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토르 빌라-로부스

 

[image]
'''Heitor Villa-Lobos'''
'''출생'''
1887년 3월 5일
[image]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사망'''
1959년 11월 17일(향년 72세)
[image]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직업'''
작곡가
1. 소개
2. 생애
3. 음악세계
4. 업적
5. 작품
5.1. 빌라-로부스 연습곡


▲에튀드 W235 중 11번 a단조. 줄리안 브림 연주

▲브라질풍의 바흐(Bachianas Brasileiras) 5번 중 1번 아리아.

'''빌라-로부스의 삶은 삶 그 이상이었다. 그는 보통 작곡가 같지 않았다. 큰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시가를 피우며 언제나 라디오를 켜 놓고, 뉴스든 가벼운 음악이든 뭐든지 들었다. 빌라-로부스는 지적으로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위대한 영혼을 가졌다.'''

― 줄리안 브림

'''브라질에도 진정한 천재가 살고 있으며 내 생각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한 존재.'''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1. 소개


브라질의 작곡가.

2. 생애


1887년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으로,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국립 도서관 사서인 아버지 라울 빌라-로부스에게 음악을 배웠다. 라울은 신문에 정부를 겨냥하는 비판적인 칼럼을 여러 차례 쓰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정부의 체포를 피해 브라질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야 했다. 하지만 빌라-로부스는 이 시간이 자신이 브라질의 여러 자연환경을 접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불과 15살에는 여러 카페에서 첼로, 클라리넷을 연주하기까지 했다. 빌라-로부스는 뿐만 아니라 뛰어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고, 1929년 작곡한 에튀드에서 요구하는 여러 기타 테크닉은, 빌라-로부스가 어떤 기타리스트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하지만 아버지는 빌라-로부스가 12살 이던 1899년 세상을 뜨고 만다. 1909년부터는 리우데자네이루 시립극장에서 첼로 주자로 활동한다.
18세인 1905년부터는 브라질의 민속 음악을 수집하기 위해 브라질 북동쪽 지역으로 여행했고, 그 후 리우데자네이루 국립 음악원에서 작곡 공부를 했다. 이렇듯 여러차례 브라질을 여행한 그는 20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는 학문적인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개성있는 작품들을 썼고, 본인은 자신의 음악을 '폭포처럼 자연스럽다'고 평했다고 한다. 1913년에는 피아니스트인 루실리아와 결혼하면서, 피아노와 실내악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작곡하고, 아내와 실내악단을 꾸리기도 했다. 1917년에 브라질을 방문한 프랑스 작곡가 다리우스 미요는 빌라 로부스의 음악을 접한 뒤 유럽으로 돌아가 빌라 로부스와 그의 민족주의 음악을 '대담함을 갖추고 있으며 활달한 기질의 젊은이' '생생하며 독창적'이라고 소개하며, 서서히 명성을 얻게 된다. 특히 1918년에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만나기도 하며, 루빈스타인은 젊은 빌라-로부스에게 여러 후원자들을 주선해 주기도 한다. 1928년에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빌라 로부스의 음악이 미국에서도 알려지게 된다.
아마존을 여행하고 돌아온 1915년 11월 13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자신의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다. 1923년까지 많은 지지를 받은 빌라-로부스는 정부로부터 장학금 지원을 받아 1930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다. 귀국후에는 브라질 음악 교육의 지도자로 변신하게 되며, 대규모 합창 운동을 이끌게 되었다. 당시 대통령은 그를 음악과 예술교육 감독으로 임명하게 된다. 브라질 내에 바흐 음악 보급에도 힘을 들여서, 바흐 탄생 250주년이던 1935년에는 미사 b단조를 직접 지휘한다. 1939년 독립 기념일에는 3만 명의 어린이들을 모집하여 국가를 부르는 대규모 합창 대회를 조직, 합창 교사를 양성하는 국립 음악원을 창설한다. 이 음악원의 젊은 음악 교사였던 아르민다는 훗날 빌라-로부스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1944년 빌라-로부스는 미국 여행에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지휘해 선보였는데 이때 많은 대중들과 비평가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이후 미국의 많은 오케스트라에서 여러 작품을 의뢰받기도 했다. 1940년대에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이듬해인 1945년에는 할리우드 영화 <녹색 장원''Green Mansions''>의 OST를 작곡하기도 했다. 빌라-로부스는 작곡가이자 자신의 곡을 직접 지휘하는 지휘자로서 여러 곳에서 큰 환호를 받았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59년 11월 17일 향년 7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3. 음악세계


그의 작품에 선명히 배어나오는 다채로운 색과 라틴 리듬의 이국적 정취, 기쁨 때문에 오래오래 사랑받고 있다. 남미 음악을 감상과 탐구의 대상으로 격상 시킨 점도 높게 평가 받으며, 상류층과 하류층, 백인과 흑인 사이에 철저히 갈라져 있던 브라질 음악을 하나로 통합시켰던 업적 역시 크다.

빌라-로부스가 직접 연주한 전주곡 1번이다. 그가 작곡한 5개의 전주곡은 후술할 빌라-로부스 연습곡과 함께 클래식 기타의 대표작품이다.

4. 업적


그는 음악가뿐 아니라 교육가로써 업적도 이루었다. 빌라-로부스는 브라질 문화에 기초한 음악 교육의 체계를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빌라-로부스의 덕에 브라질 민족 전체가 음악을 통해 조국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상술했던 빌라-로부스가 이끄는 합창 운동은 정치적 인민주의와 음악 교육의 결합으로써, 엘 시스테마를 비롯한 여러 남미 음악 운동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5. 작품



5.1. 빌라-로부스 연습곡


Douze études, W235 (Villa-Lobos, Heitor)
'''클래식 기타의 초절기교 연습곡.'''
화려한 아르페지오, 스케일과 질주하는 듯한 속도[1], 각종 기교들로 무장한 연습곡으로서, 단순 연습곡을 넘어 가장 어려운 클래식기타 곡들 중 일부라고 할 수 있다. 12개의 곡들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개성과 주옥같은 난도를 품고 있어, 아마추어 연주자들에게는 바흐의 샤콘느와 같은 중압감, 프로 연주자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고역을 안겨준다.
빌라-로부스 연습곡은 재밌게도 프란츠 리스트의 그 연습곡들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12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극악의 난도로 연주자의 양손을 적시는 점, 서로 다른 악기에서 비슷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 등. 다만 초절기교 연습곡은 음악적으로도 다른 곡들에 뒤지지 않지만 빌라-로부스 연습곡들은 어디까지나 '연습곡'이라는 기반 하에 쓰여진 곡으로서 일부 곡들을 제외하면 음악성의 면에선 다소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곡들로는 1번, 2번, 7번, 11번이 있다. 일반적으로 2번을 최고난도 곡을 꼽는데, 종횡무진 하는 스케일과 현간 이동이 그 이유다. 마디 하나 하나 마다 헤드쪽 프렛과 바디쪽 프렛을 넘나들다 보면 모공이 절로 송연해질 것이다.

▲에튀드 W235 중 1번

▲에튀드 W235 중 2번

[1] 특히 1번곡은 약 140의 템포를 요구하는데, 클래식 기타 곡으로서는 가공할 만한 속도이다. 개중에는 한층 더 끌어올려 180정도로 연주한다는 사람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