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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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대십국시대 민나라의 초대 군주.
2. 상세
왕심지는 862년에 광주(光州) 고시(固始)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이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왕심지는 형인 왕조(王潮)와 함께 당나라 말기의 난리를 피해 복건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근거하였다. 왕조는 896년에 복건 관찰사가 되었고, 왕심지도 복건 관찰부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897), 왕조가 죽고 복건은 무위군 절도로 승격되었으며, 왕심지는 형의 뒤를 이어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무위군 절도사로 인정받았다.
907년에 주전충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을 세운 이후, 왕심지는 909년 후량에 입조하여 민왕으로 책봉되었다. 왕심지는 비록 가난한 집안 배경 때문에 당나라 말에 도적으로 일어났으나, 됨됨이가 검소하였고, 낙후되었던 복건 지역을 개발하여 크게 발전시켰으며, 남해의 교역을 통해 이익을 얻어 민나라에 번영을 가져왔다. 이러한 왕심지의 선정에 이름이 알려진 인사들이 의탁하여 사관하였고, 민나라의 백성들이 그를 개민성왕(開閩聖王)이라 부르며 추앙하였으며, 민나라를 멸망시켰던 남당도 왕심지의 선정을 기념하는 사당을 세웠다.
왕심지는 후당 천성 3년(925년)에 사망하여 충의왕(忠懿王)으로 추시되었으며, 제3대 군주인 왕린이 칭제한 이후 태조 소무효황제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