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영풍
1. 소개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1.1. 출신
본명은 여영풍(呂盈風). 친정이 멀긴 하지만 부찰귀인과 함께 안릉용을 비웃는 걸로 봐서 집안도 괜찮다. 원문이 "미천한 것들은 미천한 대로 장점이 있죠. (중략) '''우린''' 절대 못하지만요." 인데, 부찰귀인이 자기 가문과 흔상재네 가문을 도매급으로 한데 '''우리'''로 묶어 취급한 걸로 보면, 최고 명문가 중 하나인 부찰씨에 맞먹거나 버금가는 가문일 듯하다.
다만 초창기 캐릭터성이 이래서, 자기 보다 윗전에겐 깍듯히 대하고 (물론 모든 후궁의 공공의 적인 화비만은 안 보일 때 슬쩍 깐 적이 있다.) 기귀인이나 여답응처럼 딱히 아랫사람에게도 갑질은 하지 않지만, 이때는 부찰귀인의 비위를 맞춰 준 건지, 당시 안릉룡이 품계가 낮아선지 몰라도 이 부분은 부찰귀인과 함께 인성 문제가 거론된다. 물론 나중에 견환이 회궁하자, 기귀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사는데다 품계도 여전히 낮은 걸 보면 안됐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중립노선을 탄 탓에 욕을 덜 먹는 거라 겨우 집안만 조금 믿고 살 뿐이고, 좋은 사람은 결코 아니란 평도 있다. 그나마 후궁견환전에 등장하는 온갖 무개념 후궁들에 비해선 개념은 양호하니 티가 안 날 뿐이다.
게다가 훗날 흔상재의 부친이 안비괴의 약점을 잡는 것을 보면 한미한 집안 출신은 아닌 데다가 견환보다 먼저 들어온 후궁이기에 함부로 무시할 수준의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황제의 총애를 많이 받지 못한 데다가 궁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친정도 멀리 떨어져 있어 영향력을 기대할 수 없기에 견환이나 안릉용, 순상재[5] 에게는 물론 훨씬 나중에 들어온 기귀인[6] 이나 정빈[7] 에게도 추월당하는 굴욕을 겪는다. 오죽했으면 견환이 환궁한 후 '''"흔귀인이 아직도 귀인이라니 가엽다..."''' 라고 불쌍히 여겼고, 기빈에게도 '''"한 사람은 마마이고 한 사람은 아직 귀인이라니?"''' 라며 품계 승진이 느리다고 까이기도 했다. 심지어 총애를 못받는 후궁이라는 이유로 자기보다 한 단계 낮은 여답응에 의해 신형사로 쫓겨나는 초특급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1.2. 작중 행적
1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중립이었지만 비중은 별로 없었다. 견환이 익곤궁 앞에 꿇어앉는 형벌을 받았을 때 견환과 사이가 나빴던 제비와 부찰귀인, 화비파인 조귀인을 제외하고 죄다 꿇어앉아 견환의 구명을 청했으나 이 때 흔상재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견환을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니라, 견환이 황제에게 한창 냉대를 받을 때도 멸시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는 등, 항상 겸손하게 행동한다.[8]
2기에서 기귀인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마침내 중립을 깨뜨리고 기귀인과 안릉용을 무너트리는 것을 도와주는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저수궁에 사는 기빈(기귀인)이 자신을 찾아온 황제를 몇 번이고 가로채고, 윗전의 지위를 이용해[9] '''자신의 시녀인 패아가 견환의 시녀였다는 이유만으로 계속 구박하고 때리자 울분이 쌓여 환궁한 견환을 만나 직접적으로 돕겠다고 나선다.''' 견환이 저수궁에서 나오고 싶냐는 말에 그럴 바에 차라리 한 궁의 주인이 되겠다고 직구를 날렸을 정도였다. 한때는 황후쪽에 호의적이었으나 자신과 사이가 나쁜 기귀인의 배후에 황후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인지 황후의 편을 들지 않게 되었다. 이후, 기빈을 귀인으로 강등시키기 위해 견환이 황제를 꼬드겨서 기빈의 본색을 황제의 눈으로 확인시켜 줬을 때, 결정타를 날린다. 평소 기빈이 시녀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술술 불었고, 그래서 기빈은 도로 귀인으로 강등당하고, 이후로는 흔귀인이 저수궁의 관리를 맡게 된다. 그후로도 계속 견환의 편에 섰으며 그 덕으로 단비가 황귀비, 경비가 귀비가 될 때 자신도 빈의 지위에 오른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안릉용의 아버지 안비괴를 탄핵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등장하는 후궁들 중에선 거의 공기 수준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단황귀비, 경귀비와 나란히 최후까지 살아남는다. 주인공 견환마저 온갖 풍파를 겪었던 후궁에서 꿋꿋히 살아남은 것을 보면 이쪽도 상당한 수완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견환이 그토록 바라던 평지풍파가 없는 고요하고, 조용한 궁중생활을 쭉 이어나갔기 때문에 흔상재를 최후의 승자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1.3. 자녀가 있는가?
이 부분은 어쩌면 후궁견환전/옥에 티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다.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 다소 모호한 후궁. 원작에선 1황녀 숙화제희를 낳았고 멀쩡히 잘 살아서 하가한다. 드라마판에서는 확실히 없다고 나온다.[10] 그러나 12화에서 원명원에 갔을 때, 심미장이 견환에게 "조귀인과 흔상재에게는 공주가 있어 황제가 그들을 챙겨준다고 해." 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고, 극중에서 처음 원명원으로 피서를 떠날 때, 원명원에 함께 갈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후궁은 황자/공주의 생모들, 견환 & 심미장, 단비와 경빈, 화비, 부찰귀인 뿐이었는데, 흔상재 역시 원명원에 피서를 왔다는 점은 흔상재 역시 공주의 생모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다만 그 외에는 딸이 있다는 얘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준가르 칸에게 황제의 친딸을 보내는 일을 의논할 때도 온의공주만 언급된데다, 무엇보다도 흔상재 본인이 공주가 있는 것 치고는 품계도 너무 낮고 승진도 느렸기 때문에 [11] 친정이 나름대로 괜찮은 것으로 추측되는 흔상재가 만약 공주까지 있었다면 상재에만 머물렀다는 게 말도 안 된다. 그래도 원작에선 일반적으로 6품에서 7품 정도에서 시작하고 2, 3품까지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데 정3품 귀빈에서 종2품 소용을 거쳐 정2품 비까지 올랐으나 드라마에선 승진이 심할 정도로 느리다. 다만 원작에서도 승진이 느린 건 마찬가지다. 드라마보다도 더 오랫동안 중립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단 견환파라면 견환파인데 취급이 좀 미묘하다. 원래도 호의적으로 대하며 견환을 거들어 주긴 했지만 견환이 정2품 흔비으로 올려주자 고마워하며 친하게 지내고 같이 행동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태비들이 모일 때 안 보인다.[12]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보통 후사가 없는 후궁은 절로 들어가야 정상이겠지만, 흔태빈은 어째서인지 궁에 남았다. 단황귀태비와 경귀태비는 양녀를 들였으니 그렇다 해도 흔태빈은 친자식도 없는데다가 양자를 입양했다는 내용도 없었다. 어쩌면 견환이 령서공주나 정화공주를 흔태빈의 양녀로 보냈거나 황태후의 권한으로 남게 해준 걸지도 모른다. 반면 원작에서는 자녀가 없지만 견환의 편이기 때문에 끝까지 궁 안에 남은 주패가 있다.[13]
2. 성격
대부분의 후궁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내는 등 중립적으로 보인다. 누구와도 잘 지내보려고 하는 것 때문인지 실제로 여기저기서 잘 보인다. 황제가 롱월공주를 데리고 청량대에 방문했을 때 양모인 경비와 동행해 오기도 했고, 화비가 귀비로 올랐을 때 축하해주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 기귀인과 함께 산책하는 장면도 나온다. 게다가 조용하다. 조용한 탓인지 얌전하다. 오죽했으면 나중에 기빈이 '''"평소에 그렇게나 얌전한 흔귀인이''' 갑자기 내 흉을 보다니!"라며 어이없어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사실 성격은 심미장과 비슷하다.''' 강직한 면에서 두 사람은 닮아있으나, 자존심이 매우 강한 미장과 다르게 '''흔상재는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굽힐 줄 안다.''' 그래서, 조용함에도 불구하고 '''"흔상재는 화끈하고 열정적이다."'''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점에서냐면 할 말 다 하는 강직한 성격이라는 점이다. 특히 '''상대방의 면전에서 돌직구를 날리는 부분'''이 많다. 견환은 흔상재를 보면서 "패기가 대단하시네요..." 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처음 등장할 때는 유산한지 얼마 안 된 자신을 염려하는 황후에게 지각한 화비 앞에서 "몸이 안 좋아도 문후를 빠뜨릴 수 없지요."라고 말하는데, 딱 봐도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도 뻔뻔하게 구는 화비를 겨냥하는 말이었다. 임신한 부찰귀인이 황제에게 받은 향분을 자랑하며[14] 바르자, "아껴서 바르시게. 그 향분은 '''황상의 마음'''이니까 얼굴에 바른 향분이 날아가면 황상의 마음도 날아갈 테니 말이야."라며 조롱한 적이 있다. 직후 부찰귀인을 지나치면서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임신하는 줄 아나? 왜 저렇게 유세를 부려대는 건가?" 라며 깐 것은 덤.
얼마나 당당하게 깠는지 되려 견환이 무안해졌을 정도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흔상재도 임신하다가 유산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흔상재의 입장에선 부찰귀인의 행태가 상당히 아니꼽긴 할 거다. 그리고 모두가 꽃구경 나온 자리에서, 황후가 서출이라는 것을 화비가 까자 여영풍은 그 앞에다 대놓고 "또 시작이로군." 이라고 말한다! 안릉용이 갑자기 견환에게 친한 척을 하자 "이제서야 자매의 정이 좀 생기는 모양이군." 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환궁한 희비를 만나는 장면에서 기귀인이 견환에게 시비를 털자 "그 목걸이를 하고 나왔는데 희비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게 아니라 시비걸려고 나오셨는가?" 이러며 까서 기귀인이 감정이 상해 다시 저수궁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했으며, 친자 확인 사건 때 견환을 에둘러 까던 안릉용이 갑자기 정백의 혀를 자르라고 정색을 하자 "가장 온순하고 상냥하던 동생이 왜 이리 세게 나오는 겐가?"라고 저격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트집 잡기가 힘든 직언을 날리기도 하며 화비의 몰락 때엔 결국 참고 기다리니 이런 일을 다 본다며 통쾌하다고 한다.
또한 '''기본적인 심성은 선하다.''' 심미장이 조귀인의 처소에서 입덧을 했을 때, 제비와 함께 임신 경험이 있어서 심미장이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두 사람 중 하나로, 같이 눈치챈 제비는 썩 좋은 표정이 아니었지만 흔상재는 환하게 웃으면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15] 안릉용이 황후의 지원으로 총애를 독차지할 적에는 제비와 부찰귀인이 안릉용의 면전에서 출신이 천하다느니 노련하다느니 험담을 하자 "안상재가 비록 미천하다고 해도 관리 집안입니다.선황의 양비도 노비인데 비가 되었지 않았습니까?"라고 나름대로 두둔해줬다. 물론 부찰귀인의 말에 같이 웃기도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단황귀비, 경귀비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모성애가 남다르다.''' 조귀인이 화비의 악행을 술술 불며 마니옥 사건을 꺼냈을 때 "조귀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자식을 빼앗겠다는 데 어떤 어미가 겁먹지 않겠어요?"라고 한 몫 거든다. 만일 견환이 정말 그녀를 황궁에서 계속 살게 해 주기 위해 령서공주나 정화공주를 양녀로 주었다면 잘 키울 듯.
3. 기타
공주를 회임했다가 유산한 경험이 있다. 1화의 첫 등장부터 황후로부터 "자네는 유산했으니 몸조리를 잘해야지."라는 말을 듣는다. 이 때 일이 사고라고 한 것으로 봐선 이쪽도 황후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훗날 제비가 자살한 이후에 황후와 대화를 나누던 태후가 부찰귀인과 함께 흔상재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확실시됐다.
특기가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으나, 취미는 분재 가꾸기이다.
만약 견환이 황제를 사랑하지 않고 그저 그런 후궁으로 남는 데에 성공했다면, 딱 이 여자 정도의 위치와 태도로 머물렀을 것이다.
원작에선 신분의 고하를 매우 따지는 사람으로, 출신이 고귀하면 자기보다 높아도 그러려니 하지만 출신이 한미한 안릉용이 총애받는 걸 매우 못마땅해한다. 말도 잘 섞지 않으며, 견환에게 멀리하라고 충고하고 호온용이 릉용을 까자, 거들기도 했다. 또한 견형이 기녀 고가의의 아이를 설천도가 유산시켰다며 이혼하려고 하자, 태어나도 천한 종자라며 비하한다. 이후 섭란의가 표범으로 묘기를 부릴 때, 황제와 다른 후궁들와 함께 가서 구경하려고 했으나 섭란의의 단호한 눈빛을 보면서 황제를 죽일 것이라 예상한 견환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냥 앉아있으라고 해서 화를 면했다.
흔상재는 화를 낸 적이 안릉용만큼이나 드문데, 드라마판 중에서 가장 크게 화를 낸 적이 언제냐면 화비의 태감인 주녕해가 황후를 찾아가서는 '''"화비마마와 지답응은 폐하를 모시고 있는 중이라서, 문안 인사와 같은 사소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라는 망언을 하자, "문안 인사가 사소한 일이라면 큰 일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겐가?" 라고 꾸짖은 적이 있었다.
[1] 기귀인과 같이 거주했다.[2] 옹정제가 죽은 후에, 옮겼다.[3] 견환이 완비가 될 뻔했을 때, 겹경사로 같이 승진을 치르자고 했다. 다만 흔상재는 안빈이 된 안릉용과 같이 탈없이 귀인으로 승진했다.[4] 견환이 리비로 오르는 안릉용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후궁들의 지위를 승진시킬 때, 같이 승진하였다.[5] 이쪽은 만군기 출신이라 사후에 추증되었다.[6] 만군기인 기귀인은 '''만주족 팔대 성씨 가문'''에 속할 정도로 굉장히 근본있는 가문 출신이다.[7] 몽군기인 정빈은 '''칭기즈 칸의 후손인 보르지기트 가문 출신이다!'''[8] 이때 기귀인은 인사하는 흔귀인에게 인사할 필요 없다며 뭐라고 하고는 견환을 무시하고 지나가버렸다.[9] 작중 초반 빈 이상의 후궁이어야만 궁의 정전에 기거하며 궁을 다스릴 자격이 주어진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이와 인성 면에서 흔귀인이 기빈에게 뒤쳐지는 것이 없는데 기빈이 승진을 먼저 하는 바람에 기빈이 저수궁의 주인 자리를 먹은 것이다.[10] 3황자 홍시, 4황자 홍력, 5황자 홍주를 빼면 온의가 옹정제의 유일한 자식이라고 나온다.[11] 실제로 집안이 제일 안 좋은 편인 조귀인만 해도 온의공주를 낳은 덕분에 귀인이 되었다.[12] 수정판에서는 주패와 설정이 합쳐져서 기귀빈 관문원이 빈으로 강등당하면서 소용으로 승진했고, 현릉 사후에 다른 태비들과 함께 등장한다.[13] 사실 드라마의 흔상재는 원작의 여영풍과 주패를 섞어서 만든 캐릭터이다.[14] 완귀인이 원하면 향분 나눠주겠다고 하다가 견환이 "아니에요. 어떻게 제가 언니 걸 욕심내겠어요?"라며 사양하자 "하긴 나눠주는 건 좀 그렇지? 이건 나에 대한 폐하의 마음이니까~"라며 대놓고 자랑질했다.[15] 그러나 이때 미장은 황제로부터 가장 큰 총애를 받아서 화비에게 찍혀서 화비의 입김이 닿는 강 태의로 하여금 임신 증세만 유발하는 처방을 해준 덕에 졸지에 거짓으로 회임을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어 답응으로 강등되고, 연금까지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