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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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처일을 그린 삽화)
王處一
(1142 ~ 1217)
1. 개요
2. 사조영웅전의 왕처일


1. 개요


금나라 때의 도사다. 전진교전진칠자 중 한 사람으로 도호는 '''옥양자(玉陽子)''', '''산양자(傘陽子)'''이며 별호는 철각선(鐵脚仙)이다.
산동성 영해 출신으로 우선산에 살고 있을 때 왕중양이 우선산에 왔다는 것을 알고 1168년에 그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으며 문등현(운광동)에 은거하면서 수도했다고 하며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우선파라 불린다.
1197년에는 장종이 조서를 내려 양생지도와 성명지리에 대해서 묻자 청정무위와 내단조화를 위주로 한다면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고 대답한다.

2. 사조영웅전의 왕처일


만 장(丈)이나 되는 심곡에서 한 발로 버티고 서서 하북과 산동 일대의 호걸들을 물리쳤다고 하여 철각선(鐵脚仙)이라는 별호가 있다. 그 별호 그대로 다리 힘이 강해서 선 자리에서 땅에 깊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으로 자기소개를 대신하는 장면이 있다.
무공은 칠자 가운데서도 구처기, 마옥과 함께 가장 강하고, 전진교 내에서 길러낸 직제자들이 융성해서 교 내의 위엄 역시 구처기 다음가는 수준. 제1차 화산논검 당시 왕중양을 수행해 화산까지 따라갔기에 천하오절들의 솜씨를 견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조영웅전에서는 곽정양강이 길거리에서 첫대면하여 맞붙어 싸우는 도중에 등장한다. 왕자인 양강을 돕기 위해 완안열이 초빙한 팽련호 등의 고수들이 개입해 곽정을 해치려 하자 가로막으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전진교 항렬상 구처기의 제자인 양강은 왕처일의 사질 뻘인데, 양강이 길가에서 목염자를 희롱하고 항의한 곽정을 기습하는 등의 행실을 극히 못마땅해한다.
곽정과 함께 조왕부에 초청을 받고 대담하게 찾아가는 간지를 보인다. 완안열이 불러모은 고수들이 여럿 있는 상황이었고 양강의 사부 구처기는 부재중이었기에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뭇 고수들이 솜씨를 보이는 자리에서 기습적으로 양강을 붙잡아 인질로 삼고 무사히 떠나도 좋다는 확언을 받아낸다. 이 와중에 양강의 급소를 제압한 채로 그 자리에서 전원에게 술을 따르는데, 거리가 멀건 가깝건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말로 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심오한 내력을 필요로 하는 기술. 이후 나가는 길에 영지상인과 일장을 겨루어 중상을 입히지만, 본인도 영지상인의 손바닥에 실린 지독한 독기운에 중독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사숙의 중독 사실을 안 양강이 사람을 풀어 근방 약재를 다 거둬가 버려서, 그대로 앓다간 무공을 잃어버릴 위기에까지 빠진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구처기, 마옥과 합류하고 해독을 위한 약재를 손에 넣어 급한 불은 끄게 된다. 이 때의 일로 조왕부에 초빙된 고수들과 전진교가 악연을 맺어, 중추절에 연우루에서 한바탕 대결을 벌이기로 약조하게 된다.
이후 목염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3일 동안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친 이가 홍칠공이라는 사실을 간파한다. 이것이 왕처일의 단독 활약으로는 마지막 장면. 그 뒤로는 전진칠자급의 실력을 논할 때 '''구처기, 마옥 등과 더불어 가장 강했다''' 같은 얘기로만 나올 뿐이고 실질적인 활약은 제로다.
신조협려로 오면 더욱 안습해지는데, 비중은 칠자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데다가 작가가 주자류의 무공실력을 언급하면서 '구처기, 마옥보다는 약하지만 왕처일, 학대통보다는 강하다.' 라고 설명하는 바람에 위상또한 떨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양반의 수제자가 바로 조지경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