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이어의 흑색 창병대
Wir Sind Des Geyers Schwarzer Haufen(독일어)
독일의 전통 민요를 군가로 사용한 것 중 하나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권력을 잡기전에 반 가톨릭 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반교권주의를 주장했는데 과거 '독일 농민전쟁'에서 끝까지 농민들 편에서서 싸운 귀족인 '플로리안 가이어(Florian Geyer)'의 대한 민요를 당가로 채택했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후 이 음악을 히틀러 유겐트와 SS친위대의 단가,군가로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과거 종교 개혁시기 독일 슈바벤 지역에서 루터 개신교를 지지하고 로마 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반대하기위해 농민운동이 일어났는데 자신들이 지지했던 개신교 세력[1] 과 반대했던 가톨릭 세력에게 공격을 받고서 분노한 농민들은 귀족과 교회를 몰아내기 위해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확장되어 독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받는 '독일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농민들은 농업용 낫과 포크로 밖에 무장하지 못했고 총기와 대포 갑옷으로 잘 무장된 개신교,가톨릭의 귀족들과 상대가 되지 못 했다. 그러던 중 '플로리안 가이어'라는 귀족이 기사를 모으고 농민들을 훈련시켜 '흑군or흑색 창병대' (Black Company)를 창설해 진압군인 '제국 기사단'과 '개신교 기사단'을 무찔러 민중 영웅이 된다. 하지만 프랑켄 하우젠 전투에서 개신교 세력인 헤센과 브라운슈바이크, 가톨릭 세력이던 작센 연합군에 의해 농민군측 지도자이던 '토마스 뮌처'가 이끄는 농민군이 대패하면서 '흑군'은 마지막 남은 농민군이 되버렸고 '플로리안 가이어'와 '흑군'은 바이에른의 한 숲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숨어 지내는 도중 '플로리안 가이어'는 우호적으로 접근한 '제국 기사단'소속의 '빌헬름 폰 구럼바흐'라는 여행자에게 반란을 다시 일으키자는 제의를 받지만 접선장소인 숲속에서 그의 종자 2명에의해 숲속에서 살해된다. 그가 죽고나서 그가 지휘했던 '흑군'은 해산되고 이후 그를 기리는 시가 음유시인들에게 퍼져나가고 민요가 된다.
아돌프 히틀러는 '플로리안 가이어'의 이름을 따 자신의 친위대부대에게 붙여주는데 '제8 SS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 이다.
전후에도 이 노래를 군가로 사용한 군대가 있었는데, 바로 동독의 국가 인민군이었다. 이들은 독일 농민전쟁을 일종의 혁명으로 간주했기 때문. 국가 인민군 집회에서 연주되는 가이어의 흑색 창병대(10분 2초).
Heino가 부른 버전
UBM Media 사에서 제작한 음반의 1절~5절 영어 번역판
한글자막
1. 개요
독일의 전통 민요를 군가로 사용한 것 중 하나이다.
아돌프 히틀러는 권력을 잡기전에 반 가톨릭 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반교권주의를 주장했는데 과거 '독일 농민전쟁'에서 끝까지 농민들 편에서서 싸운 귀족인 '플로리안 가이어(Florian Geyer)'의 대한 민요를 당가로 채택했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후 이 음악을 히틀러 유겐트와 SS친위대의 단가,군가로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과거 종교 개혁시기 독일 슈바벤 지역에서 루터 개신교를 지지하고 로마 가톨릭의 권위주의를 반대하기위해 농민운동이 일어났는데 자신들이 지지했던 개신교 세력[1] 과 반대했던 가톨릭 세력에게 공격을 받고서 분노한 농민들은 귀족과 교회를 몰아내기 위해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확장되어 독일 최초의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받는 '독일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농민들은 농업용 낫과 포크로 밖에 무장하지 못했고 총기와 대포 갑옷으로 잘 무장된 개신교,가톨릭의 귀족들과 상대가 되지 못 했다. 그러던 중 '플로리안 가이어'라는 귀족이 기사를 모으고 농민들을 훈련시켜 '흑군or흑색 창병대' (Black Company)를 창설해 진압군인 '제국 기사단'과 '개신교 기사단'을 무찔러 민중 영웅이 된다. 하지만 프랑켄 하우젠 전투에서 개신교 세력인 헤센과 브라운슈바이크, 가톨릭 세력이던 작센 연합군에 의해 농민군측 지도자이던 '토마스 뮌처'가 이끄는 농민군이 대패하면서 '흑군'은 마지막 남은 농민군이 되버렸고 '플로리안 가이어'와 '흑군'은 바이에른의 한 숲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숨어 지내는 도중 '플로리안 가이어'는 우호적으로 접근한 '제국 기사단'소속의 '빌헬름 폰 구럼바흐'라는 여행자에게 반란을 다시 일으키자는 제의를 받지만 접선장소인 숲속에서 그의 종자 2명에의해 숲속에서 살해된다. 그가 죽고나서 그가 지휘했던 '흑군'은 해산되고 이후 그를 기리는 시가 음유시인들에게 퍼져나가고 민요가 된다.
아돌프 히틀러는 '플로리안 가이어'의 이름을 따 자신의 친위대부대에게 붙여주는데 '제8 SS기병사단 플로리안 가이어' 이다.
전후에도 이 노래를 군가로 사용한 군대가 있었는데, 바로 동독의 국가 인민군이었다. 이들은 독일 농민전쟁을 일종의 혁명으로 간주했기 때문. 국가 인민군 집회에서 연주되는 가이어의 흑색 창병대(10분 2초).
2. 음원
Heino가 부른 버전
UBM Media 사에서 제작한 음반의 1절~5절 영어 번역판
한글자막
3. 가사
4. 관련 문서
[1] 정작 당대 종교개혁의 거두였던 마르틴 루터는 이들 반란 세력을 비난했다. 비판 대상은 어디까지나 로마 카톨릭이었을 뿐, 봉건제도 자체에는 그렇지 못했다. 애초에 루터가 파문 이후 그를 지지하는 선제후들의 비호로 신변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결과. 한편 그가 아내를 만나게 된 과정도 이 반란과 관련이 있는데, 수녀였던 그의 아내가 반란군을 피해 청어 보관통에 숨어서 수녀원을 탈출했다가 루터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