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군

 



'''김화군
金化郡 / Kimhwa County'''
국가
북한
면적
770.5km²[1]
광역시도
강원도
행정구역
1읍 1로동자구 13리[2]
시간대
UTC+9

1. 소개
3. 대한민국과 북한 김화군
4. 행정구역
5.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5.1. 구 김화군 지역
5.2. 구 금성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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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강원도(6.25 전쟁 이전)와 강원도(북한)의 행정구역이자 남한 강원도에도 1962년까지 존재했던 행정구역. 8.15 광복 당시에는 군(郡)으로 존재했으며 동쪽에는 화천군·양구군·회양군, 서쪽에는 철원군·평강군, 남쪽에는 화천군·경기도 포천군, 북쪽에는 회양군이 위치했다.
그러나 38선이 그어지면서 전지역이 북한으로 들어갔고, 철원군, 평강군과 함께 북한이 남침을 위한 전쟁 준비를 하는 '''철의 삼각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6.25 전쟁 당시 한 치의 땅이라도 서로 빼앗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였으며, 한때 남한이 점령했지만 금성 전투로 북한으로 넘어간채로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남북으로 갈라졌다.
남쪽에서는 김화읍을 수복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히 수복한 읍면이 김화읍, 서면, 근남면의 3개면밖에 없었고[3], 1963년 1월 1일자로 서쪽에 위치한 철원군에 병합되어 대한민국이 실효지배하는 김화군은 (사실상) 폐지되었다.[4] 철원군 병합 이후의 역사는 철원군 문서 참조.
한편 북한의 김화군은 몇몇 행정구역 조정을 거친 후 김화군과 창도군으로 되었다. 창도라는 지명은 김화군 창도면에서 따온 것이나 몇 번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래의 창도면과는 관계없는 지역이 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창도군 항목 참조.
원래 철원과 다른 지역이었다는 역사적 특징 때문에 같은 철원(…)이라도 김화권 사람들은 철원·동송·갈말권 사람들과 정서가 확연히 다르며, 철원의 경기도 편입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가끔씩 김화군 복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나, 2011년 현재는 정부에서 인구가 적은 시·군을 통합하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김화군 복원은 어려워 보인다. 다만 김화군이 단번에 복원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된다'''.[5] 참 쉽죠?
간혹 '금화'라고 읽는 경우가 보이는데, 현재 통용되는 명칭 상 김화가 맞다. 그러나 정전협정문 지도상에도 금화로 적혀있으며, 과거의 공식 명칭은 '금화'였다. 과거 1950년대까지는 금화라고 읽는 경우가 훨씬 우세했던 것으로 보인다.[6] 현재도 김화 지역 내에서도 '금화프라자'같이 금화라고 읽는 상호명이 있으며, 금화라고 읽는 사람들도 많다.

2. 김화군/역사


해당 문서 참조.

3. 대한민국과 북한 김화군


  • 남한지역 면적 : 490.71㎢
  • 남한지역 인구 : 12,055명
  • 북한지역 면적 : 1068.05㎢
대한민국의 이북5도위원회 기준에 의하면 모두 김화군으로 본다. 그러나 현재 남한에는 김화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가 수복되어 철원군으로 편입된 면의 휴전선 이북 지역을 어느 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릴지 지도마다 다르다. 아예 철원군과 김화군의 휴전선 이북까지 전부 포괄해서 '철원군' 으로 표시한 지도도 존재한다. 그리고 현재 남한의 김화 지역은 생활권이 경기 북부에 가깝고 북한의 김화권은 평강군과 교류가 많아져 북한에서는 2001년 행정 개편을 통해 1914년 이전의 북측 김화군을 평강군에 합쳐버렸다.[7]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된다면 남한의 철원군 중 구 김화군 영역과 북한의 김화군 영역을 합쳐 김화군이 복군될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1963년 제정된 김화군 폐지의 근거 법명이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이기 때문. 그러나 생활권이 변했기 때문에 지금 남북에서 각자 사용하는 경계대로 조선시대의 구 김화군지역이 (남)철원군평강군으로 갈라지고 북한의 김화군이 조선시대 명칭대로 '''금성군'''으로 개칭되어 김화군이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김화군이 사라지고 금성군이 부활된다면, 구 김화군 시절의 지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철원군 서면, 근북면, 근남면이 이름과 달리 철원군의 동쪽 끝이 되므로 개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남한의 구 김화군 지역 주민들이 통일이 되면 김화군으로 돌아가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어찌 될 지 모른다. 이 경우 남측 김화군을 복군시키고, 북측 김화군 지역에 김화군 금성출장소를 만들 수도 있다. 한편 이렇게 되면 김화군청 본청은 김화읍소재지인 학사리나 사실상의 중심가인 와수리에 입지할 가능성이 크다.

4. 행정구역


총 1읍, 1로동자구, 13리로 구성되어 있다.
  • 읍: 김화읍(구 금성면)
  • 로동자구: 학방로동자구
  • 리: 구봉리, 당현리, 룡현리, 법수리, 상판리, 신창리, 신풍리, 어호리, 원남리, 원동리, 원북리, 창도리, 초서리

5.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image]
군기
'''김화군'''
金化郡
Kimhwa County
}}}
<colbgcolor=#008c44><colcolor=#ffffff> '''군청 소재지'''
김화읍 읍내리
'''광역자치단체'''
강원도
'''하위 행정구역'''
1 11 96
'''면적'''
1558.7㎢
'''인구'''
108,133명[8]
'''인구밀도'''
69.37명/㎢
'''명예읍·면장'''
12석
'''홈페이지'''
이북5도위원회 김화군 소개
범례
전 지역 수복(★)
일부 지역 수복(☆)
김화권은 한탄강(임진강), 금성권은 북한강 유역으로 수계가 다르다. 다만 한탄강의 지류인 화강은 청양리에서 90도 우회전, 도창리-정연리에서 90도 좌회전을 해서 동송에서 다시 90도 좌회전을 통해 남쪽으로 흘러가는 반면, 한탄강과 북한강(금성천)의 분수령의 높이는 320미터 정도인데다 43번 국도의 신철원-김화 구간처럼 산 사이의 좁은 계곡 형태가 아닌 구릉지 형태이다.[9]

5.1. 구 김화군 지역


  • 김화읍(金化邑)★
    • 관할 리 : 학사(鶴沙), 감봉(甘鳳), 도창(道昌), 생창(生昌), 암정(巖井), 용양(龍楊), 운장(雲長), 읍내(邑內), 청양(淸陽)
    • 원래 읍사무소와 군청이 읍내리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시가지가 파괴돼 사라지는 바람에 전후 읍사무소를 학사리로 이전했다. 감봉리·암정리·용양리·운장리·읍내리는 민통선 내에 있는 관계로 1973년 7월 1일 서면 도창리·청양리를 편입했다. 1941년 10월 1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일부만 수복된 근동면·근북면의 행정업무를 대행한다.
  • 근남면(近南面)★
    • 관할 리 : 육단(六丹), 마현(馬峴), 사곡(沙谷), 양지(陽地), 잠곡(蠶谷), 풍암(豊巖)
    • 원래 면사무소는 사곡리에 있었으나 전후 육단리로 이전했다. 일부만 수복된 원남면·원동면·임남면의 행정업무를 대행한다.
  • 근동면(近東面)☆
    • 관할 리 : 교전(橋田), 광삼(光三), 방통(芳通), 수태(水泰), 아침(牙沈), 하소(下所)
    • 광삼리와 방통리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광삼리에 승리전망대가 있다. 옛 금강산선 광삼역과 하소역 사이로 현재 휴전선이 지난다.
  • 근북면(近北面)☆
    • 관할 리 : 두촌(斗村), 건천(乾川), 금곡(金谷), 백덕(柏德), 산현(山峴), 성암(城巖), 유곡(楡谷), 율목(栗木)
    • 금곡리·백덕리·유곡리·율목리가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이 중 유곡리에 주민이 거주하지만 민통선 내에 있는지라 통행이 자유롭지 않다. 남북분단 이전에는 김화와 평강을 잇는 길목이었다.
  • 서면(西面)★
    • 관할 리 : 자등(自等), 와수(瓦水)
    • 과거 면소재지는 현재 김화읍인 청양리였다. 현재 면소재지인 자등리는 통칭 '신술리' 혹은 '신수리'라고 불린다.[10] 와수리는 자등리보다 더 큰 마을이며 면사무소 출장소가 있다. 와수리는 수복된 김화군 지역의 실질적 중심지로 여러 상점과 도서관, 고등학교 등이 있다. 1973년 7월 1일 도창리·청양리가 김화읍으로 편입되어 면적이 줄었다.

5.2. 구 금성군 지역


  • 금성면(金城面)
    • 관할 리 : 방충(芳忠), 경파(慶坡), 매회(梅檜), 별양(別陽), 상(上), 어천(漁川), 초서(初西), 탑거(塔距), 후천(後天)
    • 1917년에 군내면(郡內面)에서 개칭되었다. 현재 북한의 김화읍이다.
  • 원남면(遠南面)☆
    • 관할 리 : 개야(開野), 경상(慶祥), 구룡(九龍), 남둔(南屯), 노동(蘆洞), 백양(白楊), 월봉(月峰), 주파(注波), 죽대(竹垈), 진현(榛峴), 풍동(楓洞)
    • 노동리·주파리·죽대리·진현리·남둔리가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 원동면(遠東面)☆
    • 관할 리 : 장연(長淵), 등대(登大), 방평(芳坪), 세현(細峴), 송실(松室), 용연(龍淵), 율사(栗沙)
    • 등대리와 세현리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 원북면(遠北面)
    • 관할 리 : 추의(鄒儀), 감천(甘泉), 고대(高垈), 고직(古直), 당현(堂峴), 법수원(法首院), 탄감(炭甘)
  • 임남면(任南面)☆
    • 관할 리 : 사천(泗川), 과호(科湖), 노남(魯南), 달전(達田), 두목(杜木), 면천(綿川), 봉잔(烽棧), 상판(上板), 수동(水洞), 어운(漁雲), 좌패(佐佩)
    • 유일하게 수동리의 남쪽 절반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금강산댐(북한명 임남댐)이 바로 이 곳(달전리)에 있으며, 이에 면소재지를 비롯한 주요지역이 수몰되었다.
  • 창도면(昌道面)
    • 관할 리 : 창도(昌道), 기성(岐城), 도성(桃城), 득사(得寺), 방성(芳城), 성현(城峴), 유창(楡昌), 태백(太白), 학방(鶴芳), 회현(灰峴)
    • 1914년에 기성면(岐城面)과 오산면(梧山面)이 합병되어 기오면(岐梧面)이 되었고, 1939년에 개칭되었다. 면소재지를 비롯해서 주요지역이 금강산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이름대로 북한 창도군의 첫 소재지였다.
  • 통구면(通口面)
    • 관할 리 : 현(縣), 당평(堂坪), 도파(桃坡), 보막(寶幕), 북둔(北屯), 삼대(三臺), 장안(長安), 통현(通縣), 화사(化泗), 화평(花坪)
    • 면소재지를 비롯해서 면의 대부분이 금강산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북한 창도군의 두번째 소재지였다.
[1] 광복 당시 1558.7㎢[2] 광복 당시 1읍 11면[3] 근북면,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의 5개면은 명목상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 존재하나 대부분이 군사분계선에 걸쳐 있는 남방한계선 이북 지역이다. 단, 근북면 유곡리에는 민간인이 거주한다. 김화읍은 영역 자체는 온전히 수복하긴 했으나, 군청이 있던 옛 읍내리 시가지는 전쟁의 참화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4] 같은 케이스로 경기도 장단군이 있다. 단, 사실상 폐지(행정기능 정지)일 뿐 명목상으로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다. 김화군과 장단군 모두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명목상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명예군수 및 미수복 면들에 대한 명예면장이 임명되고 있다.[5] 그렇게 되면 2010년경을 기준으로 김화 지역 인구는 약 6만 5000명이고 철원은 10만여 명.[6] 공산치하였을 때 세워진 김화 도로원표에는 금화군이라고 써 있다. 현재는 북한에서도 김화라고 읽는다.[7] 조선시대에 김화군 초동면 방통리였던 김화군 근동면 방통리만이 북한의 김화군에 남아있어 구봉리로 통합되었기는 한데, 애초에 근동면 방통리 대부분이 휴전선 이남지역이 되어 대한민국 철원군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좁쌀만큼일 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8] 1944년 호구조사[9] 두 강줄기는 '''경기도 파주'''에 이르러서야 합쳐진다. 한탄강은 김화에서부터 철원, 연천 등을 통해 파주까지 비교적 곧게 뻗는 반면에 북한강은 춘천, 가평을 거쳐 남한강과 합류되어 한강이 된 이후에 서울, 고양을 거치는 엄청나게 돌아가는 길을 통해서야 파주에 당도한다.[10] 자등리는 현재 자등6리 마을의 옛 명칭으로, 이 마을은 현재는 '병참부'로 불린다. 옆에 있는 고개의 이름이 자등현이며 강원도와 경기도의 도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