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야콥 프로베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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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Jakob Froberger'''
(1616-1667)
1. 소개
2. 생애
3. 음악세계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ï)의 연주.

1. 소개


독일의 작곡가, 건박악기 연주자. 바로크 중기의 건반악기의 대가이며 중요한 건반음악을 다수 남겼다. 음악사적으로 프로베르거는 유럽 각지의 춤곡을 바탕으로 한 바로크 모음곡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한 세대 후의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와 두 세대 후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비롯한 독일 바로크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프로베르거의 유년 시절을 알 만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후 20세였던 1673년에 이미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궁정의 오르가니스트로 기록되어있다. 그후 페르디난트 3세의 후원으로 로마로 4년여간 유학을 가 당시 성 베드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를 사사했다.
그후 1645년부터 이탈리아와 벨기에 등지에서 활동하게 되며 1652년 파리를 거치는데, 여기서 샹보니에르루이 쿠프랭, 자크 갈로와 드니 고티에 등 당시 프랑스의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분산양식(style brise)에 영향을 받았고 1653년 빈으로 돌아왔다.
요한 마테존의 전기에 따르면 프로베르거는 1657년에 드레스덴에서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2세가 주관한 건반악기 경연에 참가하였다.[1] 상대는 드레스덴 궁정의 오르가니스트 마티아스 베크만이었으며 이후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3. 음악세계


프로베르거의 토카타, 리체르카레 같은 작품은 이탈리아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반면에 프로베르거의 건반 모음곡들은 당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이처럼 프로베르거의 음악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뿐 아니라 독일과 네덜란드의 스타일 모두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건반악기를 위한 춤 모음곡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프로베르거 본인은 알르망드 – 쿠랑트 – 사라반드 형식을 주로 작곡했고 후에 알르망드 뒤에 지그를 끼워넣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지그가 맨 뒤로 가게 된다.
작품번호는 FbWV로 표기한다.

[1] 당시 선제후는 부상으로 사슬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