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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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구군은 1읍 4면(미수복 1면 제외)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읍 지역
2.1. 양구읍
3. 면 지역
3.1. 국토정중앙면
3.2. 동면
3.3. 방산면
3.4. 해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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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사진에서 보이는대로 면 일원이 사발 모양의 침식분지 지형으로 되어 있어서 펀치 볼(punch bowl)[2]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한국전쟁 때 격전지 중 하나였다. 수능에서 한국지리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침식분지란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여기가 떠오른다. 교통편이 정말 열악하니[3] 자가용 끌고 가지 않는다면 각오하고 가자. 원래부터 양구군 땅이었으나 1954년~1973년까지는 인제군 관할이었던 적도 있다.[4] 지금은 해제되었지만 한때 민통선 이북 지역이기도 했다. 여담으로 양구군의 다른 읍면과 달리 북한강 본류 유역이 아닌 소양강 유역이다.
또한 분지의 특성상 사방이 죄다 산들이지만, 이곳은 특히 동그란 평지라서 위성 사진으로 보면 굉장히 눈에 잘 띈다. 어두운 산지 한가운데에 밝은 동그란 농지가 모여 있어서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군사지역이라 국내법을 적용받는 사이트에서의 위성사진은 모자이크나 삭제 처리돼 있고 구글맵이나 구글어스에서 보면 휴전선 부근에서 아주 쉽게 찾을수 있다. 한 때 '해안 분지는 운석이 충돌해서 생긴 크레이터 지형이다'라는 주장이 등장해서 화제가 되었으나, 다른 학자들의 반론에 묻혔다.
양구군부터가 상당히 춥지만 해안면은 해발 450m가량의 고도탓에 군 내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이다. 연평균기온이 7.6도로 대관령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겨울에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 강수량도 많은편이다.
이름만 보아서는 해안 - 즉, '''바닷가(海岸)'''를 뜻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亥安"'''이다. 한자가 다를뿐만 아니라 양구는 '''내륙지역'''이다. 과거 뱀이 너무 많아 뱀의 천적인 돼지를 집집마다 풀어놓고 뱀을 쫓아내서 돼지 해(亥)자에 편안할 안(安)자를 지역 이름에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몇몇 언론에서 '''해안읍'''으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정작 인구는 1,300명 가량으로 읍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인구이다.
또한 한국전쟁 때 이 분지로 진출하기 위한 피의 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도솔산 전투 그리고 분지 북쪽 능선을 두고 펀치볼 전투, 가칠봉 전투 같은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고, 북쪽 능선을 가까스로 차지한 채 휴전을 맞이함으로서 분지 전역이 우리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해안면의 원주민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며, 후술할 분지 개간작업이 GOP가 위치한 북쪽 능선 바로 밑까지 이루어져 민가와 휴전선 간 거리가 서해 5도처럼 가깝다.
또한 지금의 주민들은 이후 1960년대 태풍과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한 흉년과 폭발적 인구증가가 겹쳐 경상북도 울진군 등에서 각 전방지역으로 이주해온 사람과 군인 관계자들이 많은데, 이 당시 정부는 개인별로 담요와 군용천막을 지원한 게 전부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과 자주 부대끼는 인근 군부대에서 이주민들을 조금씩 도와줬는데, 병사들을 상대로 술을 팔게 해주거나[5] 개간 과정에서 나온 고철(한국전에서 버려진 군수물자 등)을 아낙내들이 보자기에 말아 지고 화천이나 춘천 등지로 나가 팔려고 하면 군 검문소에서 그냥 보내주었다. 또한 격전지답게 사방에 지뢰와 불발탄이 가득했기에 개간작업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당시 이주민들은 농사철에는 지뢰나 불발탄에 부상당한 이웃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게 일이라고 증언했다. 하여간 해안면은 수십년을 걸쳐 점차 옥토로 되돌아왔으나, 90년대 이후 타지로 떠났던 원주민들이 나타나 토지소유확인소송을 걸고 이주민들이 패소하는 등 우여곡절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해안면은 현재 국내에서 제일가는 고랭지 농업지역으로 거듭났으며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양구군 해안면의 이주사는 양구군지와 강원도민일보 함광복 기자의 저서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에 잘 적혀있다.
강원도 전방 지역인데다 상술했듯 경북 울진 이주민들이 많은 지역이라 전형적인 보수적인 동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젊은 군 간부들 때문이지 주민들의 표심인지 의외로 민주당계 정당 쪽에 표를 많이 주는 동네다. 그러니까 대선, 총선 등 전국 단위 선거가 치러지면 민주당 표 비율이 높은 지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표가 이회창 후보보다 표가 더 많았고 강원도 내 읍면동 중에서 노무현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17대 대선 당시 정동영 후보가 1위를 차지한 강원도 유일한 지역이 바로 여기.[6]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 강원도지사 투표에서도 최문순 지사가 이 곳에서 무려 62%의 표를 얻었으며 2017년 19대 대선 때도 역시 문재인 후보가 34.8%를 기록하여, 27.8%에 그친 홍준표 후보를 제쳤다. 다만 문재인의 최고 득표율은 이 지역이 1위가 아닌, 원주 혁신도시인 반곡관설동에서 나왔다.
4. 미수복지역
4.1. 수입면
- 관할 리 : 점방(占方), 근(芹), 대정(大井), 두포(杜浦), 문등(文登), 백현(栢峴), 분지수(分池水), 송거(松巨), 수청(水靑), 암(巖), 오천(烏川), 인패(印佩), 지경(地境), 지혜(智惠), 천(泉), 청송(靑松)
문등리는 아직도 마을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는데, 마을 이름의 유래가 문둥이촌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문등리 형석광산으로 유명했는데, 일제는 형석을 채굴하여 폭약의 원료로 사용했다. 일제 패망 후 방치된 형석더미는 소련군이 실어가고 북괴군이 실어갔음에도 일제가 남긴 형석더미는 1970년대까지 남아있었다. 정부 허가하에 누군가가 남은 형석더미를 반출하자 북괴는 항의하였다(함광복, 2002).
[1] 이 지도에서 화천군 북쪽에 있는 군은 원래 철원군이 아니고 김화군이나, 현재 남한에서 1963년 1월 1일 이래로 군사분계선 이남의 김화군 구역이 철원군에 편입되어 있어 이를 반영해 철원군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2] 음료의 일종인 '펀치'를 담는 사발이라는 뜻. 보통은 현지화해서 '화채그릇'이라고 해석하곤 한다. 6.25때 미군들이 붙인 별명인데 아직도 지뢰들이 많이 묻혀 있어서 함부로 들어가면 위험하다.[3] 농어촌버스는 양구읍에서 하루 4번('''이마저도 돌산령터널이 개통하기 전에는 하루 3번이었다!'''), 원통에서 하루 1번 다니고, 시외버스는 동서울에서 하루 1번 다닌다.[4] 양구가 21사단 관할인데 여기만 12사단 관할인 게 한 몫 한 듯. 또한 물길도 인제군 쪽으로 흐른다.[5] 물론 불법이었고 술을 마시다 걸린 병력은 어김없이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도 술장사에 대한 단속은 안하는 식.[6] 물론 2007년 정동영 후보가 대선 출마 전 DMZ 일대를 돌아보기 위해 해안면을 방문한 영향도 크다.[7] 해당 지역은 방산면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