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 성벽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1. 소개
효공인황후 오아씨. 이름은 성벽. 원작에선 주씨이니 주성벽이 된다. 강희제의 후궁 덕비로 옹정제의 생모. 순원과 의수는 모두 그녀의 표질녀(내종/이종/외종의 오촌 조카딸)이다. 태후로서 후궁에서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만 평소에는 나서는 법 없이 황후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있다. 겉보기엔 너그럽고 공정한 성품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자신의 가문을 위해 표질녀인 황후를 천거했다.[3] 적출인 순원을 며느리로 맞이해야겠지만 순원이 너무 순하여 왕부를 잘 다스릴 것 같지 않아 독한 의수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부찰귀인 유산 사건의 진상 등 황후의 온갖 악행을 알고 있었고 그녀를 선택한 것이 옳은 일이었는가 내내 고민하고 후회했으나 결국 가문을 위해 황후가 절대 내쳐지지 않도록 죽기 직전 친필 서한까지 남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황손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 황후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4황자를 지키기 위해[4] , 그리고 폭주하는 의수를 제동을 걸기 위해 본래대로라면 폐비된 견환이 환궁하는 것을 반대해야겠지만 오히려 지지하게 된다.
죽기 전 황제의 친형제인 14황자 윤제를 구명해줄 것을 애원하지만 황제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숨을 거둔 태후 앞에서 황제가 자장가를 부르며 '''"어마마마는 한 번도 소자를 위해서 이 노래를 불러주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불러주시겠습니까?"'''라며 독백하는 장면은 황제의 외로움을 보여준다. 모자관계가 서먹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융과다의 누이인 효의인황후는 옹정제가 막 태어났을 무렵 아이를 유산했고, 그녀를 아끼는 강희제가 옹정제를 효의인황후에게 줘서 양육시켰다. 효의인황후는 옹정제를 매우 아꼈고 강희제의 눈에 들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옹정이 다음대의 황제가 될 발판을 다졌지만, 8년후에 효의인황후가 죽은 후 다시 덕비에게 돌아왔을때 덕비는 옹정제보다는 동생인 14황자를 더 총애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14황자를 부를 자격도 없었다.''' 74화에서 언급된 바에 의하면, 황제와 태후가 황위를 쟁탈하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살생부에는 이미 14황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권력에 눈이 멀어서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태후 자신이 죽기 직전이 되자 그래도 친아들이 걱정된답시고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실제로 덕비의 편애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로, 옹정제를 다루는 어떤 이야기에서도 덕비가 두 왕자를 차별하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다. 같은 강희제~옹정제 시대를 다룬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에서도 덕비(인수황태후)는 4황자 윤진은 매우 싫어하며 14황자 윤제를 매우 편애한다. 그리고 4황자가 옹정제로 즉위하고 14황자를 비롯한 8황자당을 숙청할때는 아예 대놓고 '''"너 같은 건 아들도 아니다!"''' 라고 폭언을 했을 정도다.
2. 인간관계
2.1. 융과다와의 관계
입궁 전부터 융과다와 친밀한 관계였으며, 입궁 후에도 융과다와 관계를 유지한 모양이다. 옹정제는 태후와 융과다가 서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황후 역시 이 사실을 알고있는 듯하다. 태후도 이를 의식하여 본편 중 가끔 융과다가 알현을 청할 때마다 황제의 기분이 나빠진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절한다. 또 한번은 융과다가 황제에게 태후 좀 뵙겠다고 말하자 황제가 '멀리서 오셨으니 피곤하실 텐데 그냥 쉬시죠?'라는 말을 해서 커트한 적이 있다.
그래도 마음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는지 황제가 연갱요의 숙청을 도모할 때부터 융과다마저 숙청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연갱요 숙청 이후 우려한 대로 융과다에게 황제의 칼끝이 향하자 융과다를 구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황제의 냉담한 반응과 분노를 재차 확인하고는 결국 자신이 직접 융과다에게 독주를 내려 목숨을 거둔다.
사실 그녀와 융과다의 관계는 좀 복잡한데... 오아 성벽은 입궁하기 전부터 융과다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다. 성벽이 사고를 당했을 때 융과다가 성벽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다리에 깊은 부상을 입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헌신하는 관계였던 모양. 그러다 성벽이 후궁 간택에 나가게 되고, 이때 융과다는 황제가 하늘색 옷을 싫어한다며 입으라고 했지만 사실은 황제가 좋아하는 색이었다.[5] 융과다의 누이가 선황의 효의인황후였고, 이에 세력을 늘려주기 위해 융과다가 술수를 부렸던 것. 아이러니하게도 효의인황후는 아들이 없었고 끝까지 살아남아 황태후가 된 것은 덕비였다. 가문을 위해 융과다가 태후를 희생시켰던 것처럼 태후도 황제를 위해 융과다를 희생시킨 것. '''"당신이 내 인생을 망쳤듯이, 내가 당신 인생을 끝냈어요."'''라고 융과다의 시체 앞에서 말하는 장면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융과다를 독살시킨 후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언급이 있는 걸로 보아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원작에선 황제의 숙부인 섭정왕과 내연관계였다. 드라마에선 융과다와 안았다 정도로만 나오는데 원작에선 황제가 "이렇게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던 날, 짐은 장막 뒤에 숨어 있었는데 모비는 왕숙에게 꼭 껴안겨있었고 왕숙의 손이 모비의 옷깃 안에 있었다."라고 말하며 피를 흘렸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황제는 이 일이 굉장한 트라우마가 된 모양인데 당연한 게 모후가 아니라 모비라 칭한 걸 봐선 등극 전에 있었던 일인 모양으로 그렇다면 황제는 12세가 되기 전에 봤다는 얘기가 된다. 후에 후궁의 사통에 크게 노한 것 역시 단순히 배신감을 느낀 것 뿐 아니라 이 일의 영향이 큰 듯. 나중엔 아들을 위해 섭정왕을 독살하는 것도 드라마가 원작을 따라가는 부분.
2.2. 후궁들과의 관계
태후로서 황제와 후궁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극 초반 황제가 수녀 간택을 하기 싫어하는데도 간택을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또한 여답응이 황제의 총애를 믿고 설칠 때 태후가 나서서 직접 봉호를 박탈하며 조지자 여답응을 총애하는 황제마저도 아무 말도 못했다! 그밖에도 황제에게 직접 "내가 보기엔 후궁 누구누구가 단정하니 괜찮아 보인다." 라며 대놓고 밀어주기를 시전하고, 황후가 견환의 환궁을 막으려고 온갖 술수를 동원해 견환이 환궁하면 황후와 태후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만들어내자 그걸 "나랑 황후는 복이 많아서 그딴 거에는 끄떡도 안 하는데?" 라는 말 한 마디로 튕겨내버린다. 게다가 4황자 홍력 독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을 때에는 4황자를 수강궁으로 옮기라 명하며 '''"(내 구역 안에서) 어느 누가 감히 내 손주를 건드는지 보자!"''' 며 으름장을 놓는데, 진짜로 4황자를 수강궁으로 옮긴 후에는 그 누구도 감히 4황자를 건들지 못한다.
화비는 뒤에서는 '''망할 노인네'''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여러 가지 선물을 가져다 바치며 굉장히 잘 보이려고 하는데 정작 태후는 황제의 공신인 연갱요 때문에 좀 배려해줄 뿐, 미장이나 견환을 더 예뻐한다.[6] 화비가 방문했다가 나가자 공기를 맑게 한다면서 단향을 피우라고 지시했을 정도인데[7] '''사실 화비가 쓰는 환의향을 직접 제조하여 화비를 불임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태후다.'''[8] 그나마 화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 예쁘다는 정도.
심미장은 다름 아닌 태후 자신이 직접 간택한 후궁인 만큼 처음부터 예뻐했으며, 미장이 황제에게 학을 뗀 이후부터 자신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기 시작하자 더욱 소중하게 대했다. 총애를 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미장을 위해 황제와 잘해보라고 자리를 만들어주고, 여러 가지 선물을 주기도 하고, 미장이 황후에게 밉보여 진급누락했을 때에는 태후 직권으로 품계를 올려주었으며, 미장이 딸을 낳으면 아이 이름은 자신이 붙여주고 싶노라 한 적도 있다.[9]
견환은 원래 순원을 닮은 걸 마뜩찮아한데다 화비가 미리 견환에 대한 험담을 해서 꺼려했는데, 견환이 강단이 있고 황제를 잘 보필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자 아끼기 시작한다. 다만 견환이 정치에 참견하는 것은 매우 싫어해 여러 번 타일렀으나[10] 황제와 견환 모두 태후 앞에서만 예예한다.
재주로 황제를 섬기는 안릉용이나 미색으로 황제를 섬기는 기귀인 같은 후궁들은 '''단정치 못한 것들'''로 분류하며 매우 싫어한다. 일찍이 밤중에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여답응의 봉호를 박탈한 적도 있고[11] 황제가 중병에 걸려 쓰러졌을 때 간호하는 비빈들 중에서 이런 부류의 후궁들의 명단을 단호하게 빼버렸을 정도였다.
좋아하는 후궁 스타일은 '''단정한''' 스타일이다. 예를 들자면 심미장, 견환, 단비, 경빈처럼 학식이 좀 있고 이치에 맞는 생각을 하는 후궁을 좋아한다.[12] 허나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총애를 얻으려고 빙희를 배운다던가, 갖은 술수로 황제를 빼돌려 자기 처소로 유인한다던가, 권력을 휘두르며 궁 내외를 시끄럽게 만드는 무개념 후궁들을 몹시 싫어한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화비, 여빈, 안릉용, 기귀인, 하상재, 여답응 등이 있다.
3. 실제 역사 이야기
드라마이고 역사왜곡이 심한 후궁견환전답게 이 인물도 왜곡이 들어가있는데 실제 역사에서의 옹정제의 생모인 인수황태후[13] 는 '''옹정제 즉위 원년에 죽어 강희제와 합장했다.''' 이미 즉위 원년이 한참 지났을 이 드라마의 시대 설정에서는 죽어서 등장하지도 않아야 할 사람이 나온 셈이다. 다만, 모후와의 불화로 인한 어린 시절의 불행, 모후와 외삼촌(격)의 불륜을 지켜 본 이후 여성을 믿지 못하게 된 옹정제의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듯하다.
또한 인수황태후의 성씨는 오아(烏雅)씨로 오라나랍(烏喇那拉)씨가 아니다. 다만 이 부분은 조금 애매한 것이, 분명히 태후와 황후의 회동 중에 자신은 '오아'씨라고 밝히는 장면이 있다. 극중 설정만 가지고 보자면 오라나랍씨와 오아씨가 같은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일종의 분파 관계에 있기 때문에 진짜 친척관계가 아님에도 서로 고모-조카 하며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오라나랍씨와 오아씨는 역사적으로 그런 관계가 전혀 없다.''' 그런데 정말 진짜 친척관계가 아니라면 굳이 황후의 악행까지 눈감아주며 오라나랍씨 가문을 비호하는 건 의문. 굳이 극중 여러 설정을 짜맞추어보자면, 태후의 어머니가 오라나랍씨 가문의 서녀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순원과 의수의 조부에게 서출 누이가 있었고, 그녀가 오아씨 가문에 시집가서 태후를 낳았다고 치면, 태후는 순원&의수의 부친에게는 고종사촌이 되고 순원과 의수에게는 내종고모가 된다. 또 오라나랍씨는 태후에게 있어 외가가 되니, 오라나랍씨를 그렇게까지 위하는 것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사실은 그냥 원작 설정과 드라마의 역사적 사실을 맞추다가 생긴 설정구멍인지도 모른다.
역사상, 효공인황후가 낳은 아이는 자신의 장남이자 4황자인 옹정제 윤진과 6황자 윤조, 14황자 윤제, 요절한 두 황녀 및 동가 순안안(효의인황후와 융과다의 조카)에 하가한 딸이 있다.
4. 기타
'''독실한 불교 신자라는 묘사가 작중에서 여러 번 나온다.''' 견환에게 불경을 필사해 달라고 한 적이 있고, 화비도 태후가 불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고 외투 안감에 연꽃 자수를 넣어 선물해준 적이 있다. 윤례도 어머니 대신 유람하다가 불상에 불공드렸다고 말한다. 또한 불교 신자인만큼 단향을 즐겨 사용한다.
융과다나 방약상궁이 인증한 바에 따르면 태후가 된 후로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듯. 융과다는 약을 보내고 있지만 태후는 그 약을 먹지 않는다.
최종보스인 황제와 황후에 가려지고 후반부에는 견환과 미장을 지지해줘서 그렇지 사실상 진짜 빌런 중 하나다. 황후가 온갖 음모를 꾸며대는 데에는 태후가 어쨌든 자기를 밀어줄 거라는 확신의 영향도 컸다. 심지어 황후와 똑같은 조카딸인 순원의 죽음조차 방관하고 있었으니... 여답응의 독살 시도, 화비가 견환을 유산시킨 일, 마니옥 사건 같은 예상 밖의 사고나 소소한(?) 음모를 제외하면 굵직한 음모는 모두 이 사람이 직접 관여했던가, 최소한 알고도 방관하거나, 뒤늦게 알더라도 진실을 숨기고 넘어갔다.[14]
가끔 빨강 매니큐어를 칠하고 등장한다. 구단이라고 부른다.
'''태후가 비녀를 후궁에게 선물하면 그 후궁은 온갖 불행을 겪는 징크스가 있다.''' 화비는 태후가 후궁시절 덕비로 봉해졌을 때 효혜장황후가 선물한 봉황비녀를 받았는데 결국 임신도 못하고 자신이 왜 임신을 하지 못했는지 진상을 알게 되어 끝내 자살하였고, 심미장은 임신 축하 선물로 다복과 다산을 상징하는 신선이 새겨진 순금 여의 비녀를 받았으나 거짓 회임 사건으로 연금되었으며, 견환도 첫 임신 당시 앞서 미장에게 주었던 비녀를 보석으로 상감해 수리한 것을 임신 축하 선물로 받았으나 그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사실 심미장과 견환이 받은 비녀는 태후가 후궁 시절 14황자 윤제를 임신하고 있을 때 꽂았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태후 본인도 각별히 아꼈던 아들인 14황자 윤제와 생이별하고 죽을 때까지 아들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게 되었다.
원작에선 현청의 양모이다.[15]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5화에서 근석은 "17왕야는 폐하와 같은 어머니는 아니나 태후께서 키워 주셨죠."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원래 교서여사(校書女史)였다.[16] 그러다가 황제의 승은을 입고 황제 현릉을 낳았다. 현릉의 말에 의하면 섭정왕과 불륜관계였다고.[17] 현릉이 황제가 되자 현릉과 합작하여 섭정왕을 죽음으로 내몰았는데 이때 주씨는 고열로 앓아 누웠다.
의수를 현릉의 후궁으로 들인 것도 주씨였고, 유칙이 순원황후가 되게 허락한 것도 그녀다. 의수에겐 "난 궁 안에 널 들인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의수의 만행이 탄로났을 때 "너를 궁으로 들인 게 잘못이다." 라고 고백했다.또한 원작에선 의수가 폐위될 위기에 있을 때 살아있었는데, '''이러다가 의수가 불구가 될 것이라고 견환이 묘사할 정도로 금색 지팡이로 의수를 폭행한다.''' 그런데 의수는 지팡이를 피하지 않고 꿋꿋이 맞았다. 교지를 통해 폐위하지 말라고 했던 드라마와는 달리 원작에서는 직접 주씨를 폐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의수와 순원의 가문이 같음을 상기시킨다. 드라마에서 죽식이 의수가 오라나랍씨이고 태후고 오라나랍씨의 혈족이고 황상이 몸에도 오라나랍씨의 피가 흐른다고 한 것이 원작에서는 태후가 황상에게 황상의 본처도 주씨고, 모후도 주씨고, 황상의 피에도 주씨의 피가 흐른다 말한다.
아들이 청하왕에게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태후도 은근 서태비에게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1] 궁쇄심옥에서 똑같은 역할을 연기했던 배우가 그대로 나왔다![2] 실제 역사에선 오상재→오귀인, 덕귀인→덕빈→덕비[3] 그런데 청나라 때는 고모의 친정 조카딸이 고모가 시집가서 낳은 아들과 혼인하는 일이 실제로 매우 흔했다고 한다. 이름하여 '고모를 따라 시집간다'는 풍습인데, 이는 만주 기인들의 오랜 관습이었다고 한다.[4] 황후가 4황자의 녹두탕에 독을 넣어서 독살하려 했는데, 4황자가 먹기 싫다며 유모에게 먹여 유모가 독살당했다. 그래서 4황자를 수강궁에 지내게 하여 지켜주지만 태후는 '''"애가(哀家)는 이제 오늘 내일 할지 모르는 늙은이인데, 손주를 지켜줄 시간이 얼마 없는 게 한이구나..."''' 라며 세월을 한탄한다.[5] 이게 평생의 한이 되었는지 죽기 직전 혼수상태로 하는 헛소리가 '약속했잖아요... 간택이 끝나면...' 이다.[6] 드라마에서 태후는 특정 후궁을 밀어주는 발언을 특히 많이 하는데, 화비를 밀어줄 때는 "황상께서 이렇게 '''화비를 냉대하면 연갱요와의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혹은 "'''화비는 연갱요의 누이니까''' 특히 신경 좀 쓰고 자주 찾아주세요." 와 같이 정치적인 측면 때문에 밀어주지만 미장과 견환을 밀어줄때는 "내가 보기에는 '''혜빈이 단정하니 참 괜찮아 보이는데~'''" "'''심귀인은 총명'''하고 '''완귀인은 똑똑'''하지요~" 라며 사심을 다해서 밀어준다.[7] 오죽하면 죽식 상궁이 먼저 말을 꺼내어 깠다. 중국어로 질투하다는 식초를 먹는다고 표현하는데, 화비가 왔다가니 신 냄새가 진동을 한다며...[8] 드라마 한정. 원작에서는 현릉과 의수의 합작품이다.[9] 그러나 태후는 죽는 순간까지 미장이 사통으로 아이를 임신한 줄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딸의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미장과 견환이었고.[10] 이 때문에 한 차례 견환을 불러서 크게 꾸짖은 적이 있었다.[11] 여답응이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해져 궁중 법도를 무시하고 오밤중에 시끄럽게 노래를 불러댄 것도 모자라 '''흔상재와 시비가 붙자 자기 윗전인 흔상재를 신형사로 보내버렸다!''' 아무리 여답응의 총애가 한창이라고 한들, 흔상재는 여답응보다 품계도 높고, 입궁도 훨씬 먼저 했으며 결정적으로 출신 자체가 한군기 귀족 출신이다. 명문가 출신 부찰귀인과 세도가 출신 화비에게도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흔상재의 태도나 작중 묘사로 보았을 때 안릉용이나 조귀인처럼 절대 한미하고 힘 없는 집안 출신이 아니다! 여답응도 한군기 소속일 수 있으나 후궁들을 모시는 일을 하는게 아닌 의매원 가지치기 같은 잡일을 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한군기 출신이더라도 만주족의 가노 집안, 즉 한군기 포의 출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리 포의 중에 출세한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극소수임을 보았을 때 '''여답응은 사회적 신분, 집안의 위세, 후궁 품계, 나이 그 어느 것 하나 흔상재보다 위인 게 없는데 황제에게 총애 좀 받는다고 흔상재를 신형사로 보낸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죽을 날을 스스로 앞당기는 미친 짓을 한 거다.[12] 다만 너무 똑똑하면 좋아하지 않는데 드라마 극초반에 미장의 후궁 간택 대면에서 미장은 자기 엄마가 가르쳐준대로 '여칙'과 '여훈'만 읽고 다른 책은 읽지 못했다고 하자 지성미 넘치는 여자를 좋아하는 황제는 순식간에 심기가 불편했지만 태후는 '''"여자는 자수와 바느질이 우선이지. 글은 읽을 줄만 알면 됐다."''' 라며 단번에 합격시켰다.[13] 강희제 시절 덕비, 사후 효공인황후로 추존된다.[14] 직접 관여 : 14황자 사건, 화비의 불임, 단비의 누명 / 방관 : 순원의 죽음 / 진실숨김 : 부찰귀인 유산, 제비의 죽음, 4황자 독살시도, 견환의 대례복 사건[15] 주씨가 서태비에게서 현청을 빼앗아서 길렀다. 서태비는 태후 주씨와 서로 자매의 정이 있다 생각했으나 실상은 주씨에게 낚인 거 였다고 한다.[16] 그래서 문학에 매우 박식하고 후궁일 때 친했던 서태비도 태후에게 문학을 조금 배웠다.[17] 현릉이 친모의 불륜을 폭로하는 상황이 가관이다. 당시 현릉은 4개월 동안 앓아 누워있었는데, 3개월 동안 부른 후궁 중에 왕귀인은 없었다. 견환은 강빈을 데리고 가고 현릉에게 강빈이 왕귀인이 임신한 지 3개월이라고 알려줬다. 현릉은 처음엔 좋아했다가 날짜를 세 보니 친자식이 아니란 걸 알자 충격을 받고 강빈을 때리다가 비가 내리는 데도 창문쪽으로 뛰쳐나갔다. 이를 말리는 견환을 붙잡고 옷을 벗기다 태후와 섭정왕 간의 불륜을 폭로하고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