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레 벨로조글루
1. 개요
터키의 前 축구 선수. 대한민국에서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출전했던 선수로 알려져 있다.[1] 터키 국가대표 영광의 시절을 모두 경험한 선수로써 2002 한일 월드컵 3위와 유로 2008 4강 진출의 멤버였다. 불같은 성격과 행동으로 투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던 선수기도 했다.
2. 클럽 경력
1996년 데뷔해서 최근까지 '''현역'''이었는데, 그래서 이 선수에 관한 뉴스가 뜨면 "아직도 뛰어?"라는 반응이 다수였다. 또한 유럽 축구를 꽤 오랫동안 봐온 축구팬들에게는 인터밀란, 뉴캐슬, AT 마드리드 등에서 뛰며 준수한 실력을 보여준 중앙 미드필더로 기억할 선수다. 터키 양강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를 모두 경험한 선수이기도 하다.
1996-97 시즌 터키 최고 명문 갈라타사라이 SK에서 '''16세'''의 나이로 프로 선수로 데뷔해 1997-98 시즌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특히 1999-2000 시즌 갈라타사라이의 UEFA컵 우승의 주역이었으며, 2000-200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으로 자신의 이름을 전 유럽에 알리게 되었다. 이때 그는 겨우 '''21세'''였다.
결국 2001년 여름 500만 유로의 이적료에 이탈리아 명문 인터 밀란으로 이적하며 첫 해외진출에 성공한다. 이적 초기에는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2002-03 시즌 인터밀란 올해의 선수로 뽑히는 등 성공적인 발자취를 남겼으나 이후 잦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자리잡으며 2003-04 시즌부터 2004-05 시즌까지 꼴랑 9경기만 출장하는 전력외 자원으로 전락해버린다. 결국 2005년 7월 그는 커리어 반전을 위해 다시한번 이적을 감행해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로 진출한다. 그래도 그동안 보여준 것이 있어서 5년계약에 380만 파운드라는 적지않은 이적료를 발생시켰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시즌 개막 전 열린 UEFA 인터토토컵에서 데뷔를 했고, 리그 개막전에서부터 어시를 적립하며 뉴캐슬이 아스날을 잡는 파란을 연출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또 선더랜드와의 타인-위어 더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는 등 뉴캐슬 중원의 핵심으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2006-07 시즌까지 문제없이 잘 뛰었는데..... 또 부상이 도졌다. 그러면서 다시 벤치자원으로 전락해버린 벨로조글루는 시즌이 끝나고 국내복귀를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국내 복귀 팀이 친정 갈라타사라이가 아닌 갈라타사라이의 최대 라이벌 페네르바흐체 SK였다! 갈라타사라이 팬들이 격분한건 당연했고, '''반(反) 벨로조글루''' 운동까지 벌이면서 갈라타사라이 팀과 벨로조글루를 성토했다. 벨로조글루는 자신이 평소 페네르바흐체 팬이었음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면서 자신을 변호했지만 이미 그는 라이벌리의 중심에 서버리고 말았다. 복귀 첫 시즌 2008-09 시즌은 부상의 여파로 부진했지만 이내 폼을 되찾아 2009-10 시즌 수페르리가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2010-11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또한 이때부터 다시 득점력이 폭발하기 시작, 2011-12 시즌에는 1999-2000 시즌 이후 처음으로 리그 한 시즌 5골을 넘는 득점을 기록하면서 완벽하게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다만 이때 이미 '''32세'''가 되었기 때문에 이대로 페네르바흐체의 레전드로 남은 선수생활을 천천히 마무리할 공산이 커보였는데....
벨로조글루는 2012-13 시즌 뜬금 라리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 30대의 나이에 다시한번 해외리그에 도전한다. 같은 터키 국대 미드필더 아르다 투란과 함께 AT마드리드의 중원을 책임지게끔 하는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구상으로 영입된 것인데, 초반 중용받았으나 이내 벤치 자원으로 밀리고 말아 6개월 만에 라리가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수페르리가에 복귀한다. 페네르바흐체 SK로 돌아온 그는 또다시 미들라이커의 본색을 되찾고 2014-15 시즌까지 2시즌 반 동안 62경기 14골의 기록을 남겼다. 어느덧 '''35세'''가 되었기 때문에 박수받으며 은퇴하겠구나 싶었는데 그는 다시한번 이적을 단행했다.
2015-16 시즌 벨로조글루는 돌풍의 팀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FK에 입단했다. 그저 그런 중위권 팀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닌 충분히 우승 경쟁이 가능한 팀으로 이적한 것으로 예상치 못한 이적이었다. 2014년 재창단 이후 리그에서 줄곧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돌풍의 팀으로 자리잡은 이스탄불 바샥셰히르는 벨로조글루 영입 이후 더 탄력을 받아 2016-17 시즌 리그 준우승, 2017-18 시즌 3위, 2018-19 시즌 준우승으로 계속 한 끝이 모자랐지만 최상위권의 성적을 냈고, 벨로조글루는 그 과정에서 리그 경기 대부분에 출전해 3년 연속으로 리그 25경기 이상 출장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2] 이 활약으로 2019년 그동안 멀어졌던 터키 대표팀에 다시 소집되어 2019년 한 해에만 6경기나 국가대표로 경기를 소화하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2019년 9월 FIFA 센추리 클럽 가입에도 성공했다.
2019년 여름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활약했던 팀 페네르바흐체로 1년 계약을 맺고 다시 돌아갔고, 2020년 7월 8일 끝난 2019-20 시즌 리그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면서 최초로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에 모두 득점을 기록한 터키 선수가 되었다.[3] 그리고 2019-20 시즌 '''40세'''의 나이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중원에서 여러 역할을 골고루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신체 능력이 활발했던 선수 생활 초반만 해도 전투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로써 엄청난 활동량과 스태미나가 그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킥력까지 좋아서 갈라타사라이 시절인 2000-01 시즌에는 시즌 모든 대회에서 '''10골'''을 달성할 만큼의 득점력이 있었다.
이후 해외 진출과 잦은 부상등으로 전투적인 플레이 스타일에서 변화해 점차 전진형 플레이메이커로 2선 포지션에 가까운 플레이로 변화했다. 전술적 이해도도 상당해 왼쪽 미드필더도 소화했고, 페네르바흐체 시절에는 아예 측면 공격수를 소화하기도 했다. 이후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완전히 패스와 어시스트에 집중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어 40대의 나이까지 활약했다. 한마디로 전술 머리가 좋아 여러 포지션에서도 제 몫을 했던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4. 국가대표 경력
어릴때부터 1군 무대에서 활약한 재능이라 일찌감치 10대의 나이에 이미 대표팀에 소집되었고, 2000년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그 해 열린 유로 2000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터키 대표팀의 주전급 선수가 되어 48년만의 FIFA 월드컵 진출에 힘을 보태 2002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해 본선무대에서 1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 터키 대표팀 중원의 핵심으로 활약해왔다.
국가대표에서 폭력사태에 휘말린 것으로도 유명한데, 2006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 플레이오프 스위스와의 난투극 당시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선수로 지목되어 15000 스위스 프랑의 벌금과 A매치 6경기 출전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4] 그의 불같은 성격을 한방에 요약하는 사건이다.
이후 유로 2008 본선에 출전했으나 조별리그 첫 경기 포르투갈 전만 치르고 부상으로 인해 더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유로 2008 이후에도 쭉 대표팀 핵심 멤버로 거의 모든 A매치에 출전했으나 2014년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행 좌절 이후 터키가 세대교체에 들어가면서 잠시 대표팀과 멀어졌다. 이후 2018년까지 2017년에 1경기를 소화한 것을 제외하곤 국대와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가 유로 2020 예선 도중 취임한 세뇰 귀네슈 감독시기 다시 대표팀에 복귀하며 유로 2020 본선 진출의 주역으로써 그야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원래 계획으로는 유로 2020 본선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유로가 1년 연기되면서 유로 출전의 꿈을 접으며 선수 생활을 마쳤다.
5. 여담
-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흐체에서 모두 뛰어본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며 또한 두 팀에서 모두 주전급으로 맹활약했다.
- 언행이 매우 거칠기로 유명하다. 특히 인종차별 관련해서 안좋은 말을 많이 쏟아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2006년 12월 뉴캐슬에서 뛸 당시 에버튼의 수비수 조셉 요보와 골키퍼 팀 하워드에게 경기중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것으로 FA에 제소된 적이 있었으나 혐의 없음을 인정받았던 전력이 있고, 불과 3개월 뒤 볼턴의 공격수 엘 하지 디우프에게 또다시 인종차별적 언행을 했다고 논란이 되었었다. 또 1달 뒤에는 왓포드의 수비수 알하산 방구라에게도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 세 사건에 대해 벨로조글루 측에선 완강히 그런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결국 3건에 대해서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1시즌에 한 번 엮이기도 어려운 인종차별 스캔들에 3번이나 엮인 것은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 한동안 잠잠하던 그의 언행은 6년 뒤 다시 한 번 터지고 마는데, 2012년 4월 트라브존스포르와의 경기에서 트라브존스포르 미드필더 디디에 조코라에게 Fxxxxxx Nxxxxx라는 폭언을 했다고 경기 후 조코라가 인터뷰를 통해 폭로한 것이다. 이번에는 가볍게 넘어가지 못해 2014년 터키 대법원 판결로 벨로조글루는 징역 2개월 반을 선고받고 복역까지 하게 되었다. 터키 선수가 인종차별로 처벌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여러모로 최대의 흑역사.
- 3대 리그라고 할 수 있는 세리에 A, EPL, 라리가를 모두 경험한 화려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 리그에서 끝은 모두 좋지는 못했는데, 바로 해외에만 나가면 부상에 시달리는 불운을 겪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 밀란 시절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우승해보고 이적 직후 2시즌 간은 인테르의 핵심 미드필더로 맹활약하다 부상 때문에 입지를 잃고 이적해야 했다. 뉴캐슬 유나이티드 경력도 비슷하게 흘러갔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은 주로 UEFA 유로파리그 경기 위주의 출전에 불만족하며 6개월 만에 국내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