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 맥코비
1. 개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강타자이자 외야수. 명예의 전당 입성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했던 외야수로 윌리 메이스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최초의 스타로 꼽히는 인물이다.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외에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도 뛰었으며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에도 이름을 올리는 인물로 특히 메이저리그 왼손타자들중엔 '''레전드'''로 꼽히는 인물인데 얼마나 대단했냐면 '''통산 521홈런으로 역대 최다홈런 순위 20위에 드는 성적이며 또한 은퇴 당시에는 왼손타자들 가운데 베이브 루스의 뒤를 이어 통산 홈런 순위 2위였다. 그리고 그 밥 깁슨조차 무서워 했던 타자라고 하며 ''' 레지 잭슨 이전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통산 홈런 중에서 231홈런을 캔들스틱 파크에서 때려냈으며 또한 그 경기장에서 가장 긴 홈런을 때려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최고의 실력과 인품을 동시에 갖추며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2. 선수 경력
앨라배마에서 철도 노동자 집안에서 자라 야구를 한 맥코비는 처음엔 니그로리그에서 뛰려고 하였으나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측에서 맥코비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후 맥코비는 1955년 자유계약을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입단하였다.이후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하였는데 그당시 17세의 어린나이였음에도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들어설 가능성을 보이게 되었고 이후 1959년에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들며 메이저리그에 입단하게 된다. 그는 첫해부터 신인이라곤 믿기지 않는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신인왕을 수상하였으며 당시 규정타석 미달이었음에도 최고을 활약을 보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이후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강타자로 자리잡으며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리그 최고의 타자로 떠오르나 정작 우승반지는 얻은 적이 없다.
그래도 메이저리그 MVP는 탔으며 196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이자 거포로 우뚝섰으며 40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후 부진하며 1973년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했으며 거기서는 2년 연속 20홈런을 때려내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1976시즌에 급격한 커리어로우를 겪으며 오클랜드로 트레이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서도 부진한 활약을 보이며 결국 본래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돌아오게 된다.그는 여러 통산기록을 달성하는 영광을 안았으나 나이로 더 이상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결국 1980년에 은퇴하게 된다.
3. 은퇴 이후
은퇴이후엔 샌프란시스코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만큼 그에대한 적절한 대우를 받았고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18년간 수석고문을 맡으며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였다.그리고 이후 쿠퍼스타운에 첫턴에 입성하며 샌프란시코의 영구결번도 되었으며 그외에 여러가지 명전에 오르며 메이저리그 레전드로 자리잡았다.
4. 사생활
그의 첫번째 결혼은 캐런 맥코비라는 인물과 하였고 슬하 1녀를 두었으나 이후 이혼이나 사별로 헤어진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후엔 오랫동안 사귄 여자친구인 에스텔라 베자와 거의 죽기 직전에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1]
그리고 그는 이후 카드사업을 하였으나 여기서 탈세혐의가 걸려 1996년 벌금 5천달러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2]
5. 사망
그리고 그는 말년에 건강문제에 시달렸는데 그는 2015년에 심장병을 앓아왔고 이후엔 무릎 질환도 오며 휠체어 신세까지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2018년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향년 80세.
6. 여담
- 오라클 파크 우측 담장 뒤의 바닷가이며 스플래시 히트로 유명한 맥코비 만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