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이가 문원

 


'''后宮甄嬛传 등장인물'''
'''기귀인'''
'''과이가 문원'''
'''이름'''
'''과이가 문원 (瓜爾佳 文鴛)'''
'''배우'''
당예흔
'''민족'''
만주족
'''입궁일'''
11월 1일
'''거주지'''
저수궁 → 쇄옥헌[1] → 장춘궁[2] → 저수궁[3] → 교호관[4] → 냉궁[5]
'''가족관계'''
아버지: 과이가 악민
남편: 옹정제
'''파벌'''
황후파
'''품계'''
<rowbgcolor#FFFFFF> 기(禥)귀인

기빈[6]

기귀인[7]

폐서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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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원작)'''
'''정6품'''
'''정5품'''
'''종4품'''
'''종3품'''
'''정3품'''
'''정5품'''
'''종8품'''
'''폐위'''
<rowbgcolor#FFFFFF> 기(禥)귀인

기빈

관순의

관첩여

기귀빈

기빈

관경의

폐위

1. 소개
2. 작중 전개
2.1. 입궁과 황후파로의 전향
2.2. 기빈 시절
2.3. 기귀인으로 강등
2.4. 친자 확인 사건
2.5. 폐서인
2.6. 최후
3. 성격
3.1. 단점
3.2. 장점
4. 원작에서
5. 기타


1. 소개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견환의 부친 견원도와 같이 연갱요를 쳐냈던 공신이자, 정 3품 도찰원 부도어사인 과이가 악민(瓜爾佳 鄂敏)의 딸로 이름은 과이가 문원이다. 원작에서는 관(管)씨 성을 쓰므로 관문원((管文鴛)이다. 드라마판 기준으로는 중반부인 41화에 첫 등장했다.
만군 양황기(상3기) 소속. 수녀 선발 때는 병 때문에 입궁하지 못했으나, 과이가 악민이 견원도와 같이 연갱요를 축출하는 데 공을 세웠고, 이후 황제가 충심 장려 차원에서 공신들의 딸을 입궁시키는 혜택을 베풀기로 했을 때, 비빈 중에 한족이 많은 것을 염려한 황후의 추천으로 입궁한다.[9] 황실 후궁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같은 명문가 출신에 똑같이 귀인으로 시작한 심미장이나 부찰귀인도 처음에는 받지 못한 봉호를 기귀인만 처음부터 받고 시작한 것'''이다.[10] 처음에는 저수궁에 들어가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견환에게 붙어 득을 보기 위해 쇄옥헌으로 온다.

2. 작중 전개



2.1. 입궁과 황후파로의 전향


그렇게 기귀인은 견환에게 알랑거리는 한편, 연답응으로 강등된 화비에게 시비를 트는 모습으로 첫 선을 보인다.
'''시녀'''[11]: 황후마마께서는 소주께 정말 잘해주세요.
'''기귀인''': 아무래도 같은 만군기 출신이니 신경 써 주시는 거겠지.
'''시녀''': 폐하께서 총애하시니 소주를 가까이 두려는 거예요.
'''기귀인''': 황후의 선물 중, 좋은 것을 완빈에게 보내주거라. (쇄옥헌에) 같이 살게 됐으니 인사를 해야지.
(그때 기귀인의 가마 행렬이 연답응과 마주치게 된다.)
'''시녀''': 건방지구나! 기귀인께 절을 올리지 못하겠느냐?
'''기귀인''': '''이런... 누군가 했더니 화비마마군요. 마마, 잊으셨습니까? 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는 흩어지는 법이죠.'''
'''연답응''': 원숭이가 흩어진다고? 맞는 말이다. 아비의 공으로 입궁을 한 니가 나와 뭐가 다르단 말이냐? '''지금이야 꿈이 크겠지만 넌 아마도 나와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기귀인''': 감히 일개 답응 주제에 날 모욕하다니! 황후완빈이 알면 어떻게 될까?
'''연답응''': 황후면 어떻고, 완빈이면 어떠하리? 모두 내게 패했던 자들이다. 게다가 넌 그들 밑에 있는 일개 귀인일 뿐이지. 그자들이 지금 잘 나간다고 한들, 추락할 날이 없을 줄 아느냐? 두고 봐라.
(연답응이 사라지자 기귀인은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갈 길을 간다.)
쇄옥헌 화재와 화비의 몰락 이후 기귀인은 견환 앞에서는 잘 보이려고 하는 듯 싶었으나 황후 쪽으로 갈아탄다. 이때 갈아타는 과정 묘사가 드라마 기준으로 상당히 뜬금없어 보이는데, 황후에게 가서 머리 치장을 도와주며 황후가 "너는 고생하다가 나중에 성공하고 싶니, 처음에 좋다가 나중에 실패하고 싶니?"라고 묻자 "신첩은 성공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걸로 바로 황후 쪽으로 포섭된다!
드라마 대사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면 기귀인의 아비인 과이가 악민은 견원도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새벽에 기귀인이 황후의 치장을 도와주면서 "아버지도 그러셨죠. 같은 공을 세웠는데 누구는 이부상서겸 좌도어사가 되고 누구는 부도어사에 만족해야 하냐고요." 라는 대사에서 드러난다. 견원도는 이 총애받는 후궁이라 덕을 봤으니 자기도 그렇게 해보겠다는 소리다. '''즉, 기귀인은 처음부터 견환과 견원도를 노리고 후궁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 대사를 하기 전에 황후가 "완빈화비 모두 한군기이니 이제는 만군기도 빛을 봐야하지 않겠느냐?" 라는 대사를 했다.[12]
어쨌든 기귀인이 아버지의 불만을 말한 후에 황후가 "사람은 두 종류가 있지 하나는 (처음엔 좋다가) 끝에 고생하고 하나는 (처음에 나쁘다가) 끝에 성공한다." 라고 말하는데 처음에 좋고 끝에 고생하는 이는 지금 활개를 치는 완빈(한군기), 처음에 나쁘고 끝에 성공하는 이는 황후(만군기)이다. 황후의 저 말 뜻은 '완빈이 좋니 내가 좋니?' 라는 거고, 기귀인은 "끝에 성공하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황후마마를 돕겠습니다.' 즉, '지금은 고생하더라도 꼭 총애를 받아내겠습니다.' 라는 뜻이 된다.
원래 자기 가문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황후가 간접적으로나마 언급했으니 뜬금없이 황후파로 전향한 것은 아니다. '''아니, 전향도 아니다. 기귀인은 처음부터 견환 편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기귀인은 학교에서 잘 나가는 애들 옆에 붙어 있으면 얻어먹는 게 많으니 잘 나가는 애들에게 같이 알랑거린 것 뿐이다. 입궁할 때부터 아버지인 과이가 악민이 "궁에 들어가면 있는 자에게 잘 보이고 총애를 얻어야 한다."고 가르쳐 보냈다. 심미장이나 견환이 입궁 전에 받은 교육과는 천지 차이.[13]
그렇게 기귀인이 황후 편이 된 이후, 견환을 위기에 몰고 아비인 과이가 악민도 견원도를 모함해 유배를 보내는 등 견환은 물론, 견환의 집안 전체에게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견환의 동생 옥요 역시 부모님과 함께 영고탑 유배생활을 체험한 바 있어서 후일 입궁했을 때 형부에게 그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저딴 걸 왜 살려둬요?"''' 라고 했을 정도다.

2.2. 기빈 시절


[image]
잘나가던 기빈 시절. 스타일도 이때가 가장 화려하다.
견환롱월을 임신하고 연금되어 있을 때도 흔귀인에게 저런 죄인에게 인사할 필요 없다며 무시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견환이 출궁한 이후에는 황후의 입김으로 빈으로 승격되어[14] 안릉용과 더불어 총애의 절정을 달렸다. 그 뒤로도 감로사에 있던 견환에게 모욕을 주는 등, 한껏 황제의 총애를 받는 자신의 위치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나 황후는 기귀인을 밀어주면서도 동시에 견제했는데, 빈이 된 기념으로 홍마노 구슬 목걸이를 선물로 준 것이다. 기귀인은 황후가 준 선물이 너무 귀한 것이라 마음에 들어하며 남들에게도 과시하려고 매일 하고 다녔지만, 이 목걸이의 보석은 실은 사향 구슬로 오래 쓰면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한다. 안릉용은 목걸이의 향을 맡고 목걸이에 사향이 들어있음을 눈치챘고[15], 견환 또한 추측만 하다가 은은한 향이 난다는 흔귀인의 말을 듣고 목걸이의 정체를 확신하게 된다.

2.3. 기귀인으로 강등


'''그리고 견환이 환궁하면서 비상 사태가 터졌다.'''
견환이 4황자 홍력의 고귀한 생모인 희비로 신분 세탁을 하여 환궁한 바로 다음 날에 견환의 가마를 흔들리게 해서 복중 태아를 위험하게 하는 빠른 대응을 보인다. 가마꾼을 매수해서 자기네 궁 앞으로 지나가도록 하고 그 길목에 흔귀인의 화분에서 훔친 자갈돌을 놔둬서 밟게 했는데, 문제가 되더라도 흔귀인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한 것이지만 금세 들통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견환에게 총애가 쏠리자 그야말로 찬밥 신세로 전락한다.
황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안릉용을 이용해 황제의 총애를 붙들려하는 한편, 같은 수하인 기빈에게는 조정 여론 조성과 보화전에서 기도 드리는 일 등의 시시한 일밖에 맡기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황후가 릉용 쪽을 밀어주자 기빈은 제풀에 화가 나서 앙심을 품고 릉용의 성대를 망치게 만들어 노래를 못 부르는 상태로 만들고 만다. 이래 봐야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팀킬이 따로 없다.[16] 황후가 기빈이 훨씬 더 예쁜데도 불구하고 기빈은 정치적으로 쓰고 안릉용은 황제의 환심을 사게 만든 것은 정확한 전략으로, 견환이 미색에 재능도 겸비한데다 무엇보다도 순원황후를 닮았다는 최고의 무기가 있는 한, 예쁜 것 말곤 장점이 없고, 머리 나쁘고, 성격 나쁘고, 자식도 없는 기빈은 견환에게 상대가 안 될 것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같이 자식이 없는 후궁이라도 차라리 견환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고, 눈치도 빠르고, 사람 기분도 거스를 일 없는 안릉용을 황제에게 붙여놓고 견환에 대한 함정을 파는 것이 낫다고 의수는 판단했으나 기빈은 견환과 안빈을 골탕먹일 생각만 했다.
그리고 같은 궁에 있는 흔귀인을 윗전이랍시고 괴롭히며, 악몽을 꾼다는 것을 핑계로 흔귀인을 찾아온 황제를 가로챈다. 이 소식을 들은 황후는 후궁 간의 사소한 질투라며 방조했으나 견환4황자는 악몽에 좋다는 율무죽을 황제가 기빈의 처소에 있을 때 갖다 줘서 억지로 먹게 하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했다. 그 율무죽은 견환과 함께 있던 4황자가 마침 좋은 기회라고 충고하면서 한술 더 떠서 소윤자에게 큰 주전자에 덜 익힌 걸로 갖다주라 한 것으로, 반드시 한 주전자를 전부 다 먹게 하라고 시켰다. 반응을 보면 꽤나 삼키기 고역이었던 모양. 이 일로 견환의 대처가 대단히 호평받았는데, 기빈에게 시달리던 황제도[17] 내심 견환의 처리를 마음에 들어했을 뿐더러[18] 심미장의 말에 의하면 기빈이 단정치 못해서 마음에 안 들지만 견환도 의심스럽게 여기던 태후도 이 일에 대해서는 견환을 매우 칭찬해줬으며 윗전 아랫전 할 것 없이 궁 내에서 단정치 못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또한 흔귀인의 시녀 패아가 일전에 견환을 모신 적이 있다는 이유로 [19] 저수궁의 통솔권이 있음을 내세워[20] 걸핏하면 화풀이를 일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황제가 견환과 아침을 먹다가 기빈의 처소로 와달라는 청을 거절한 일이 있었는데, 견환이 잠깐 뜸을 들이다 저수궁에 가볼 것을 권유해서 같이 저수궁으로 길을 잡는다. 그날도 기빈은 화풀이로 패아를 때리다가 분에 못 이겨 집어던진 찻잔이 황제가 문에 들어서려는 순간, 문에 부딪혀 깨지는 바람에 딱 걸려서 황제의 진노를 산다. 그 전부터 견환은 패아가 학대받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타이밍 좋게 딱 걸릴 줄은 몰랐던 것. 아프다는 사람이 펄펄 뛰고 있는데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패아를 때리는 걸 견환 면전에서 확인했으니 황제로서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거기다 흔귀인도 합세해서 그동안 저지른 기빈의 행패를 술술 분 덕분에[21] 기빈은 다시 귀인으로 강등되어 처소를 저수궁에서 교호관으로 옮기게 되어 황명이 있을 때까지 반성하라며 연금당하고, 궁을 다스릴 권리 역시 흔귀인에게 넘어가버린다.

2.4. 친자 확인 사건


처소를 교호관으로 옮긴 후, 거기 연금되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소배성x최근석 스캔들이 터진 김에 중추절에 풀려나도록 황후가 도와준 덕분에 간신히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견환의 뒷담이나 까며 찌질하게 보내는가 싶었지만, 여기서 황후의 사주를 받아 '''초대형 사고'''를 하나 치게 된다.
기귀인은 아프다는 핑계로 보화전 법사 대신 감로사의 스님을 불러오게 하여 정백과 남몰래 말을 맞추는 한편, 견환에게 원한이 있었던 영수궁의 시녀인 비문을 끌어들이고, 견환이 입궁하기 전에 그녀를 모신 사가의 시녀인 분아를 협박하는 등,[22] 증인을 조작하여 견환이 온실초와 사통해 6황자를 낳았다고 주장하는 '''친자 확인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나, 증거로 들었던 온실초 옷의 대나무 무늬는 원래 모친이 좋아해서 곳곳에 있었던 것이라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한 비문의 기억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유도심문으로 입증한 견환과, 감로사에서 막언을 데려오고 정백에게 유도심문하여 정백이 후궁의 누군가와 정보를 주고 받고 있었다는 것을 밝힌 녕귀인의 반격으로 거짓이 들통났고, 결국 냉궁으로 쫓겨난다.
견환을 참 싫어하기는 싫어하는지 거짓이 다 까발려진 판국에도 온실초에게 "아직도 결혼을 안 한 것은 견환 때문이 아니냐?" 라며 증거도 없는 참언을 마구 퍼붓다가 끌려나간다. 그리고 그 직후 안릉용이 온실초에게 다가가 "그대의 마음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 라고 협박하는데, 기귀인의 패악은 그렇다쳐도 눈치빠른 릉용의 말은 그냥 넘겨 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끝내 온실초가 자기의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셀프 거세'''를 하게 만들었으니 기귀인은 안릉용과 함께 온실초를 고자로 만든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2.5. 폐서인


친자 확인 사건 당시 거짓이 아님을 맹세하면서 거짓이면 벼락맞고 죽겠다고 했는데 최후의 날에 정말로 벼락치는 비가 왔다.[23] 덤으로 자기 말이 거짓이라면 자신의 가문도 망할 것이라 맹세했는데, 정말 그 맹세대로 가문이 싹 쓸려나갔다. 친자확인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 아버지인 과이가 악민이 부정부패를 저지른 게 들켜서[24] 투옥된 후에 자결한 것을 시작으로 황제는 과이가 가문을 역적으로 선포하여 성인 남자들은 전부 사형당하고 노인들은 북방으로, 어린 남자애들은 서장으로 유배당하고 여자들은 노비로 팔려나가게 되는 등, 아예 가문이 박살나 버린다. 기귀인 본인 역시 냉궁으로 쫓겨난 걸로 모자라 폐서인되는데, 완빈 시절에 죄다 영고탑으로 끌려가버린 견환의 가문이나[25] 오빠와 조카들이 모두 죽어버린 화비의 가문보다도 더 비참하게 몰락하고 만다. 적어도 견환과 화비의 가문은 3대 멸족을 당하지는 않았고, 전원 노비로 강등되지도 않았다.
'''사고를 쳤을 때, 답응으로 강등된 다른 후궁들도 하다못해 이런 험한 꼴까지는 겪지 않았다.''' 드라마에선 아무리 잘못한 후궁이라도 보통 냉궁으로 보낼지언정 폐서인은 시키지 않는다. 연세란, 여앵아, 비운연 등은 모두 냉궁으로 보내졌지만 답응 신분으로 사사되지 않았는가? 그동안 죽거나 드라마에서 퇴장한 여러 후궁들의 예를 보아도 '''폐서인된 사례는 기귀인 하나밖에 없다.''' 심지어 불륜을 저지른 손답응이나, 누명을 쓴 것이긴 하지만 황자와 사통한 혐의를 받은 채빈도 죽었으면 죽었지, 폐서인만은 면했다.

2.6. 최후


기귀인은 비록 쫓겨나긴 했지만 냉궁에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과이가 가문을 벌하라는 성지가 내려지던 비오는 날에 기귀인은 냉궁을 탈출해 양심전 앞까지 나타나 가족을 구명해주길 빌며 견환을 저주한다. 황제는 그간 함께한 정을 봐서 폐서인에 그치고 목숨은 보전해 준다 했지만, 소배성근석과 자신을 이어준 견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시위들에게 기귀인을 구타해 죽이라 지시하여 비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후에도 소배성이 비밀리에 처리하라 지시했고, 황제 역시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죽은 사실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 장면은 타락할대로 타락한 견환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견환은 기귀인이 자신을 저주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기귀인이 시위들에게 끌려가던 순간에도 먹을 가는데만 열중한다.
'''그렇게 기귀인은 등장인물 중 가장 비참하게 죽었다.''' 기귀인은 강등도 아닌 아예 내명부에서 폐출되었으며 사후 복권도 안 되었고, 사망할 때의 몰골도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그리고 1기 보스인 연씨 가문이나 2기 보스인 오라나랍 가문[26]은 멸문까지는 어떻게 피했지만 과이가 가문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게 됐기 때문이다.[27] 게다가 기귀인이 죽은 이후 수레에 실려나가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비춰지고, 황후에게 '''"잘 보거라. 쓸모가 없으면 저런 식으로 죽는 것이다."''' 라고 까였다.
다른 죽었거나 신분이 낮은 후궁들이 시호를 받거나 추존으로 생전 직위보다 높은 직위를 받는 와중 기귀인만 시호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그녀는 이미 폐출로 인해 후궁 지위에서 박탈당한 폐서인이기 때문이다. 즉 사후에도 복직이 안된 셈. 화비는 어디까지나 답응으로 강등된거지 폐출되지 않았으며 제비도 폐출되지는 않았기에[28] 시호를 받거나 추존된 것이다.

3. 성격


기귀인에 대한 황후의 평가는 '''머리는 텅 비고 얼굴은 예쁜, 궁정에 필요한 그런 여인이다.''' 황제는 "천방지축이지만 귀엽지 않느냐?" 라는 평을 남겼고, 견환은 "기귀인은 경박하다." 라며 학을 뗀다.

3.1. 단점


'''기귀인은 기본적으로 욕심이 많고 거만한 성격이며, 자기보다 지위가 낮다 싶으면 일단 깔아 뭉개고 보는 경향이 있다.''' 비슷한 품계의 릉용에게는 가문과 출신이 낮다고 까면서 깔아뭉개려 했고,[29] 연답응으로 추락한 화비에게도 먼저 시비를 텄다. '''정작 안릉용이나 화비는 기귀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밑전인 흔귀인을 평하는 말도 일품인데, 자기 흉을 본 흔귀인에 대해 말하길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문 격."'''이라고 황당해했다.[30] 심한 짓을 해놓고서 심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모습도 보이는데[31] 흔귀인을 실컷 괴롭혀 놓고서 하는 말이, "흔귀인이 그렇게 말하니깐 꼭 내가 흔귀인을 괴롭힌 것 같잖아!" 라는 망언을 일삼았다.
게다가 잘 안 되면 전부 남 탓을 한다. 흔귀인 탓, 패아 탓, 릉용 탓, 견환 탓... 정말 끝도 없다. 심지어 릉용은 가만 있는데 자신이 시비를 걸어 말싸움을 하고는 황후한테 혼나자[32] "저 천한 것을 그만큼 봐줬으면 많이 봐준 거지!" 라면서 안릉용의 약에 손을 써서 목소리를 망가뜨렸다. 그나마 멍청해서인지 황후 탓은 할 줄 모른다.
방정맞은 것도 모자라서 생각이 없다. 단적인 예로 여빈처럼 말을 가리지 못한다. 입이 화근이 되는 아주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는데 먼저, 말실수를 자주한다. 서출 컴플렉스[33]가 있는 황후 앞에서 서녀인 여동생보다 말이 더 잘 통한다는 등의 말실수를 해서 주변 후궁들까지 식겁했다.[34] 황후는 안색이 변했으면서도 "됐다. 연극이나 보자." 하고 넘어갔지만 이후 기귀인이 시사되었을 때 "쓸모가 없으니까 저렇게 죽은 거다." 라고 한 걸 보면 앙금을 쌓아두고 있었던 걸로 추정된다.[35]
말실수는 이것뿐이 아니라, '''희비의 뒷담을 사방이 트인 공간에서 시녀에게 하다가 희비에게 딱 걸려서 "벽에도 귀가 있으니 (중략) 기빈, 자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라는 일침을 듣기도 했다.''' 매번 기귀인에게 시달리는 황제는 '''"말이 너무 많아서 보기 싫다."'''라 평했으며, 입이 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지 친자 확인 사건 당시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희귀비가 사통..." 까지만 듣고 기귀인의 뺨을 한 대 후려쳤다. 그리고 친자 확인 사건 내내 처음 약간만 견환을 "희귀비"라는 공식호칭으로 칭하다가 '''온실초가 나오고부터 견환, 견환 이렇게 막 이름으로 불러댄다.''' 입궁 초기에 궁정 예절을 잘 모르던 안릉용하상재에게 '''"하씨 언니를 뵈옵니다."''' 라고 이름을 부르자 시녀 보견이 기겁하고 이를 고쳐준 적이 있다. 그런데 기귀인은 하다못해 '언니'조차도 안 붙였다. 자기보다 한참 먼저 입궁했기에 후궁 생활 짬밥도 위인데다가 귀비-귀인으로 3단계 차이나는 견환에게 얼마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을 했는지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다른 예를 보자면, 제 성격을 이기지 못하는 면이 있어 황제도 나중엔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빈에서 귀인으로 강등되었던 사건이 성질을 부리면서 물건을 집어던지는 모습을 황제에게 들켜서 그랬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궁중에서는 앙숙지간인 후궁들끼리도 친한 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36] 기귀인은 성격상 그게 불가능했는지, 기귀인이 견환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온 궁중이 다 알고 있었다. 나 홀로 외딴 섬에 사는 것처럼 다른 후궁들과 담쌓고 살던 녕귀인까지 알고 있을 정도면 그렇다.
이런 성격이라 어그로의 달인이기도 하다. 니편 내편 가리지 않고 마구 어그로를 끈다. 그래서 쓸데없는 적을 많이 만들어서 '''적이 많다.''' 같은 편인 안릉용이나 황후에게도 생각없이 말을 하는 바람에 악감정을 차곡차곡 쌓았다. 안릉용과의 사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최악의 사이로, 안릉용이 딱히 기귀인에게 거슬리는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대놓고 미워하다가 나중에 목소리 테러까지 저지른다. 심지어 황후 역시 기귀인이 말이 너무 많아서 마음에 안든다는 뉘앙스로 뒷담을 깐 적이 있으며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일 및 괜찮거나 이미지에 좋은 일은 릉용에게 시켰고 아버지를 이용한 안 좋은 여론 조장 및 이미지에 안 좋은 일은 기귀인에게 시킨 것을 보면 이미 마음에 안 들었던 걸로 추정되며 적당히 이용하다가 버릴 생각이였던걸로 추정된다. 같은 편에게 이 정도인데 중립이나 적들에게는 더 심하다.
절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던 막수의 발을 모르는 척하고 일부러 밟아 어그로를 끌고, 황후의 서출 컴플렉스를 건드려서 어그로를 끌고, 지나가던 화비(당시 연답응)에게도 무시하고 시비걸며 어그로를 끌고, 같은 편인 안릉용에게도 목소리 테러를 가해 어그로를 끌고, 롱월공주를 돌보고 있던 경비에게도 말을 돌려 견환 이야기가 나오게 해서 황제를 화나게 해서 어그로를 끌고, 그 와중에 황제의 분노에 직격당한 경비를 보고 고소하다는 듯이 비웃어서 어그로를 끌고, 흔귀인에게서는 악몽을 꾼다는 핑계로 황제를 빼앗아서 어그로를 끌었다. ~~제비, 강상재랑 정빈, 조용히 짜져 살고 있던 단비심미장을 제외한 모두에게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쯤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어그로다. 태후에게는 어떤 어그로를 끌었는지는 안 나오나, 태후도 기귀인을 '''단정하지 못한 것들''' 분류에 집어넣고 있는 걸로 보아서 태후도 적으로 돌린 듯하다.[37] 심지어 태후가 환궁한 견환을 완전히 신임하게 된 계기가 견환이 기빈에게 율무죽을 보내줬고, 그 직후에 기빈이 귀인으로 강등당했을 때였다.
게다가 멍청하다. 너무 멍청한 나머지 황후에게 충성해서 가문의 몰락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 친자확인사건에서 만일 견환의 말대로 황후를 배후로 말했다면 본인의 목숨은 물론이고 자신의 가문도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38] 아마도 후궁인 자신의 몰락이 가족들에게도 해가 될거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거나, 제비의 경우처럼 황후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황후가 시켰다는 자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나마 제비는 황후의 뉘앙스를 따져물을 정도의 눈치는 있는데 애는 그냥 무작정 자기가 했단다. 어쩌면 자신이 꾹 입 다물고 있으면 황후가 도와줄 거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39] 뭐, 이러나 저러나 멍청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서 상대가 굳이 견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몰락했을 것이다.[40]
'''종합하면 화비의 완벽한 하위호환...이라고 하기엔 화비가 너무 억울하다.''' 화비는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도 있고, 나름대로 궁중 암투에 능하며,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잘 대해준다.

3.2. 장점


일단 멘탈갑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멍청하고 자아도취해 있다는 점을 공유하는 부찰귀인이나 하상재에 비해서는 멘탈이 매우 강하다. 비슷하게 싸가지가 없던 부찰귀인이 마지막에는 상황이 역전된 완빈에게 살려달라고 비참하게 애원하면서 미쳐버린 모습과, 마찬가지로 싸가지가 없었던 하 상재가 일장홍을 맞고 냉궁으로 내쳐질 위기가 닥치자 화비에게 살려달라고 비참하게 애원하는 모습과는 정 반대되게 죽을 때도 끝까지 당당하게 견환을 저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게다가 냉궁으로 쫓아내겠다는 선언을 받았을 때에도 비문이나 정백과는 대조되게 제발 살려달라면서 빌기보다는 '''패기쩔게 견환에게 "나는 네가 싫다!" 라고 당당하게 디스를 건다.''' [41] 잊지 말자. 위에서 언급한 목숨을 구걸한 사례 외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사례들을 봐도, 기귀인에 비하면 곱게 죽은 여답응화비, 황후도 죽을 때는 멘탈이 산산조각나 있었다.
무엇보다 냉궁에서 시위들에게 쫓기면서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탈출할 정도면 나름대로 멘탈이 강한 셈이다.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았음에도, 안릉용과 더불어 몰락 당시 멘탈이 붕괴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여인 중 하나이다. 또한 멘탈이 강한 연장선상에서, 굉장히 대담하여 누구나 떨리는 첫 시침 때, 누워 있는 황제의 품안으로 스스로 기어들어왔다. 안릉용이 첫 시침 때, 너무 떨어서 그 유명한 '''미개봉반납'''당했을 때를 생각하면 기귀인은 정말 멘탈이 강한 거 맞다.
그리고 안릉용에 버금갈 정도로 효심이 깊다. 행적에서 싸가지없고 무개념적인 면모를 보였어도 가문과 아버지에게는 충성했다. 일단 시발이 된 아버지의 가르침인 "궁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반드시 총애를 얻어야 한다."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모든 일을 했다. 아버지가 자살하고 가문이 역적이 되어 몰락하자 냉궁에 뛰쳐나와 구명을 요청했던걸 보면 이쪽도 결국 가문을 위해 들어왔으나 방식이 잘못되었고 암투와 경쟁에 패배한 패배자라 볼 수 있겠다.

4. 원작에서


원작에서 다른 공신의 딸인 복귀인[42], 상귀인[43], 서귀인[44]과 함께 입궁했다. 이 중 상귀인은 기귀인과 더불어 예쁘다는 평을 받았다. 처음엔 상귀인이 더 총애받았지만 곧 기귀인에게 추월당했다. 상귀인은 기귀인과 같이 견씨와 서귀인 가문 몰락에 일조했다. 상귀인은 복귀인과 밀수궁에 지냈는데 악몽을 핑계로 복귀인의 총애를 빼앗아서 복귀인의 원성을 들었다. 드라마에선 기귀인이 상귀인의 몫까지 받았다.
드라마와 달리 관씨 가문은 견씨 가문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라고 한다.
자식이 없는 것에 컴플렉스가 있어서 아이를 가진 견환과 서연의를 질투해 두 사람의 시녀였다가 주패의 시녀가 된 창청을 두들겨 패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현릉에게 들켜서 귀빈에서 빈으로 강등된다.
수정판에서는 복귀인과 상귀인이 사라지면서 여남왕 평정 후 기귀인과 서귀인만 입궁한 것으로 변경되었다.

5. 기타


'''빼어난 미인'''이다. 황후가 예쁘다고 언급한 여인은 순원황후, 견환, 화비 외에는 기귀인이 유일하다. 첫 번째는 첫 인사를 올리자마자 그녀에게 첫번째로 한 대사가 "정말 아름답구나. 더 자세히 보게 더 가까이 오거라..." 인데 첫 인상이 이 정도니 정말 빼어난 미색일 듯. 두번째로 안릉용과의 뒷담에서 얼굴은 예쁘고 머리가 비었다고 이야기한다. 흔상재 역시 첫 대면에서 기귀인을 보고 "얼굴 뿐 아니라 봉호도 예쁘네요...[45] 미인이긴 한데 눈매를 보니 보통이 아니겠어요?" 라며 미인이라고 평한다. 견환 역시 희비가 되어 환궁한 이후 기귀인을 첫 대면하자, 기귀인은 여전히 예쁘다고 인증했다. 심지어 친자 확인 사건 당시의 기귀인이 내뱉던 마지막 대사인 '''"제가 견환과 비교해서 집안, 용모 어느 것도 뒤떨어지지 않는데 왜 저런 년을 총애하십니까?"'''[46] 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증명된다. 작중 최고 미녀인 견환과 대등한 건 엄청난 수준이다.
만주 팔대 성씨 중 하나인 과이가씨로 좋은 가문 출신이라 자부심이 대단하다. 안릉용에게 "황후는 좋은 가문 여식을 좋아하죠. 한미한 집안 출신인 언니가 폐하를 모신다는 것도 영광인데 나랑 경쟁하러 드나요?" 라고 어그로를 끄는 장면에서, 그리고 처음 들어올 때 집안 좋은 심미장부찰귀인이 받은 품계인 귀인을 받은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와는 다르게 '''의외로 견환의 친딸인 롱월공주는 예뻐했던 것 같다.''' 황제 앞이라서 일부러 연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롱월이 처음 왔을 때는 젖을 잘 먹지 않았는데 경비께서 직접 먹이고 재우셔서 그런지 경비를 잘 따른다는 등, 롱월에 대한 얘기를 다 꿰고 있기도 했고, 롱월의 생일날에는 황제가 오기 전인데도 롱월이 예쁘다고 칭찬하는 다른 후궁들의 말에 즐겁게 맞장구를 치며 롱월의 손도 잡아보고, 롱월을 귀여워하고 있었다. 아무튼 롱월을 볼 때만큼은 정말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장면만 보면 착한 캐릭터인가 오해할 만큼 롱월을 좋아해주는 모습이다.
황후처럼 연기의 달인이기도 하여, 화비와 싸우자 눈물연기를 했다. 악몽을 꾼다고 했을 때도 연기였다.
위에서도 언급이 됐듯, 기귀인을 모시는 시녀의 이름은 안 나왔지만, 주인을 닮아 시녀도 엄청나게 싸가지가 없다. 시녀는 한쪽 눈 위에 점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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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v에 나온 모습이라거나 방송사의 프로필 사진은 그냥 귀여운 아가씨였지만 화비와 마찬가지로 드라마에서 썩은 표정을 많이 보여줬다. 라이벌인 화비와 비교되어 썩소보단, 뚱한 표정이란 평가를 들어 나름 귀엽다는 말을 들었다.
기귀인을 연기한 배우 당예흔은 삼국지 사마의를 다룬 사마의, 미완의 책사라는 중국 드라마에도 출연하였고, 여전히 발랄하고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예쁘다.
[1] 완빈과 동거[2] 제비와 동거. 연답응의 테러 때문에 쇄옥헌이 불타 장춘궁으로 옮기게 됨[3] 흔귀인과 동거. 쇄옥헌의 수리가 끝나자 황제는 쇄옥헌은 견환 혼자 쓰는 게 좋겠다고 해서 쇄옥헌으로 복귀하지 않고 저수궁으로 옮김[4] 귀인으로 강등되면서[5] 봉호 박탈 및 폐위[6] 견환이 궁을 나간 후 황후가 비빈 숫자가 적다며 품계를 올렸다[7] 흔상재와 그 시녀를 괴롭힌 것이 알려져 강등[8] 친자확인사건[9] 애당초 드라마에서 황제에게 만군기 출신의 후궁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기귀인이 입궁하기 전에는 부찰귀인순상재가 있었는데 부찰귀인은 견환에 의해 미쳐버렸고, 순상재는 화비 때문에 죽었다.[10] 상재 중에서는 견환이 처음부터 완(莞)이라는 봉호를 받고 시작했고, 답응 중에서는 채빈이 처음부터 영(瑛)이라는 봉호를 받고 시작했다.[11] 후궁견환전은 보통 비중이 없는 시녀라고 할 지라도 이름을 붙여주는 편인데 기귀인의 시녀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12] 원 대사는 "완빈도 물러날 때가 되었지. 이제는 우리 만군기가 총애를 얻자꾸나." 이런 소리이다.[13] 견환은 아버지로부터 "니가 후궁에서 으뜸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후궁에서의 생활은 가문과 직결되는 사항이니 만약 정말로 총애를 받을 자신이 없다면 부디 조용히 살아다오." 라고 교육받았다.[14] 이때 황제가 미장도 함께 빈으로 승격하려 했으나 황후가 막았다.[15] 목걸이에서 좋은 향이 난다며 황후와의 눈빛 교환을 했다.[16] 여태껏 한번도 릉용을 봐준 적 없었으면서 황후가 릉용을 중시하자 '''"안빈, 너처럼 천한 것을 그동안 봐줬으면 많이 참았다."''' 라는 멘트를 날리며 릉용의 성대를 망치는 약을 보내버린다.[17] 기빈이 뻑하면 악몽을 꾼다느니, 마음이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다느니, 저수궁에는 여자들밖에 없어서 음기가 세서 아프다느니 별별 갖은 핑계를 다 대 황제를 자기 침소로 끌고 들어가려고 애썼다. [18] 견환에게는 "걘 원래 그런 애잖아? 그렇게 까부는게 오히려 귀엽지 않니?" 라고 이야기했지만 소윤자가 견환과 4황자 홍력의 명으로 현미죽을 갖다주자 먹기 싫다는 기빈에게 황제는 "희비가 준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먹거라. 만약 이거 다 안 먹으면 니가 아프다는 게 모두 꾀병이고, 거짓말이 되는 것이니 기군망상죄(군주를 기만한 죄다.)에 해당이 된다." 라는 말을 하며 현미죽 먹이기에 적극 동참한다.[19] 견환이 감로사로 출궁한 후 쇄옥헌 시녀들은 다 다른 처소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나이가 차서 출궁했다. [20] 드라마의 극초반부에서 빈 이상이 되어야 한 궁을 다스리고 정전에 기거할 수 있다는 방약상궁의 언급이 나온다. 흔귀인이 나이도 많고 황제를 더 오래 모셨지만 기빈의 지위가 더 높기 때문에 저수궁 통솔권이 기빈에게 있는 것이다.[21] 흔귀인의 시녀 패아가 견환의 시녀였었다는 이유로 기분이 나쁠 때마다 패아를 두들겨 팬 것, 견환이 희비로 환궁한 후에는 견환의 환궁과 임신을 시기해서 패아를 더 격하게 괴롭힌 것 등을 다 이야기하며, "기빈이 지위를 이용해 신첩을 멸시해서 신첩으로서는 제 시녀 하나조차 지켜줄 힘이 없습니다!" 라고 폭로했다.[22] 분아를 두들겨 패고 시녀의 남편을 죽이겠다고 협박해 위증에 억지로 동참시켰다.[23] 원작에서의 기귀인은 몸이 폭우를 견뎌내지 못해서 죽은 것으로 보인다.[24] 황제가 가장 혐오하는게 바로 부정부패이며 작중에서도 이 점이 제대로 묘사된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자라면 설령 자신의 장인격인 후궁의 친정 아비일지라도 엄하게 처벌하는게 바로 황제다. 실제 역사에서의 옹정제도 부정부패를 극도로 혐오해 부정부패를 저지른 신하들을 엄하게 처벌했다.[25] 견환도 이때 폐비되어 출궁했지만 죄를 지어서라기 보단 황제에게 실망해서 자의로 황궁을 나온 거나 다름없다.[26] 황후의 조카인 청앵은 후작인 후궁여의전에서 황후가 되는 등 가문 자체에 큰 타격은 없는 듯하다.[27] 다만 원작에서는 화비의 가문도 관씨 가문과 같은 최후를 맞는다.[28] 죄를 지어 자진해 추서할 수 없는 제비 조차 3황자의 체면을 생각해 시호를 만들어 추서함과 귀비로 추증되었다. 이는 폐출은 면했기에 가능했던 것.[29] 같은 귀인이어도 만주족이 한족보다 높고, 과이가씨는 만주족 상3기이다. 만주족 귀인 중에서도 출신이 좋은 가문이다. 반면 릉용은 귀인이기는 해도 한족이고, 아버지는 중앙 정치와는 관련없는 송양 현승이다.[30] 화비가 "내가 잘 나갈 때는 황후도 날 못 건드렸는데, 내 밑에서 '''사냥개 노릇'''이나 하던 조귀인을 왜 신경 써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다가 결국에 자기 사냥개에게 물려 죽은 것과 "평소에 그렇게나 얌전하던 흔귀인이 내 흉을 보다니! '''기르던 개'''가 주인을 문 격이잖아?!" 라고 했다가 흔귀인 덕분에 귀인 강등+교호관 연금을 받은 것을 보면, 두 사람의 행보가 약간 비슷하긴 하다. 자기가 개 취급한 사람들에게 반격을 당하고 드라마에서 아웃당했으니 말이다.[31] 이런 점에서 기귀인은 황제와 아주 닮았다.[32] "안 그래도 견환이 임신해서 환궁한거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는데 왜 같은 편끼리 치고박고 난리야! 써먹을 데도 없는 년들아!" 이라고 욕먹었다.[33]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배신당해 첩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고 아버지의 정실부인(순원황후의 모친)은 그런 어머니와 자신을 학대했다. 그리고 태후의 눈에 들어 왕부로 시집가 적복진 자리에 오르나 했더니만 계략에 의해 적복진 자리를 빼앗겨 자신이 낳은 아이까지 서출로 살아야만 했다. 서출 컴플렉스의 자세한 역사는 오라나랍 의수 항목 참조. [34] 궁 내에서 황후의 서출 컴플렉스는 4황자 홍력의 출생의 사연, 순원황후 관련 발언과 동급으로 금기로 통한다.[35] 참고로 작품 내에서 황후의 서출 컴플렉스를 건드린 인물들은 모두 최후가 곱지 못하다. 순원황후, 화비, 기귀인 등... 물론 순원황후는 직접 건드린 것이 아니라 순원황후의 어머니가 건드린 거였지만 그 서출 컴플렉스 때문에 언니마저도 죽여버렸는데 하물며 기귀인은 어떠랴...[36] 단적인 예로 황제는 희귀비리비가 친자매 같은 사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물론 후반에 틀어진 것이지 초반에는 친자매 같은 사이긴 했다.) 또한 안릉용은 절대로 공식석상에서 견환을 직접 까지 않고 항상 쉴드치는 척하면서 깐다. 오만방자한 그 화비조차도 황후에게는 일단 존대를 해주고, 제비에게도 빈정거리고 무시는 해도 귀비에 오르기 전엔 그래도 '제비 언니' 라고 존대해줬다.[37] 애초에 태후가 단정한 것들로 분류하는 후궁이 몇 없긴 하다.[38] 물론 아버지랑 본인이 지은 죄가 꽤 있어서 3대가 망하지는 않아도 약간 망하긴 했을 것이다. 제비네 집안처럼 말이다.[39] 그래서인지 후반부에 집안의 몰락 소식을 듣고 냉궁에서 탈출해 황후에게 도움을 청한다. 물론 황후는 모르는 척 무시해버렸다.[40] 경비의 말에 따르면, 황제도 과이가씨의 잘못을 알고 있었지만, 뿌리를 뽑기 위해 때를 기다리던 것 뿐이라고 한다. 완벽 또한 과군왕이 과이가씨의 죄상을 모으고 있었다는 언급을 했으니 이미 숙청에 걸려든 셈이다.[41] 딱하게 죽은 영귀인이나 황후에게 이용만 당하다 죽은 제비는 심성이 기귀인급 싸가지는 아니지만 좌우지간 목숨 구걸을 했다. [42] 이름은 여영. 육궁대봉 때 복귀빈이 된다.[43] 성은 예씨. 기귀인과 같이 친자확인사건을 터뜨려 견환을 모함하다가 종8품 경의로 강등된다.[44] 이름은 낙임진. 기귀인과 상귀인 가문에게 모함을 당해 집안이 몰락하자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목을 매 자살한다. 육궁대봉 때 추봉되어 소절비가 되었다.[45] 기귀인의 봉호는 길할 기(禥) 자를 쓴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도 무난하고 예쁜 이름이다. [46] 성격, 지식 면에서 현저히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