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염자
穆念慈
<사조영웅전>의 등장인물.
양철심이 부상을 입었을 때 피해있던 집안의 딸. 집안이 전염병에 걸려 모두 죽었기 때문에 양철심의 양녀가 되었다.
부상을 입고 쓰러진 거지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홍칠공을 만나 소요유 권법을 약간 전수받았기 때문에 양부인 양철심보다도 무공 수위는 더 높았다. 많이 배우지 못한 탓인지 보통보다 좀 나은 애매한 수준의 무공이지만.
양철심과 함께 유랑을 하며 비무초친을 하게 된다. 비무초친에 나선 양강에게 희롱을 당했지만(그 희롱의 내용 중 하나가 '''신발을 빼앗아서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1] ), 외모가 준수하고 때로는 상냥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양강도 그녀의 미모와 태도를 보고 욕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초청하여 조왕부에 데려오고 양철심과 함께 감금한다.
양철심이 포석약을 데리고 달아날 때 함께 달아났지만, 양철심과 포석약이 자결하여 아버지를 잃었다. 양철심은 유언으로 그녀가 곽정과 혼인하기를 바랐지만 이미 양강에게 콩깍지가 씌어 있었고, 곽정도 이미 황용에게 콩깍지가 씌었으므로 흐지부지 되었다.
곽정이 싫었던 것은 아니고, 순박하고 의협심 있는 성격이라 믿음은 가졌던 것 같지만 연애 감정은 없었던 듯.
강남칠괴와 구처기 등이 곽정과 목염자를 맺어주려 한 탓에, 황용에게 질투를 받았다. 황용과 잠시 다투기도 했지만 목염자가 양강을 사랑하고 있고 곽정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알자 황용도 곧 화를 풀고 친구가 되었다.
금나라의 사신 신분으로 남송으로 출발한 양강을 쫓아와 그와 다시 만나 혼인하기로 언약 하고, 임안부 우가촌에 있는 양철심의 옛집에 가서 양강을 기다리기로 한다. 양강이 귀운장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구하러 귀운장에 들어간다. 황용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귀운장의 진법을 돌파했지만 감옥에서 양강을 만난다. 하지만 양강이 영웅호걸로 자신의 친부를 인정하지 않고 금국의 사신으로 일하는 것도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 여기던 그녀는 그가 금나라 왕자로서 부귀영화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자 크게 실망한다.
아무튼 양강을 구하기 위해 매초풍을 부르러 가는데, 매초풍이 가지고 있다는 구음진경을 노리고 있던 구양극에게 붙잡히게 된다. 구양극에게 정조의 위협을 당하지만 그녀가 격렬하게 저항하자 구양극은 자존심이 상해 혈도를 짚고 폐가의 관속에 가둬놓았다. 그리고 구양극이 곽정 일행에게 쫓겨 도망갈 때, '''너무 많은 여자를 납치했던 나머지 목염자를 가둬뒀다는걸 까먹어서''' 그대로 관 속에 갇혀 굶어 죽을 뻔 했지만 마침 근처를 지나던 곽정과 황용, 양강에게 구출된다. 하지만 양강이 그녀가 이미 구양극에게 정조를 더럽혔을 것이라고 비난하자 너무 화가 나고 원통한 나머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때 자신의 의부모인 양철심 부부의 시신을 사당에 임시로 매장해두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고향 임안 우가촌에 매장하고 자신은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두 부부의 관을 끌고 고향으로 왔다가 정요가를 희롱하려 하고 있던 구양극과 마주쳐 제압당하고 농락당하려던 때에 양강이 구양극을 살해하여 구해지게 된다.
양강과 함께 개방대회에 초청되어 갔다가, 양강이 개방방주가 되는 것에 실패하자 그와 함께 구천인의 철장방에 도망치게 된다. 철장방에서 양강과 부부의 연을 맺지만, 구천인과 양강의 대화를 듣고 양강이 아직 금나라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부귀영화를 노리고 있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분노한 나머지 양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비구니의 차림을 하고 우가촌으로 돌아가다가 곽정과 황용을 만나 그들에게 철장방의 옛 이야기가 써있는 책을 준다.
철장묘에서 양강이 중독되어 죽어갈 때, 그를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결한다. 3판에서는 자결하는 장면이 없고, 중독되어 죽어가는 양강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고 그의 임종을 지킨다.[2]
<신조협려> 수정본에서는 진남금을 대신하여 양과의 어머니로 설정되어 있다. 진남금은 소멸.(…)
08년 사조영웅전을 보면 목염자의 발이 크다고 묘사된다. 남자인 곽정의 신발이 딱 맞는다고 한다.(…)[3] 양강이 그녀를 위해서 시녀들을 시켜 여성용 신발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맞지도 않는다면서 장난하냐며 화를 내기도...
<사조영웅전>의 등장인물.
양철심이 부상을 입었을 때 피해있던 집안의 딸. 집안이 전염병에 걸려 모두 죽었기 때문에 양철심의 양녀가 되었다.
부상을 입고 쓰러진 거지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홍칠공을 만나 소요유 권법을 약간 전수받았기 때문에 양부인 양철심보다도 무공 수위는 더 높았다. 많이 배우지 못한 탓인지 보통보다 좀 나은 애매한 수준의 무공이지만.
양철심과 함께 유랑을 하며 비무초친을 하게 된다. 비무초친에 나선 양강에게 희롱을 당했지만(그 희롱의 내용 중 하나가 '''신발을 빼앗아서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1] ), 외모가 준수하고 때로는 상냥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양강도 그녀의 미모와 태도를 보고 욕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초청하여 조왕부에 데려오고 양철심과 함께 감금한다.
양철심이 포석약을 데리고 달아날 때 함께 달아났지만, 양철심과 포석약이 자결하여 아버지를 잃었다. 양철심은 유언으로 그녀가 곽정과 혼인하기를 바랐지만 이미 양강에게 콩깍지가 씌어 있었고, 곽정도 이미 황용에게 콩깍지가 씌었으므로 흐지부지 되었다.
곽정이 싫었던 것은 아니고, 순박하고 의협심 있는 성격이라 믿음은 가졌던 것 같지만 연애 감정은 없었던 듯.
강남칠괴와 구처기 등이 곽정과 목염자를 맺어주려 한 탓에, 황용에게 질투를 받았다. 황용과 잠시 다투기도 했지만 목염자가 양강을 사랑하고 있고 곽정에게 마음이 없다는 걸 알자 황용도 곧 화를 풀고 친구가 되었다.
금나라의 사신 신분으로 남송으로 출발한 양강을 쫓아와 그와 다시 만나 혼인하기로 언약 하고, 임안부 우가촌에 있는 양철심의 옛집에 가서 양강을 기다리기로 한다. 양강이 귀운장에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구하러 귀운장에 들어간다. 황용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귀운장의 진법을 돌파했지만 감옥에서 양강을 만난다. 하지만 양강이 영웅호걸로 자신의 친부를 인정하지 않고 금국의 사신으로 일하는 것도 다른 뜻이 있을 것이라 여기던 그녀는 그가 금나라 왕자로서 부귀영화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자 크게 실망한다.
아무튼 양강을 구하기 위해 매초풍을 부르러 가는데, 매초풍이 가지고 있다는 구음진경을 노리고 있던 구양극에게 붙잡히게 된다. 구양극에게 정조의 위협을 당하지만 그녀가 격렬하게 저항하자 구양극은 자존심이 상해 혈도를 짚고 폐가의 관속에 가둬놓았다. 그리고 구양극이 곽정 일행에게 쫓겨 도망갈 때, '''너무 많은 여자를 납치했던 나머지 목염자를 가둬뒀다는걸 까먹어서''' 그대로 관 속에 갇혀 굶어 죽을 뻔 했지만 마침 근처를 지나던 곽정과 황용, 양강에게 구출된다. 하지만 양강이 그녀가 이미 구양극에게 정조를 더럽혔을 것이라고 비난하자 너무 화가 나고 원통한 나머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잘라버리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때 자신의 의부모인 양철심 부부의 시신을 사당에 임시로 매장해두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을 고향 임안 우가촌에 매장하고 자신은 비구니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두 부부의 관을 끌고 고향으로 왔다가 정요가를 희롱하려 하고 있던 구양극과 마주쳐 제압당하고 농락당하려던 때에 양강이 구양극을 살해하여 구해지게 된다.
양강과 함께 개방대회에 초청되어 갔다가, 양강이 개방방주가 되는 것에 실패하자 그와 함께 구천인의 철장방에 도망치게 된다. 철장방에서 양강과 부부의 연을 맺지만, 구천인과 양강의 대화를 듣고 양강이 아직 금나라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부귀영화를 노리고 있는 것을 확신하게 되어 분노한 나머지 양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비구니의 차림을 하고 우가촌으로 돌아가다가 곽정과 황용을 만나 그들에게 철장방의 옛 이야기가 써있는 책을 준다.
철장묘에서 양강이 중독되어 죽어갈 때, 그를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결한다. 3판에서는 자결하는 장면이 없고, 중독되어 죽어가는 양강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고 그의 임종을 지킨다.[2]
<신조협려> 수정본에서는 진남금을 대신하여 양과의 어머니로 설정되어 있다. 진남금은 소멸.(…)
08년 사조영웅전을 보면 목염자의 발이 크다고 묘사된다. 남자인 곽정의 신발이 딱 맞는다고 한다.(…)[3] 양강이 그녀를 위해서 시녀들을 시켜 여성용 신발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맞지도 않는다면서 장난하냐며 화를 내기도...
[1] 현대적 기준으로 보자면 속옷을 벗겨서 냄새를 맡은 격.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발이 여성의 매력 포인트이자 성적 금기였다. 가슴에 대한 금기가 약했던 적은 있엇으나 발에 대한 금기는 정말 일관되게 이어오다 현대들어서야 풀렸다. 의천도룡기에서의 장무기도 조민의 발에 하악댄 적도 있고... 괜히 전족이라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 아닌 것. 특히 여성이 발이 크다는 것은 상당히 흠이 된다. 같은 작품에서 황용 또한 자신의 발이 작고 예쁘다며 넋을 잃고 보는 심부름꾼을x군관을o 혼내 준 적이 있다.[2] 이 때 구처기는 제자들과 함께 금군과 싸우고 탈출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뱃속의 아기와 함께 썰릴뻔했다.[3] 굳이 전족을 기준으로 삼지 않아도 여자와 남자의 덩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자 발은 남자 발보다 몇 cm 쯤은 작은 것이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