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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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오세덕(吳世悳)
생몰
1897년 11월 19일 ~ 1986년 10월 20일
출생지
경기도 한성부 안암리(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사망지
강원도 춘천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오세덕은 1897년 11월 19일 서울 안암동에서 태어났고 철원군으로 이주했다. 그는 1919년 3.1 운동이 발발했을 때 강원도 철원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후 그해 8월 강대여, 박건병 등과 함께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을 조직하고 10월 3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정부 성립 축하회 선언서”를 배포하여 제2의 만세시위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애국단 대표로서 박건병과 함께 상하이로 파견되었다.
1919년 11월,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강원도 철원군 조사원에 임명되었다. 1922년에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주비위원회가 조직되는 등 독립운동 선상에 불화가 일어나자 그는 노령(露領)으로 가서 문창범 오창환과 같이 대한국민의회를 조직하는데 협조하였다고 한다. 1923년 봉천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된 후 한성은행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의열단에서 파견된 구여순의 방문을 받고 군자금 모집에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이후 한성은행 각 지점에서 본점으로 연말 송금이 있음을 알고 이를 습격하여 탈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구여순이 사전에 체포되어 이러한 사실이 탄로됨으로써 그도 일경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1923년 2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춘천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6년 10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오세덕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