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언

 


'''后宮甄嬛传 등장인물'''
'''제귀비'''
'''이정언'''
[image]
가운데의 인물.
'''이름'''
'''이정언(李静言)'''[1]
'''배우'''
장아맹
'''민족'''
한족 양백기
'''거주지'''
장춘궁
'''가족관계'''
남편: 옹정제
자녀: 3황자 홍시
'''파벌'''
황후파
'''품계'''
<rowbgcolor#FFFFFF> 격격

측복진

제(齐)비
제귀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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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원작)'''
'''종5품'''
'''종4품'''
'''정4품'''
'''정3품'''
'''종2품'''
'''정2품'''
'''정1품'''
<rowbgcolor#FFFFFF> 탕양제

탕순의

탕용화

각(慤)귀빈

탕소의

각비

공각(恭慤)현비
[23]

1. 소개
2. 작중행적
3. 성격
4. 모성애
5. 작중 역할
5.1. 황제의 동네북
5.2. 황후의 장기말
6. 기타


1. 소개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견환과 같은 한군기 하5기 출신으로, 거주하는 궁은 장춘궁.[3] 황후의 말에 의하면, 본래 왕부에 격격으로 들어왔으나 3황자 홍시를 낳아서 측복진이 되었고, 옹정제 즉위 후 비로 봉해졌다고 한다. 황자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비 중에서는 서열이 이쪽이 가장 낮다.[4] 내무부 통솔권을 지닌 화비보다 제비가 낮은 건 당연하고,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하나 없고 평생 없을 단비보다 제비가 낮다.[5][6] 빈이었다가 비로 올라온, 격격 출신인 경빈도 비의 자리에 오르자 제비보다 앞에 서고, 먼저 호명되며, 내명부 통솔권을 받는 등 더 윗전으로 대우받는다. 희비 견환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고. 만약 '''제비가 아들도 없었으면 얼마나 비참했을지 상상도 안 갈 지경이다.'''
제비의 부친은 종4품 지부 벼슬을 지낸 이씨라고 하는데, 이는 실제 옹정제의 후궁 제비 이씨와 일치한다. 극중에서는 그의 부친 이씨가 뇌물을 받았다가 강희제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된 것으로 나온다.

2. 작중행적


그 하는 일은 아래의 일로 대부분 설명이 된다.
1. 화비와 싸우기 → 연세란 문서 참조.[7]
2. 아들인 홍시 걱정하기 → 이 밑의 "모성애" 참조.
3. 그냥 앉아 있다가 까이기 → 이 밑의 "성격", "작중 역할" 참조.
4. 앞뒤 생각 안하고 저질러 놓고 뒤늦게 후회하기 → 이 밑의 "모성애" 참조.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는 캐릭터다.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고 칭찬을 들은 것도 없으며 극 내내 면박만 듣는, 참으로 일관된 등장인물이다.

3. 성격


유난히 주관이 없고, 팔랑귀인 성격 때문에 화비의 꼼수에 넘어가 괜히 견환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말싸움이 대단한 견환도 이기지 못할 정도였다. 견환이 공적인 자리에서 조귀인의 비위를 맞춰준다고 '온의공주처럼 귀여운 딸아이가 태어나면 좋겠다'고 빈말을 하자, 화비는 그걸 꼬투리 잡아 '견환도, 3황자보다는 온의공주가 낫다고 생각한다'며 비웃고 제비는 견환에게 화를 낸다. 이건 황후도 민망하게 여겼던지, 왜 완빈 따위와 싸워서 구설수에 오르냐고 질책했다.
어느 정도 만만한 상대가 되니, 자기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을 풀기도한다. 부찰귀인의 충동질이 있었다지만 대로에 꿇어 앉히고, 뺨을 치게 만들었다. 그래놓고, 네 편은 아무도 없고 협죽도 사건은 증거도 없으니 입다물고 있으라는 협박질을 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해 놓고도, 견환이 총애를 회복한 후에 부찰귀인을 골로 보낸 것을 보고 쫄았는지, 용서를 받으려고 눈보라치는 날에 쇄옥헌 문앞에 와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견환은 제비는 자식을 위해 그랬던 것이고, 부찰귀인도 미쳐버렸으니 뭘 더 어쩌지 못할 것이라며 용서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제비를 건드리면 그 아들인 3황자까지 연관되어 상황이 복잡해지고 궁중 암투 이상의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견환 입장에서는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처신. 제비가 견환에게 협죽도 떡을 먹이려다 들켰을 때 안릉용과 황후가 견환을 자제시키며 내세운 이유도 3황자였다. (물론 실제 이유는 황후의 이해관계 때문이지만 말이다.)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후궁들을 화비처럼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지만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미묘하게 무시하고 있다. 견환이 자기에게 부딪혔을 때 처음에는 그냥 가려고 했는데, 이것은 견환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그냥 씹고,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한 대사가 "됐으니깐 그냥 가자꾸나. 재수없게시리..."였다. 그리고 이후에 한 대사가 "본궁은 너 따위를 상대할 시간이 없다."였고.
당시 상재였던 안릉용이 공손하게 말을 걸자, 새침하게 귀찮다는 듯이 대꾸한 것도 그렇고. 물론, 그 다음에 협죽도의 독성을 듣자 펄쩍 뛴다. 반면 자기보다 높은 신분에 대해서는 미묘하게 이쪽이 신경쓰는데, 꼭 높은 신분이 아니더라도 위계가 같은(둘 다 봉호를 받았고 둘 다 비의 품계) 화비에게 먼저 인사하는 등(이 점은 황후도 지적하고, 그러지 말라고 한다.) 알아서 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4. 모성애


홍시의 자질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어머니인 만큼 홍시를 자랑스러워하는 모양인데, 황후에게 자애롭다고 덕담을 한 대꾸로서 황후로부터 "3황자의 효심도 깊어서 좋겠군."이라는 말을 듣자 매우 좋아한다. 어찌나 홍시를 끔찍히 생각하면, 선물로 준 손난로도 꼭 들고 다닐 정도다. 반면, 홍시를 까는 말을 들으면 발끈한다.
'''홍시의 앞날에 대해 매우 민감해한다.''' 일단 장자긴 하지만 만주족들은 꼭 장유유서로 후계를 정하지는 않았는데다, 홍시의 능력도 황제가 직접 인증할 정도로 유약했다. 게다가 제비는 나름 비(妃)의 지위에 있긴 하나 한군기 하5기 출신이고 아비가 부정부패를 저지른 죄인이라 친정의 문벌도 대단치 않고 황제의 총애 역시 받지 못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미의 신분 버프도 줄 수가 없다.[8] 그 탓에 황후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홍시가 태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제비가 작중에서 친 2가지 대형사고, 즉 견환에게 보낸 협죽도 과 섭란의에게 준 대추탕 모두 홍시의 앞길이 견환이나 섭란의의 미래의 아이에 의해 막힐까 염려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황후''': 꿇어라.
(제비가 무릎을 꿇는다.)
'''황후''': 네 체면을 생각하여 주위를 물리쳤다. 이 사실이 소문나면 자네는 죽은 목숨이야.
'''제비''': 황후마마,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첩은 잘 모르겠습니다.
'''황후''': 뭐라? 잘 모른다? 완빈에게 준 떡에 대체 뭘 넣었지?
'''제비''': 완빈에게 떡을 준 것은 좋은 뜻이었습니다.
'''황후''': 좋은 뜻? 본궁이 어의에게 물어봤다. 여기에 협죽도 가루를 잔뜩 넣었다면서? 협죽도에는 독이 있어!
'''제비''': 신첩은 몰랐습니다!
'''황후''': (떡이 든 접시를 제비에게 던지며) '''이게 아직도 본궁을 속여?''' 완빈의 처방을 보았는가? 완빈은 계지탕을 먹고 있었어! 참으로 대단하구나! 협죽도에 계지를 합치면 태아를 죽일 수 있어! 무엄하구나! 감히 용종을 노려?
'''제비''': (울먹이며) 신첩이... 신첩이 그만 실수를 하였습니다.
'''황후''': 실수한 거라고? 넌 완빈의 아이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
'''제비''': (황후의 손을 잡으며) 황후마마! 신첩은 이제 3황자 밖에 없사옵니다! 아들의 앞날을 지켜야만 했사옵니다!
'''황후''': 그게 정당한 이유라고 생각되느냐? 완빈이 아들을 낳는다고 한들, 그 어린애가 대체 무슨 위협이 돼?
'''제비''': 신첩은 두렵사옵니다! 신첩은 총애를 잃었고, 폐하는 3황자를 안 좋아하십니다... 3황자가 태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 앞날은 어쩌겠습니까?
'''황후''': (제비의 손을 뿌리치며) 참으로 어리석구나! 이게 정녕 3황자를 돕는 일이라 생각하느냐? 본궁이 일찍 알았으니 망정이지, 행여나 완빈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폐하께서 널 가만 두실 것 같으냐? 폐하는 3황자를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릴 거다! 그러면 3황자는 끝이란 말이다!
'''제비''': 마마... 신첩이 어리석었사옵니다. 순간적으로 그만...
'''황후''': 그랬겠지. 다행히 완빈이 먼저 본궁에게 알려줬기에, 일단은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안 그럼 자네가 여기에 있을 수도 없었겠지?
'''제비''': 완빈도 알고 있습니까?
'''황후''': 물론이지! 폐하께 아뢰려는 것을 본궁이 막았어. 따끔하게 훈계를 한다는 조건으로 그냥 돌려보낼 수 있었다.
'''제비''': 감사합니다, 황후마마. '''하지만 해치진 않았잖습니까? 떡을 먹진 않았잖습니까...?'''
'''황후''': 자넨 이미 완빈을 해치려고 계획을 꾸몄어! '''완빈이 떡을 안 먹고 용종이 무사한 건 완빈이 아니라 자네가 운이 좋아서였던 거야! 3황자에게 어찌 이런 어리석은 어미가 있지?''' 일단은 본궁이 이 소동을 막았지만 완빈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널 엄히 다스려야만 한다. '''앞으로 3황자는 중화궁에 계속 머물지만, 장춘궁에는 갈 수 없을 것이다!'''
'''제비''': 마마!
'''황후''': '''넌 3황자의 생모니까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니 이제부터 3황자는 본궁이 친히 양육하고 장춘궁 출입을 일절 금할 것이다.'''
'''제비''': 아니되옵니다, 마마... 마마! 신첩은 3황자가 없이는 안 됩니다!
'''황후''': 걱정하지 말거라. 천륜을 끊겠다는 것이 아니야. 다만 아들이 보고 싶다면 경인궁으로 와라. 그럼 누가 이 일에 대해서 트집을 잡아도 본궁도 명분이 생기고, 자네도 무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혹시라도 완빈이 폐하께 아뢰기라도 하는 날엔 넌 그날로 영원히 3황자를 볼 수 없을 게야.'''
'''제비''': (아직도 흐느끼면서) 감사합니다, 황후마마...
먼저 1부에서는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견환이 회임을 하자 황후의 암시와 본인의 충성심을 통해 '''협죽도(가루에 독이 들어있다.)로 만든 떡을 자기 시종을 시켜 보내는 초특급 무리수'''를 둔다. 그리고 마침 견환과 같이 있던 안릉용에 의해 이 사실이 들통나고 견환 측은 이 사실을 덮기로 결정하지만, 황후는 견환도 납득이 갈 벌을 줘야 견환이 입을 다물고 있을 거라며 홍시의 양육권을 빼앗아간다. 안릉용 역시 황후의 사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일은 자식이 없던 황후가 양육권을 빼앗으려 의도적으로 꾸민 짓이 분명하다.
그리고 견환이 출궁하고 난 뒤 천한 섭답응(녕귀인)이 총애를 독식하자, 그 몸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에 대한 황제의 사랑이 홍시를 추월할 거라는 황후의 충동질을 받아 섭답응에게 대추탕을 먹여 불임으로 만든다.[9] 근데 이 때 또 자기 시종 취과를 시켜서 보냈다. 어찌보면 참으로 답답할 정도로 머리가 안 돌아간다.
그의 작중 행적은 오로지 홍시의 앞날을 염려한 데에서 시작과 끝을 보았다.
제비의 최후의 첫 걸음은, 홍시를 몰래 만나러 온 데서 시작한 것이다. 제비는 황후에게 양육권을 뺏긴 이후로 자식도 마음놓고 만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지만, 홍시가 훗날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자신 또한 성모황태후가 될 것을 생각해 참고 견디고 있었다.[10] 그러나 견환이 출궁한 후에 무리를 하던 황제가 병석에 눕고, 황후가 간호를 하는 틈에 제비는 홍시를 만나서 자신의 신세를 토로한다. 이에 홍시는 자신이 황제에 오르면 어머니를 황태후로 만들어주겠다고 말하는데 홍시에게 음식을 전하려 온, 황후의 시종인 전추가 이 사실을 듣게 되고, '''황후의 눈에 그게 곱게 보일 리가 당연히 없었다!'''
결국 황후는 제비를 교묘하게 충동질해 녕귀인에게 대추탕을 먹여 불임으로 만든 일을 빌미로 삼아, 황제가 홍시를 볼 때마다 제비의 이 만행을 떠올려 결국 홍시가 태자가 못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쳐 제비를 몰아붙이고, 결국 제비는 자식을 위해 장춘궁에서 비단으로 목을 매어 자진하게 된다. 그래도 이후 67화에서 황제가 살아있는 후궁, 죽은 후궁 모두를 승격하는 장면에서 "그래... 3황자 홍시를 위해서도, 제비만 승격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라는 차원에서 간신히 귀비가 되어서 죽어서나마 잠깐이지만 해피하게 끝나나 '''싶었는데''' 결국 아들 홍시를 위해 희생했지만 홍시의 앞날을 생각하면, 제비는 죽어서도 편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홍시는 제비에게도 효심이 지극했지만, 황후의 아들로 들어간 이후로는 제비에게 했던 것보다 더 효성을 다했고 무엇보다도 황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8황숙과 14황숙의 명예회복을 주장하는 병크를 터트리다가 8황숙의 양아들로 입적된 이후에 황실 족보에서 제명되는'''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5. 작중 역할



5.1. 황제의 동네북


3황자 홍시의 생모로, 황자를 낳았지만 아버지가 황제가 그렇게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는 부정축재로 인해 유배를 갔고 본인 역시 이미 나이가 많이 든 데다, 아들인 홍시마저 어미를 닮아 자질이 떨어지는 탓에 황제의 냉대를 받고 있다. 황자를 낳지 않았으면 비의 자리에 앉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황제 전용 동네북과 같은 인물이다. 황제에게 전혀 총애를 받지 못한다. 황제와 단 둘이서 있는 장면이 딱 한 번밖에 나오지 않으며, 이것도 완귀인 시절의 견환이 자신에게 오는 온갖 견제를 피하기 위해 다른 후궁들에게 가도록 황제를 밀어내 억지로 집어넣은 경우이다. 이 때 면박이나 잔뜩 얻어먹은 후 황제는 다시 쇄옥헌으로 가버린다.
꼭 젊고 예쁜 후궁만이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있는 후궁이라도 황제와 대화를 하거나 편안하게 배려해주는 것으로 총애에 버금가는 존중을 받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제비보다는 훨씬 총명하여, 지적인 여성들을 선호하는 황제와의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에 박대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황제와 단 둘이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심심찮게 목격되지만 제비의 경우엔 대화를 시도하자 황제는 바로 갈궈서 입을 막아버린다.
최종적으로 안릉용견환에게 요즘 황제 폐하가 뜸하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에요. 제비마마는 환궁 후에, 황제 폐하를 단독으로 뵈신 적이 없대요..."라고 말하는 걸로 확인사살이다. 근데 이 확인 사살은 견환이 감로사로 출궁한 후 황제가 쓰러졌을 때 황후가 한 번 더 한다.
총애를 안하는 건 그렇다치고, 사실 뭐든간에 면박에 구박하는 듯한 황제의 태도가 너무 지나치다 싶은 건 사실이다. 드라마 설정상 제비의 아버지는 부정부패 축적으로 유배를 갔는데, 실제 역사에서나 극중에서나 부정부패를 매우 혐오하는 황제의 특성상 그 영향으로 제비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다시피 해 대놓고 문전박대하는 것으로 추정이 된다. 견환의 충고로 제비에게 찾아갔을 때, "왜 자꾸 먹을 것만 내오냐?", "책 읽게, 저리로 좀 비켜!"라는 등 막말을 계속한다. 제비가 3황자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그 얘기는 너무 많이 해서 3황자 귀에 못이 박혔겠다."라고 구박했고. 심지어 제비가 입은 옷을 보면서도 "넌 옛날엔 분홍색 옷이 어울린다고 하더니 지금은 나이에 맞지 않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막상 황후가 분홍색 옷을 입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했다.[11] 당시 제비가 입었던 분홍색 옷도 시종의 말 때문에 제비도 나름 예뻐 보이려 입은 듯한데, 젊었을 땐 이 옷이 제일 예쁘다고 하지 않았냐고 한 발언을 보면, 젊었을 때는 잠깐이래도 총애나 관심을 받았던 걸 알 수 있다.
제비가 황제를 만나러 찾아갔을 때는 바쁘다고 해놓고, 그 자리에서 견환이 오자 바로 들여보내 준다. 오죽하면 유주가 "제비마마 표정이 썩었네요?"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였다. 달을 감상하는 창춘원 연회에서 말 좀 했다고 황제에게 "그 입으로 포도를 먹지 왜 말을 하냐?,그럴거면 포도나 줘라."고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한참 노래로 주가를 올리고 있던 상재 안릉용을 칭찬한 거였다. 그런데 이 말을 한 다음에는 화비한테도 까였다.[12]
심미장의 거짓회임 사건 당시 심미장을 감싸려던 견환을 보고 "완귀인혜귀인과 친하니..."라며 끼어들다가 황제에게 입 닥치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화비 몰락 사건 때 조귀인도 처벌할 것을 제비가 주장하자[13] 황제는 오히려 조귀인을 빈으로 올리고 봉호까지 내려 제비를 심히 뻘쭘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자살했을 때도 황후가 울며불며 한 순간의 실수로 그랬으니 용서해 줄 것을 청했음에도 불구하고[14] 황제는 '''"참으로 독하구나. 자살도 후하다!"'''라고 말하며 일말의 동정도 보여주지 않고, 사후 추존도 해주지 않았다.[15] 만약 제비가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황제는 죽는 것만도 못한 심한 처벌을 내릴 예정이었을 듯하다. 물론 그때는 섭답응을 한창 총애하던 중이어서 더했겠지만. 오죽하면 제비가 죽었을 때도 깨알같이 황제가 "제비가 나를 받든지 십여년..."이라고 하자 황후가 '''21년'''이라고 정정해준다.

5.2. 황후의 장기말


일단 제비는 황후파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홍시를 위해 황후의 장기말로 쓰인 바 있다. 그래서 황후를 매번 무시하는 화비와는 견원지간이지만 같은 황후파인 부찰귀인과는 꽤 친하다.[16] 부찰귀인이 작중에서 두 번 정신줄을 놓는데[17] 2번 다 모두 제비가 부찰귀인에게 병문안을 오는 모습으로 옆에서 등장한다.[18] 그런데 원작에서는 협죽도로 만든 떡을 견환이 아닌 부찰귀인의 모태가 되는 후궁(두패균)에게 보냈으며 그 일로 자살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 황후가 3황자의 양육권을 맡게 된다.
그런데...제비에 아무래도 황후가 질려버렸다. 쓸모없어진 장기말을 계속 가지고 있을 만큼 황후는 착하지도, 너그럽지도 않다. 제비는 멍청해서 안릉용처럼 교활하지도[19]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 기귀인처럼 미모로 황제를 붙들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뇌물을 받아 사사되는 바람에 집안도 다 날아가 부찰귀인처럼 집안이 빵빵해서 황제가 계속 찾아올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고, 유일한 장점이자 필요성은 애가 있다는 점 하나인데 그 아이를 자신이 확보한 시점에서 이미 제비의 필요는 없어졌던 것이다. 안릉용은 황후가 그래도 나름의 방법으로 예뻐해주기는 한다. 안릉용이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고 울며 징징거리자 황후가 방법을 생각해줄 정도의 성의는 보이는데, 제비한테는 가차없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3황자를 볼모로 내세워 제비의 자살을 종용한 것도 황후이다.'''

6. 기타


옹정제후궁인 제비(齊妃) 이씨를 토대로 한 인물이다. 제비 이씨는 종 4품 지부 벼슬을 지낸 이문엽의 딸이었고, 극중 제비 역시 지부 이씨의 딸로 나온다. 실제 제비 이씨는 왕부시절에 들어온 시첩 출신 측복진이자 왕부 시절 옹정에게 시첩으로 들어와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세 명의 왕자, 한 명의 공주를 낳았다. 그리고 측복진이 되었으며 옹정제 즉위 후 옹정제 제위 초기에 제비 칭호를 받았다. 또한 제비 덕에 가문도 나름 출세하여 포의에서 기인으로 대기하였고, 부친도 관직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3황자 홍시가 옹정제의 분노를 사서 총애를 잃어버리고 비(妃)직위만 유지한 채로 간간히 살았다고 한다.[20]
다른 후궁들과는 달리 최소 한 가지 씩 내세울 수 있는 특기가 뭔진 안 나왔지만, 황제가 안 오는 밤 혼자서 주사위를 굴리며 골패[21]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제비는 동물 애호가로 황후와 같이 금붕어를 보면서 "이게 예뻐요. 눈이 볼록해서 귀여워요~" 라고 좋아하던 장면도 있고, 황후가 키우던 고양이 송자도 원래는 제비의 고양이였다.
극중 설정으로는 옹정제를 21년간 모신 걸로 나온다. 순상재 같은 예외도 있지만 보통 16세에서 17세 즈음에 결혼하는 걸 생각해보면 40대에 가까워져가는 나이[22].
총애를 잃은지 오래되어 그런지, 비의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호갑이나 머리장식 등이 수수하고 별볼일 없는 인상을 준다. 황후처럼 장중하지도 않고, 갓 입궁한 젊은 후궁들처럼 수수하면서도 상큼하지도 않고, 옷도 얼마 없다. 병석에 누워 있던 1부의 단비도, 하다못해 집안이 한미한 안릉용만 해도 나올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나오는데 이쪽은 사시사철 저 초록색 옷만 입고 다닌다. 그런데 사실 조귀인도 옷이 별로 없다.
제비의 사후, 장춘궁은 영귀인의 차지가 된다. 그런데 영귀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제비의 아들에게 걸려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장춘궁은 후속작에서는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처소가 된다.
제비의 역할을 맡은 장아맹은 나이가 좀 있긴 하지만 미인이며, 온실초 역의 장효룡의 첫사랑(!)이었다고. 다만 사귀거나 하는 첫사랑이라기보단 동경이나 존경에 좀 가깝지만.

[1] 원작에서는 탕정언이다.[2] 사후 추증[3] 훗날 제비가 죽고 나서 영귀인이 장춘궁에 거주하게 되지만 영귀인도, 장춘궁의 전 주인인 제비의 아들때문에 제비처럼 자결한다. [4] 잠시 봉호를 뺏겨 연비가 된 화비가 가장 낮아진 적이 있긴 했다.[5] 견환 등 새로 간택된 후궁들이 황후와 화비에게 인사를 드릴 때, 비어있는 단비의 의자가 제비보다 상석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단비가 시집왔을 때에는 황후와 같은 측복진이어서 짬밥 때문에 제비보다 우대받는 건 당연하다.[6] 단비는 화비도 인정한 장군 집안의 딸로 대놓고 명문가 출신인 것으로 보이고(명문가 출신이 아니면 황자의 측복진으로 시작하기 매우 어렵다.), 제비는 강희제 때 부친이 뇌물을 받았다가 걸려서 아버지가 유배되는 등, 죄인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도 있어서 대우가 안 좋은 것이다. 당장 안릉용의 아버지인 안비괴가 부정부패를 저질러서 릉용이 어떤 대우를 받은지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7] 1번 빼고는, 모든 싸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항상 화비가 제비에게 먼저 시비를 걸었기 때문에''' 생겼다.[8] '''만주족은 어머니의 신분이 곧 자식의 신분이다.''' 어머니가 명문가, 세도가 출신이면 자식들에게도 태어나는 순간 신분 버프가 있지만 어머니가 궁녀 혹은 노비 출신이거나(4황자 홍력, 강희제의 8황자 윤사), 망한 집안 출신이면(3황자 홍시) 버프 그딴 거 없다.[9] 만주족이 장유유서를 따지지 않았던건 사실이지만 갈수록 유교의 영향으로 적자와 장자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답답하고 재능 없는 홍시를 '그래도 내 큰아들인데...' 라며 황제도 봐주고 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섭답응이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엄마인 섭답응의 신분이 너무 심각하게 낮고 가문빨이 없으니 정치적 기반이 없어 등극 가능성이 거의 0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홍시는 좀 멍청하긴 해도 황후가 밀어주고 황제의 장자인데다, 어미인 제비가 망하긴 했어도 신분은 귀족이니 입 다물고 간식이나 먹고 있으면 성모황태후 자리가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판단은 전혀 없이 충동질에 넘어간 것.[10] 황제의 적모(선황의 황후)는 모후황태후가 되고, 황제의 생모는 성모황태후가 된다. 즉, 홍시가 옹정 사후 황제에 등극하면 옹정의 황후 오라나랍씨는 모후황태후가 되고, 홍시의 생모 제비 이씨는 성모황태후가 되는 것.[11] 마시라고 준 걸 다 마시니 또 다른 마실 걸 주고, 책 읽는데 눈치 없이 등불 가리고 서있고, 말 주변은 없지, 기껏 하는 이야기는 아들 이야기 뿐이지, 나이 들었으니 옷도 좀 점잖게 입으라 한 마디 한 걸 가지고 늙어서 싫으냐고 대답하는 등 까일만 하긴 했다. 황제가 너무 오랜만에 와서, 어쩔 줄 몰라하는 등 상당히 반가웠는데다 명색이 아이의 어머니인 만큼, 자기 자식한테도 관심 많고, 더구나 황제는 아들인 홍시를 못마땅해 면박만 주니 조금이라도 해소하고픈 맘이 있었는 듯. 한 에피소드에서는 황제가 오랜만에 방문하자 대번 홍시를 불러와 세 가족이 같이 저녁 먹자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어쩌면 제비는 단란한 가정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12] "폐하는 언제나 신첩을 놀리십니다..."라고 제비가 말하자 화비는 "과연 그럴까요? 요즘 황제 폐하께서는 안상재만 놀리시던데요?"라고 디스한다.[13] 사실 주장이라고 쳐주기도 뭐하다. 황제가 "연씨와 왕래가 있던 모든 궁인들을 조사해!" 라고 하자 "조귀인화비랑 친하게 지냈었어요!" 라며 일렀다.[14] 물론 연기였다. 황후는 제비가 살아있으면 언젠가 3황자 홍시의 양육권을 다시 제비에게 빼앗길지도 모를 거란 생각에 그녀를 제거할 생각 뿐이었다.[15] 그래도 나중에 견환이 안릉용의 비 승격을 견제하기 위해 단비경비 등의 지위를 올리려 할 때 얼결에 도매금으로 묻어가서 이쪽도 추존되어 시호를 받게 된다. 물론 지난 날의 정을 생각해서 용서해준 건 절대 아니고 "제비가 죄를 짓고 자결하기는 했지만 홍시 체면도 생각해줘야죠..." 라는 이유로.[16] 반면 안릉용기귀인은 똑같은 황후파인데도 견원지간이다.[17] 귀신 소동이 일어났을 때와 견환이 인간 돼지 고사를 들려주었을 때.[18] 부찰귀인도 제비와 친하게 생각하는지 견환과 마주쳤을 때 "제비마마와 연극을 보러 가야 한다고요."라고 발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19] 자기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안 것은 안릉용 뿐이었다. 부찰귀인, 제비, 기귀인 모두 깨닫지 못했다.[20] 화비의 모태가 되는 돈숙황귀비 연씨도 제비와 같은 왕부시절 측복진이였으나 돈숙황귀비는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직위 역시 비보다 높은 귀비 직위였으며 사후 황귀비로 추존되었으니 제비의 처지와는 극과 극이였다. 물론 애초에 둘의 총애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제비는 시첩으로 들어왔고 연귀비는 연하령의 서녀 출신이긴 했어도 연하령, 연갱요가 득세하고 있던 시절에 측복진으로 시집왔기 때문이다. 비록 연씨는 부친인 연하령 때부터 포의에서 벗어났지만 옹정제 등극에 큰 공을 세워 자수성가한 포의 출신이었고, 제비의 집안은 그마저도 아니었다. 또한 후궁 내 서열도 왕부격격출신인 견환의 모티브인 희비보다 한단계 아래였다.[21] 서양으로 건너가 도미노(넘어뜨리는 것 말고)의 기원이 되었으며, 마작의 기원이 되기도 한 것. 뼈나 나무로 만든 사각형 패(牌)에 점으로 숫자를 새긴 것이다. 송나라 때 만들어져 조선에도 전해졌다. 물론 패 맞추기 등도 가능한데, 혼자서 주사위를 굴리면서 하고 있었던 걸 보면 아무래도 도박 같다. 실제로도 골패는 주로 도박 용도로 많이 쓰여서 한국의 해방 전 신문에서도 골패 도박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민요도 구전되었다.[22] 허나 실제 역사에서 제비 이씨는 1676년생으로 추정되, 옹정제 등극 당시에 이미 40대였다. 원작을 토대로 역사와 짜맞추다 보니 원래 나이 보다 10살 정도 밑으로 각색한 듯하다. 그도 그럴게 원작을 따라 일찌기 옹친왕부에 시집 외서 총애 받은 게 가상인물인 순원황후로 바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