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란
1. 소개
후궁견환전의 등장인물. 이름은 연세란(年世兰).[11] 후에 태부에까지 봉해지는 연하령의 딸로, 연갱요의 여동생.
나이는 불명이지만, 17세 때 시집왔고 황제가 극중 "화비가 짐을 따른지 언 7,8년이 되었구나."라고 말한 것으로 볼 때 20대 중반 정도로 추정된다. 당시에 여성이 20대 후반이면 그리 젊다고 하긴 어려운 나이인데 화비가 아직 젊다는 건 확실하며 '''4년 전에''' 유산을 했다는 것이나 자기 입으로 "비빈들 중에서 어린 편이 아니다." 라는 언급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종종 '''화비냥냥'''이라는 단어로 불리기도 하는데, 화비마마#s-2라는 뜻이다.
2. 출신
17살에 옹친왕부로 시집와서 그 해에 측복진이 되었고 황제가 즉위하기 전이었던 친왕 시절부터, 황제를 모셨다. 한군기(한족 귀족) 상3기 양황기 출신이며 태후가 인증한 '''세도가 출신'''이다. 그것도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는데다가 군사적 실권을 틀어쥔 대장군 연갱요의 여동생이다.
황자의 측복진 자리에 오른다는 건 귀족 여식들 중에서도 신분이 대단하다는 의미이다. 청나라의 측복진의 위상은 현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첩만큼 낮은 위치가 아니기 때문. 다만 연씨 가문이 포의 출신인 것과 옹정 등극 이후에 연씨 가문이 본격적으로 득세했음을 볼 때 유서깊은 명문가 출신의 대단한 신분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고, 황위 쟁탈을 위해 꼭 필요한 부하인 연갱요의 충성심을 혈연관계를 이용해 붙잡아 놓기 위해서인 듯 하다.
참고로 연씨의 가족들이 옹정 대에 엄청난 권력을 누렸던 것은 맞지만, 사실 따지고 보자면 유서깊고 전통 있는 명문가문은 아니었다. 사실 연씨 집안은 팔기 중 포의(包衣), 즉 만주족의 가노 출신이다.[12]
사실 그의 조상들은 명 왕조에서 벼슬을 지냈지만,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명 말기 청나라의 포로가 되는 바람에 집안이 청나라의 포의로 전락한 것. 그러다 순치제 연간에 집안이 한군 양황기로 편입되고, 강희제 연간에 아버지 연하령이 벼슬에 오르고, 결정적으로 옹정제의 측근이 된 연갱요가 공을 세우고 옹정제의 아낌없는 총애를 받으면서 크게 출세한 것이다. 근데 사실 명 시절에 벼슬을 지낸 걸 감안해 보면 완전 귀족 출신이 아니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리고 극중에서도 이 사실이 언급된다. 연갱요가 너무 오만하고 불경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융과다를, 옹정제가 '''"사실 연갱요는 겨우 포의 출신이잖아요? 반면 외삼촌은 제 친척이시죠. 그러니 외삼촌이 걔를 잘 가르쳐주세요."'''하며 달래는 장면이 나온다.
3. 작중 행적
후궁견환전의 '''1부 최종보스'''이자 자금성의 메가데레&얀데레.
간택 행사를 어레인지하는 역으로 첫 선을 보인다. 황제의 총애와 오라비인 연갱요의 권세를 믿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경비에게 내명부 장부를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황후를 무시하고 내명부를 통솔하고 있다. 그가 통솔하는 것은, 내명부 뿐만 아니라 온실초가 득세하기 전의 내의원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황제는 경빈을 비에 책봉하며 내명부 관리를 배우라고 명령했다. 이에 경비는 황명으로 내명부 관리를 배워야 하는 상황인데, 협조를 하지 않았으니 '''황명까지 씹은 셈'''이다. 알다시피, 황명을 씹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강씨 태의 형제가 화비가 뒤를 밀어주니 출셋길이 열렸다고 좋아하고, 화비가 "내의원은 평안한가?" "화비 마마의 은혜 덕분에~"라는 대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내명부, 내의원 뿐 아니라 황후의 심복이 장(長)으로 임명되기 전의 내무부까지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사촌이 내무부의 수장이다. 이처럼 자금성 구석구석에 그녀의 입김이 닿아 있다.
막강한 권세를 제멋대로 휘두르기에 여답응, 여빈, 조귀인을 위시한 화비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후궁들이 화비를 싫어하며, 심복인 조귀인마저도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화비가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고, 조귀인 스스로도 온의공주의 안위를 위해 화비 옆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화비가 온의공주를 계략에 이용해 먹는 바람에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수틀리면 권력 없는 후궁과 궁녀들을 죽이는 것은 예사로 첫 화에서부터 황후가 보내준 궁녀 복자가 화비의 심기를 건드려 골로 가버렸다. 안 그래도 황후가 보낸 궁녀라 못마땅한데, 눈치없는 황샹이 복자를 칭찬했다. 게다가 매관매직을 하기까지 했으며, 이를 목격한 순상재를 죽게 만들었다. 물론 화비 본인은 송지의 말대로 '''매관매직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돈 받고 오라버니인 연갱요를 만나게 해 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갓 입궁한 견환과 심미장이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을 질투하여 자기가 윗전인 것을 이용해 찍어누르려 한다. 견환과 심미장을 수시로 꼽주고 이간질시키려 하기, 오밤중에 심미장을 불러 불 다 꺼놓고 숫자만 잔뜩 있는 장부 베끼게 하기 등등이다. 그나마 견환은 초반에 병자 코스프레 때문에 잠시 화비의 시선에서 벗어났지만 심미장은 황제의 눈에 들어서 시침도 들었고, 견환만큼 빠르진 않아도 금방 봉호도 받았고, 당시 수녀 간택으로 들어온 후궁들 중에서도 가장 집안이 좋기까지 했으니 바로 화비의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견환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견환네 파벌을 하나를 처리하면 또 다른 누군가가 황제의 시침을 드니 환장해하는 모습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당장 "심미장을 처리했더니 견환이 튀어나오고, 견환도 처리했는데 이제는 안릉용이 튀어나오다니! 모두가 여우처럼 폐하를 홀리는데 '''폐하는 대체 왜 그것들을 총애하는 거야?!"'''와 더불어서 '''"순상재 그 어린 년이 불여시 같이 폐하를 꼬드겼다고?!"''' 등등의 대사만 봐도 아주 잘 알 수 있다.
가문 버프에, 총애 버프에, 사람을 휘어잡는 포스와 상당히 똑똑한 조귀인의 도움으로 후궁에서 안정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며 심미장에게 거짓 회임의 누명을 씌워 연금시키고, 조귀인의 딸 온의공주를 이용해 견환이 공주의 건강에 해를 끼쳤다고 누명을 씌우려다 단비의 방해로 실패하기도 한다. 견환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기에 내명부의 통솔권을 박탈당하는 등 역공을 당했으나 연갱요가 승승장구하여 귀비의 자리까지 오른다.
화비 본인은 황귀비의 자리를 원했기에 귀비로 품계가 올랐다는 말에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제의 애정만 있으면 그게 뭐 대수냐고 넘어간다.'''
그러나 황제와 황후가 자리를 비운 틈에, 회임 중이던 견환에게 트집을 잡아 한여름에 익곤궁 앞마당에 꿇어앉아 있으라고 '''벌을 내렸다가 견환의 아이가 유산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이로 인해 황제는 그에게 크게 분노했다. 안 그래도 손이 귀한 황가의 핏줄을, 죽게 만들었다. 그 전까지 황손들이 세상 빛 한 번 보기도 전에 족족 죽어나가고, 어렵게 태어난 아이는 몹시 어린 나이에 요절하거나, 타고난 능력치가 모자라 차기 황제감으로는 모자라거나, 어미의 신분이 미천해 황제가 꺼리는 상황이었고 공주마저 달랑 조귀인 소생의 온의공주 하나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황실에서는 오매불망 견환 뱃속의 황손이 세상에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계속 자신을 변호하려 했고, 무엇보다 옛날 순원과 측복진의 일[15] 을 거론한 것이 결정타였다. 그러나 순원의 경우는 회임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측복진을 오만방자하다 하여 벌을 주다 일어난 불상사였고, 거기다 순원 본인도 유산한 사실에 대해 상당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화비 본인은 견환이 이상 증세를 호소해도, 거짓이라 생각해 듣지 않았다. 황제는 화비에게 '''사악한 계집'''[16] 이라 폭언을 퍼부을 정도로 분노한다. 그래서 비로 강등되고 봉호를 빼앗겨 연비가 된 뒤, 황제의 허락 없이는 황제를 만날 수 없는 벌이 내려진다.
결국 연갱요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던 황제의 선택으로 봉호를 돌려받지만, 황제에게 냉대받았던 충격이 워낙 컸던지라 이전처럼 마냥 기뻐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황제는 연갱요를 숙청할 결심을 하게 되고, 조귀인은 이전부터 화비가 자신을 막 대한 것과 그의 딸, 온의공주마저 이용한 일로 인해 견환과 손을 잡아 화비의 탄탄했던 지위도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한다.
결국 연갱요가 몰락하고, 조귀인이 모든 죄상을 밝히면서 봉호를 뺏기고 답응으로 강등되었다. 여기서 그냥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면 목숨은 부지하고, 귀인으로 봉해져 여생을 편안히 살 수 있었겠지만… 황제와 태후의 대화에서 "세란은 소자를 오래 따랐고 그 마음만은 진심이니, 궁 안에서 얌전하게 조용히 산다면 나중에 귀인으로 봉해 편히 살게 해 주려 합니다." 라는 언급이 나온다. 그리고 그 이후 바로 태후마마가 "그 성격에 그게 되겠소?"라고 일갈을 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비는 끝까지 견환에 대한 악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연갱요를 몰락시킨 자의 딸인 기귀인이 그를 모욕하기까지 하자 '''울분을 못 이겨 사람을 시켜서 견환과 기귀인의 거처인 쇄옥헌에 불을 붙이지만, 실패'''하고 황제의 명에 의해 42화를 끝으로 냉궁에서, 죽게 된다. 정확히는 불을 붙인 건 성공했지만 기귀인은 그때 궁에 없었고, 이미 눈치채고 있던 견환과, 함께 있던 심미장의 책략으로 방화죄가 부풀려져 밝혀진다.
3.1. 원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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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판 <견환전 서화열>에서의 모습.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드라마판 담당 배우인 장흔을 가장 많이 빼닮았다.
- 아버지는 모용형, 어머니는 황씨. 형제로는 모용세송과 모용세백이 있으며 여동생으로 모용세작이 있다.
- 서거날짜는 건원 15년 음력 12월 28일
- 17세에 입궁했고, 견환이 입궁할 당시 20~21세였다. 사망할 땐 23~24세.
- 황제가 간접적으로 유산, 불임으로 만들었다. 화비가 회임한 날 의수를 찾아가 자신의 뜻을 전하고, 의수는 단비를 이용해 화비에게 홍화를 전달하게 한다. 그 후 의수가 환의향을 제조하고 황제가 화비에게 하사한다.
- 드라마에선 단순히 매관매직했던 장면은 여남왕의 끄나풀들과 내통한 장면이다.
- 죽자마자 귀비로 추존된 드라마와 달리 죽은 후에 바로 추존된 게 아니다. 순이라는 시호만 받았을 뿐 궁녀와 내감이 매장되는 난장강에 안장되었고, 죽은 지 8년 후인 건원 23년 후궁들이 전부 승진할 때 순성귀빈으로 추존되어 비빈원에 묻히게 된다.
- 가문이 망한 후, 여동생 모용세작은 어찌어찌해서 영적작이란 이름으로 신분을 숨긴 채 후궁으로 들어가 견환과 대립하다가 결국 독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애꿎은 맹정한이 당한다. 그러던 중, 완벽은 우연히 세작의 독을 주워 살 수 있었던 맹정한을 독살한다. 그 직후에 신분이 들통나서 세작도 언니처럼 사사되었다.
- 행적은 드라마와 별 차이 없다. 다만 드라마에서 캐릭터가 좀 더 입체적으로 변했다. 견환과 함께 드라마 최고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첫째로, 화비의 황제에 대한 사랑은 드라마에서 더 자세히 묘사된다. 소설에선 일부 장면을 제외하곤 후궁의 실세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묘사되는데, 이것은 소설이 견환의 시점에서만 묘사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심복들과의 관계이다. 소설에서는 화비의 심복들이 화비에게 충성스러운지 알 수 없다. 주녕해는 잡혀가자 바로 불었으며, 숙희는 단비의 첩자였고, 송지는 교씨라고 불릴 뿐 비중이 제로라 충성의 여부는 불명이다. 또한 화비가 심복들에게 잘 대해주는 장면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세 번째로는, 황제의 화비에 대한 태도이다. 소설에서도 황제는 화비에게 감정이 있긴 있었으나 드라마만큼은 아니다. 황제는 화비의 죄가 밝혀지자마자 종 7품 선시로 강등하고 후궁의 감옥이라 할 수 있는 영항으로 보내버렸으며 추존도 죽은 후 한참이 지나서였다. 네 번째로는, 화비의 몰락에 대한 묘사이다. 조귀인이 화비의 죄를 고하자 화비는 패악을 부리다 황후가 여유롭게 황제가 주녕해를 심문하고 있음을 알리자 멘붕하며 억울하다는 듯이 "우물에 빠진 사람한테 돌을 던지고 사람을 궁지로 몰아붙이다니![17] 본궁은 이미 아비와 오라비를 잃었단 말이다..."라고 말하며 초라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황후와의 기싸움에서 밀리자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궁녀가 부축해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곧바로 영항에 들어갔기 때문에 드라마 같이 기귀인을 말로 바르는 장면은 없다.
4. 성격
성격이 꽤나 더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대놓고 악질적이고(그러면서도 태평하고), 심지어 적반하장격으로 따지고 드는 뻔뻔스러운 모습까지 보여준다. 복자 살인사건도 그렇고 견환 유산 사건 당시에도 "본궁이 도대체 뭘 잘못했단 말이냐? 대관절 본궁이 왜 사과를 해야만 하는 것이냐?"라고 끝까지 우긴다. 조귀인이 말리지 않았으면, 계속 그 태도를 유지하여 더 빠르게 파멸했을 것이다. 또한 교만하다. 다른 사람들이 황후에게 인사할 때 보면 동급인 제비나 단비도 무릎을 깊게 꿇는데 화비만 15도 인사를 한다. 질투도 쩔어서, 황제가 견환에게 가자 그 계집을 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질투도 이 정도면 무섭다. 그녀의 질투를 대변하는 대사로 "황제 폐하를 시중드는 여자는 있을 수 있어도 '''본궁과 황제 폐하의 총애를 다투는 여자는 있을 수 없다!'''"라는 게 있다.
다른 등장인물의 평을 보자면, 태후가 말하기를 "화비의 성격은 교만하고, 오빠인 연갱요와 꼭 닮아, 큰일도 해낼 수 있지만 큰 잘못도 저지를 수 있는 성격이지." 라고 한 적이 있다. 황제 역시 연답응으로 강등된 화비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인 기귀인에게, "연답응은 성격이 나쁘니까 상대하지 말거라." 라고 달래면서 이를 인증했다. 조귀인은 "그 불 같은 성미를 누가 감당하겠느냐?"라 평했고, 견환은 "화비가 독하긴 하지만 (생략)"으로 그녀가 독하다고 평했다. 황후 역시 "화귀비의 성격은 자네(완빈)가 잘 알겠지? 그냥 자네가 참게."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 성격은 타고난 것으로, 연갱요가 화비가 궁에서 당연한 예법을 지키며 조심하는 모습을 보고 '''"왜 이리 소심해졌느냐, 세란? 요새 누가 괴롭히는 거냐?"''' 묻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태후 역시 '''"화비는 왕부에서부터 그렇게 멋모르고 설쳐댔었지..."''' 라며 탄식을 했는데 본래부터 태생적으로 대범하고 거리낄 것이 없는 성격일 듯. 게다가 세도가 출신이니 더했을 것이다.
후천적 원인을 살펴보면, 주변 사람 중 제대로 된 사람이 없는 탓도 있다. '''화비 주변 사람을 보면 화비가 제일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연갱요의 황제에 대한 태도는 오만하고 뻔뻔하기로 이름 높은 화비도 겁에 질리게 할 정도이고,[18] 당장 화비에게 매관매직을 권한 것은 직속시종인 송지이며[19] 여빈은 화비보다 더 말을 가릴 줄 모르고, 조귀인은 배신을 때렸고, 여답응은 화비만큼 집안과 신분이 좋지도 않은데 오만하게 굴다가 총애를 잃고 사망하게 되었다.
그나마 화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 같은 주녕해는, 정말 위기가 닥칠 때까지 그냥 내버려둔다. 여빈도 성질머리가 화비 같아서 시종일관 막말을 하다가 짜증이 치밀어오른 화비한테 "자네는 말 좀 안 하면 벙어리가 되기라도 하는 겐가?"(=더 이상 나불거리면 말을 못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그나마 단 한 사람, 단비가 그에게 잘해주었던 적이 있었지만 유산 사건으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화비가 단비의 거처로 찾아가 그를 원망하며 '''"다들 나와 대적했지만 너만은 나와 사이가 좋았다."'''고 말하는 걸로 봐선 왕부 때부터 이미 저 모양 저 꼴로 살아왔던 것이다.
매우 불같은 성격이며 또한 단순무식하다. 근석도 화비의 성격이 급하다고 한 적이 있다. 황제가 평하길 화비는 승부욕이 강해 절대 포기 안 한다고 했다. 그만큼 화비는 상당히 감정적이기에, 치밀하다고 할 수 있는 성격은 절대 아니다. 그런 만큼 이 치밀하지 못한 부분은 조귀인이 커버해주고 있다.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니 만큼, 질투가 상당하며, 임신 초기 증상인 입덧을 흉내내려고 일부러 신 음식을 먹고 토하는 장면이나, 기귀인 처소를 방화해버리는 장면이나, 단비에게 패악을 부리는 장면 등등 항상 울분을 이기지 못해 온갖 사고를 치는 모습이 이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단순하여,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송지나 여빈, 조귀인 등이 잘 달래주면 금방 기분을 풀고 얼굴색이 풀어진다. 예를 들어 자식 콤플렉스를 황후가 건드려서 빡쳤을 때 여빈과 송지가 한 마디씩 편을 들어주자[20] 거짓말처럼 마음을 놓는다. 또 황제가 자기를 찾아오는 것이 연갱요 때문일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옆에서 송지가 "폐하께서 마마를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거에요."라고 위로해주니까 곧바로 안심했다. 사가에서 데려온 의사가 곧 아들을 낳으리라 달래자 금방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덤으로, 조귀인과 있을 때 불같이 성질을 부리다가 마음이 풀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의공주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준다.
그런데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 또한 기복이 심하다. 31화에서 안릉용이 귀인으로 승격될 때, 화비가 성질을 내던 중에 온의공주가 무서워하여 울음을 터트리자 "넌(온의공주) 왜 울어? 울어야 할 사람은 나란 말이야! 너는 황제 폐하의 딸이니까 뭘 잘못해도 용서받겠지. 하지만 나는 뭐냐? 마음 내킬 때만 예뻐하고, 수틀리면 눈길도 안 준단 말이다... 그런데 울긴 왜 울어?!" 라고 화내면서 한 대 쥐어박았다. 그런데 갑자기 온의공주를 안아들며 "내게도 아이가 있어서 이렇게 울고 웃는다면 폐하께서 이렇게 모른 척 하지 않았을 거다..." 라면서 펑펑 울었다.
앞뒤 생각 안 하고 말하는 경우도 은근히 있다. 당장 12화에서 온의공주의 돌잔치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오던 중, 황후가 황손을 낳은 조귀인을 칭찬해주면서 "자손이 느는 것은 사직의 복이나 지금은 황손이 몇 없으니 동생들이 폐하의 근심을 덜어주게나." 라고 출산 독려를 하였는데 '''갑자기 화비가 절대 금지어인 4황자 얘기를 꺼내버렸다.'''[21] 이에 제비가 왜 자꾸 금기를 건드냐고 쏘아붙이자 화비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상관 안 해요." 라고 답하였고, 제비는 '''"노비가 낳은 애 주제에 황손은 무슨..."'''이라고 비웃듯이 말했고, 이에 화비는 "4황자의 생모가 아무리 미천해도 폐하의 아들은 맞고, 따라서 4황자는 엄연히 3황자의 친아우라고요."라는 말까지 해버렸다. 결국 이 때문에 두 사람 다 황후에게 "왜 자꾸 그 얘기를 꺼내는가? 금기는 무시한다손 치더라도 폐하의 성심을 무시할 겐가?" 라고 사이좋게 혼났다. 그러나 어느새 대화 주제는 3황자 얘기로 바뀌었고, 화비와 제비는 또다시 티격태격 싸웠다.
4.1. 브라콤
오빠 연갱요와 사이가 좋다. 화비가 심미장 거짓 회임 사건을 들켰을 때 가장 먼저 한 대처가 '''오빠 소환.''' 인 것으로 봐서 화비는 오빠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오빠의 부상을 걱정하거나 하는 장면도 있고, 연갱요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연갱요가 공을 세우자 오빠의 아들들(조카)에게 뭔가 선물해달라고 황제에게 아양을 떨기도 한다. 이때 화비 앞에서는 칭찬하듯 말했지만, 사실 황제는 이 건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 서로 거리를 둬야만 할 내명부와 신료 사이에 말이 오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 없는 소배성을 족치려고 했다.
40화에서 연갱요가 편지에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저녁부터 아침까지"라고 보내는[22] 초대형 사고를 치고, 여태까지 저지른 오만함과 부정부패의 죄목 때문에 탄핵 받을 위기에 처하자 화비는 황제를 향해 '''이마가 찢어져서 피범벅이 될 정도로 머리를 찧으면서 절하며''' 황제에게 연갱요를 구명해달라고 빌었다. 이때는 화비가 연답응으로 강등당했을 시기로, 잘못하다가는 정말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오히려 태의들을 시켜 화비를 데리고 가서 치료하라고 한다. 이 건으로 황제가 화비를 어느 정도는 특별하게 여겼다고 볼 수 있는 것이, 후에 안릉용이 아버지의 부정부패로 비슷하게 석고대죄하며 구명을 청했을 때 황제는 "계속 이렇게 빌면 너의 아빠를 죽여버릴 것이다."하고 잘라 말했다.
이후 자신의 악행이 조귀인에 의해 다 까발려져서 자신 역시 벼랑 끝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빠 걱정만 했다. 황제께서 옛정을 생각해서 오라버니를 벌하시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리고 연갱요가 끝내 자결하게 되자 궁에서 지전을 태우는 것은 중죄임에도 불구하고 오라버니를 위해 지전을 태운다. 송지가 지전을 태우는 건 중죄라고 말리자 "죽일 테면 죽이라지..."라고 대꾸했다.
4.2. 자식 콤플렉스
단비는 "(어머니에게는 죄가 있어도) 아이에게는 죄가 없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화비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유는 화비 자신부터 유산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견환의 유산에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으나, 의외로 정말 '''고의는 아니었다.''' 사람을 죽이고 온의공주에게 마니옥[23] 을 먹이는 등 온갖 막나가는 짓을 서슴지 않았지만, 본인 역시 과거 단비가 가져다준 약을 먹고 유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태아를 잃는 일에 관해서만은 예민했다. 유산의 원인이라 짐작된 단비의 처소를 찾아가 걸핏하면 패악을 부리고 분노를 쏟아냈지만 정작 견환이 유산한 뒤에는 괴로워한다.
또한 소생이 없는 것에 콤플렉스가 있어 항상 자신만만하다가도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아무 말도 못하고, 간간이 딸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이라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24] 부찰귀인과 견환의 회임 때는 오이절임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으며 구역질을 하고, 구역질을 했으니 회임한 거라고 어의를 불러오라 소리치며 '''"부찰귀인도 완귀인도 회임을 하는데, 왜 나만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거야!!!"'''라며 울분을 토하며 시녀들 앞에서 울부짖는다. 그리고 그 직후에 화비는 자신의 아기를 유산시켰다고 여기는 단비가 있는 연경전에 쳐들어가서 행패를 부렸다.
자식 콤플렉스가 있긴 해도, 똑같이 애를 가지지 못하는 단비와는 달리 모성애는 제로 수준.[25] 온의공주를 귀여워해주는 것도 황제 앞에서만 그렇고, 온의공주를 이용해 먹으려 익곤궁에 잡아두었을 때는 어린 공주에게 마니옥 가루[26] 와 수면제[27] 를 먹이고, 공주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유모의 젖을 신경써주지 않아[28] 공주가 온종일 울게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이것 때문에 조귀인이 화비를 배신하게 된다. 11화에서 조귀인이 온의공주를 화비에게 맡기기 전, '''"마마께서 은혜를 베푸신 만큼, 온의도 마마께 효를 다할 겁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화비는 온의를 황제의 총애를 회복하기 위한 도구로만 여겼고 끝내 조귀인이 배신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5. 특징
5.1. 천의 얼굴
설정상 '''후궁견환전 최고의 미인'''이다. 방약 상궁이 그녀의 미모를 칭찬하며 그 미모는 군계일학이며 만군기, 한군기, 몽군기를 다 합쳐도 못 따라갈 거라고 말했고, 아랫것들은 항상 화비를 국색이라고 추켜세워준다. 황제가 견환에게 궁궐 안의 수많은 후궁 중에 세 명만 있으면 된다고 할 때 화비가 들어가는데, 그 이유가 '''예뻐서'''였다.[29] 또한 태후 역시 견환에게 화비를 변호하면서 '''"무엇보다 화비는 예쁘잖느냐?"'''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름답다고 봉호로 여를 받은 여빈과 비교해봐도 화비가 월등히 아름답다. 일단 배우인 장흔의 얼굴도 꽤 미인상이지만 아래 나온 것처럼 그 패션이나 악세사리의 위엄도 한몫 단단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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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압권인 점취 가자두. 점취공예(点翠工艺), 즉 물총새의 깃털(点翠, 점취)를 소재로 해 시전하는 공예로 만들어낸 가자두라고 보면 된다.[30] 청아하고 맑은 옥색이 가라앉는 느낌을 주면서 화사하고 떠오르는 느낌의 코랄핑크 옷과 조화를 이루어 미모를 부각시킨다.
최고의 미인일 뿐 아니라 '''최고의 패션리더'''이기도 하여, 작중에서 사치와 낭비를 즐긴다는 설정답게 의상과 장신구가 미친듯이 화려하고 세밀하여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태후나 황후도 "보통 물건이 아니다..."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의 화려함이다. 황제에게 진상된다는 촉금비단을 진상받을 정도.
특히 조귀인의 말에 따르면 강렬하고 밝은 색을 좋아하는 듯하다. 화비가 말하기를, '''"옷은 곧 그 사람을 말하지. 일단 본궁은 꽃처럼 화려한 게 좋아."''' 라고 했다. 화비의 봉호인 화(华, 華)는 '사치하다, 호화롭다, 찬란하다, 눈부시다.'라는 뜻이니 어쩌면 화비의 그런 성향을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매관매직을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후로는 장신구를 내무부가 아니라 궁 밖의 장인들에게 만들게 할 정도.
가자두를 자주 틀어서 가자두 장식이 특히 많다. 가자두 중에서도 옥색 비취와 물총새의 깃털로 만들어지고 봉황이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장식을 얹은 가자두가 특히 압권으로, 화비의 친정에서 데려온 시녀였던 송지조차도 그 가자두를 얹어주며 "이 비취 장식은 화려할 뿐만 아니라 우아하네요~"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대랍시는 몇 번 안 쓰고, 특히 관모는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화장 실력도 뛰어나서, 황제는 화비를 페르시아 먹을 하사할 세 사람(나머지 둘은 황후와 견환이다.) 중 하나로 지목하며 그가 눈썹먹을 받아야 할 이유로 '''"화비는 눈썹과 귀밑머리를 잘 그리니, 당연히 화비에게 줘야겠지?"'''라는 대사를 했다. 실제로 견환은 귀밑머리를 그렸다, 안 그렸다 하는데 화비는 항상 귀밑머리를 그리고 있다. 심지어 파멸이 임박한 상황이었던 냉궁에서도 귀밑머리를 그렸다!
총체적으로 볼 때 타고난 미인상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매력을 잘 살려내는 패션에도 매우 능한 미인이다.
이런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든 것은…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지만, 배우의 표정연기가 넘사벽이었다! 사극의 특징 중 하나가 배우 홀로 얼굴만 클로즈업되어 울거나 웃거나 호통치는 장면들이 많다. 화비의 경우 표정이나 목소리 톤 등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연기 기술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독할 때는 정말 악독하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해 울고 마는 모습이나, 황제의 앞에선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 등 작중에서 가장 다양한 표정들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5.2. 먹방
나라 재정이 어렵거나 말거나 '''그딴 거''' 전혀 신경 안 쓰시고 뭔가를 항상 먹는다. 온갖 값나가는 간식거리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데 그야말로 우걱우걱 다 먹어치운다. 그리고 음식들 중에서도 특히 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내무부 재정을 아끼려고 황후나 심미장이 고심할 때에도, 날이 더워서 입맛도 없는데 고기가 없다고 짜증냈던 적도 있었다. 해황떡 같은 비싼 재료로 만든 간식도 잘 먹는다. 화비가 심미장을 미워했던 이유는 자신만이 누릴 황제의 총애를, 빼앗을 가장 유력한 후궁 중 하나였던 것도 있지만 미장이 내명부 통솔을 담당했던 시기에 미장이 재정 긴축을 하는 바람에, 식비도 같이 줄어버렸기 때문이다.
좀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부찰귀인에 이어 견환이 회임했을 때에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오이절임을 미친 듯이 먹는데 두어 접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물론 결국엔 죄다 토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건 단순히 화나서 먹은 게 아니라, 구역질을 하려고 일부러 먹었다. 신 것을 먹고 토하는 걸 흉내내어 임신한 것처럼 느끼고 싶어서 그랬다. 항상 무자식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화비가 정말로 안타깝게 느껴지는 장면.
뿐만 아니라 화비가 거주하는 익곤궁의, 주방은 어선방보다 맛있게 요리하기로 다른 후궁 사이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안릉용이 말하기를, "익곤궁의 장미떡은 항상 최고 수준이고, 익곤궁의 떡이 제일 맛있어요." 라고 한 적이 있다. 원작을 만화로 만든 서화열에선, 화비 못잖게 식탐이 많고 먹방찍기를 잘 하는 순상재가 언급하기를, 화비의 요리사는 서양 출신이며 요리를 무척 잘 한다고 한다. 황제 역시, 화비 처소의 음식을 확실히 맛있다고 평했으며[31] 최근석도 익곤궁에서 보내온 간식을 보고 어선방 것보다 열 배는 더 예쁘다고 평했다. 사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값나가는 재료는 익곤궁에서 전부 가져가니까.''' 게다가 유자를 송지가 다 가져갔다고 황후가 거주하는 경인궁의 시녀 회춘이 투덜거리는 장면도 있다.
왜 이리 먹을거리에 집착하는지는 불명이지만 견환이 나중에 희귀비로 돌아왔을 때, '''"후궁 간의 암투는 쓰디쓰기에, 후궁들은 단 것을 찾게 되지."''' 라고 한 말이 조금이나마 설명이 될 수 있을 듯하다.
5.3. 지능
사실 화비는 극중에서 별로 똑똑하지 않고 조귀인이 화비의 브레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건 모든 후궁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말싸움에서 화비를 이긴 후궁은 견환과 심미장 정도이고 단비의 경우 압도적인 논리력으로 화비의 입을 다물게 했으나 몸이 매우 약해 화비에게 주먹다짐으로 응수를 받는 케이스. 그 외의 다른 비빈들의 경우 감히 대꾸할 수 없는데,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화비 말에 감히 대꾸를 할 배짱을 지닌 후궁이 없다.''' 기귀인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들은 전부 처참하게 발려서, 되려 화비가 똑똑하게 보일 정도이다. 황후조차도 1부에서는 한창 현모양처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화비에게 이긴 적은 없다. 물론 황후가 일부러 화비가 더 날뛰게 방조를 하는 편이지만 화비가 언제나 황후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때문에, 이기고 싶어하지만 차마 대꾸를 하지 못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 화비에게 대응할 수 있는건 견환이나 심미장처럼 똑똑하고, 자존심도 강하고, 당찬 사람들 뿐이다. 사실, 화비는 '''그냥 대놓고 까버리는데 비해''' 다른 사람들은 감히 그러지 못하고 돌려 말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탓에 다른 후궁들이 하는 말조심을 화비는 조금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금기시되고 있는 4황자 이야기도 화비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전 신경 안 써요."라고 황후 앞에서 비웃은 후 대차게 4황자 얘기를 꺼낸다. 이것만 봐도 화비와 다른 후궁들이 말로 싸우면 웬만하지 않은 이상 다른 후궁들이 안 지는 게 더 이상하다.
후궁의 생리에 대해서는 꽤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함부로 설치는 후궁에 대해 "지금은 성총을 믿고 설치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가 축적되어 결국 총애를 잃게 된다."라고 평하는 부분도 있고, 후궁들끼리의 자매의 정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 '''"자매의 정은 무슨! 자기 세력이 부족하니까 서로 의지하는 것 뿐이지, 다들 웃으면서도 속에는 칼을 품고 있단 말이야."''' 라며 딱 잘라 말한다.
책은 안 읽는다. 누동부를 읽었다고 하니, 황제가 놀랄 정도. 직후에 황제가 '''"넌 책은 안 읽지만 대답은 참 빠르구나."''' 라고 애정을 담아 깐 적도 있었다. 똑똑하다고 칭찬한 건 아니고, 문맥상 자기를 스토킹하는 화비를 비꼰 것이다. 황제는 스토킹을 싫어한다. 여답응과 황후가 스토킹하는 걸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6. 인간관계
6.1. 황제와의 관계
6.1.1. 메가데레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한''' 몇 안 되는 후궁 중 하나.
다른 후궁들은 모두 자신, 혹은 가족의 안위나 부귀영화 등을 위해 황제의 총애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장 악독한 화비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순수하게 황제를 사랑했다'''는 점이 빛난다. "폐하께서 새 사람의 미소에 취하여 옛 사람의 눈물을 보질 못하시구나..." 라며 슬퍼하기는 하였지만 '''화비는 황제가 다른 후궁에게 가더라도 황제를 원망한 적이 단 1번도 없었다.'''
무엇보다 황제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는 '''황제를 황제로 보지 않고 남편으로 보기 때문.''' 다른 후궁들은 황제를 상당히 어렵게 대하는 반면, 화비는 흔히들 부부끼리 할 수 있는 밀당도 하고, 애교도 부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황제가 정무 때문에 오랫동안 자신을 찾지 않자, 기껏 찾아온 황제에게 자는 척을 시전하며 시위하고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장난스럽게 "그럼 제비랑 3황자나 보러가야겠네~" 라고 말하자 "거기 가면 두 번 다시 여긴 못 올줄 아세요!" 라며 앙칼지게 밀당을 시전한다.
화비가 죽음을 앞두고 견환에게도 말했듯이 "왕부의 수많은 여자들은 다들 하나 같이 폐하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난 아니었어!"[32] 이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황제 앞에서 대놓고 '''"딴 년을 만나러 간다면 다시는 제 얼굴 볼 생각하지도 마세요!"'''라고 정색을 했던 것. 물론 황제는 이를 애교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화비에 대한 애정이 있었던 극초반(드라마 기준 2화.) 시기였긴 했지만 말이다. 황제를 이용해 가문이 권력을 얻거나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굽실거리거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다. 오죽하면 화비가 내명부 통솔권을 빼앗겼을 무렵에 연갱요가 승승장구하자 그걸 봐서라도 되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을 때 견환이 너무 연갱요 눈치보는 것 같다고 슬그머니 말해서 없던 일로 만들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화비가 납득했다. 오라비의 공로가 아니라 부부의 정으로 돌려주셔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황제의 여자라는 사실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그가 황제에 대해 지니는 애정을 잘 보여준다. 황제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라든 하려고 애를 쓰며, 황제가 싫어하는 짓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으려 한다. 대표적으로 황궁에서 귀신 소동이 한창 벌어졌을 때, 화비는 "귀신이라고? 음... 황제 폐하께서 미신을 싫어하시니깐... 나도 귀신 같은 거 안 믿어...!"라고 말할 정도로 '''그 이유 자체는 굉장히 단순할지라도 무엇을 생각하든 결론은 황제로 귀결'''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심지어 조귀인이 자기를 고발하는 것을 보고 이성의 끈이 끊겨 미쳐 날뛸 때, 황후가 폭주하는 화비에게 "정신 좀 차리게, 그래도 '''자네는 황제 폐하의 후궁이 아닌가?!'''"라고 말하자, 곧바로 정신줄과 체면을 붙잡는다. 그 전까지는 체통없게 무슨 짓이냐고 꾸짖는 황후에게 "신첩이 불경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이제 와서 한 번 더 한다고 뭐 어떻습니까?"라며 대들 지경이었는데, 폭주하는 그를 제어하는 게 이 말밖엔 없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황제에게는 다른 후궁들 이상으로 애교도 잘 부리고 잘 대해준다. 조귀인의 힘을 빌리든 자신이 직접 손을 쓰든 다른 후궁들에게는 잘도 음모를 꾸며 괴롭히지만, '''황제한테는 아무런 꾀도 부리지 못한다.''' 적어도 황제에 대해서는 순수하게 보이는 게 이런 점도 한 몫한다. 황제와 함께하는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 황제폐하가 어제 두 번씩이나 드신 음식은 멀리 놓고 좋아하는 음식은 가까이 놓고 하는 것이 그가 얼마나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지를, 달리 말하면 그가 황제에게 쏟는 관심을 잘 보여준다. 극 중 황후의 오리탕 이야기로 한 번 더 나오는 것인데, 황궁에서는 황제가 3번 연달아 먹은 음식은 보름동안 다시 상에 올릴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황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한동안 못 먹게 될까봐 걱정한 화비의 배려. 덧붙여 이 장면은 일정의 극적 허용이다. 이런 예법은 황제가 무슨 음식을 좋아해서 자주 먹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독살을 기도하는 자들이 그 음식을 노릴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서, 실제로는 황제가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 만다 다른 사람들이 입에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밥상 시중을 드는 이가 황제가 눈짓으로 지목한 반찬을 황제 앞에 가져다 바치고, 이게 세 번 반복되면 그 음식은 일정 기간 상에 오르지 못하는 식이었다고.
또한 화비는 예쁘게 치장한 자신을 보고 거울 앞에서 "자기 여자가 예쁜 걸 싫어하는 남자가 어딨겠어?"라고, 옹정제를 염두로 한 혼잣말을 한다. 견환을 유산시키고 나서 황제가 익곤궁 앞에 꿇어앉는 벌을 내리자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황제가 다시 예뻐하지 않을까 봐''' 꿋꿋이 꿇어앉다가 끝내 혼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화비가 쓰러졌다는 소식에도 황제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자 화비는 '''"내가 쓰러졌는데도 폐하가 안 오셨어?"''' 라면서 통곡했다.
황제도 그 마음만큼은 알아준다. 태후에게 "화비는 항상 소자에게 진심이었다"라고 말할 정도. 그래서 황제는 화비의 성질이 못된 건 알아도, 그가 답응으로 강등이 되자 "세란에게는 미안한 점도 있고 하니, 얌전히 있으면 귀인으로 봉해 평생 안락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기귀인이나 여답응의 예로 보아, 강등되면 살고 있던 궁에서 쫓겨나는 게 정상인데 화비는 계속 익곤궁에 살게 하는 등의 은혜를 베풀었다. 게다가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화비는 좀 가볍게 처벌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견환이 화비 때문에 첫 아이를 유산했을 때 봉호 박탈과 1계급 강등이라는 벌을 내렸는데 이건 굉장히 가벼운 벌이다. 심미장은 화비가 죽을 줄 알았다고 말했고, 최후반부에 리비 안릉용이 향을 써서 황제를 유혹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유산했기 때문에 봉호 박탈과 답응(4계급 강등)으로 강등시키는 벌을 내린 것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33] 또한 나중에 양빈으로 승진한 조귀인을 그렇게 쉽게 죽인 것도 그렇게 독하니 다른 이를 해칠지 모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화비에게 남아있는 사랑 또한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양빈의 공식적 사인이 무려 화비를 배신한 죄책감'''이다. 이런 점으로 봤을 때, 양빈의 사인은 화비를 죽인 황제의 죄책감을 반영한 것이다.
그렇게 화비의 악행이 모두 드러난 후에 황제는 화비의 처분을 황후에게 일임하라는 명을 내렸음에도, 화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나자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또한 답응이였던 그를 황귀비의 예로 장례식을 올려준 후 돈숙귀비로 추증 및 내명부에 복구해주었다. 물론 다른 후궁들은 그 오만방자한 화비에게 도탑고 엄숙하다는 의미인 돈숙을 준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일제히 공분했다.[34]
화비를 연기한 장흔은 화비의 사랑은 너무너무 사랑한 나머지 '''변태적인''' 편집증적 사랑이라 평했다.
6.1.2. 그러나 황제는…
그러나 여기에는 반전이 있었는데….
"세란에게는 미안한 점도 있고 하니, 얌전히 있으면 귀인으로 봉해 평생 안락하게 살게 해주겠다."라는 황제의 대사에서 "미안한 점"의 정체가 매우 충격적이다. 그 미안한 짓은 바로 유산 및 불임. 그가 유산하고 회임을 하지 못했던 것은 단비는 약을 가져다 준 누명을 쓴 것으로 그의 탓이 아니라, '''환의향에 다량의 사향을 넣도록 황제가 명령'''했기 때문이다. 안릉용의 말에 의하면 일반 사향의 '''10배'''나 되는 위력을 가졌지만 냄새가 사향보다 미약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견환은 큰 충격을 받고, '''"연씨를 막으려다, 4랑과 제 아이가 죽었어요."'''라고 중얼거린다. 또한 황제는 견환에게 '화비는 회임을 못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그때는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견환이 더 묻지는 못했지만, 이것부터가 하나의 암시였다.
환의향은 황제가 선황으로부터 한 덩어리 하사받은 용연향으로 만드는 향으로, 왕부 시절부터 화비에게만 준 향이다. 화비에게만 준다는 점 때문에, 총애를 상징하는 물건임은 당연하고 화비는 이 향을 '''특별한 사랑의 상징'''처럼 생각했는지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실제로 이 향의 실체가 밝혀지기 이전에 이 향은 여러모로 특별한 사랑의 상징처럼 묘사되었다. 1화에서부터 화비의 몸에 밴 환의향 냄새를 맡는 황제가 "짐은 이 향이 참으로 좋구나. 왜냐하면 이 향은 세란, 너에게만 있거든."이란 말을 하면서 꽁냥대기도 했고, 이후 태후가 화비를 달래주며 황제가 화비를 아낀다는 증거로 화비에게만 주는 환의향을 들기도 했다. 화비 역시 조귀인이 환의향에 대해 안릉용에게 설명해줄 때도 굉장히 뻐겼고, 무엇보다 황제가 당분간 익곤궁을 찾지 않자 그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서 "황제의 향기"인 환의향으로 궁을 가득 채우려고 환의향을 더 피우라고 지시했을 정도이다. 그렇게 '''특별한 사랑의 상징'''인데다가 황제가 환의향 냄새가 좋다고 하니, 황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하는 화비는 환의향을 틈만 날 때마다 피워댔다.
그러나 사실 환의향은 사랑의 상징은커녕 오히려 정반대인 정치적 이용의 표시였다. 즉, 황제가 화비의 불임을 적극적으로 추진 및 방조하였고, 심지어 화비가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일부러 유산시킨 것이다. 결국 '''황제는 사랑을 가장한 칼날이라는 가장 비참한 형태로 화비를 배신'''했다.
황제를 순수하게 사랑했던 화비와는 달리 황제는 '''정치적 손익계산을 생각해 연갱요를 컨트롤할 목적'''으로 세란을 총애했으나, '''연씨 가문의 피가 섞인 자식은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총애받는 화비가 아들이라도 낳는 날에는 그의 오빠인 연갱요의 기세가 더욱 등등하여 황제의 권력을 위협할 지경까지 갈 수도 있으므로. 황제에게 화비의 처분을 일임받은 황후는 자진 명령을 내리면서 폐하를 오래 모신 몸이니 시신은 보전해주겠다며 '''친절하게도''' 독약, 밧줄, 비수 중 원하는 방식의 자살을 선택하라고 지시했으나, 화비는 이를 거부하며 황제가 직접 내린 황명이 아니면 죽을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견환이 이 진실을 알려주었을 때, 그렇게나 사랑하고 믿어왔던 황제에 대한 배신감과 슬픔에 울부짖으며 '''"폐하! 저에게 정말 너무하십니다!"'''라는 절규를 끝으로 저 위의 세 방법 중 어느 방법도 아닌, 스스로 벽에 머리를 박아 삶을 끝맺는다.
애초에 황제의 사랑만이 삶의 목적이었던 화비에게 '''그 사랑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기만에 불과했음을 안 순간, 그에게는 이 이상 살 이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6.1.3. 메가데레의 이면, 얀데레?
황제도 세란은 심성은 착하다고 황후 앞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으며, "화귀비는 입은 거칠지만 성정은 착하다."라는 말을 견환에게 했다. 뭐, 그 언급이 세란에게 콩깍지가 씌워서 그런 것이라고 치더라도 황제가 화비의 악행을 보고 "처음 왕부에 왔을 때는 그리도 활달하고 예쁘던 여인이 왜 저리 되었을꼬?"라고 한탄하는 걸 보면 원래는 순수한 메가데레였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얀데레에 가까워졌다.
'''화비가 악독하게 된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이다.''' 즉, 너무나 황제를 사랑했던 탓에 타락하게 된 것이다. 궁이 아니었으면 평범하게 남편과 화기애애하면서 여생을 보냈겠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을 독점할 수 없는 구조인 궁이 그를 타락시켰다. 이를 잘 드러내는 것이 냉궁에서 죽기 직전에 견환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다.
실제로 화비는 이미 훌륭한 얀데레의 경지에 올라 있다. 견환을 보고 그년을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뛴 것이나 질투에 미쳐 심미장을 물에 빠뜨려죽이려고 하고, 역병에 감염시켜 죽이려고 한 것을 보면 화비의 질투는 이미 얀데레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광기성 애정이라는 얀데레의 기본적인 명제와 자신의 행동의 명분을 사랑이라 말하는 얀데레의 특성으로 보면 화비는 얀데레가 맞다. 그것도 얀데레/하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얀데레라 말하기엔 좀 아니다한 점이 몇 개 있어 완전한 얀데레로 분류하기 힘들다.
첫째, 범죄를 저질러도 스토킹 정도로 끝나는 얀데레/소프트면 몰라도 살인, 납치 등의 중범죄를 저지르는 하드 얀데레는 아주 막가파라 일반적으로 한계라는 게 없으나 사랑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는 이 여자에게는 특이하게도 '''한계가 있다.''' 자기의 자식 콤플렉스 때문에, 황후처럼 황손들을 해치는 짓만큼은, 차마 못했던 것이다. 부찰귀인이 회임하고 온갖 유세를 떨어댈 때도, 악담을 쏘아붙이고 뒤에서 이를 갈 뿐, 직접 어떻게 하지는 않았으며 견환 때에도 유산시킬 생각은 없었다. 다만 운 나쁘게 황제와 황후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갈군다는 게 선을 넘어버렸을 뿐... 황후의 얀데레는 황후가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작했다는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흥미로운 구도이다.
둘째, '''꼭 질투 때문에만 악행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엄밀하게 말해 화비가 죽이거나 공격한 사람은 질투로만 죽였다기보다는 복합적인 감정이나 세력다툼에 관련된 사건에 엮인 사람들이다. 복자는 황제가 눈길을 주자 질투한 것도 있지만 황후의 사람인데다 복자가 실수로 화비의 성질을 건드려서 죽였고, 하상재를 불구로 만든 것은 하상재가 대놓고 황후 쪽에 붙는듯한 태도를 보인데다 시건방을 떨다가 그만 화비의 성질을 건드려서였으며, 순상재를 죽인 건 안 그래도 순상재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 벼르고 있었긴 해도 결정적으로는 자신이 저지른 매관매직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심미장과 견환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총애를 다투는 문제만이 아니라 궁궐 내에 화비의 입지를 위협할 만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일을 경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연갱요가 몰락해가는 과정에서 위기를 느끼고 황제에게 자신의 말을 대신 전달할 사람으로 송지를 바치기도 한다. 후에 이 일에 대해 자신의 손으로 황제의 침실에 여자를 밀어넣은 건 처음이라며 가슴아파하긴 하지만..
결국 후궁들의 암투를 사랑과 질투때문이라고 해석하는건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이다. 황제의 총애가 곧 권력으로 직결되는 궁 안에서 사랑싸움은 곧 정치적인 세력다툼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화비가 황제를 사랑한 것은 진심이였지만 '''그의 모든 악행이 결코 사랑 때문만은 아니였다.'''
6.2. 후궁들과의 관계
사실 후궁에서는 그냥 모두까기 인형이었기에, 후궁들과의 관계 = 화비가 어떻게 후궁을 깠냐라고 봐야 한다. 후궁들의 피해 목록이라고 봐도 될 듯.
6.3. 심복들과의 관계
조귀인과 송지가 당하는 것을 보면 전혀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이들에게는 의외로 잘해주는 편'''이다. 일단 송지에게 자신의 이름과 대구를 이루는 '지' 자를 이름으로 내려주었으며,[58] 그가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화비에게 설설 기자 '''"이제부터 널 동생으로 여기겠다."'''고까지 말했다. 게다가 매관매직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도 연갱요가 경성에 와 있을 때 아랫것들에게 평소보다 후한 하사품을 내려주느라 돈이 쪼들린 탓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난리칠 때는 치더라도 기분이 좋거나 필요할 때는 귀한 물건도 척척 하사한다. 안티에이징용 옥 굴리개를 여답응에게, 봉황비녀를 조귀인에게, 빗을 송지에게 준 것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송지나 주녕해 등은 화비가 몰락할 때에도 마지막까지 그녀를 배신하지 않고 죽었다. 화비도 주녕해가 고문을 받을 때 '''"주녕해가 고문에 못 이겨서 본궁을 배신한다고 해도 책망하지 않을 거야..."'''라고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아주 깊다. 심지어 심미장의 시녀 복령이 죽음을 무릅쓰고 거짓 회임 사건을 조작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자 약속대로 가족들에게 큰 돈을 주어 열하 밖으로 이주시켜주기도 했다. 자기 사람들은 둘째치더라도 화비 입장에선 한번 쓰고 버린 말인 복령의 가족들에게도 약속을 지키는 걸 보면, 충성을 다한 아랫사람에게는 나름 책임감을 지키긴 했다. 황후가 최측근을 제외한 나머지들에게 걸핏하면 토사구팽했던 것과는 굉장히 대조적이다.
7. 실제 역사 이야기
옹정제가 매우 총애한 후궁인 돈숙황귀비 연씨(敦肃皇贵妃 年氏)는 순무 연하령의 딸로 연갱요의 이복 누이이다. 옹정제가 옹친왕이었을 때 불과 12~13살의 나이로 측복진이 되었으며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았지만, 4자식들은 유산하거나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그나마 오래 산 아들인 복혜(福惠)도 불과 '''8살'''에 죽었다. 훗날 건륭제가 되는 홍력의 어머니인 효성헌황후 뉴호록씨(견환의 모티브)도 후궁시절에는 자식이 4황자 홍력 하나밖에 없었으며 다른 후궁들도 자식이 적었는데, 연씨는 비록 요절했어도 자식을 4명이나 낳았다는 걸 보면 이 돈숙황귀비 연씨에 대한 옹정제의 총애가 엄청났다는 걸 알 수 있다.
옹정제 즉위 후 바로 귀비 칭호를 받았고 이후 존중의 의미로 황귀비 칭호를 내렸지만, 워낙에 몸이 약한 나머지 강희제의 제사를 지내러 나간 사이 1725년 12월 27일에 불과 서른 안팎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한다. 돈숙황귀비는 그녀가 죽은 후 옹정제가 내려준 시호라고. 옹정제는 연씨가 죽은 이후, 연갱요의 직위를 박탈하고 92가지 죄를 물어 자결시켰지만 다른 형제들은 무사했고, 부친 연하령의 장례는 일등공의 예로 치러졌다. 복혜 역시 옹정제가 무척 사랑해서 어린 나이에 요절하자 친왕의 예로 장례를 치뤘고, 옹정제의 아들 건륭제가 즉위한 후 회친왕(懷親王)으로 추봉하며 부황이 각별히 사랑하셨다고 언급한다. 옹정제의 서재에는 미인도들이 잔뜩 있었다고 하고 하는데 그 모델이 돈숙황귀비로 추측된다.
옹정제가 매우 총애한 후궁이자 집안이 세력가였다는 것, 자식들은 다 단명해 슬하가 없었다는 것, 본인도 젊은 나이에 단명했다는 점에서 소설의 화비 모용씨를 돈숙황귀비 연씨에 끼워맞추고 재창작하여 드라마판 화비가 나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옹정제가 돈숙황귀비를 진심으로 사랑하긴 했어도 전통적인 명문가는 아니라서 그녀의 아들 복혜가 살아있을 때에도 황태자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었다. 사실 황후 오라나랍씨 빼고는 희귀비 뉴호록씨의 가문을 이길 옹정제의 후궁은 없었다. 게다가 가장 아끼는 자식과 후계자를 별개로 치는 경우는 세계사 통틀어서도 꽤 있다.
8. 기타
- 인기가 많은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안티 역시 적다고는 할 수 없다.
-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작중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중 가장 [59] 가진 것이 많은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줄을 몰랐다.
- 1부의 거의 모든 사건의 주모자는 화비였는데 그 모든 사건들이 다 약자고 가진 것 없는 후궁들을 화비가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이유로 괴롭힌 경우다.
- 별 쓸데없는 소리지만 잠옷이 빨강색, 보라색, 연두색 등 매우 다양하다.
- 환궁 후의 견환과 함께 일산과 의선을 쓰는 유이한 후궁이다.
- 화분저를 신고 단독으로 전력질주를 뛰는 비범함을 보여주었다. [60]
- 향을 좋아한다. 그래서 익곤궁의 화비의 방 중앙에는 금으로 된 대형 향로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환의향은 황제가 주는 향이라서 황제 생각날 때면 시도때도 없이 피워대며 좋아하지만 환의향 말고도 그냥 향 전반을 다 좋아하는 듯. 조귀인이 밀합향으로 기분을 달래자 바로 풀어지는 장면도 나온다. 안릉용 왈, 익곤궁의 장미떡이 향이 굉장히 강하다고 하니 자극적이고 센 향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 화비 역할을 담당한 배우인 장흔은 본래는 조귀인 역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직접 제작진을 찾아가 연기를 보여준 뒤 화비 역으로 배역이 교체되었다고. 참고로 배우와 성우가 다른 대부분의 후궁견환전 인물과는 다르게 장흔은 직접 녹음했다. 커리어 내내 주로 조연을 맡아오던 장흔은 본작으로 인기를 얻어 각종 작품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되고 있다.
- 옹정시대를 다룬 드라마 보보경심에서도 연비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연비가 돈숙황귀비 연씨다. 다만 보보경심에서 연비의 비중은 지나가는 사람 1 수준의 분량이다.
- 중국 연극 버전에서 화귀비로 등장하는데 삭제된 황후 대신 후궁들이 자식을 낳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설정이 더해져서 극강 얀데레가 되어버린다.
- 화비 역할을 담당한 배우 장흔은 황제 역의 진건빈처럼 회족 출신 배우다. 그리고 미월전에서 거희 역할을 맡았는데 거희도 화비처럼 불임이고, 자살로 최후를 맞이한다. 다만 모성애가 전혀 없어서 온의공주를 망치던 화비와는 다르게 거희는 양녀인 미월을 진심으로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61]
- 장흔은 화비 캐릭터로 2016년에 스니커즈 광고를 찍었다. 내용이 압권이니 직접 보는 걸 추천. CF 영상
[1] 실제 역사 속 돈숙황귀비의 생몰년, 양력으론 12월 27일. 실제 역사엔 1711년에 옹친왕 측복진이 됐다는 말이 있으나 작중엔 7-8년 전인 17살에 시집 왔단 말이 있다.[2] 강희제 시절 때, 황손을 많이 낳아서 강희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의비가 살던 곳이라 화려하다. 하지만 극중에서 의비는 자식농사를 잘못 짓는 바람에 아들내미인 9황자 윤당이 반역을 하여 폐위당했다. 극중에 등장하는 강희제의 5번째 아들인 항친왕 윤기는 이 의비의 아들이자 9황자 윤당의 친형이다.[3] 사사받기 거의 직전.[4] 안릉용이 말하기를, 원명원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라고 한다.[5] 봉호 박탈, 강등[6] 복위[7] 다시 봉호 박탈, 강등[8] A B 사후 추증[8] 皙은 피부가 희다는 뜻으로 쓰이나 대추나무의 한 종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종은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 화비의 불임을 암시하는 글자.[9] 시호는 죽은 후 받았다.[10] 대봉육궁 때 추존[11] 원작에서는 성이 모용씨. 실제 역사에서 연갱요의 누이 연씨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12] 궁녀들이 대부분 이 포의 출신. 다만 포의는 일반적인 노예개념은 절대 아니었고, 무조건 하층민인 것도 아니었다. 연갱요처럼 포의 출신이었으나 출세한 사람도 많았다. 건륭제의 후궁 숙가황귀비 금가씨도 원래는 포의 소속이었고, 건륭제 때 소설 홍루몽을 쓴 조설근 역시 포의임에도 상당한 부와 권세를 누렸던 집안 출신이었다.[13] 황제 부부가 기우제로 궁을 비운 틈을 타, 회임한 견환을 익곤궁 마당에 꿇어앉힐 때의 장면.[14] 익곤궁 마당에 꿇어앉아 있던 견환이 쓰러지자 황제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쇄옥헌 앞마당에 꿇어앉아 있던 중, 견환이 유산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비가 놀라는 장면이다. 이때 화비가 입은 옷이 화비가 가진 옷 중에서 가장 수수한 옷차림이기도 하다.[15] 왕부 시절, 적복진이었던 순원황후를 측복진 감씨와 묘씨가 불경하게 대하자 참다 못한 순원황후가 두 측복진을 두 시진(약 4시간) 동안 마당에 꿇어앉혔는데, 측복진 중 하나가 유산을 해버렸다.[16] 원문은 賤婦, 毒如蛇蝎 등의 표현인데, 황제의 말투라 약간 격조가 있을 뿐, 사실상 "에라이 독한 년아!" 수준이다.[17] 이 대사는 드라마 판에서도 그대로 한다. 다만 상황상 자신을 고발하는 조귀인을 두들겨팬 다음에 하는 말인데다, '그래 니들이 이렇지 뭐 졸렬한 것들아' 같은 표정과 어조로 하기 때문에 원작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18] 황제의 심복인 소배성에게 반찬을 덜으라고 시키고, 황제가 좋아하는 반찬을 황제보다 먼저 낼름 먹는다. 물론 그걸 본 화비는 아연실색.[19] 화비가 "폐하께서는 매관매직을 싫어하실텐데..." 라고 하자 '''"매관매직이 아니라 좋은 관리를 연장군께 추천하는거죠~"'''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한다. 설령 송지의 말대로 좋은 관리를 추천해준 것 뿐이라 해도 후궁의 정치 참여는 금기이기 때문에 변명거리가 못된다.[20] 송지는 "곤녕궁을 빼면 오직 익곤궁에만 '곤'자가 들어가는데 폐하가 마마를 이만큼 아끼시는 거죠~" 라고 달래줬고, 여빈은 "폐하의 마음 속에 오직 마마 한 분만이 중요하단 거 아시잖아요?" 라고 달래줬다.[21] 4황자는 황제가 친왕 시절에 만취한 상태에서 궁녀 이금계와 동침하여 생긴 아들로 이것을 빌미로 정적인 8황자 윤사에게 공격을 당하여 친왕 작위를 박탈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황제는 4황자를 냉대한 것이다.[22] 실수라고 보기는 너무 컸다. 트집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저 문구를 풀이하자면 朝乾夕惕,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말이지만 夕陽朝乾,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밤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뜻이 된다.[23] 드라마의 묘사로는 어른이 먹으면 괜찮지만 아이가 먹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이걸 먹여서 소동을 일으켜서 황제는 화비에게 온의공주를 조귀인에게 돌려주라는 명을 내린다.[24] 근데 이건 사실이기는 하다. 아이가 한 명도 없는 후궁은 황제가 죽은 후 전부 절로 출가해 평생을 비구니로 살아야 했다. 원래는 순장시키는 것이 법도이나 너무 잔인하다는 이유로 그냥 속세를 떠나 출가하는 것으로 바뀐 것. 아이가 있다면 출가할 필요도 없이 남은 평생을 자녕궁에서 편히 보낼 수 있으며, 조귀인처럼 아이를 핑계로 황제에게 꾸준한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25] 단비는 온의공주의 생일 잔치 때 '''자기가 시집올 때 친정에서 혼수로 가져온 목걸이'''를 걸어주기도 하고, 온의공주가 넘어지려고 하자 '''허약하고 성치도 않은 몸을 날려 온의공주를 구해냈다'''. 자신이 극도로 혐오하는 화비의 수하인 조귀인의 딸임에도 말이다.[26] 극소량이어도 장기간 먹게 되면 죽게 되는데, 견환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지만 단비의 도움으로 모면한다[27] 아기는 수면제를 먹어선 안된다. 유모들이 말렸지만 계속 울어서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는 이유로 먹인다.[28] 유모는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젖 맛이 바뀌어서 온의공주가 화비와 같이 있는 동안 계속 우는 등 불편해한다.[29] 나머지 두 사람은 황후와 견환인데 황후는 현모양처여서, 견환은 똑똑해서였다.[30] 예로부터 동양권에서 물총새의 깃털은 아름다운 푸른색을 지녀서 실제 공예품의 재료로 이용되었다. 서양권에서 모르포 나비가 발견된 이후 모르포 나비의 날개를 소재로 해 장신구를 만든 것과 같은 이치. 그러나 이거 하겠다고 명~청 시대에 물총새를 너무 많이 잡아 현재는 그 동네에서 물총새 개체수가 멸종위기라 한다.[31] 드라마 기준 9화, 35화[32] 이는 견환이 황제에게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물론 후궁이라면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내라면 되지요."라고 말한 것과 묘하게 일맥상통한다.[33] 게다가 이 벌도 가볍게 내린 거다. "아이를 잃었으니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황제가 말한 걸 보면 충분히 자비를 베풀어준 것이다. 물론 릉용은 나중에 헐리우드 여배우 뺨치는 견환의 연기로 견환의 첫 아이의 유산이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들통이 나서 무기한 연금 및 매일 뺨을 맞는 벌을 받는다.[34] 이는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원작을 드라마화하면서 옹정시대에 끼워맞췄고, 모용씨인 화비는 옹정제가 매우 총애한 후궁인 돈숙황귀비 연씨에게 끼워맞췄기 때문이다. 사실 원작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되기는 했다. 순할 순順자를 써서 순선시로 강등되었는데 죽은 후 이를 보고 단비가 모용세란에게 순할 순자가 말이 되냐며 깠다.[35] 완전한 우연은 아니다. 이전 황제와 태후의 대화 속에서 태후가 단비가 가져간 약에도 그녀 몰래 뭔가를 넣었음이 암시된다.[36] 적절한 번역. 원문의 어감을 좀 더 살리면 "이 세란에게 정말 지독하게도 구셨습니다!" 정도.[37] 단비 욕+익곤궁에서 견환이 유산한 일에 대한 변명.[38] 피해 목록은 볼드체로 강조[39] 황후가 분홍 모란 한 송이를 따자 분홍은 빨강에 흰색이 섞인 색이니 빨강이야말로 당당한 본래의 색이기 때문에 빨강은 적출, 분홍은 서출이라며 황후가 서출인 걸 깠다. 거기다가 젊은 사람들은 꽃을 고를 때도 색을 따진다며 황후에게 늙었다고 확인사살은 덤.[40] 설정산이 정인이 있다는 이유로 번리화를 세 번이나 내쫓았지만 다시 찾은 건 번리화가 서량 명문가의 '''적녀'''였기 때문이며 번리화가 서출이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라며 황후를 또 깠다. [41] 설정산과 번리화의 연극을 보며 한 말. "제가 번리화였다면 껍데기랑 사느니 차라리 헤어지고 말겠어요~" '''즉, 나(=화비)는 너(=황후)처럼 사랑받지 못하고 껍데기인 남자(=황제)랑 사느니 헤어지겠다는 뜻이다'''.[42] 연극 메뉴판을 선택할 때 황후보다 빨리 함, 제 2황후 << 황귀비라는 개드립을 칠 땐 아예 박이제길특 황후와 비교하며 총애 없는 황후가 무슨 소용이냐고 깠다. 황후가 처리한 일을 화비가 독단적으로 뜯어고치는 일도 허다하다.[43] 천둥치는 날에 화비에 침소에 머무르던 황제가 갑자기 견환에게 갔는데 이 점을 제비가 비웃었다.[44] 나중에 이 사실을 보고 받은 황후의 말이 가히 압권. '''"불쌍한 것…"''' 근데 그렇다고 바꿔주지도 않았다.[45] 단비가 없었으면 견환은 이걸로 완전히 끝장났을 것이다.[46] 심미장을 방문하려 한다는 함정을 팠다.[47] 새로 간택된 애들 중에 제일 반반하고 집도 잘 살고 품계도 가장 높았다. 화비의 입장에서 볼 땐 미장은 황제와의 총애 경쟁에서 가장 위험한 상대였던 것이다. 게다가 미장은 견환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히 빨리 봉호를 받았으니 위기의식을 안 느낄 수가 없다.[48] 하필 화비는 그 녹색 국화가 황제가 자신에게 주는 거라 생각했다. 옆에서 송지가 설레발을 친 탓도 있지만. 덕분에 송지는 화비 기분 맞춰주려다가 그만 무릎꿇고 셀프 싸대기를 해야만 했다.[49] 덤으로 황제는 심미장에게 내명부의 일을 돕도록 지시했다. 화비는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 황제가 다른 후궁(경비, 심미장)에게 내명부 일을 배우라 지시하면 몹시 싫어한다. 특히 심미장은 근검절약 방침(이 때문에 화비는 다른 후궁들처럼 고기 반찬과 비싼 간식을 못 먹게 되었다.)을 내걸었기 때문에 더욱 싫어한다.[50] 풍약소 문서를 보면 나오지만 젊을 땐 꽤 미인이었다는 설정이다.[51] '''참고로 랭킹 1위는 화비'''인데 화비 말로는 황제는 이 달에만 겨우 7번밖에 후궁에 들르지 않았다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 승은 7번 중에 화비가 3번, 부찰귀인과 심미장이 나란히 2번 입었으니 '''그달에는 황제가 그다지 후궁들을 찾지 않았다는 소리'''가 된다.[52] 참고로 이때 화비의 말이 가관. "황제 폐하께서 만주족과 한족은 이제 하나라고 하셨다. '''그러니 한자를 모르면 안 되겠지? 폐하께서는 언제나 글을 쓸 준비를 하셔야 하니깐, 항상 정성스럽게 먹을 갈아 폐하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여라."''' 만주족 귀족 여성들은 한자 같은 걸 배우지 않아도 편하게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배우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저런 이유를 들며 갈구는듯 하다. [53] 화비 덕분에 승진한 의원들도 단비에게 의사를 보내는 게 어떻냐고 묻자 화비 왈 '''"그따위 천한 것에게 가기만 해보거라. 그럼 그날로 황궁의 의원들은 죄다 직장을 잃을 줄 알아라."'''라고 협박했다.[54] 단비에게 가서 행패부릴 때 울면서 "왕부에서 너만은 내 편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사를 친 적 있다.[55] 안릉용 앞에서 직접 깐 게 아니라 조귀인, 송지 앞에서 깠다.[56]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래 가사가 천박하다고 깠다. 대낮에 사방이 뻥뻥 뚫린 곳에서 사랑 노래를 불렀다며 깐다.[57] 릉용은 자존감이 낮은 것과는 별개로, 자존심이 꽤 강한 편이라 누군가가 자신을 하찮게 여기면 굉장히 분노한다.[58] '지란지교'라는 말에서 따왔다. 화비 이름에 '란'이 들어가니 '지'를 내린 것.[59] 황후와 단비, 견환이 황제를 위해 인내하거나 진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는 다르다.[60] 화분저는 걸을 때도 시녀가 부축해줘야 할 정도로 균형 잡기가 힘들다.[61] 공교롭게도 양녀인 미월의 역할을 맡은 배우가 견환 역의 손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