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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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문화유산채널 문화유산여행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마애여래좌상
榮州 可興洞 磨崖如來三尊像 및 如來坐像. 통일신라시대 초인 7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영주시 지역에서 만들어진 마애여래삼존상 3구 및 여래좌상 1구. 총 4점. 현재 4점 모두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 264-2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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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경북북부권문화정보센터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본존 높이 3.2m.
왼쪽 보살 높이 2.01m.
오른쪽 보살 높이 2.31m.
여래좌상 0.81m.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 후반 경에 경상북도 영주시의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천변의 높고 커다란 바위벽의 가장 높은 곳을 신라인들이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가운데 넓은 면에 본존불을 조각하고, 이어 좌우로 입상의 협시보살을 만들었으며, 그 좌측에 마애여래좌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중 마애여래삼존상 3구는 일제강점기 때 학계에 처음 존재가 보고되었고, 마애여래좌상은 오랜 세월이 지나 2006년에 뒤늦게 발견되었다.
처음 마애여래삼존상이 학계에 보고되었을 때, 이 석조 불상들을 처음 본 학자들은 한국인, 일본인을 떠나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군가가 불상 3구의 양눈을 정으로 쪼아 파낸 상태였던 것이다. 천여년이 지난 오래된 고 문화재를 다른 곳을 놔두고 오직 눈알 부분만 집요하게 파낸 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악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발견 당시 이 세 구의 불상은 눈알이 파헤쳐진 후 산에 버려져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언제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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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들의 조각 수법은 고부조(高浮彫)로 거의 원각(圓刻)에 가깝게 처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수법은 인접한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奉化北枝里 磨崖如來坐像, 국보 제201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불상의 두 눈이 파내어져서 원래 제작 당시 얼굴의 감정을 지금은 느낄 수 없지만 둥글고 풍만한 얼굴임이 틀림없다. 넓은 가슴, 어깨 위로 걸친 왼팔, 배에 댄 오른팔에서 강한 남성적 기질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묵직한 천의(天衣) 묘사로 이 점이 더욱 강조된다. 눈이 부서졌지만 생기 있는 얼굴이나 초기적인 삼곡자세 등에서 새로운 사실적인 경향을 엿보게 하며, 자연암벽을 이용한 연꽃과 꽃, 불꽃무늬 등을 새긴 광배나 연꽃을 높게 돋을새김한 대좌 등은 장중한 불상 특징과 썩 잘 조화되어 더욱 듬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삼존상은 장중한 모습의 고졸한 특징과 새로운 사실적인 싹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신라 통일 기간의 조각경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예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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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 집중호우로 마애석불 발견
이 삼존불의 옆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은 2006년 6월 28일 일어난 집중호우로 삼존상의 좌측 암반이 붕괴하면서 새롭게 발견된 불상이다. 인근 지역에 유존하고 있는 삼국 말에서 통일신라 초의 마애불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며, 특히 얼굴의 표현, 법의의 조각솜씨나 앙련의 연화대좌 형태에서 옆의 마애여래삼존상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거의 같은 시기(650년경)에 제작된 상으로 볼 수 있다.한국어 위키백과 이 마애여래좌상 역시 발견 당시 두 눈이 파내어져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300~1,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 불상 4점으로, 신라시대 당시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석조 공예술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에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榮州 可興里 磨崖三尊佛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8월 28일에 새로 발견된 마애여래좌상 1점이 추가되었고, 최종적으로 2010년 8월 25일에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진 출처 : 문화유산채널 문화유산여행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마애여래좌상
1. 개요
榮州 可興洞 磨崖如來三尊像 및 如來坐像. 통일신라시대 초인 7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영주시 지역에서 만들어진 마애여래삼존상 3구 및 여래좌상 1구. 총 4점. 현재 4점 모두 '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 264-2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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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경북북부권문화정보센터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본존 높이 3.2m.
왼쪽 보살 높이 2.01m.
오른쪽 보살 높이 2.31m.
여래좌상 0.81m.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 후반 경에 경상북도 영주시의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천변의 높고 커다란 바위벽의 가장 높은 곳을 신라인들이 조각하여 만든 것으로, 가운데 넓은 면에 본존불을 조각하고, 이어 좌우로 입상의 협시보살을 만들었으며, 그 좌측에 마애여래좌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이중 마애여래삼존상 3구는 일제강점기 때 학계에 처음 존재가 보고되었고, 마애여래좌상은 오랜 세월이 지나 2006년에 뒤늦게 발견되었다.
처음 마애여래삼존상이 학계에 보고되었을 때, 이 석조 불상들을 처음 본 학자들은 한국인, 일본인을 떠나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군가가 불상 3구의 양눈을 정으로 쪼아 파낸 상태였던 것이다. 천여년이 지난 오래된 고 문화재를 다른 곳을 놔두고 오직 눈알 부분만 집요하게 파낸 모습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악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발견 당시 이 세 구의 불상은 눈알이 파헤쳐진 후 산에 버려져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언제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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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들의 조각 수법은 고부조(高浮彫)로 거의 원각(圓刻)에 가깝게 처리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수법은 인접한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奉化北枝里 磨崖如來坐像, 국보 제201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불상의 두 눈이 파내어져서 원래 제작 당시 얼굴의 감정을 지금은 느낄 수 없지만 둥글고 풍만한 얼굴임이 틀림없다. 넓은 가슴, 어깨 위로 걸친 왼팔, 배에 댄 오른팔에서 강한 남성적 기질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묵직한 천의(天衣) 묘사로 이 점이 더욱 강조된다. 눈이 부서졌지만 생기 있는 얼굴이나 초기적인 삼곡자세 등에서 새로운 사실적인 경향을 엿보게 하며, 자연암벽을 이용한 연꽃과 꽃, 불꽃무늬 등을 새긴 광배나 연꽃을 높게 돋을새김한 대좌 등은 장중한 불상 특징과 썩 잘 조화되어 더욱 듬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삼존상은 장중한 모습의 고졸한 특징과 새로운 사실적인 싹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신라 통일 기간의 조각경향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예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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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 집중호우로 마애석불 발견
이 삼존불의 옆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은 2006년 6월 28일 일어난 집중호우로 삼존상의 좌측 암반이 붕괴하면서 새롭게 발견된 불상이다. 인근 지역에 유존하고 있는 삼국 말에서 통일신라 초의 마애불상과 양식적으로 유사하며, 특히 얼굴의 표현, 법의의 조각솜씨나 앙련의 연화대좌 형태에서 옆의 마애여래삼존상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거의 같은 시기(650년경)에 제작된 상으로 볼 수 있다.한국어 위키백과 이 마애여래좌상 역시 발견 당시 두 눈이 파내어져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300~1,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 불상 4점으로, 신라시대 당시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석조 공예술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에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221호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榮州 可興里 磨崖三尊佛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8월 28일에 새로 발견된 마애여래좌상 1점이 추가되었고, 최종적으로 2010년 8월 25일에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3. 바깥고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 두산백과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 한국어 위키백과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 향토문화전자대전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 및 여래좌상
-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북부 : 영주 가흥동 마애삼존불상
4. 보물 제221호
이 불상은 강가 바위면에 본존불과 그 좌우에 서 있는 보살상을 각각 새긴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다.
본존불은 상당히 큼직한 체구로 장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큼직한 코, 다문 입, 둥글고 살찐 얼굴에서 불상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가슴은 당당하고 양 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옷은 장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하여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를 새긴 광배와 높게 돋을새김한 연꽃무늬의 대좌(臺座) 등은 장중한 불상의 특징과 잘 조화되어 더욱 듬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왼쪽 보살상은 둥글고 원만한 얼굴이다. 가슴이 넓으며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은 배에 대었는데 강한 남성적 기질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 보살상은 왼쪽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으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 등이 다를 뿐이다.
이 마애불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