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알크스니스
Яков Иванович Алкснис (1897~1938)
소비에트 연방의 군인.
1926년부터 1937년까지 11년간 소련 공군 사령관과 항공방어 인민위원을 역임한 라트비아 출신 장성으로, 1919년 붉은 군대에 입대하여 러시아 내전에서 참모장교를 지낸 후 1924년에 RKKA를 졸업한 그는 공군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처럼 알크니스 장군은 원래는 육군 출신이었으나 자신의 직무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에도 열심인 학구파 장교이기도 해서 1926년에 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34세의 뒤늦은 나이에 비행사 자격증을 따내기도 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그는 근대 항공전의 본질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져서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지성적인 지휘관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개전되기 전인 1937년에 이오시프 스탈린으로부터 '라트비아 파시스트 조직'을 결성했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숙청되었다. 그의 성격은 타인이나 부하들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엄격했기 때문에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정적을 만들 소지가 있었다.
알크니스는 죽기 전에 소련 공군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공수부대의 창설을 적극 지지하여 세계 최초의 공수부대를 창설했으며 일류신 I-21을 비롯한 여러 신예기의 개발을 추진했고,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동안 투폴레프나 페트리아코프 등의 많은 항공기 설계자들이 투옥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강제노동 설계국인 샤라쉬카(шара́шка)를 만들어 그들의 목숨을 구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은 훗날 소련 공군에서 활약한 여러 군용기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다. 알크니스는 죽은지 30년도 더 지나 스탈린 사후에서야 복권 조치가 이루어졌다.
소비에트 연방의 군인.
1926년부터 1937년까지 11년간 소련 공군 사령관과 항공방어 인민위원을 역임한 라트비아 출신 장성으로, 1919년 붉은 군대에 입대하여 러시아 내전에서 참모장교를 지낸 후 1924년에 RKKA를 졸업한 그는 공군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처럼 알크니스 장군은 원래는 육군 출신이었으나 자신의 직무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에도 열심인 학구파 장교이기도 해서 1926년에 사령관으로 임명된 후 34세의 뒤늦은 나이에 비행사 자격증을 따내기도 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그는 근대 항공전의 본질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져서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지성적인 지휘관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개전되기 전인 1937년에 이오시프 스탈린으로부터 '라트비아 파시스트 조직'을 결성했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숙청되었다. 그의 성격은 타인이나 부하들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엄격했기 때문에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정적을 만들 소지가 있었다.
알크니스는 죽기 전에 소련 공군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공수부대의 창설을 적극 지지하여 세계 최초의 공수부대를 창설했으며 일류신 I-21을 비롯한 여러 신예기의 개발을 추진했고,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동안 투폴레프나 페트리아코프 등의 많은 항공기 설계자들이 투옥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강제노동 설계국인 샤라쉬카(шара́шка)를 만들어 그들의 목숨을 구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들은 훗날 소련 공군에서 활약한 여러 군용기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다. 알크니스는 죽은지 30년도 더 지나 스탈린 사후에서야 복권 조치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