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명부/중국
1. 개요
중국의 외명부는 중국 황실의 여성이나 공신의 어머니와 처, 그리고 문무대신의 어머니와 처로서 봉호(封號)된 여성이 소속한 부서이다. 중국의 당나라(唐)와 송나라(宋) 시대에 제도화됐다.
2. 당나라 이전 시대
주나라에선 천자(天子)의 딸을 왕희(王姬)라 하여 천자의 적배인 왕후(王后)의 1등 아래에 두었다. 공주(公主)의 작위가 쓰이기 시작한 정확한 시점은 알려지지 않으며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인 공양고(公羊高)가 쓴 《공양전 (公羊傳): 춘추의 주석서》에 천자의 딸을 공주라 일컫는 대목이 있다.
전한(前漢) 시대에는 황제의 딸을 공주로, 제후의 딸을 옹주(翁主) 혹은 왕주(王主)로 삼았다. 신나라에선 공주 대신 실주(室主)를 썼으며, 후한(後漢) 시대에는 황제의 딸에겐 현(縣)의 군주라는 뜻으로 현공주로, 제후의 딸에겐 아비의 지위에 따라 향(鄕) 혹은 정(亭)의 주인이라는 뜻으로 향공주 혹은 정공주로 봉하였다.
서진(晉)에서는 황제의 딸을 공주로 봉하되 후한 때보다 격을 높여 군(郡)의 군주라는 뜻으로 군공주로 삼고 제왕의 딸은 현주로 삼으니, 이후 공주는 황제의 딸의 작위로만 국한되었다. 단 원나라에선 종왕(宗王: 황제의 종실으로서 왕으로 봉해진 자)의 딸도 공주로 봉작했다.
3. 당나라
당나라에서는 어머니에겐 읍호(邑號: 국, 군, 현, 향)에 태(太)를 더함. 남편/아들의 품계에 맞췄고, 5품 이상 서자의 어머니를 봉할 땐 적모를 봉하고, 적모가 없을 땐 생모를 봉했다.
4. 오대십국
오대십국 자체가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외명부의 기록도 그다지 없다.
- 국태부인(國太夫人): 열국왕의 어머니
5. 송나라
장공주와 공주는 작위 앞에 두 글자의 휘호를 쓰다가 출가 후 국호로 교체한다. 북송의 휘종은 외명부 작위를 수정하여 공주를 제희(帝姬)로, 군주(郡主)를 종희(宗姬)로, 현주를 족희(族姬), 군군을 숙인·석인·영인·공인으로, 현군을 실인·안인·유인 등으로 삼게 하였다. 그러나 북송이 패망한 뒤 제희 등의 작위는 다시 공주 등으로 재조정되었다.
6. 원나라
원나라에서 만들어진 외명부 제도는 명나라에도 이어진다.
7. 명나라
군군·현군·향군은 당나라에서 외명부 대신처와 내명부 후궁모를 봉작한 작위였다.
8. 청나라
청나라의 내명부 제도는 한풍을 따랐지만, 외명부 제도는 만주족 특유의 일부다처제의 영향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로 청나라 시기를 다루는 사극과 소설은 내명부가 아니라 외명부 쪽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정실
측실
1660년대 이후
기타 종친은 입팔분공(入八分公)에 속하지 않은 종친으로, 친왕부터 봉은보국공까지가 입팔분공이다.
[1] 4부인: 귀비, 숙비, 덕비, 현비.[2] 6빈: 소의, 소용, 소원, 충의, 충용, 충원.[3] 9첩여(3품), 9미인(정4품).[4] 황제의 후궁, 황태자비, 친왕비, 군왕비[5] 비(妃) 아래 황제의 후궁.[6] 귀족.[7] 구사이 버이서/고산패자固山贝子, 줄여서 버이서다. 종친 작위 중 하나로 구사는 기,(팔기군의 자쿤 쿠사와 같다) 버이서는 버일러의 복수형이다. 즉 기의 제후라는 뜻. 숭덕 원년(서기 1636년) 왕공 이하 구등작이 만들어지면서 구사이 버이서는 제4등 작위에 매겨졌다. 위로는 제3등인 도로이 버일러가 있고, 아래로는 제5등인 봉은진국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