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블랙웰
Elizabeth Blackwell
1821~1910
미국의 '''최초 여성 의사.'''
영국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주 브리스톨 태생으로, 설탕 정제업자 새뮤얼 블랙웰과 한나 블랙웰의 9남매 중 셋째이다. 바로 아래 여동생 에밀리는 평생 언니 엘리자베스의 의사 일을 돕는다. 그 집안은 퀘이커[1] 신자 집안이기도 하다.
1832년, 전 가족이 미국 뉴욕으로 이민해 각지를 떠돈 끝에 1838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정착했으나 점점 생계 문제가 시급한 문제가 돼갔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영향도 받아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847년 뉴욕 주의 제네바 의과대학[2] 에 입학해 1849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미국 최초의 여의사이다
1974년에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
이후 파리, 런던 등지를 연수 다녔으며,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도 친분을 맺었다. 상술했듯 여동생 에밀리와 함께 폴란드계 독일인 간호사 마리아 자크르제프스카(Maria Zakrzewska)의 도움이 컸다. 남북전쟁 때는 부상병들의 간호와 치료에 힘썼다.1865년 뉴욕에, 1874년 런던에 의대를 설립하였다.
1821~1910
미국의 '''최초 여성 의사.'''
영국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주 브리스톨 태생으로, 설탕 정제업자 새뮤얼 블랙웰과 한나 블랙웰의 9남매 중 셋째이다. 바로 아래 여동생 에밀리는 평생 언니 엘리자베스의 의사 일을 돕는다. 그 집안은 퀘이커[1] 신자 집안이기도 하다.
1832년, 전 가족이 미국 뉴욕으로 이민해 각지를 떠돈 끝에 1838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정착했으나 점점 생계 문제가 시급한 문제가 돼갔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영향도 받아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847년 뉴욕 주의 제네바 의과대학[2] 에 입학해 1849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미국 최초의 여의사이다
1974년에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다
이후 파리, 런던 등지를 연수 다녔으며,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도 친분을 맺었다. 상술했듯 여동생 에밀리와 함께 폴란드계 독일인 간호사 마리아 자크르제프스카(Maria Zakrzewska)의 도움이 컸다. 남북전쟁 때는 부상병들의 간호와 치료에 힘썼다.1865년 뉴욕에, 1874년 런던에 의대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