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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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에 맞게 제작된 동상[1]
18세기에 그려진 초상화
[2]
노르만어: William le Waleys
스코틀랜드 게일어: Uilleam Uallas[3]
영어: William Wallace
1270~ 1305.08. 23[4]
1. 개요
2. 생애
3. 창작물에서
4. 같이보기


1. 개요


'''스코틀랜드의 성웅'''이라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이자 수호자였던[5] 기사.

2. 생애


"그때부터 잉글랜드의 폭압적인 통치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몰려들었고, 그는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놀랍도록 용감하고 대담하며, 훌륭한 풍채와 끝없는 도량을 갖췄다. 백작들과 호족들 사이에서 그는 천한 신분으로 간주되었지만, 그의 선조들은 기사였다. ... 월레스는 도처에서 잉글랜드인들을 패배시켰다. 그리고 매일같이 힘을 기르면서 때로는 그 자신의 탁월한 능력으로, 때로는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강제로 짧은 시간 안에 스코틀랜드의 모든 귀족들을 지배하에 두었다."

스코틀랜드의 연대기 Gesta Annalia II (c.1363)

"화살로 생계를 유지한 천민이자 가난하고 무식한 궁수 ... 가장 낮은 신분에서 가장 높은 신분까지 모든 스코틀랜드인들이 그를 지지했다. 때문에 그 나라의 어떤 지위 높은 백작이 이 윌리엄에게 기사의 허리띠를 수여하고, 마치 까마귀를 백조로 만들듯이 도적을 기사로 만들었다."

동시대의 잉글랜드인 수도사 William Rishanger의 연대기 (c.1307)

윌리엄 월레스는 에어주의 지주인 말콤 월레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나이를 먹은 후에는 페이즐리 수도원[6]에 들어가서 그 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후 윌리엄 월레스는 3가지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교양인으로 성장했다. 이후에는 글래스고 대성당에 가서 로버트 위샤르트 주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윌리엄 월레스는 글래스고 대성당에 머무르면서 조국 스코틀랜드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당시의 경험이 월레스가 훗날 스코틀랜드의 투사로 거듭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여겨진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정당한 왕위 계승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무력으로 스코틀랜드의 지배권을 차지하려들자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반발하였다. 결국 1296년에 이르러 에드워드 1세가 대대적인 스코틀랜드 침공을 개시하였다. 민담에 의하면 이때 에드워드 1세의 침략으로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이 몰살당했다.
잉글랜드 병사와 시비가 붙어 그들을 죽이는 바람에 래너크의 치안 대장인 윌리엄 헤셀릭이 체포령을 내리고 아내인 메리언을 살해하자 1297년에 그를 죽여 복수했다.윌리엄 월레스의 행적은 기록의 부재로 인해 대부분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그의 행적 중 역사적으로 가장 신뢰할 만한 첫 번째 행적이 바로 래너크에서 봉기를 일으켜 헤셀릭을 살해한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을 점점 모으면서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였다. 아이샤이어에서는 윌리엄 옴스비를 패주시켰고, 앤드류 더 모네이와 합류해 스털링 다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해 휴 크래싱햄을 죽이고 가죽을 벗겼다. 스털링의 승리로 월레스는 기사 작위를 받고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잉글랜드의 요크 성을 점령하면서 요크성의 성주인 에드워드 1세의 조카의 목을 베어 에드워드 1세에게 보냈다.
이에 분노한 에드워드 1세가 군대를 이끌고 와 스코틀랜드를 공격하자 1298년 4월 1일에 폴커크에서 맞서 싸웠지만 패했으며, 스코틀랜드를 빠져나가 프랑스, 로마 교황청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월레스는 프랑스의 스코틀랜드인 근위병으로 근무하여 잉글랜드군과의 두 번의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303년에 종자 거스리(Guthrie)가 프랑스에 파견되어 월레스의 귀환을 권유, 월레스는 그 해 스코틀랜드로 귀환한다. 그러나 그들은 엘코 숲 근처의 윌리암 크로포드 농장을 되찾기 위해 갔다가 함정에 빠져 잉글랜드군에게 쫓기게 되었다. 1305년까지 숨어다녔지만 결국 글래스고 근방의 로브로이스턴에서 에드워드 밑에 있던 스코틀랜드인 기사 존 드 멘티스(John de Menteith)에게 잡혔고, 잉글랜드군에 넘겨졌다.
런던으로 압송된 월레스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재판을 받은 후 런던에서 교수형을 받고 옷이 벗겨진 채 말에 끌려다니며 조리돌림당하다 스미스필드 마켓에서 사지가 찢겨졌다. 사후 그의 머리는 창에 꽂혀 런던 다리에 효수되었고 장기는 불태워졌으며 찢겨진 사지는 4개의 지역에 나뉘어서 전시되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조금 보태자면, 윌리엄 월레스가 받은 형벌은 교수척장분지형이라는 형벌로, 교수형을 시키기는 하나 그것으로 편안하게 숨을 끊어주지 않는다. 이 형벌 자체가 죄인을 최대한 오래 살려두고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이라 괴로워하며 발버둥치는 것을 적당히 놔두다 줄을 끊어 다시 숨을 쉬게 해주지만 그 대신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고 생식기와 살점을 도려내 죄인의 눈으로 자신의 신체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게 한다. 그리고 팔 다리를 잘라낸 뒤 마지막으로 목을 자르는데, 이때까지 숨이 붙어있을 수 있기에 상당히 끔찍하고 악독한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때 월레스의 동생 존과 그의 동료 사이먼 프레이저도 체포되어 참수당한 다음 머리가 월레스와 같이 효수되었다.
14세기에 편집된 스코틀랜드의 연대기 Gesta Annalia II에서는 백작이나 호족들만큼 신분이 높지는 않지만 a,'''상당한 교양을 갖춘 기사 가문 출신'''이며, 독립전쟁 초기부터 b.'''도처에서 잉글랜드인들에게 승리'''하고 c.'''스코틀랜드의 고위 귀족들을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velint nolint) 강제로 지배'''함으로써 사실상 혼자서 항전을 주도하다가 폴커크에서 그를 질투한 코민 백작에게 d.'''배신을 당해서''' 패배하고 수호자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에 동시대 잉글랜드의 연대기들에는 천한 신분의 a.'''가난하고 무식한 무법자'''이며 전쟁 초기에는 보잘것없었으나 b.'''마치 까마귀가 백조가 된 것처럼''' 거짓된 명성을 통해 c.'''공공의(communis) 선출'''로 스코틀랜드인들의 챔피언이 되었다가 폴커크에서 동포들을 d.'''배신하고 도망친''' 것으로 묘사된다. 로버트 브루스가 잉글랜드 편에서 싸웠다든가 코민 백작이 폴커크 전투에서 월레스를 배신했다는 이야기는 없으며, 온갖 죄목을 갖다 붙인 월레스의 재판 기록에도 그가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협박해서 강제로 끌고 다녔다는 내용은 없다.
이렇듯 상반되는 기록이 많은데, 월레스와 원한 관계에 있었던 잉글랜드인들의 기록은 당연히 완전히 믿을 수 없고, 반대의 이유로 스코틀랜드의 기록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더글러스, 위샤트, 머레이, 스튜어트 등 다른 반란군 지도자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잉글랜드측 기록이 더 상세한 편.

3. 창작물에서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월레스에 대해 실제로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아서 많은 부분에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고, 일부는 실제 기록과 차이가 있다.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와 사랑했다는 건 영화적 상상력이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심장을 꺼내는 처형을 당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죽을 때 "자유(Freedom)"를 외치고 죽었다는 기록은 없으며, 영화적 상상이다. 현대 문명의 주류인 앵글로색슨인들을 악으로 묘사한 영화다보니 유독 고증 오류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받는 영화이기도 하다.[7] 영화에서의 고증 오류를 코미디 공성 게임인 락 오브 에이지 2에서 까기도 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에이지 오브 킹의 튜토리얼이 켈트족 시점이며, 마지막 미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때 유닛은 챔피언. 체력이고 공격력이고 다 초월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징기스칸, 이순신과 함께 영웅 중 최강.[8][9] 결정판 DLC(서쪽의 군주)부터는 고유의 초상화 및 모델링이 추가되었으며, 해당 DLC에서 추가된 에드워드 1세 캠페인에서는 적군으로 등장한다.
징기스칸 4에서 등장하는데 능력치는 56/'''92'''/'''94''', 적성 AAAE로 시나리오 2 미등장으로 등장한다. 능력치가 높고, 숨겨진 보정으로 장창병을 이끌면 공격을 올려주고 기병들을 상대할 수 있다. 단점은 등장시기가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10]
미디블2: 토탈 워 - 킹덤즈 브리타니아 캠페인에서도 시대상 당연히 나온다. 10턴쯤 지나고 한 개 풀 군단을 이끌고 등장하며 유저가 스코틀랜드일시 상당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컨셉 이미지는 브레이브 하트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 하이랜더 디자인과 유사한 고유 조형을 가지고 있다. 웃긴 사실은 공주로 회유가 가능하다는 점.[11] 또한 근위대가 보병이라 까딱 잘못하면 조기 전사크리 떠서 역사보다 빨리 죽는다.[12]
넷플릭스 제공 영화인 아웃로 킹에서는 주인공이 로버트 브루스다 보니 나레이션과 등장인물들의 대화로만 언급된다. 직접적인 등장은 단 2번으로 처형 뒤 잘린 팔과 머리가 각각 등장한다(...).[13]
도미네이션즈에서 윌리암 월리스의 검이 유물로 등장한다.

4. 같이보기



[1] 사슬 갑옷을 두른 전형적인 중세 기사의 모습이다. 에든버러성 정문 도개교에 있는 동상으로 반대편에는 로버트 1세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2] 1888년에 세워진 그의 동상. 브레이브 하트가 국내 개봉할 당시, 영화 전단지에서는 이 동상의 제막식이 1860년에 열렸다고 오류가 난 채로 표기됐다. 죽은 지 무려 583년이 지나서야 스코틀랜드에 동상이 세워졌음에도 제막식에 '''무려 15만명'''이 넘는 사람이 와서 환호했을 정도로 스코틀랜드에선 전설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키가 무려 '''201cm'''였다고 한다.[3] 울람 월러스에 가깝다. /ˈɯʎam ˈuəl̪ˠəs̪/[4] 또는 1272~1304년이라는 기록도 있다.[5] 실제 스코틀랜드 국가원수의 칭호였다.[6] 페이즐리 수도원은 현재에도 존재하는데, 지하에 설치된 정교한 하수도에서 중세 스코틀랜드의 각종 유물이 발굴된 바 있다.[7] 물론 아주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영화에서 악으로 묘사되는 잉글랜드 지배계층은 노르만인에 가깝고(윌리엄 1세와 노르만 왕조 이후 잉글랜드 지배계층을 노르만인이 꿰찼다), 앵글로-노르만이라고도 부른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도 그냥 앵글로색슨과 동화되어버리며 훗날 1세대로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해서 미국을 건국한 영국인 계통도 그냥 앵글로색슨계라고 지칭한다. 또한 이들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있다. 웃긴 점은 노르만인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에 노르만인들은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귀족 노릇을 했단 점이다. 즉 침략한 놈이나 침략 당한 놈이나 귀족층은 결국 형제, 사촌 관계였단 뜻이다.[8] 사실 이순신을 제외한 '''모든 영웅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 그것도 말에 탑승도 안 한 상태에서!'''[9] 이순신은 바다 전용 영웅이라 제외.[10] 시나리오 2 시작연도가 1271년이라 1280년대 중후반은 되어야 나온다.[11] 공주로 회유시 고유 조형을 가지고 있던 근위대는 흔한 중기병 근위대로 바뀐다.[12] 이 게임은 기병 토탈워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중기병에게 무지막지한 돌격보너스가 붙기 때문에 랜스 차징이 매우 강력하다. 재수없이 랜스 차징 한번 제대로 맞으면 일격에 전사가 뜬다. 월레스가 상대인데 회유할 생각 없이 죽일 생각이라면 고려해보자.[13] 잘린 머리는 브레이브 하트의 묘사대로 런던 다리에 효수된 채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