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지카타 토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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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신센구미의 부장(副長)으로 잘 알려진 막부 말의 무신으로, 메이지 유신에 반발했던 인물이다. 신센구미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귀신 부장(鬼の副長)'''이라는 별명이 유명하다. 가끔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귀신 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원조가 바로 히지카타 토시조다. 휘는 요시토요(義豊), 아명은 도요타마(豊玉)다. 오키타 소지와 함께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신선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2. 생애
갑부였던 히지카타 하야토와 에츠 사이에서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토시조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토시조가 6살 때 결핵으로 죽었으며 큰 형 타메지로는 실명돼서 둘째 형 키로쿠와 부인에 의해서 자랐다. 소년 시절에는 답지 않게 거칠어서 '바라가키バラガキ(가시꼬마)'[1] 라고 불렸다. 그 후 친정에서 내려온 '이시다 산약(石田散薬)[2] 을 파는 행상인을 하며 각 지역의 도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 때 곤도 이사미와 만나 절친한 사이가 되며, 1859년에 천연이심류에 입문, 후에 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지 등과 함께 교토로 나와 신센구미가 발족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알겠지만 히지카타 토시조는 그 태생이 무사가 아녔으며 그저 시골 쫌 사는 집 아들내미 A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히지카타라는 성도 공식적인 것이 아닌 자칭이었으며 [3] 그가 무사로 취급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무사였던 콘도 이사미와의 친분과 신센구미 시절 보여준 놀라운 실력에 의함이었다. 이와 같이 히지카타 토시조는 무사는 아니었지만, 무사다운 삶이나 무사들의 기예(검술, 궁술이나 기마술)에는 어렸을 때부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젊은 시절 자신을 무사 가문이라고 속이고 각지를 떠돌며 도장에서 무사수행을 했을 정도였으며 [4] 그러다가 신분이 들키면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 다른 유파의 도장에서 배움을 이어가는 식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히지카타 토시조는 각 지역 각 유파에 많은 인맥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여러 무술을 넓고 얇게 배우게 되었으며 때문에 후에 입문한 천연이심류의 실력은 그저 그랬지만 실전에서는 엄청나게 강했다고 전해진다. 정교한 검술보다는 말 그대로 필요한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변칙적인 공세에 능한 아류 고수라고 할 수 있겠다.
신센구미를 세운 뒤 니이미 니시키를 할복시키고 초대 국장이었던 세리자와 카모 등을 직접 암살했다. 그리고 부장 자리에 올라 치안 유지에 힘을 썼다. 감찰이나 조근 등 직무 별로 조직이 만들어졌다. 국장은 콘도 이사미지만 실제 지휘명령은 부장인 토시조가 하였다.
1864년 6월 5일 이케다야 사건에서 시코쿠야 방면을 살피다 아무도 없어 곧 이케다야로 응원하러 갔다. 그리고 돌입하지 않고 다른 아이즈 번 등이 늦게 나와 신센구미의 공을 먹으려 하는 걸 입장이 약했던 신센구미를 지키기 위해 막았다. 후에 이케다야 사건으로 신센구미가 알려지게 된다. 나중에 콘도를 암살하려던 이토 카시타로를 사이토 하지메를 보내서 막고 토도 헤이스케도 암살하였다. 총장인 야마나미 케이스케도 탈주하자 할복시켰는데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졌으나 친했다는 설도 있다.
국중법도(局中法度)를 고안하고 법을 어기면 동료도 서슴지 않고 베어 냉혹한 이미지로 악명 높았는데, 신센구미 내부에서는 언제나 신센구미의 규율을 대원들에게 엄수하도록 하여, 규율을 깬 대원에 대해서는 할복을 명하였고 대원으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로 인해 신센구미 대원 사망원인 1위는 할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는 온화한 성격이었다고 하는데, 나이를 먹은 탓인지 사기를 올리기 위한 계산상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확실히 엄격한 사람이었다는 점은 틀림없으나 국중법도는 후세의 창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1867년 6월에 도쿠가와 요시노부에 의해 대정봉환이 일어나고 막부가 무너지자 부상을 당한 콘도 대신에 신센구미를 이끌고 전투에 나갔지만 대패하고 서양식 군비의 필요성을 깨달아 서양식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4월 3일 콘도가 투항했을 때 투항을 권유했다고 한 설도 있고 끝까지 반대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콘도의 구명을 탄원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콘도는 참수되고 효수되고 만다.
에도의 천연이심류 시위관 도장시절부터 교토의 신센구미, 도바-후시미 전투부터 일본을 거슬러 혼슈 북단 하코다테 전투까지 신센구미를 지켰다. 그리고 1869년 5월 11일(음력), 신정부군의 하코타테 총공격이 시작되어 토시조는 농성전을 싫어하여 적은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였다. 신정부군함 '아사히'가 군함에 의해서 격침당하는 것을 보고 패배당하는 동료들을 이끌고 진군시켜 "'''우리들의 법도에 따라 도망가는 자는 벤다!'''"라고 외쳤다. 난전 중에 총탄이 복부를 관통하여 낙마, 측근이 급히 다가왔을 때는 벌써 절명했다고 전해진다. 적의 총탄이 아닌 쏟아지는 탄에 맞았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항복에 완강히 반대하는 토시조를 제거하기 위해 아군의 손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설도 있다. 결국 히지카타 토시조의 죽음으로 나가쿠라 신파치와 사이토 하지메를 제외한 신센구미의 모든 주요 인물이 사망하게 되었다. 사실상 신센구미의 처음과 끝을 지킨 인물이자, 하코다테를 대표할 만한 인물 중 하나. 심지어 준 마스코트 중 하나로도 등장한다.
시동으로 이치무라 테츠노스케를 두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채용한 작품이 소설 타올라라 검과 만화 피스메이커 쿠로가네. 이치무라는 1873년에 병사했다고 전해진다.
여자를 좋아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흰 피부에 키도 커서 수많은 여자들에게 러브레터도 받았다고 한다. 취미로는 호교쿠라는 아호를 사용해 시를 지었는데 자신이 직접 지은 시를 엮어서 책으로 가지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 중 유명한 건 '알면 망설이고 알지 못하면 헤매지 않는 사랑의 길(しれば迷い しらねば迷わぬ 恋の道)'.
히지카타 토시조의 사세구는 '설사 이 몸이 북쪽 에조(蝦夷:홋카이도)섬 땅끝에서 썩을지라도, 내 혼만은 저 동쪽의 주군을 지키리.(たとひ身は 蝦夷の島根に 朽ちるとも 魂は東の 君やまもらん)'
하코다테 고료카쿠 타워에는 히지카타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서양 병법에 관심을 가져 하코다테 전투 즈음해서는 하카마보다 움직이기 편한 서양식 군복을 즐겨 입었고, 전투에 서양식 진법을 일부 도입하기도 하는 등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인물이었다.
여담으로 막부군과 오우에츠 열번 동맹의 군사 고문을 담당하고, 에조까지 올라가 막부군의 손을 끝까지 잡아 주었던 프랑스군 교관 쥘 브뤼네(Jules Brunet)[5] 는 "그가 유럽에 갔으면 장군이 되었을 것"이라 평하기도 하였다.
3. 기타
시바 료타로의 신선조를 다룬 대하소설 '타올라라 검'은 이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애도(愛刀)는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和泉守兼定)와 호리카와 쿠니히로(堀川国広).[6]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의 경우는 히지카타 토시조 자료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지만, 호리카와 쿠니히로는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검술 실력은 행상으로 배운 버릇과 천연이심류가 섞여있었지만 최전선에서 싸워도 당하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굉장한 실력이었다고 보인다. '무술영명록'에도 게재되어 있다.
사카모토 료마,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일본인이 좋아하는 역사인물 리스트에 단골로 오르는 인물. 2006년 JST에서 방영했던 '1억 312a4c6천만이 선택한 일본인이 좋아하는 위인 베스트 100'에서는 쟁쟁한 위인들을 제치고 10위에 랭크인 했으며,[7] 2016년 NHK에서 방영중인 프로그램 역사비화 히스토리아에서 조사한 '역사 속에서 좋아하는 인물 베스트5'에선 오다 노부나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참고기사)
친척인 하시모토가가 담근 단무지를 매우 좋아해서 나무통에 가득 담아서 가져왔다는 일화가 있는데 창작물 대다수에 등장하는 히지카타 토시조를 보면 단무지가 빠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창작물의 모 인물 탓에 정작 본인의 무덤에는 마요네즈를 공양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모양...당연하지만 여러모로 민폐이니 따라하지는 말자.
만화가 아라키 히로히코와 닮은 탓인지, 아라키가 파문전사라는 설의 증거로 언급되곤 한다.
일본 게임에 등장시 한글 번역기를 돌리면 이름이 막노동자로 번역되어 나온다. 성씨가 土方이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의 걸그룹인 NMB48 출신 가수 야마모토 사야카가 제일 좋아하는 역사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라고 한다.
4. 창작물 속 히지카타 토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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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 가장 유명한 히지카타 토시조는 역시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의 야마모토 코지다. 실제 히지카타라도 된듯한 연기력으로 곤도 이사미를 뛰어넘는 진 주인공급의 존재감을 보인다. 곤도 이사미와의 사이가 매우 돈독하며 이사미를 상관으로 모시고 철저히 충성을 다하려고 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자세한 것은 히지카타 토시조(신센구미!) 항목 참조.
- 운계미궁 제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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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 운계미궁 제가이(1992/한국 비디오 제목은 성전사)에선 주인공으로 등극한다. 구름 속에 있는 이세계(죽은 사람들 중 유명한 인물들은 여기로 환생하는 듯)에서 버젓이 살아서 그 세계를 지배하려는 히미코 여왕 및 제갈량,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싸운다. 동료가 한명 있는데 히라가 겐나이다. 결국 히미코의 음모를 깨뜨리고 악당들을 물리친 후 현세에 부활애서 여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에 전학생으로 온다는 전형적인 보이 미츠 걸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우리말 더빙에선 이름은 토머스 브라운이다. 성우는 홍시호.
하코다테 전쟁에서 사망하지 않고 살아서 정치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탈옥했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시대 배경인 1905년에는 무려 일흔이라는 상당한 고령이라 신선수염이 특징. 하지만 서양군복에 코트라는 특유의 패션센스는 건재한 데다가, 무시무시한 검술로 적들을 두부 자르듯이 베어 버린다. 히지카타 토시조(골든 카무이) 항목 참조.
일본 요리 만화 신장개업의 주인공 키타가타 토시조의 모티브이다. 전에 운영하던 요리집 이름이 '오릉곽정(고료가쿠테이)'이다. 참고로 이 작품은 신선조 깃발을 내걸고 요리계의 유신을 하지는 황당한 장면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최후 직전 하코다테 전투에 난입한 무츠원명류 계승자 무츠 이즈미에게 패배 후 전장에서 죽는 것을 선택,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수 많은 정부군에게 돌격해 사망하게 된다.
히지카타 토시로의 모티브가 바로 이 사람. 별명이 귀신 부장인 것까지 같다.
시노모리 아오시의 모티브가 바로 히지카타 토시조라고 한다. 바람의 검심 애장판 검심재필의 표지 안쪽에 그려진 설정을 보면 시노모리 아오시에 머리만 길게 묶었는데 눈이 더 가늘고 날카롭게 그려져 있다. 곤도 이사미 외의 다른 대원들이 자신에게 친근하게 달라붙는 것이 짜증난다는 설정이었다. 정작 곤도 이사미는 신입대원들과 친해지고 싶은데 대원들이 자신을 어렵게 생각해서 고민이었다고. 북해도편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8] 사진(본 항목 맨 위에 있는 바로 그 사진)을 본 켄신이 회상하면서 말하길 검법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싸움 자체에 능하여 발도재 시절에 가장 고전한 상대였다고 한다. 부족한 검술을 메꾸는 허를 찌르는 전법에 능하였던 것 같다.
- 막부 풍운록
히지카타 토시조를 주인공으로 했다. 다만 실제와의 차이 다소 간의 미화는 있으나 토시조란 인물의 특성, '키가 크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설정이라던지 서구의 방식을 절충적으로 도입한 등 개방적 측면도 잘 드러나 있다.
- 御法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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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영화. 기타노 타케시가 히지카타 역을 맡았다.
신센구미의 사카모토 료마 체포와 하코다테 전투 당시의 히지카타 토시조가 등장한다.
일본판에서는 신센구미 씨앗에서 '부장 토시로'로 등장한다.
- 사무라이의 길 4
신센구미 DLC 시루베의 서브 퀘스트 중 두번째 암살대상으로 등장. 문서 상단의 사진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에 약상자를 짊어지고 있다. 대화를 통해 512a4c6문에 이시다 산약을 최대 3회까지 구입할 수 있으며(돈을 먼저 받고 약을 던져주기 때문에 떼먹기는 불가능) 전투 돌입시 Tokyu fighting style[9] 을 마스터 급으로 익히고 있으며 구입하지 않은 약을 먹어가며 활력이나 체력이 0이 될 때마다 풀회복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어려운 강자. 곤도보다는 덜하지만 상단 6연속 공격(6-way slash)의 데미지가 준즉사급이고, 위력500의 검으로도 한참 패야 죽을 만큼 맷집도 세다. 만약 약을 구입하지 않았다면 이녀석을 죽어라 패다가 검이 먼저 부러질 수도 있다. 쓰러뜨리면 자기가 쓰던 검 이즈미노카미를 드랍하며, 코테츠보다는 조금 더 위력이 높다. 또, 그가 입던 복장과 헤어 스타일, 얼굴을 언락할 수 있게 된다.
특별편인 26화 내 극중극 아이돌 마스터 신센구미 걸즈에서는 시부야 린이 분했다.
여성향 모바일 게임 러브 인 교토에서 이 인물을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가 등장인물이자 공략 캐릭터로 등장했다.
-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에 등장한다.
[1] 가시가 돋친 것 같은 악동이란 의미. 은혼에서는 가시아귀라고 번역되었다. 어원은 茨のような乱暴なガキ(이바라노 요우나 람보나 가키)를 줄여 바라가키.[2] 훗날 이 이시다 산약이 효과가 있는지 약사과에서 분석을 해본 결과 활용할 곳이 없고 무능하며 효과가 전혀 없는 약이나 믿는 사람에게는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말하자면 약팔이용 엉터리 약이라는 것이 드러났다.[3] 에도 시대 평민들은 성을 가지지 못하고 공식적으로는 이름만으로 불렸다. 그러나 특히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그것만으로는 헷갈릴 일이 많았기 때문에 평민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성을 몰래 만들어 자칭하는 경우가 있었는데(隠し姓), 히지카타라는 성이 바로 그러하다.[4] 히지카타 토시조가 본래 농민이며 신센구미 결성이라는 우연이 없었다면 영영 임관은커녕 기껏 배운 무술을 뽐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젊은 시절을 이런 식으로 보냈다는 것은 특이하다 못해 기묘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에도 시대 말기에는 부농이나 상인들 자제를 중심으로 평민이 호신을 겸한 취미로서 무술을 배우는 경우가 늘었지만 깊게 배운다고 해도 임관이나 취직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천재 수준으로 재능이 뛰어날 경우에는 무사 가문에 양자로 들어가 출세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콘도 이사미나 치바 슈사쿠의 스승이자 장인어른이었던 아사리 요시노부가 바로 그러한 경우다.) 그저 취미생활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도장에서도 무사 가문이 아니면 비전을 가르쳐주지 않거나 일정 이상의 단수는 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히지카타 토시조처럼 죽기 살기로 파는 것은 정말로 희귀한 케이스다.[5]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 등장하는 네이선 알그렌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6] 위의 사진에서 차고 있는 검이 호리카와 쿠니히로이다.[7] 곤도 이사미는 41위, 오키타 소지는 53위에 랭크되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이쪽으로.[8] 골든 카무이에서 토시조가 먼저 등장하자 편집부에서 스토리 변경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9] 유파 명인데 이 유파, 얻는 것 자체는 도장에서 쉽게 얻을 수 있으나 경험치를 도장에서 도전자를 받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어서 마스터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