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
1. 개요
[image]
신조협려 2014판
'''郭靖'''
무협소설 《사조영웅전》의 주인공.
2. 인물상
안습할 정도로 순진하고 우직한 성격의 바른생활 소년. 일러스트를 보면 얼굴도 순박한 시골청년스럽게 생겼다.
무협소설 주인공치고 자질이 심각하게 둔하다. 4살이 되어서야 겨우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중 내내 그의 자질에 대해 '우둔하다', '둔하다'는 표현이 나오며, 스승인 강남칠괴 중 한소영은 그를 가르치다가 하도 진전이 없자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라며 울었을 정도.[1][2] 특히 황용과 만나고 나서부터는 둘을 보는 사람(아군이고 적이고 최종보스까지도)마다 '황용 십분지일만 닮아봐라', '사내대장부 주제에 여자의 총명을 백분지일도 닮지 못했다'라며 줄기차게 비교당했다[3] [4] . 몽골어와 한어를 동시에 익혀서 바이링걸이 되어야 했던 것이 어려움을 가중시켰을지도.(…)[5] 그래도 최소한 언어는 사조영웅전 후반에도 취선루의 대결 전날 부분 쯔음에 사람 찾는다고 질문하는걸 저도 모르게 몽고말로 말했다거나 하는 언급 등을 보면 중국어와 몽골어의 이중언어 구사자인 듯.[6]
자질은 부족하지만 뭐든지 부지런히, 열심히 하는 끈기와 인내심이 있고 의지력과 집념이 강하다. 특히 의협심이 강하고 인품이 중후하여 다른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끌리게 하며, 때문에 재주 많고 똑똑하지만 이런 점이 부족한 황용과 좋은 한 쌍이 된다.
몽골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자랐기 때문에 몽골어에 매우 유창하며 몽골인들의 사고방식도 매우 잘 알고 있다. 칭기즈 칸에게 귀여움을 받아 일개 평민임에도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 툴루이(쿠빌라이 칸의 아버지)와 친구가 되고 의형제까지 맺었다. 또한 어렸을 때 칭기즈 칸의 막내딸 화쟁에게 짝사랑을 받기도 한다.
동네 청년같은 외모에 둔한 성격처럼 보이나 은근히 사려 깊다. 괜히 이상하게 페로몬 풍기고 다녀서 여자가 꼬인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곽정이 처음 금도를 하사받을 때 칭기즈칸에게 청한 소원은 ''''화쟁과 도사를 결혼시키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화쟁과 어려서부터 투닥투닥하긴 했지만 여자가 결정적으로 반하는 순간은 이런 대목일 듯.
첫등장부터 멍청함이 드러나는데, 칭기즈 칸에게 쫓게는 제베를 숨겨준 후, 칭기즈 칸의 부하들이 행방을 물을 때 모른다거나 다른 거짓말로 둘러댈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그냥 안 말한다고만 버텼다. 즉, 본인이 제베의 행방을 알고있다고 간접적으로 밝힌 거라 괜히 고문을 자초하고 말았다.
황용과 처음 만났을 때도 멍청하리만큼 다 퍼준다[7] . 이후로도 황용이 요리를 하면 옆에서 거들고, 뭐든 황용이 하는 행동은 절대신뢰, 무조건 '이유가 있어서 그러려니' 아무리 '''극한상황'''[8] 에 처해도 황용에게 짜증 한 번 안 낸다. 그런 탓인지 '멍청하다'는 묘사에 비하면 여자가 꽤 꼬인다.(...) 잘 생겼다는 묘사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역시 둔해서 못 알아채는데다, 알아채더라도 우유부단해서 주변의 짜증과 오해를 유발한다. 우연히 큰 공을 세워서 얼떨결에 칭기즈 칸의 부마가 되었지만, 원래 둔한 탓에 여심(女心)에도 둔해서 본인은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황용과 틀어지기도 했다.
어머니 이평의 교육 덕분에 한족의 말이나 한족으로서의 자아정체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몽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족 풍습에는 좀 익숙하지 못하다.
몽골 문화의 영향으로 쇠고기와 양고기를 최고의 음식으로 여기며 대충 구워서 맨손으로 우걱우걱 먹는 것을 좋아한다.(…) 황용이 홍칠공에게 음식솜씨를 보여줘도 미식이라는 개념을 이해 못했다.
역시 자란 곳이 자란 곳이다 보니 수영도 못했지만 황용에게 배워서 잘 하게 되었다.
황용의 가이드에 의해 만들어진 온달형 먼치킨이다. 자기가 배운 게 뭔지도 모르는데 배우는 무공마다 최강급이다. 구음진경부터 천하제일 무공인데다 항룡십팔장은 천하오절의 한 사람의 절기, 칠십이로 공명권은 그렇다쳐도 쌍수호박은 사기기술,[9] 내공에 대해서도 현문정종이라는 전진내공을 베이스로 복사혈의 보혈을 빨아먹는 기연으로 급격히 상승한데다 마지막으로 구음진경의 법문까지 익혔으며, 몽골씨름으로 내공없이 싸우면 구양봉을 압도하고 활은 철별 제베의 가르침을 받아 한번에 독수리 2마리를 꿰뚫을만큼 잘 쏜다.
무공 이외에도 아주 어린 시절은 그렇다쳐도 제베를 구해준 인연으로 대칸을 만나고 신임을 받아 몽골 지배자의 친아들급 대우에 다른 자식과의 사이도 의형제를 맺을만큼 친밀한데다 대칸의 딸과 장래가 약속되어 있었다......이후 결혼한 부인은 예쁘고 똑똑하고 헌신적이고 의형제 빽때문에 배분 또한 킹왕짱이다.
딱 하나 실책이 있다면 자식농사를 잘못 지었다. 나라를 위해 함께 싸우다 순국한 아들이나 가족 다 잃은 상황에서 비구니가 된 둘째 딸이야 어쩔수 없었다지만 인간이 되다만 첫째딸은 명백히 그와 황용의 잘못이었다.
칭기즈칸이 서역을 원정할 때 장군으로서 활약했기 때문에, 몽골군 사이에서 곽정의 명성은 매우 높다. 양양성에서 몽골군과 싸울 때, 과거에 곽정의 휘하에 있었던 장교가 곽정을 보고 차마 싸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가 군법 위반으로 처형되기도 했다.
부귀영화에 뜻을 뒀다면 몽골의 장군이자 징기스칸의 사위, 몽케 칸과 쿠빌라이 칸의 고모부[10] 로 후에 원나라에서 왕후장상의 자리, 일이 잘 풀린다면 중국이나 다른 곳의 영토중 큰 덩어리를 받아 칸과 비슷한 위치에 앉았을지도 모른다[11] . 일단 징기스 칸의 사위라는 것만으로 사실상 봉읍 당첨인데 거기다가 명성 있는 장군에 칸의 최측근이 될 수도 있으니 진짜로 왕작은 기본에 재상&사령관급 보직까지도 노려볼만 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징기스칸은 금나라를 물리친 뒤 송과의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송을 치고 송의 지배자는 곽정이 하게 한다는 령까지 내렸었다. 양강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걸 생각해보면 역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란 걸 보여주는 인물. ...이라지만 황용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냥저냥 왕후장상 자리 하나 꿰찼을지도.
신조협려의 마지막에 이르러 북협이라는 별호를 얻은 것도 그렇고 김용소설 가운데서 원승지와 함께 가장 협기 넘치는 주인공이다. 실제로 사랑보다도 의와 협을 중요시 여기는 성격으로 황용이 좋아서 미칠거 같지만 약속을 저버릴 수 없으니 화쟁과 결혼하겠다고 말하기 까지 하고, 스승이 때리면 변명도 안하고 맞는데다가 자기 딸이 실수로 남의 팔을 잘랐다고 똑같이 팔을 자르려는 인간(..)이다. 의리는 있지만 협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소보나 그냥 인간적인 영호충, 이도저도 아닌 장무기와 비교가 된다. 아마 이런 식으로 성장을 마치는데는 다른 것보다 스승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강남육괴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몽고까지 자기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과 사실상 진정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으며 김용 소설 가운데 가장 의협이란 말이 어울리는 홍칠공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서 양과와의 관계로 인해 그 매력이 더욱 빛이 나는 인물이기도 하다. 양과의 워낙 신출귀몰하고 괴팍한 기질 때문에 황약사나 노완동 같은 사람들이 아니면 소위 주류에 있는 이들은 그를 좋지 않게 보는 이들이 많았는데, 곽정만큼은 주류에 속한 사람임에 불구하고 양과를 친자식처럼 믿고 아낀 사림이었다. 사실상 양과가 대협이 되는 데에 곽정의 영향이 지대했으며[12] , 곽정과 양과 또한 부자처럼 끈끈한 관계로 이어져있다. <사조영웅전>에서 우직하게 정의를 위해 나가나는 인간상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면, <신조협려>에 와서는 부모보다도 더 부모같은 진실된 사랑과 대의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영웅의 풍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김용 독자들도 곽정과 양과는 한쌍으로 엮어서 가장 걸출한 영웅으로 추앙할 정도이다.
천하에 겨룰 자가 드문 절세신공을 지녔고 오래도록 대협으로 추앙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평생토록 겸손한 천성을 유지했다. 양양성에 누군가 고수들을 불러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황용에게 듣고도 '''우리가 불러도 안 온 고수들을 모아오다니 굉장하다! 그 사람을 무림맹주로 삼아서 다 함께 몽골과 싸우자!''' 같은 반응을 보일 뿐. 본인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은 있지만 공명심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용이 좋지 않은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도 '우리가 하는 일은 하늘 아래 부끄러울 게 없는데 무슨 걱정임?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함께 일하면 되는 거고, 나쁜 사람들이 뭐라도 할라치면 우리가 맞서 싸우면 그만 아님?' 하고 웃어넘긴다. 어찌 보면 양양성에 발이 묶여 반평생을 답도 없는 전쟁에 흘려보내고도 여전히 굳건한 것도 이런 겸손하고 단순한 성격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
참고로 아버지인 곽소천이 양산박 호걸 중 새인귀 곽성의 후손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인 곽정도 자동으로 곽성의 후손.
모티브가 되는 인물은 둘이 있다고 보는데, 몽골에 협력하던 시절의 곽정은 역사속 칭기즈 칸의 부하 명장 곽보옥[13] 이고, 원에 맞서던 시절의 곽정은 원나라에 투항하기 싫어서 자살로 순국한 사천의 곽정[14] 이라고 보고 있다.
3. 사조영웅전의 곽정
아버지 곽소천이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 이평이 임신한 채로 아버지의 원수 단천덕의 인질이 되어 끌려가게 되었는데, 금나라 연경에서 금나라 병사들에게 잡혀 짐꾼이 되어 몽골 지방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금나라 군사들이 유목민의 습격을 받고 죽었고, 이평은 자유를 찾았지만 이미 만삭의 몸이라 몽골에서 곽정을 낳았다.
6살 때, 칭기즈 칸과 대립하던 타이티구드 족의 전쟁에서 타이티구드 족의 제베가 패잔병이 되어 천막으로 도망쳐오자 제베를 숨겨주고 채찍에 맞아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제베는 스스로 뛰쳐나와 칭기즈 칸에게 자신의 무용과 용기를 증명하고 부하가 되었다. 제베는 곽정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어준 것을 고맙게 여겨, 곽정과 이평 모자를 돌봐주었고 나중에는 활쏘는 법까지 전수해준다.
열여섯살 때까지 몽골에서 살았다. 그 동안 자신을 찾으러 온 강남칠괴와 만나 사부로 모시게 되고, 그들과 매초풍, 진현풍의 대결에 휘말려 들었다가 우연히 진현풍을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강남칠괴에게 그들 각자의 무공을 전수받았을 뿐만 아니라 몽골의 명장인 제베에게 궁술, 기마술 등을 전수받았다. 허나 강남칠괴의 무공은 배워도 배워도 진전이 없었던 반면[15] 궁술은 한번에 몽골의 독수리 2마리를 꿰뚫는 수준으로 배웠다. 아무래도 무공보다는 활쏘기에 재능이 있는게 아닐까... [16][17]
몽골에 온 마옥과 만나 현문정종의 내공심법을 전수받는다. 강남칠괴에게 복수하기 위해 몽골로 돌아온 매초풍과 다시 만나게 되었으며, 마옥의 지혜에 따라 강남칠괴와 같이 전진칠자가 모두 몽골에 와 있는 것으로 위장하여 매초풍이 도망치게 하고, 매초풍에게 잡혀있던 화쟁을 구해낸다.
완안열이 칭기즈 칸의 의숙부 왕칸과 자무카를 꼬드겨 칭기즈 칸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려는 음모를 우연히 듣게 되어, 사부인 강남칠괴와 함께 완안열의 부하인 황하사귀를 쓰러뜨리고 칭기즈 칸을 구한다. 이 공적으로 금도를 하사받고 칭기즈 칸의 막내딸인 화쟁의 남편이 되도록 결정되어 몽골에서는 금도부마(金刀駙馬)로 불리게 된다.
칭기즈 칸이 왕칸을 쓰러뜨리고 몽골 부족을 통일하게 되었을 무렵, 18년 전의 약속에 따라 양강과 대결하기 위해 강남칠괴와 함께 중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중원에서 남장을 한 채 만두 도둑질을 하는 거지꼴 차림의 황용과 만나게 된다. 그걸 본 곽정은 점원에게 걸려서 도망치는 황용을 일단 구해주게 되는데, 워낙 딱해보여서 황용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한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황용은 온갖 비싼 요리란 요리는 다 시키면서 반쯤 깽판을 치는데(...) 곽정은 군말 없이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고, 심지어 가게를 나설 때 춥지 말라면서 자기 외투를 벗어서 노잣돈까지 두둑히 챙겨서 주게 된다. 심지어는 바로 이전에 용이 내려왔느니, 이제는 혈통이 사라져 절대 못 구하는 말이라느니 같은 묘사를 페이지 단위로 쓰면서 띄워준 한혈보마를 "저 주면 안 돼요?" 한마디에 "암, 주지, 줘!"'하고 '''진짜로 줬다.''' 그걸 본 황용은 아낌없이 퍼주는 곽정의 모습에 한눈에 반하게 된다. 그런데 곽정은 워낙 둔해서 황용을 여자인 줄도 모르고 그냥 중원 와서 처음 사귄 아우 정도로 생각했다(...)[18]
황용과 헤어진 직후에 하필 몽골에서 원수를 지은 황하사귀와 그들의 사숙인 후통해를 만나 붙잡혔지만 몰래 도와준 황용의 기지 덕분에 도망칠 수 있었다.
금나라의 수도 연경에서 공교로운 인연으로 비무초친을 하고 있던 목역과 목염자 부녀를 만난다. 본인은 비무초친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양강이 비무초친에 나서 목염자를 희롱하자 화가 나서 양강과 싸우게 된다. 그러나 왕자인 양강이 위기에 몰리자 팽련호등 완안열이 휘하에 두고 있는 고수들이 나서게 돼서 위험에 빠졌지만, 전진칠자 중 왕처일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게 된다.
양강에게 초청되어 왕처일과 함께 조왕부에 갔다가 왕처일이 영지상인의 독사장(毒沙掌)에 중독되자, 왕처일의 해독약을 구하기 위해 황용과 함께 조왕부에 잠입한다. 조왕부에서 양자옹이 기르던 독사의 보혈(寶血)을 빨아먹는 기연을 얻고, 조왕부에 잡혀 있던 양철심과 만나 그의 정체를 알게 된다.
양자옹에게 쫓기다가 조왕부에 있던 매초풍의 은거지로 들어간다. 매초풍은 눈이 멀어서 곽정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곽정이 진현풍의 원수라는 것을 알자 죽이려 했다. 곽정은 죽음의 위기에서도 왕처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대신 매초풍이 바라는 대로 내공심법을 가르쳐주면 왕처일에게 약을 전해주기로 약속하게 한다.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황용이 매초풍을 알아보고 자신들을 도와주면 황약사에게 잘 말해주겠다고 하자 매초풍을 어깨에 업고 사통천, 후통해등과 싸우게 된다.
그래도 숫적으로 불리하여 위기에 빠졌지만 강남칠괴가 도우러 왔고, 마침 양철심이 포석약을 데리고 왕부에서 도망친 것 때문에 적들은 그쪽 일이 더 급하게 되어 강남칠괴와 곽정 쪽은 버려두고 간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 왕처일이 머무는 객잔으로 갔더니 이번에는 부상을 입은 구처기와 마옥이 양철심과 포석약을 데리고 그쪽에 와서 적에게 포위되는 낭패(…)에 빠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기 싫어한 양철심과 포석약이 동반자살하고 그 모습을 본 완안열이 충격을 받고 물러나서 살아났다.
양철심은 죽어가면서 유언으로 목염자와 곽정을 혼인시키기를 바랬지만, 목염자에게도 곽정에게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곽정은 사부들 앞에서 황용과 함께할 뜻을 밝혔지만 강남칠괴는 그녀가 동사 황약사의 딸이라는 이유로 곽정을 다그쳤다. 곽정은 생애 처음으로 사부들에게 반항하고 황용과 함께 달아났다.
황용과 함께 다니다가 홍칠공과 만나 항룡십팔장 중 15장을 전수받는다. 홍칠공과 헤어지고 황용과 여행을 계속하여 태호(太湖)에 도착하여 육관영과 만나고 강남칠괴와 재회하였으며, 여전히 복수를 노리고 있던 매초풍과 다시 대결하게 된다.
갑자기 귀운장에 난입한 황약사에게 진현풍을 죽였다는 이유로 위협을 당하자, 스스로 한 달 내로 도화도로 찾아가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황용은 곽정을 죽이면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겠다고 하면서 태호로 헤엄을 쳐서 도망쳐버리고, 황약사는 망연자실하여 도화도로 돌아가게 된다.
귀운장에 잡혀 있던 아버지의 원수 단천덕을 처단하고, 양강과 의형제가 된 다음 귀운장을 떠난다. 그리고 자신을 쫓아오던 황용과 다시 만났으며, 구양극에게 납치되었던 정요가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완전하지 않은 항룡십팔장으로 싸우다가 패할 뻔 했지만, 홍칠공에게 정식 제자로 들어간 후 항룡십팔장을 모두 배웠으나 구양극이 숨겨두었던 무공인 영사권을 쓰자 패배했다. 하지만 황용이 기지를 부려 구양극은 패퇴하게 된다.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인 툴루이와 제베 등이 남송에 동맹을 요청하기 위해 사자로 왔다가, 황하사귀와 금나라 군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을 구해준다. 그리고 근처에서 금나라 군대를 지휘하던 완안열을 찾아 원수를 갚으려 했으나 양강의 방해로 실패한다.
관에 갇혀 있던 목염자를 구했지만 그녀는 양강과 다투다가 두 사람 모두 제 갈길을 가버리고 다시 황용과 함께 도화도로 들어간다. 도화도에서 길을 잃고 황용과 헤어졌다가 주백통을 만나서 그의 고집에 넘어가 의형제를 맺고, 공명권과 쌍수호박,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음진경의 무공을 모두 익히고 그 완전한 법문을 기억하게 된다.
구양봉이 구양극을 데리고 도화도에 찾아와 구양극과 황용을 결혼시키려 하자, 황약사가 내보인 3가지 시합에서 구양극을 이기고 황용과의 결혼을 허락받게 된다. 뭐 곧 황약사는 다시 마음에 안 들어하게 되었지만.(…)
주백통, 홍칠공과 같이 배를 타고 도화도를 떠나다가 황약사가 일부러 가라앉은 배를 준 탓[19] 에 상어떼와 사투하다가 구양봉, 구양극이 탄 배에 구조된다. 구양봉에게 구음진경을 써내라는 협박을 받고, 홍칠공과 함께 구양봉의 계략에 곤혹을 치르다가 홍칠공의 계략에 따라 구음진경의 법문을 엉망으로 바꿔쓴 가짜 구음진경을 만들어 구양봉에게 준다.
구양봉이 곽정과 홍칠공은 배와 함께 불태우고 작은 배로 도망치려는 계략을 꾸미자, 홍칠공이 계략을 간파하여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먼저 도망가버리려 한다. 하지만 곽정이 위기에 처한 것을 안 황용이 구조하러 왔다가 구양봉에게 붙잡히고 홍칠공이 구양봉과 싸우게 된다.
홍칠공이 구양봉을 이겼지만, 구양봉의 목숨을 구해주려다 뒤에서 암습을 당해 쓰러지자 자신이 불타는 배에 뛰어올라 구양봉과 싸우다가 배가 침몰하여 함께 물에 빠진다. 그리고 구양봉과 함께 헤엄을 쳐서 황용과 홍칠공, 구양극등이 표류해있는 무인도로 가게 된다.
뗏목을 만들어서 탈출하려다가 구양봉이 먼저 뗏목을 빼앗아서 도망가게 되지만, 황용이 계략을 써서 구양봉 일행은 도중에 물에 빠진다. 다시 뗏목을 만들어 무인도를 탈출하다가 물에 빠져있던 구양봉등을 구해준다. 그리고 뗏목 위에서 다시 곽정 일행을 해치려 하던 구양봉과 싸우다가 지나가던 큰 배에 구조되었는데 하필이면 완안열의 배였다.
양자옹에게 공격받았지만 무공이 일취월장한 곽정에게 양자옹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주백통이 나타났으며 구양봉이 주백통의 무공을 두려워한 탓에 황용, 홍칠공과 함께 작은 배를 얻어 떠나게 된다. 홍칠공의 병세가 심해지자 임안의 황궁에 가서 원앙오진회를 먹고 싶다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임안에 갔다가, 우연히 고향 우가촌으로 돌아와 곡령풍(곡삼)의 주막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완안열이 악비의 유서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홍칠공과 주백통은 황궁의 주방에 머무르게 한 다음 황궁을 나오다가 우연히 완안열일당과 마주치게 된다.
곽정은 완안열 일당을 물리치고 구양봉과 대결하다가 밀리는 상황에서, 옆에서 끼어든 양강의 칼에 찔려 큰 부상을 입고 황용에게 구출된다. 곡령풍의 객잔으로 돌아와 곡령풍이 보물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둔 밀실에 숨어 황용과 함께 구음진경 요상편의 내용대로 운기조식을 하여 상처를 치료한다.
치료를 하다가 완안열 일행이 주막에 묵게 되어 위기에 빠지지만, 황용의 기지 덕분에 살아난다. 그리고 치료를 위해 구양극, 양강, 목염자, 정요가, 육관영, 윤지평 등이 벌이는 일을 계속 보고만 있다가 치료가 다 되자 겨우 강남칠괴와 황약사가 싸우려는 때에 나타나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툴루이와 화쟁이 구양봉에게 잡혀있는 것을 보고 황약사 등과 함께 그들을 구해준다. 하지만 칭기즈 칸의 명령에 따라 화쟁과 정혼한 사실이 황용과 황약사에게 알려져 곤란해지자, 신의를 지키기 위해 화쟁과 결혼하기로 몽골어와 한어로 선언한 다음 황용에게는 한어로 그래도 마음 속에는 황용 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일단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말에 안심한 화쟁과 툴루이를 몽골로 보내고, 자신은 황용과 함께 개방대회에 가기 위해 떠난다. 팽 장로의 섭심술에 걸려 황용과 함께 붙잡히고 입이 막혀 양강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구음진경의 역근단골편을 써서 풀려나 구천인과 싸우고 있던 노유각을 도왔다. 수백명의 거지들과 싸우며 황용을 구출하고 구천인과도 대결한다.
황용이 개방의 방주가 되고 일이 해결된 후에는 무목유서를 찾아서 철장방의 본거지인 철장산으로 간다. 황용이 중상을 입자 그녀를 데리고 철장방의 금지 구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철장방의 금지구역에서 구천장을 만나 제압하고 구천리와 구천장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목유서를 얻는다. 철장방에서 봉우리에 주변에 불을 질러 위기에 빠지지만 흰 수리를 타고 황용과 함께 빠져나왔다. 그리고 중상을 입은 황용을 업고 도망치다가 영고의 집에 도착한다.
영고에게 황용의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남제 단지흥 뿐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만나기 위해 황용을 데리고 길을 떠나 어초경독을 차례 차례 지나친 다음 단지흥과 만나 황용을 치료하게 된다. 그리고 단지흥이 치료를 하느라 공력을 너무 소모하여 몇 년간 무공을 쓸 수 없게 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영고를 막으려 한다.
단지흥의 사제인 천축승려로부터 자신이 외우고 있던 구음진경의 요결을 해석받고, 요결을 이용하면 홍칠공의 무공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천룡사를 떠난다. 그리고 비구니 차림을 하고 우가촌으로 돌아가던 목염자를 만나 양강에게 그 간 있었던 사정과 그녀가 가져온 철장방에 관한 문서를 얻게 된다. 여기에서 철장방 13대 방주였던 상관검남(上官劍南)에 관한 이야기와 무목유서가 철장방의 방주묘에 있었던 사연을 알게 된다.
그리고 황용과 함께 도화도로 가기 위해 배를 잡아 탔는데, 철장방 무리들의 속임수라 다시 구천인과 만나 싸우게 되었다. 영고가 구천인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발광하여 구천인에게 덤벼든 덕분에 살아났으며, 급류에 휘말려든 배에서 영고를 구해주고 황용과 함께 길을 계속 간다. 황용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도화도에 틀어박혀 사는 일이 있더라도 황용과 함께 하려고 결심한다.
팽련호, 사통천, 양자옹 등에게 위협받고 있던 강남칠괴의 가진악과 홍칠공을 구출한다. 또 속임수를 써서 주백통과 움직이지 않기 내기를 하고 있던 영지상인을 쓰러뜨려 주백통을 구해준다. 하지만 가진악이 황용에게 살수를 휘두르고, 황용과 황약사를 죽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경악한다. 가진악이 사라진 후 홍칠공에게 구음진경의 요결법문을 가르쳐줘서 무공을 회복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도화도에 도착하고, 강남칠괴 중 5명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을 보고 그들이 황약사에게 살해당했다고 오해하여 황용을 버려두고 도화도를 떠난다. 차마 황용을 죽일수는 없었지만, 황약사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육지에 올라 18년 전 구처기와 강남칠괴가 대결을 약속했던 취선루(醉仙樓)로 가서 구처기를 만나 그 간의 사정을 이야기한다.
황약사가 취선루에 나타나자 다짜고짜 일장을 날렸으며, 구처기와 황약사가 연우루로 가자 그곳에서 홍칠공과 만나 황약사와 전진칠자, 가진악, 윤지평 등이 대결하는 것을 목격한다. 황약사에 대한 원한에 타올랐지만, 전진칠자가 황약사가 주백통과 담처단을 죽였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을 알자 사실을 밝히면 전진파가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라 생각해 진실을 밝힌다. 하지만 황약사에게는 여전히 원한을 품고 덤비다가 홍칠공에게 제지를 받는다.
연우루에 완안열 일당이 나타나자 일단 아버지의 원수인 완안열을 처치하려 했지만 구천인에게 저지받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짙은 안개가 끼고, 구양봉이 뱀을 풀고 완안열이 병사들을 모아오자 가진악의 인도를 받아 연우루에서 빠져나온 다음 홍칠공을 데리고 도망친다.
나중에 황용과 함께 있던 가진악에게 진실을 알고, 죽은 양강의 시신을 매장해준 다음 구양봉에게 납치된 황용을 찾아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금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있던 툴루이를 만나 다시 몽골로 갔으며, 칭기즈 칸이 호라즘 왕국으로 출병할 때 장군이 되어 종군하게 된다. 또 불로장생을 바래서 도사를 찾고 있던 칭기즈 칸에게 구처기를 소개해주었다.
개방의 노유각과 다른 두 장로가 몽골에 오자, 그들을 장막에 머물게 하고 무목유서를 공부했다. 황용이 숨어있는 것을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구양봉이 나타나서야 사실을 눈치채고, 그에게 황용을 해치지 않는다면 세 번 구양봉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황용의 도움으로 구양봉을 함정에 빠뜨려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독목봉에서 바지를 낙하산 삼아 뛰어내리는 구양봉을 보고, 높은 성벽 때문에 몽골군이 함락을 못 시키고 곤란에 빠져 있던 호라즘 왕국의 수도 사마르칸트 성을 공략할 방법을 생각해낸다.
곽정은 낙하산을 만들어 병사들과 함께 성보다 높은 독목봉에서 뛰어내려 성 안으로 들어갔으며, 사마르칸트 성을 함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사마르칸트 성에 피해있던 원수 완안열을 붙잡아 목을 베었다. 하지만 칭기즈 칸이 사마르칸트 성의 모든 주민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황용이 화쟁공주를 보고 그녀와의 마음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오해하여 진영에서 사라져버리자, 그녀를 쫓아갔다가 역시 황용을 추적하다 늪에 빠져 있던 구양봉만 구출하고 놓쳐버려서 황용이 늪에 빠져 죽은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그리고 구양봉에게 붙잡혀서 어느 돌집 안에서 구음진경의 무공을 얻으려 하는 그와 매일같이 대련하게 되었는데, 주백통에게 쫓겨 서역까지 도망쳐온 구천인과 그를 쫓아온 주백통이 끼어들어 4명이 혼란스럽게 대련하게 된 틈을 타서 도망쳤다.
다시 몽골의 군영에 돌아왔다가, 칭기즈 칸이 남방 원정을 재개할 때 무언가 수상한 것을 눈치채고 그의 밀령을 뜯어본다. 밀명에는 이번 남방 원정에서 몽골군이 금을 멸하면 곧장 남송을 공격하여 멸망시킬 것이며, 곽정이 큰 공을 세우면 송나라의 왕으로 봉할 것이지만 다른 마음을 품을 때는 즉시 참수하라고 써 있었다.
곽정은 어머니 이평과 함께 짐을 챙겨 몰래 도망치려 했지만, 곽정이 도망치는 것을 싫어한 화쟁이 밀고하여 칭기즈 칸에게 붙잡히게 된다. 이평은 곽정을 타이르려는 척 하면서, 비수로 곽정의 포박을 끊고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결한다.
곽정은 이평의 시신을 안고 도망쳤으며, 스승 제베와 툴루이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 회한에 가득차 되는 대로 방황하다가 구처기를 그와 함께 주백통을 찾아 화산논검이 열리게 될 화산으로 간다. 화산에서 팽련호등을 만나 그들이 구처기와 싸워도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있어서 손을 쓰지 않다가 양자옹의 기습을 받고 반응하여 그를 낭떠러지로 떨어뜨린다.
그리고 거꾸로 서서 기괴한 수행을 하던 구양봉과 그에게 엉터리 구음진경을 가르쳐주던 황용과 만난다. 구양봉에게 습격당하던 황용을 구해주자, 구양봉은 예전에 한 맹세를 어긴 수치를 느껴 도망쳤다. 그리고 황용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화해한다.
구천인이 자신의 죄를 뇌우치고 단지흥과 함께 하산하고, 주백통도 영고에게 쫓겨서 화산에서 도망친 다음 홍칠공과 황약사의 대리 대결용 시험대(?)가 된다. 두 고수가 곽정을 제압하는데 몇 수가 걸리나 하는 것으로 승부를 내려는 것인데 양쪽 모두와 300초식 이상을 버텨내서 실력의 성장을 과시한다. 사실 쌍수호박빨이다.
완전히 미쳐버린 구양봉이 화산을 떠난 후에는 황용과 함께 하산하여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팽 장로에게 위협받던 목염자를 구해준다. 몽골군에게 위협받던 성을 돕다가 툴루이의 초청을 받아 황용과 함께 북방으로 가 죽어가는 칭기즈 칸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다. 칭기즈 칸과 영웅에 대한 대화를 나눈 후, 황용과 함께 남쪽으로 돌아간다.
4. 신조협려의 곽정
사조영웅전이 끝나자마자 황용에게 붙잡혀서 결혼해버렸다.
신조협려에서 바른생활 중년으로 진화하였으며 의형제 양강의 아들 양과를 찾은 뒤로는 그를 양강과는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20] 나머지 온갖 잔소리를 해서 괴롭힌다. 큰딸 곽부와 늦둥이 쌍둥이남매 곽양과 곽파로 세 자식을 두었다.
사조영웅전 직후 황약사의 주례 하에 혼례를 올리고, 도화도에 은거하여 살게 된다. 황약사는 딸 내외에 몇 달을 지나자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지겨워져서 홀연히 육지로 떠나버렸고, 곽정과 황용은 황약사를 찾으러 갔지만 황용이 임신하는 바람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가진악이 도박 빚 때문에 도화도로 도망쳐왔고, 또 몇 년이 지나 곽부가 아홉 살이 되자 곽정과 황용은 가진악과 곽부와 함께 도화도를 나가 황약사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육립정의 육가장이 이막수에게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도와주러 갔지만 이미 육가장은 풍비박산이 났고 주범 이막수는 곽부를 보고 곽정이 온다는 것을 알아 도망친 뒤였다. 그러다가 양과를 만나, 양과와 고아나 다름없이 돼버린 무씨 형제를 함께 데리고 도화도로 들어간다. 이때 양강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양과만큼은 제대로 키워내겠다는 결심을 하였고, 실재로 곽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양과를 믿고 아꼈다. 그의 양과에 대한 사랑은 정말로 깊어서 작중 의부 구양봉보다도 실질적으로 양과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도화도에서 양과가 구양봉의 합마공으로 무돈유를 다치게 하고, 합마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가진악에게 들키면서 어쩔 수 없이 양과를 전진교에 맡기기로 한다. 하지만 전진교에서는 곽정이 소용녀에게 비무초친을 하러 온 악당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여[21] 조지경을 중심으로 무려 98명이 펼치는 대천강북두진을 펼쳐서 그의 앞을 막는다. 하지만 곽정은 홀몸으로 대천강북두진을 파해하고[22] , 후원으로 달려가서 전진칠자를 도와 전진교에 쳐들어온 곽도와 달이파를 물리치고 양과를 전진교에 맡긴다. 이때 곽정은 당대 최강을 자랑하던 전진교를 홀로 상대할 정도로 먼치킨이 되어 있었던 것.
전진교에 맡긴 이후 몇번인가 양과를 찾아가 볼 생각은 했지만, 황용이 반대를 했고 자신도 대몽 항쟁을 시작할 일에 바빠서 찾아가지 못했다.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무림을 결집하기 위해 육관영의 장원에서 영웅대연을 연다. 영웅대연에서 양과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양과가 거지꼴로 나타나서 그 동안 고생을 했다고만 말하자,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환영하며 받아들이고 자신의 무공을 전수해준 다음 곽부와 결혼시키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영웅대회에 금륜법왕이 난입해왔을 때 원래 금륜법왕과의 승부에서 곽도, 달이파 다음에는 세번째로 스스로 직접 금륜법왕과 겨룰 예정이었지만 도중에 양과가 나서서 금륜법왕과 직접 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금륜법왕이 분노하여 양과를 해치려 하자 직접 나서서 항룡십팔장으로 금륜법왕을 견제하기도 한다. 양과의 재치로 금륜법왕이 무림맹주의 지위를 차지한다는 계략이 물거품이 된 만큼, 양과의 목숨을 구한 곽정의 공도 상당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양과가 영웅대회에서 큰 공을 세우자 들뜬 나머지 소용녀에게 '당신 제자 양과를 내 딸 곽부랑 결혼시키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가 소용녀에게 '양과는 내꺼니까 안돼'라는 대답을 면전에서 듣고 말았다(...). 평생 사제(師弟)지간의 예를 극히 중요시한 곽정은 양과가 '''사부와 결혼하는 금수만도 못한 패륜을 저지르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어서'''[23] 양과를 죽이려고까지 했지만, 비참하게 죽은 그의 아버지 양강을 생각하자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놓아주었다.
나중에 양양성이 쿠빌라이의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양과가 찾아오자, 일단 과거지사는 덮어두고 양과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양과는 이미 절정곡과 쿠빌라이 양측의 뜻을 받아 곽정을 살해할 계획으로 찾아온 것이나, 그것을 모르던 곽정은 양과를 따뜻하게 돌봐 주고, 양과는 곽정의 다정한 보살핌과 몽골에 대항하여 싸우는 의협심에 감복해 기회가 왔는데도 손을 쓰지 못한다.
무씨 형제가 경솔하게 몽골군의 진영에 쿠빌라이의 목을 따러 갔다가 붙잡히자, 양과를 데리고 몽골군의 진영으로 간다. 쿠빌라이는 선친 툴루이와 의형제였던 곽정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를 회유하려 하지만 곽정은 듣지 않았고 쿠빌라이는 그를 보내주었지만, 곧 쿠빌라이 휘하의 고수들과 일부 몽골군이 곽정과 양과를 공격하게 된다.
곽정은 금륜법왕, 소상자, 마광좌, 윤극서등을 동시에 맞아 싸우다가(!) 기회를 틈타 몽골군의 말을 빼앗아 도망치려 했는데, 억지로 아픈 척하는 양과를 지키려다 부상을 입게 된다. 천만다행으로 곽정의 용기와
헌신에 감동한 양과가 곽정을 도왔고, 몽골군 진영에 숨어있던 풍묵풍이 제때 소란을 일으킨 덕분에 양양성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곽부가 양과의 오른팔을 잘랐다는 것을 알자, 곽부의 오른팔을 잘라서 양과에게 속죄하려 했다.이건 절대 그냥 겁줘서 사과하게 만들려는 장면이 아니다. '''진짜로 팔 자르려 했다.''' 무협소설에서 말하는 협의(俠義)란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는 장면. 곽부는 졸지에 외팔이가 될 뻔 했지만, 황용이 곽정이 큰 벌을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미리 계책을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황용에게 혈도를 찔려 마비되고 곽부는 도망치게 된다.[24]"부아야, 천지간에 사람의 행동은 반드시 마음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 아버지는 평소 너에게 엄격하게 대했지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너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이 말 가운데 끝의 몇 마디는 매우 부드러웠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아버지!"
'''"좋다. 오른팔을 내밀어라. 네가 다른 사람의 팔을 베었으니 내가 너의 한 팔을 베어야겠다. 이 아버지는 평생 정직하게 살아와 결코 사사로움에 얽매여 딸을 비호할 수 없다."'''
이후 양양성을 지키느라 절정곡에서 벌어진 사건에서는 활약하지 못했다. 곽정마저 개입하면 금륜법왕은(...)
4.1. 16년 후의 곽정
여전히 양양성에 머무르며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곽부가 양과에게 저지른 일이 언급되기만 하면 이제 다 클 대로 큰 딸이나 사위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격노해서 호통을 치는 바람에, 집안 사람들은 양과에 대해 아예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곽양이나 곽파로는 양과와 곽씨 집안의 과거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자라나게 되었다.
'''아직도''' 정식 관직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양양성을 앞장서 지켜온 대협으로서의 명성이 너무나 높은 나머지 민심과 군심을 확 휘어잡고 있다. 과장 좀 섞어서 '''양양 태수는 없어도 되지만 곽정은 없으면 안 되는''' 수준. 신분은 어디까지나 양양성의 빈객이나, 양양성 안무사 여문환의 이름을 써서 성 내의 온갖 군사적 명령을 도맡아 내리고 있고 병사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겸손한 인품은 여전해서, 황용이 이름 모를 누군가가 자신들이 영웅대연에 초청했는데도 거절한 고수들을 양양성으로 불러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자 '''"그렇게 발이 넓은 사람이라면 우리도 잘 사귀어둡시다!"''' 같은 말을 하며 자존심이 다친 모습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 수수께끼의 인물이 여러 군웅들을 이끌 수 있다면 아예 그를 중원 무림의 맹주로 추대하면 되겠다고 좋아하기까지(...). 사파의 무리들이 만일 좋지 못한 꿍꿍이로 방문하면 무공으로 상대하면 그만이라는 호기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는 것도 많고 근심도 많은 황용에 비하면 ''''옳은 일을 하는 중이니 거리낄 것도 없고, 나쁜 놈들이 오면 맞서 싸우고, 좋은 이들이 오면 벗으로 사귄다.'''' 같은 단순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중. 하긴 몽골의 대군과 10년도 넘게 줄다리기를 하려면 그 정도로 심플한 자세가 적절할 것이다(...).
이후 양양성 전투에서도 원숙한 무공 실력을 선보이며 대활약을 했다. 황약사의 이십팔수대진(二十八宿大陣)[25] 의 일익을 맡아 지휘하였으며, 금륜법왕이 곽양을 인질로 삼아 투항을 종용하였을 때도 대의를 중요시하여 곽양에게 사죄하면서 투항을 거절한다. 이후 양과가 곽양을 구해오자 곽양을 구한 것보다도 오히려 양과가 공을 세운 것에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양과를 칭찬한다. 이에 양과는 울먹거리며 수십년이 지난 끝에야 겨우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이는 모두 백부님께서 어린 시절부터 저를 깨우쳐 주신 덕택입니다'라고 진심을 말한다.
제3차 화산논검에서는 천하오절의 한명이 되며, 주자류의 발상으로 홍칠공의 제자로서 북개의 별호를 이어받아 북협(北俠)의 별호를 가지게 된다.
참고로 곽정 때문에 여문덕-여문환 형제의 이름값이 많이 깎였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은 유능한 편이라 몽골군에 맞서 양양을 6년이나 지켰고(여문덕은 도중에 병사), 몽골군조차 이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저렇게 뛰어난 장수를 죽게 하기엔 너무 아깝다. 항복시켜서 우리가 귀하게 써야 한다.'라는 논리로 항복을 권하였을 정도였다. 병력과 물자의 부족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여문환이 결국 항복한 것도 사실 큰 잘못이라고 따질 수는 없지만... 유능한 것과는 별개로 인성적으로 문제가 많아서 간신 가사도에게 아부하며 결탁하였고, 남송의 다른 명장인 유정을 배척하여 그가 원나라에 투항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 사람이 남송 공략에 관한 전략을 내놓았고 실제 지휘를 맡았다는 걸 생각하면[26] 여씨의 삽질은 공로 이상이다. 게다가 양양 수비에서 여문덕은 다른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몽골인들이 뇌물을 주면서 양양성 근처에 장터를 짓겠다고 하자 그걸 허락한 것. 당연히 장터는 훼이크였고, 실제로 지어진 것은 양양성을 공략하기 위한 거점이었다.[27] 이때문에 후세 명나라에서는 "양양의 화는 여문덕이 자초한 것이니 싸그리 멸족해도 시원치 않다"는 흡좀무한 평가가 나올 정도. 이쯤 되면 여씨 형제의 포지션은 유능한 원균 정도가 되시겠다.
4.2. 의천도룡기의 곽정
이미 한참 전에 고인이 되어 그저 전설처럼 이름만 남아 있는 정도이다. 몽골군이 양양성을 함락할 때 황용과 함께 자진했다고 한다. 곽양은 다른 지방에 있어 화를 피했으나 곽파로는 탈출에 실패해 전사했다고.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되지 않아 자세한 사항은 불명이다. 참고로 실제 역사에서의 양양성은 위에 언급했듯이 '함락'된게 아니라 '항복'하였다.
의천도룡기의 주된 사건인 의천검과 도룡도에 대한 미스테리를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원래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양과가 준 현철중검, 군자검, 숙녀검을 녹여서 도와 검을 만들고 비급을 숨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 비밀을 알고 있던 곽파로가 사망했기 때문에 계승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5. 곽정의 무공
'''완성된 정파 고수'''[28]
신조대협 양과와 함께 남송시대 무림계를 대표하는 고수로 특히 항룡십팔장으로 유명하다. 원래 개방의 무공이자 홍칠공의 특기였던 항룡십팔장은 되려 곽정을 떠올릴 정도로 명성이 높다.
강남칠괴로부터 권법, 검법, 암기술, 경공술 등의 여러 무공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섬세한 기교를 요하는 무공은 잘 하지 못했고 기초 무공만을 착실히 쌓아 올렸다. 덕분에 몸은 튼튼해졌만 기술이 부족하여 윤지평과 처음 싸웠을 때 교묘한 수법에 넘어가 패배했다.
또 제베로부터 궁술, 기마술 등을 배웠고 몽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몽골 씨름도 알게 되었다. 강남육괴는 자질 부족을 한탄했지만 궁술과 몽골 씨름은 대단한 수준. 궁술에서는 일류이며 날아다니는 독수리 2마리를 한 화살로 꿰뚫을 정도였다. 씨름 기술은 내공을 쓰지 않는다면 구양봉을 능가할 수 있을 정도이며, 나중에 구양봉과 싸울때와 구양극과의 대결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즉, 이때 배운 것 중 제일 쓸모 있던게 몽골씨름이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무림고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투에 필요한 무예는 거의 모두 갖췄기 때문에 이미 훌륭한 장군감이었다.
강남칠괴의 무공은 곽정의 성정에 그리 맞지 않았는데, 제각기 그 분야에는 매우 뛰어난 기술이지만 우직한 곽정에게는 걸맞지 않은 것이 많았다. 실제로 곽정이 나중에 잘 써먹는 건 한보구(韓寶駒)의 마술(馬術)이나, 한소영(韓小瑩)의 월녀검법[29] 등 몇가지 정도.[30] 하지만 가진악(柯鎭惡)의 암기술이나 주총(朱聰)의 철부채, 한보구(韓寶駒)의 금룡편법은 거의 안 써먹는다. 사실, 이 무공들은 몽골 환경에서는 좀 안 맞기도 하는데, 초원에서 궁술도 이미 배웠으면 암기술은 영 효용도가 안 보일 것이고(...) 주총의 소매치기 기술 같은건 실습해볼 대상도 없을 것이다. 다들 가지고 있는게 뭐가 있다고. 중국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나 소매치기 기술을 쓸 기회가 많지, 인구도 적고 탁 트인 몽골의 대평원에서 괜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접근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수상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전에 손이 느리고 우둔해서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후에 베이스로 사용하는 항룡십팔장도 결국에 직관적인 무공이고...오히려 황용이 배웠다면 주총 이상가는 소매치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강한 인간들이 전혀 성격이 다른 다양한 무공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고 우직한 성격인 곽정에게는 혼란이 가중되었다.[31] 결국 곽정으로서는 여러 해 동안 실력에 큰 진전이 없이 버벅거렸는데, 나중에 몽골에 나타난 전진교의 마옥에게 현문정종내공심법과 상승의 경공인 금안공을 전수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무공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중원에 나온 뒤에는 어중간한 수준의 무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양자옹이 기르던 독사의 보혈을 빨아먹고 내공이 크게 상승하고 뱀독에 내성을 얻는 기연을 받았다. 그리고 황용의 내조로 홍칠공에게 항룡십팔장을 전수받아서 드디어 고수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타고난 재질이 부족하여 무림 고수들의 가르침과 황용이 열심히 물어다 주는 기연에 비하면 성장은 꽤 더딘 편.[32] 작중 내내 매초풍, 구양극 등 강자들 틈에 이리저리 치이게 된다. 강남칠괴는 아둔한 곽정의 자질 때문에 가르침을 포기해 버릴 뻔한 적도 있고, 홍칠공 또한 곽정의 우직함을 매우 마음에 들어해 결국 제자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중반까진 곽정의 자질이 너무 딸려 다른 사람에게 멍청한 제자를 받았다고 놀림받을까봐 제자삼기를 꺼렸었다(...).
그 후 도화도에서 황약사에게 감금되어 있던 주백통의 생명을 구해준 인연으로 영리할수록 익히기 힘든(!) 쌍수호박[33] 을 배우고 공명권과 구음진경을 전수받아 무공에 크게 진보를 이루게 된다. 심지어 천성이 자유롭고 무공과 장난을 좋아하는 주백통에게 의형제가 될 것을 강요받고, 강제로 의형제가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형식적으로는 곽정의 배분이 전진파 교주인 왕중양과 동급, 전진칠자보다는 한 배분 높아지게 되는 괴랄할 결과가 나오게 되었으나, 워낙 겸손한 곽정이라 굳이 그런 말도 안되는 배분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백통 에게 잡혀서 최강의 무공과 1:1 개인과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험과 자질이 모자라 자기가 배운 무공을 제대로 다 써먹질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구음진경을 탐낸 구양봉에게 잡혀가 수없이 혈투를 벌인 끝에야 비로소 완숙한 경지에 접어들게 된다. 구양봉이 구음진경의 묘리를 빼내기 위해 곽정을 살려두고 계속 싸운 덕에 수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강해진 것.
작중 내내 속기도 여러번 속고 무공도 상대를 압도할 만큼 뛰어난 편은 아니라 이래저래 고달픈 상황에 많이 처하게 된다. 그리고 심하게 고지식해서 보는 사람을 화나게도 만든다. 황용이 없었다면 무림 고수는 커녕 죽어도 수십번을 죽었을 듯. 이래저래 황용은 바쁘다.
사조영웅전 마지막에는 천하오절과 비교할 수 있는 레벨까지 올라가지만 황약사와 홍칠공과의 겨루기를 보면 아직 2% 부족한 실력. 다만 당시 나이가 20대 초반이었다는걸 기억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황용과 결혼한 후에는 도화도에서 수행하면서 황약사에게 탄지신통 등의 도화도 무공도 배웠다. 다만 진정한 강적을 만나면 항상 평생의 절기인 항룡십팔장으로 대적하느라 별로 쓸 기회는 없었다. 기껏해야 전진파의 애송이들을 상대로 칼을 날려버리는 정도의 활용만을 보여준다(...). 구천인의 독장에 중독된 황용을 치료하기 위해 일등대사의 일양지 수법을 일부 배운 것까지 감안하면 서독 구양봉을 제외한 천하오절의 무공[34] 을 조금씩은 다 배운 셈. 이는 양과가 일등대사의 일양지를 제외한 천하오절의 무공[35] 을 모두 배운 점과 비견된다. 단 곽정은 양과에 비해 재치나 순발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신조협려 시점에서는 이미 무공이 대성한 상태라 평생의 절기인 항룡십팔장만을 주로 사용하지 다른 무공을 활용하는 장면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36]
총명함이나 재기발랄함과는 담을 쌓은 인물이라 보기만 하고도 초수를 곧잘 따라하는, 양과, 황용 같은 천재들에 비해 매우 버벅거리는 감이 있으나, 내공의 기초를 쌓고 구음진경을 수련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오히려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인다. 실제로, 위에서 천재라고 언급한 황용, 양과의 20살 무렵보다 사조영웅전 마지막 부분, 오절과도 300초 이상 버텨내고 봐주다가는 질 수도 있는 수준의 곽정이 더 강하다. 신조협려 시점에서는 양양성에 틀어박히면서 각종 군무에 시달림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은 여전히 킹왕짱 레벨. 김용월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공과 깨달음이라는 진리를 의외로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신조협려에서의 간접묘사로는 무돈유, 무수문 형제의 결투를 묘사하며 '곽정이 월녀검을 펼쳤다면 그 위력이 경천동지했겠지만....' 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사조영웅전 말기까지도 무기가 손에 익지 않아 끙끙댄 곽정이 아니었던가! 신조협려에 와서는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올랐으며, 영웅대회를 친히 열고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새로운 천하오절의 한 자리를 꿰차게 된다. 이 때의 별호는 북협.
6.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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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짤방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 장면은 이지청의 만화판 사조영웅전에서 곽정이 주백통의 쌍수호박을 보고 놀라는 장면. 쓰일 때는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와 유사한 느낌으로 쓴다. 즉, 상대가 뭔가 '''비범한 행동'''을 할 때 쓰인다. 하지만 쓰이던 도중에 점점 외연이 넓어져서, 너무나 어이없는 행동을 할 때에도 쓰이게끔 되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중 어피치 스페셜 에디션에 이를 패러디한 이모티콘이 있다.
[1] 하지만 사실 강남칠괴 역시 대단한 고수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가르치는 능력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실제로 곽정이 극적으로 강해지는 경우는 마옥이나 홍칠공 등을 사사하거나 구음진경을 익혔을 때였다.[2] 작중에서 곽정의 면모를 보면 우둔하다는 서술은 일부분을 과장한 것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 강남칠괴에게 배울 때는 구제불능의 둔탱이 취급을 받지만 마옥이나 홍칠공에게 배울때는 별로 욕도 안 먹고 잘 배우는 편이며, 작중의 묘사를 보더라도 성취가 아주 느린 편은 아니다. 하다 못해 구음진경을 통째로 외우라고 했을 때도 잘 외운 편이다. 이런 점에서 우둔하다는 것이 잔머리 굴리기나 효율적인 편법을 잘 못 써서 나온 이야기고, 이해력이나 암기력 등 머리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보기도 한다. 특히 강남칠괴의 무공은 심오하다기보다는 편법이나 잔재주에 가까운 것이 많아 곽정과는 상성이 나빴다고 보기도. 혹은 강남칠괴가 곽정을 가르친 것이 구처기가 가르친 양정을 이겨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재능으로는 내기에 지겠다는 조바심으로 인한 평가였을 수도 있다.[3] 허나 이건 황용자체가 등장인물 가운데 3위권 내에 들 정도의 스펙임을 감안할 때 비교대상이 너무 강했던 것이 크다. 황용과 비교하면 그 나이 또래의 대부분의 인물이 우둔하다는 소릴 들을 정도.[4] 어떤 평론가는 평론가는 영웅문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을 각각 10단계 등급을 매겨서 평가하면서도 곽정만큼은 '너무나 멍청함이 극에 달해서 완벽한 인물이다. 이런 완벽한 존재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극도로 멍청한 곽정이기에 극도로 영리한 황용의 짝이 될 수 있었다. 황용처럼 영리한 사람은 다른 영리한 사람을 견딜 수 없으며,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이 평가가 정말 잘 맞는게, 작중에 등장한 황용과 만난 다른 총명한 사람들은 대개 황용을 껄끄러워했다. 부친 황약사도 딸이라서 예뻐하긴 했지만 곽정 문제로 얽혀서 그 총명한 머리를 황약사에게 썼을 때는 제대로 골머리를 썩었고, 양강과 양과 부자는 각각 이유는 달라도 작중 대놓고 황용과 껄끄러운 관계였다. 구양봉은 아예 빅엿을 먹어서 노년을 반쯤 미친 상태로 보내다가 죽기 직전에야 기억과 이성을 되찾았다. 곽정이 우둔하다지만, 어떤 위기가 닥쳐도 우직하게 정면돌파를 하고, 다양한 스승들에게 수많은 무공을 전수받은 것도 멍청함이 극에 다다른 존재였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5] 그러나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영특해서''' 어린 나이에 가축을 돌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 읽을 때는 아직 곽정의 캐릭터를 몰라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어쩌면 동물을 다루는 데만 영특한 걸지도 모르겠다. 한혈보마나 수리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목축, 승마, 몽골씨름, 궁술 등 곽정이 능통하다고 나온 것을 하나로 모아보면 전형적인 유목민의 덕목이다. 화쟁공주와의 약혼건도 그렇고, 몽골에 그대로 머물렀으면 쿠릴타이에 참여할 정도의 거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니, 중화주의에 심취한 김용이 전형적인 중국식 대협의 표상으로 만들어낸 캐릭터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6] 태어난 곳이 몽골 지역이고 자란 곳도 몽골 지역인데다 금도부마가 될 정도로 징기스칸의 최측근인데 몽골어 사용은 기본일 듯. 자란 환경을 생각하면 중국어를 잘 구사하는 게 더 신기할 정도이다. 이평이 열심히 중국어를 가르쳤을 듯.[7] 당시 황용은 남장을하고 꾀죄죄한 모습이어서 다른사람들이 거들떠 보지 않았으나, 곽정은 크게 한턱내고 돈도 주고 한혈마까지 주려했다.[8] 예를 들면 스승 강남칠괴 중 가진악을 제외한 전원이 도화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던가[9] 그러고보면 무공을 익히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설명은 있어도 실전에서 활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거나 하는 설명은 별로 없다. 아무래도 익히기는 어려워해도 익힌 다음에 그걸 써먹는데는 재주가 있는 모양, 즉 머리는 돌대가리지만 싸우는 센스는 타고난 듯하다. 단 쌍수호박은 해당글을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단순한 사람일 수록 더 잘 익힌다고 한다. 주백통, 곽정, 소용녀 등은 이걸 익히는데 성공했지만 황용과 양과는 끝내 익히질 못 했다고. 머리회전이 빠르고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람일 수록 익히기 힘든 무공인 듯 하다.[10] 그냥 고모부일 뿐만 아니라 징기스칸의 자식들 중 하필 몽케&쿠빌라이의 아버지인 툴루이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했기 때문에 이 형제의 최측근, 넘어서 후견인이 됐을수도 있다![11] 이 정도 되면 배분은 이미 고려왕과 동급이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다.[12] 구양봉과 소용녀는 양과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들이었고, 그들 또한 양과를 목숨처럼 아꼈지만, 그에게 뚜렷한 가치관을 만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지켜야할 신념과 가치를 전수하는 아버지의 덕성을 곽정이 해주었다. 그렇기 곽정은 양과에게 있어 진정한 아버지라 할 수 있다.[13] 당나라 명장 곽자의의 후손이라고 한다.[14] 본 문서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이다.[15] 강남칠괴는 각기 독특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데, 일곱 명이 각자의 무공을 전수하려다 보니 자질이 둔한 곽정으로서는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탕에 빠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곽정이 내공의 기초를 쌓은 뒤로는 오히려 수업의 진도를 잘 따라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마옥의 말대로 가르침의 순서가 중요하긴 한 듯. 실제로 홍칠공에게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로 일취월장했다. [16] 아닌게 아니라 무목유서를 배우기는 했다지만 군을 통솔해서 호라즘의 성을 함락시킨 것도 곽정이고, 걸음마보다 말타는 걸 먼저 배운다는 몽골에서 아무도 타지 못한 한혈마를 제압해서 탄 것도 곽정이다. 게다가 좀 멍청해서(..)그렇지 구양봉을 몽골씨름으로 제압한 걸 보면 타고난 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전투시 전략이야 이론 좀 몰라도 몸으로 익히면 되는 거고 활쏘기 같은 기본 소양도 있었으니 만약 강남칠괴를 만나지 않았다면 몽골의 장군으로 대성했을지도.[17] 사실 강남칠괴와는 상관없이 이미 곽정은 작중에서 몽골의 장군으로 충분히 대성했다.(호라즘 왕국의 난공불락의 거성을 함락시키는 대공을 세웠다.) 단지 칭기즈 칸이 곽정을 앞세워 중원을 점령하려 들지만 않았다면 동유럽이나 모스크바를 휩쓸었을 지도 모른다.[18] 당시 말의 가치를 생각하면 지금의 자동차 이상이다. 그걸 고작 달라는 한마디에 준거다.[19] 사실 이건 황약사의 죄는 상당히 약하다. 원래 황약사가 내준 배는 멀쩡한 배였는데, 주백통이 옆에 있는 배가 더 크고 멋지다고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린 덕분에 가라앉는 배를 타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원래 이 배는 황약사가 자살용으로 만들었다가 차마 못 쓰고 보관만 한 물건이었으니 고의성도 적다. 굳이 잘못을 찾자면 이거 원래 가라앉는 배라는 것을 말하지 않은 정도? 그런데 이는 구음진경을 외우고 있는 곽정, 주백통을 바닷속에 수장시킴으로써 부인의 영전에 구음진경을 바친 셈 치려는 황약사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20] 양강은 충효를 져버린 작자긴 하지만 그의 죽음에 자신과 황용이 관여한 것은 상당한 트라우마였던 듯하다.[21] 일단 등산하기 전 비석을 쳐버리는 바람에 시작부터가 오해를 받았었고, 나중에 전진교 도사들과 대화를 할 때도 이미 선입견이 끼어있던 상황이라서 '마옥, 구처기, 왕처일 도장께 은혜를 입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말을 하자 도사들은 '마옥, 구처기, 왕처일 셋이 나서서 이 사악하고 무공이 고강한 놈이 강호에서 날뛰지 못하도록 물리쳤다.'고 오해해 버렸다. [22] 사실 이는 곽정의 무공이 이미 천하오절을 넘볼 정도로 강해진 탓도 있지만, 구음진경을 통해서 천강북두진의 변화를 모두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23] 지금 관점에선 저정도로 심각한 일인가 싶은 일이지만 당시 중국에는 유교 사상이 뿌리깊게 내려 있었다는 걸 생각해야된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기 스승과 결혼한다는건 자기 부모하고 결혼한다는 수준의 막장짓거리인것. 심지어 쓸데없는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황약사조차 직접적으로 반대하진 않았지만 은근 이 규범을 두둔하는 태도를 보여 양과에게 소용녀와의 사제관계를 깨고 자기 사문으로 들어와서 떳떳하게 둘의 관계를 인정받으라고 했다. [24] 곽정도 강호물을 먹을만큼 먹어봐서 심계나 계략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나 상대는 김용월드에서 손꼽히는 책사 황용인데다, 자식 사랑이 편협할 정도였던 황용이 설마하니 제 배로 낳은 갓난아기를 집어던지고 혈도를 찍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25] 잘 숙(宿)자는 별자리의 뜻으로 읽을 때 '수'로 읽는다.[26] 몽골군은 기마민족이라 원래 수전에 능하지 않았다.[27] 당시 여문환조차도 이 사태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두 번이나 편지를 보냈지만 여문덕의 부하들이 그걸 씹었다. 결국 거점이 거의 지어진 시점에서야 그 편지를 알게 된 여문덕은 자신이 나라의 일을 망쳤다고 한탄한다.[28] 장기인 항룡장부터 개방의 진산절기이다. 내공은 천하 무학의 정종이자 정통 도교 전진교의 현공이고, 경공술 또한 전진교의 상천제. 천강북두진에도 통달하여 혼자 싸우면서도 마치 북두진의 효과를 받는 듯한 묘사도 보인다. 또한 곽정은 사조삼부곡 전체를 통틀어 구음진경에 가장 통달한 인물인데, 구음진경 또한 도교 계열의 정통 무공서이다. 사기기술인 쌍수호박도 중신통의 사제인 주백통이 창안한 수법. 이외에도 남제에게 속성으로 배운 일양지까지 곽정이 습득한 무공 중 광명정대한 정파 무학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탄지신통을 비롯한 동사의 무공이 조금 애매하나 그마저도 잘 쓰지 않는다.[29] 한소영이 요절한 후 월녀검법은 나중에 자신의 딸인 곽부에게 전수해준다.[30] 가진악의 항마장법도 있지만 나중에 항룡십팔장에 묻혔다. 항마장법은 杖, 지팡이 쓰는 법이다.[31] 요컨대 강남칠괴 역시 가르치는데에 자질도 없었을 뿐더러 그들의 무공이라는 것 역시 잡다한 것이 많아서 곽정과 그다지 맞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32] 그러나 작중 묘사를 보면 익히는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지 실제 무공의 활용면에서는 뛰어난 편이라 여겨진다...지만 원래는 무공도 잘 써먹지 못하는 편이었다가 아래에 서술된 구양봉과의 대결로 인해 급격히 성장한 것.[33] 분심이용의 절학인 쌍수호박은 한 마디로 마음을 두 개로 나누어 사용하는 무공인데, 머리가 똑똑할수록 잡생각이 많아서 오히려 배우가 힘들다고. 실제로 황용이나 양과는 쌍수호박을 배울 엄두도 못 내었으나, 머리가 우둔한 곽정이나 머리 속이 아예 백지상태(...)에 가까운 소용녀는 매우 수월하게 익힌다.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멍청한 것보다느 순수해야 하는 것에 가깝니다.[34] 왕중양의 전진무공 및 구음진경, 홍칠공의 항룡십팔장, 황약사의 도화도 무공, 일등대사의 일양지[35] 왕중양의 전진무공 및 구음진경, 홍칠공의 타구봉법, 황약사의 탄지신통과 옥소검법, 구양봉의 합마공과 역행경맥[36] 다만 곽정은 구음진경을 깊이 수련하여 항룡장을 홍칠공조차도 능가하는 수준으로 구사한다는 묘사가 작중에 보인다. 양과에 비하여 하나를 우직하게 파서 대성한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