를 '연금'으로써 받는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후에 메츠가 보니야를 볼티모어로 트레이드했으므로 이 연금은 볼티모어가 부담했다.
둘째는 당시 메츠 구단주 프레드 윌폰이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 버나드 메이도프(Bernard Madoff)에게 투자했다는 점. 매도프는 이른바 폰지 사기(고수익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끌어보은 다음,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의 원금으로 앞 사람 수익금을 지급하는 수법)를 친 양반이었는데, 이 사람이 윌폰에게 연 수익률 12~15%를 약속했던 것이다. 윌폰으로서는 보니야에게 상환 기간 동안 연 이자 8%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분할 지급이 더 이득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망했어요. 매도프는 윌폰, 스티븐 스필버그 등을 상대로도 총 180억 달러 규모의 사기를 친 죄로 2009년 미국 연방 법원에서 법정 최고형인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윌폰이 폰지사기 피해자처럼 보일 것인데, 윌폰은 가해자이다. 윌폰은 이게 폰지 사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초기에 뛰어들어서 자기 투자금 이상을 이자로 수령했다. 즉, 다단계로 치면 윌폰이 다이아몬드였던 것. 이 때문에 윌폰이 끌어들인 500명 이상의 피해자들이 총액 10억달러짜리 소송을 걸었고법원도 윌폰에게 일부 패소 판정을 내렸다. 2017년까지 뉴욕 메츠가 제대로 투자를 못하고 빌빌거린 본질적 원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에 프레드 윌폰과 그 아들 제프 윌폰에 대한 메이저리그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안 좋다.
자세한 내용은 동아일보 황규인 기자 칼럼 참조.
그렇게 매년 7월 1일 야구팬들은 매년 이 날을 바비 보니야 데이로 기념(?)한다.
이 항목을 보는 위키러들은 지구 반대편 남의 이야기 같겠지만, 당장 국민연금이 이 방식이며 할부 계약을 할 때도 당장 목돈은 안 들지만 이자가 붙기 때문에 잘 알아보고 하는 것이 좋다.

4. 여담


뉴욕 브롱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부인이 될 밀리 보니야를 처음 만났고 1980년 말에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었다. 그러나 2009년에 둘은 이혼하고 말았다.
자선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1992년 그의 전 부인과 함께 Bobby & Millie Bonilla Public School Fund를 창립했고, 메츠가 1득점을 올릴 때마다 500달러를 주위 공립학교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2014년에는 데이브 윈필드와 조 마우어가 주최한 자선 올스타 골프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1] 이후 "Killer B" 타선은 휴스턴 애스트로스크레이그 비지오 - 제프 배그웰 - 랜스 버크먼으로 다시 한번 재현한다. 국내에서는 휴스턴의 "Killer B" 타선이 더 유명하다.[2] 스캇 반 슬라이크의 아버지이다.[3] 이 때 받아온 선수들이 마이크 피아자와 토드 질. 그리고 피아자는 얼마 안 있어 뉴욕 메츠로 건너갔고, 그 이후는 잘 알다시피..[4] 2017시즌 kt wiz에서 뛰고 있는 멜 로하스 주니어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