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마테존
1. 개요
독일의 작곡가이자 이론가로, 정서론이나 바로크 음악을 다룬 논문들에서는 꼭 그의 이름과 저서들이 한번쯤은 인용될 정도로 정도로 이론가로써 유명하다. 언어적 재능도 뛰어나서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에 능통했으며 법학을 공부했고, 자신의 오페라 독창을 자신이 맡은 희대의 엄친아.
2. 생애
세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음악적 재능도 엄청났지만,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했다. 여러가지 엘리트 교육과 음악 교육을 받아 불과 아홉살에는 여러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고, 함부르크의 교회들에서는 오르간을 연주했다. 12세부터는 함부르크에 있던 노르웨이 귀족의 시종으로 일했다.
1696년 이미 15세 때에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의 소프라노 배역으로 가수 데뷔를 했으며, 변성기가 온 후에 자신의 오페라나 다른 작곡가들의 오페라에서 테너 독창을 했으며 65편의 무대에 섰다.
이때 헨델과의 결투 에피소드는 이미 유명한데, 1704년 자신의 오페라 《클레오파트라 (Cleopatra)》에서 마테존은 독창을 하고 있었고, 헨델은 쳄발로 앞에서 통주저음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고 마테존이 헨델보고 반주자 자리를 넘기라고 했는데 헨델이 거부하자 바로 결투를 하게 된다. 진정한 현피.. 마테존이 검을 날렸는데 다행히 헨델의 코트의 단추를 찌르고 부러졌고, 결국 둘이 화해했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이후 마테존은 헨델의 <알미라>나 <네로> 등 오페라에서도 배역을 맡아 연기하기도 했으며 둘은 평생 편지를 나누며 교류한다.
2.1. 다양한 활동
1704년부터 영국에 거주하던 대사 존 위치 경의 아들의 개인교사로 보내지게 되 이로 인해 존 위치경의 비서 자리까지 올라간다. 와중에 1706년부터는 영국 외교관으로 뛰었다.(...) 이쯤되면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지가 궁금한 지경.
1718년부터 함부르크 대성당의 칸토르로 일했으며 동시에 1719년부터는 홀슈타인 공국 공작 카를 크리스티안으로의 명예 카펠마이스터가 되고 후에 공작의 비서직을 잡을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특히나 1715년에는 함부르크 성당 성가대에 자신의 오라토리오를 연주하기 위해 당시 함부르크 오페라단의 여성 성악가 3명을 데려오는, 당시로써는 시도되지 않았던 파격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1] 그 외에도 예배 음악에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같은 극 양식(Theatrical style)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동해에는 라인하르트 카이저와 텔레만, 헨델, 마테존 본인의 4가지 브로케스 수난곡을 한꺼번에 지휘하기도 했다.
1728년 귀에 이상이 생기자 칸토르 직을 그만두었지만 작곡활동을 멈추지는 않았다.
2.2. 말년
함부르크에서 죽었으며 그의 장례식 때에 절친이었던 텔레만이 마테존이 1756년 작곡한 오라토리오인 《즐거운 장송곡 ((Das fröhliche Sterbelied)》[2] 을 연주했다.
3. 저술 활동과 업적
현대에는 마테존이 집필한 방대한 저술들이 많이 알려졌다 . 마테존은 평생동안 자신의 저서와 해외의 논문들도 번역 출판하는 등 평생 문예 활동에 힘썼으며, 담배에 관한 논문과(...) 헨델 전기, 다니엘 디포의 작품나 프랑스의 음악 논문 등을 번역했고, 음악비평이라는 정기 간행물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들의 주제는 통주저음이나 최신 음악 이론, 음악가 전기[3] , 음악 양식, 연주 등 현대관점으로 보면 당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전반적으로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으며, 그로 인해 현대의 음악 논서들이나 바로크 음악가들의 전기에 많이 인용된다.[4] 당장 24조성만 봐도 이론적으로 마테존이 정립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활동들 때문에 마테존의 음악 작품들 대부분이 잊혀지는 본의아닌 팀킬(...)을 당하게 됐다.
합리적이고 계몽을 추구했던 마테존은 보수적인 교회나 대학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마테존이 당시 독일 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4. 작품목록
▲ 쳄발로 모음곡 5번 中 "에어"(Air). 애수 어린 선율로 인하여 첼로 등으로 다양하게 편곡되었다.
4.1. 오페라
▲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udenow)》(1710) 中 '사랑과 화합이 넘쳐나는 시간(Hochbeglückte Zeiten da die Lieb' und Einigkeit)'
참고로 보리스 고두노프는 실제 역사인 동란시대와 보리스 고두노프와는 조금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사랑과 정치적 암투를 그린 오페라이다. 무소르그스키의 공포스러운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문제는 1710년 작곡당시 초연 했다는 기록이 없다.
이 동영상에서 초반 이리니를 맡은 가수는 마릴리에 시멜링(1920년대~?)이고 뒷부분 보리스 고두노프를 맡은 가수는 테오 아담(Theo Adam, 1926~2019)이다. 1965년에 녹음 된 것인데 부분 녹음이고 그로 부터 40년이나 지나서 전곡 초연이 함부르크에서 이루어졌다. 결국 '''작곡 295년만에 전곡이 초연이 된 오페라'''라는 기록을 세웠다.
4.2. 오라토리오
▲ 《위대한 아이(Das größte Kind)》 中 '이스라엘아 기뻐하라(Israel! freue dich)'
마테존은 오라토리오를 가장 많이 작곡했으며, 본인 또한 자신의 오라토리오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한다. 마테존이 정확히 몇 곡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27곡 이상을 작곡했다.
4.3. 실내악곡
12곡의 실내 소나타 Op.7의 경우 따로 《유능한 비르투오조(Der Brauchbare Virtuoso)》 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