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

 


'''五賊'''
1. 개요
2. 오적
2.1. 재벌
2.2. 국회의원
2.3. 고급공무원
2.4. 장성
2.5. 장차관
3. 줄거리
4. 특징


1. 개요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럈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겄다

김지하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풍자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1970년대 당시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비리를 해학적으로 풍자하였다. 당연히 시대가 시대였던만큼 그 후폭풍은 엄청나서, 김지하를 필두로 사상계의 편집진들이 줄줄이 고문을 당했으며 결국 사상계는 이 사건을 빌미로 강제로 폐간되었다.

2. 오적



2.1. 재벌


첫째 도둑 나온다
狾䋢(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 파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 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띔에 정보 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 뚫리면 한몫 잡고
千(천)원 工事(공사)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숙수 빰치겄다.


2.2. 국회의원


또 한 놈이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약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舊惡(구악)은 新惡(신악)으로! 改造(개조)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重農(중농)이닷, 貧農(빈농)은 離農(이농)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臥牛式(와우식)으로! 社會淨化(사회정화)닷, 鄭仁淑(정인숙)을, 정인숙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幽靈(유령)들아, 표도둑질 聖戰(성전)에로 총궐기하랏!
孫子(손자)에도 兵不厭邪(병불염사), 治者卽(치자즉) 盜者(도자)요 公約卽(공약즉) 空約(공약)이니
遇昧(우매)국민 그리알고 저리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2.3. 고급공무원


셋째 놈이 나온다
跍礏功無獂(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淸白吏(청백리)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헤끗헤끗, 피둥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 못해 문드러져 汚吏(오리)가 분명쿠나
산같이 높은 책상 바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功(공)은 쥐뿔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請(청)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料亭(요정)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 탈 없다더냐.


2.4. 장성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長猩(장성)놈 재조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 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지을 재목갖다 제집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판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雲雨魚水(운우어수) 攻防戰(공방전)에 兵法(병법)이 神出鬼沒(신출귀몰)


2.5. 장차관


마지막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고여 삐져나와
추접無比(무비) 눈꼽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國事(국사)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 팔려도 증산이닷, 餓死(아사)한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達筆(달필)이다.
추문 듣고 뒤쫓아 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一國(일국)의 재상더러 不正(부정)이 웬 말인가 귀거래사 꿍얼꿍얼, 자네 핸디 몇이더라?


3. 줄거리


판소리의 형태를 계승한 서사시의 일종으로 크게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1. 오적 소개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1]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2]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 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2. 포도대장에게 오적을 체포할 것을 지시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 하늘에 날벼락 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 내려 쏟아져 퍼부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3. 꾀수가 오적으로 오인받아 고문을 받음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 농사로는 밥 못 먹어 돈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넨다.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 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4. 꾀수가 오적들의 거처를 밝힘

꾀수놈 이 말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 국회의원(□獪狋猿), 고급공무원(跍礏功無獂), 장성(長猩), 장차관(瞕矔)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 시합 열고 있오.[3]

5. 오적을 체포하기 위해 포도대장이 출동

오적(五賊) 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뢰 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 기상 이완 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같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 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렷다

6. 포도대장이 매수[4]당해 오적의 주구가 되고 엉뚱한 꾀수가 체포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 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맛보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 두잔 헐레벌떡 석잔 넉잔 (중략)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7. 오적과 포도대장이 벼락을 맞고 급사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4. 특징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다보니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점이지만 오적은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쓱 읽어만 봐도 일반적인 현대시와 다른 몇가지 독특한 점들을 찾아낼 수 있는데
  • 함축적인 운율미가 대부분인 현대시와는 달리 한국 고유의 전통 시가인 가사, 판소리, 타령의 형식을 빌렸다는 점
내용적으로 보자면 이 시는 군부 독재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쓰여졌지만 형식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긴 한국의 고유 시가를 부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연구자들의 견해도 존재한다.
오적 전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화자 본인은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전달자'이다. 아예 구절 중간에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건 구전된 이야기'라고 못박고 있을 정도.
  • 풍자와 조소를 통하여 적극적으로 화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 대표적인 게 한문을 이용한 언어유희.
[image]
이 시에 등장하는 다섯 풍자 대상을 한자로 적은 것.
보면 알겠지만 전부 한자에 '개 견(犬)'과 원숭이 부수가 들어간 한자로 바꾸어 놓았다.
>김지하는 오적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의도적으로 ‘개 견(犬)’을 변(犭)으로 하여 ‘개’를 연상하게 하고 또 ‘원숭이(오랑우탄)’를 뜻하는 단어를 만들어(조어(造語)) 사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재벌의 재(財)는 미친개 제(狾), 국회의원의 회(會)는 간교할[5] 회(獪), 의(義)[6]는 개 으르렁거릴 의(狋), 원(員)은 원숭이 원(猿), 고급 공무원의 원(員)은 돼지 원(獂), 장성의 성(星)은 성성이(오랑우탄) 성(猩), 차관의 차(次)는 개미칠 차(犭差)를 차용하는 식이다(송영순, 2007)
>
> 민플러스, 김지하 <오적> 필화사건 2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 축재는 축재 부정으로! / 근대화닷, 부정 선거는 선거 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

손자(孫子)에도 병불염사(兵不厭邪)[7]

, 치자즉도자(治者卽盜者)[8]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9]이니 [후략]

  • 잦은 의성/의태어 및 비속어 사용.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적은 '새로운 운문 양식을 개척했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 1963년의 10월 19일 고재봉 일가족 살인 사건을 말하는 걸로 보인다. 당시 고재봉은 박모 중령의 공관병이었는데, 물건 하나를 훔쳐 나오다가 식모에게 걸려 7개월의 감옥 살이를 했다. 이에 앙심을 품고 관사로 찾아가 일가족을 모조리 살해했는데 정작 박모 중령이 아니라 당시 관사로 새로 이사를 왔던 이득주 중령 가주와 식모를 죽여버린 것. 체포 후 사형을 선고받고 1년 뒤 집행되었다.[2] 盜跖 혹은 盜蹠. 공자 당시 유명한 도적. 하필 선인으로 유명했던 유하혜라는 동생이 있어 지금까지도 심심하면 두 배로 까인다. 시대 잘못 타고나서 한 번, 형제 잘못 타고나서 한 번. 다만 이름의 한자가 훔칠 도, 발바닥 척(跖) 혹은 밟을 척(蹠)인 것을 근거로 가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3] 보면 알겠지만 해당 단어를 지칭하기 위해 원래 쓰이는 한자 대신에 부수로 개 견(犬)이 들어간 한자들을 집어넣어서 비꼬고 있다. [4] 당연하지만 이건 당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던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통렬한 야유이다.[5] 간사하고 교활할.[6] 국회의원의 의는 본래 의논할 의(議)가 옳다.[7] 병사를 움직여 전쟁을 할 때는 적군을 속이는 것을 싫어해서는 아니 된다.전쟁에서는 모든 방법으로 적군을 속여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뜻[8] 다스리는 자(治者)는 '''도둑놈(盜者)'''이다.[9] 선거 공약(公約)은 '''공염불'''(空約, 직역하면 '텅 빈 공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