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하트
1. 개요
'''"우리 목숨을 앗아갈지언정 자유를 앗아가지는 못하리라!"''' (They may take our lives but they will never take our freedom!)
'''"자유를!!!"''' (Freeeeeedooooooom!!!)
'''제6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음향편집상, 분장상 수상작 / 각본상, 의상상, 음향상, 편집상, 음악상 후보작''''''"너의 심장은 자유롭단다. 그걸 따라갈 용기를 가지렴."''' (Your heart is free. Have a courage to follow it.)
맬 깁슨 감독 • 주연의 중세 전쟁영화.
할리우드 영화에서 전쟁을 묘사할 때 가감없이 잔인한 실상을 묘사한 데 있어서 선구자격 영화이다. 다루는 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도 몇 년 앞서서 온갖 유혈이 낭자한 전투신을 보여줬다. 그러나 전술 고증 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아서,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지 않고 뒤섞여 난전을 벌이는 1950-60년대 사극의 한계를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해 활약한 윌리엄 월레스(1270?~1305?)의 일대기를 각색한 영화로 장엄하고 비장한 무드가 돋보이는 영화다. 다만 중세 시절을 다룬 영화가 으레 그러하듯 이 영화 또한 각색된 부분이 적지 않다. 비주류 국가인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남겨진 기록이 빈약하기 때문에 상상력에 의해 덧붙여진 부분도 있고, 인물 관계를 변경한 부분도 있다.
2. 예고편
3. 시놉시스
4. 줄거리
스코틀랜드의 하급 귀족 윌리엄 월레스는 잉글랜드와 투쟁하던 아버지와 형이 회담하자고 불러낸 잉글랜드 측의 배신으로 처참히 죽자, 삼촌의 손에 맡겨져 라틴어와 검술 등 각종 교양을 익혔으나, 아버지와 형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피끓는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먼 소시민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인종청소의 일환으로 반항심 강한 스코틀랜드인의 '''종자'''를 바꾸고자 초야권을 미끼로 영주들을 반란 투성이인 스코틀랜드 땅으로 보낸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에드워드 롱섕크) 때문에 잉글랜드인 영주에게 사랑하는 여자의 순결을 뺏길 위기에 처하자 몰래 결혼하게 되는데, 이 월레스의 부인을 잉글랜드 병사가 겁탈하려 하자 이를 막는 과정에서 부인이 잉글랜드군에 잡히게 되고, 잉글랜드인 영주가 월레스를 잡기 위하여 부인을 살해하면서 월레스는 '''조용히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던 소시민에서 스코틀랜드의 독립과 아내의 복수에 모든 걸 바친 복수귀로 변한다.'''
아내의 살해범인 영주를 죽인 것을 시작으로 월레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전면적 반란에 돌입하게 되고, 이것을 막기 위해 에드워드 1세는 대군을 보내지만 월레스는 스털링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대군을 격파하는 한편, 스코틀랜드의 유력한 귀족이자 귀족들의 대표인 로버트 더 브루스와 친분을 쌓는다. 그리고 기세가 올라 아예 잉글랜드에 쳐들어가 스코틀랜드에 대한 침략의 주 거점이던 요크를 함락시키고 왕의 조카마저 죽인다. 이 과정에서 월레스는 로버트에게 부패하고 나약한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단합해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고 계속 간청하지만, 로버트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을 믿는 월레스의 마음에 그도 서서히 감화되어 그를 반드시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한편 노회한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는 프랑스 왕녀인 세자빈 이사벨을 보내서 평화교섭[1] 을 하는데, 그런 척 하면서 뒤로는 대규모 군대를 소집해 직접 전면전에 나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동성애자이자 나약하고 찌질한 성격을 가진 왕자 에드워드 2세[2] 에게 호감을 못 느끼던 이사벨이 와일드하면서도 교양을 갖춘 월레스[3] 에게 홀랑 반했다는 것(...).
곧이어 스코틀랜드군과 잉글랜드군은 폴커크에서 맞붙었는데, 처음에는 잉글랜드측에 붙은 아일랜드군을 포섭해 잘 나가는 듯 했다.[4] 그러나 월레스의 작전과 달리 부패하고 이기적인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에드워드 롱섕크의 뇌물을 먹어 전투를 방기하고, 결국 스코틀랜드군은 대패한다. 패색이 짙자, 월레스는 전선에서 물러가고 있던 롱섕크를 죽일 작정으로 단독으로 쫒지만, 롱섕크 옆에 서 있던 한 기사에 의해 그만 말에서 낙마하고, 월레스가 간신히 그 기사를 쓰러트리곤 헬멧을 벗겨 보니 그 기사는 아버지의 충고대로 잉글랜드를 따르기로 한 '''로버트'''였다. 심한 충격을 받은 월레스는 모든 걸 포기하듯이 드러눕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로버트는 월레스를 도피시킨다.
이후 잠적한 월레스는 '''배신한 귀족들을 하나하나 처참히 암살하기 시작한다.'''[5][6] 그리고 그에 맞춰 다시 반란 세력이 커지는데, 지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로버트는 다시 월레스와 화해하여 같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이루자고 월레스에게 사절을 보낸다.
당연히 월레스를 한 번 배신했던 로버트의 약속을 월레스의 친구들은 믿지 않았지만, 월레스는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약속장소에 나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넌 네 마누라 그림자를 쫓아다니고 있을 뿐이야!"라고 외치던 친구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하지만 로버트를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홀연히 떠난다. 당일 약속장소에 나타난 월레스를 로버트는 환대하지만, 로버트 몰래 뒷구멍으로 로버트의 아버지에게 배후 조종을 받은 로버트의 가신이 월레스를 기습해서 사로잡아 '''매복하고 있던 잉글랜드군에 넘겨버린다.''' 로버트는 아버지에게 짐승처럼 울부짖지만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었다.[7]
런던으로 끌려간 월레스는 재판관 앞에서 "'''잉글랜드의 국왕에 대한 반역행위'''에 대해 자백하냐"는 질문에 '''"나는 스코틀랜드 시민인데 무슨 반역이냐!!"'''라고 당당히 대답하며 자신의 죄상을 인정하지 않고 결국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인 교수척장분지형에 처해지게 된다. 이사벨이 달려와 월레스에게 "고통없이 자결하라"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게 마취약을 먹으라"고 권하지만 월레스는 당당히 죽기 위해 거절한다. 결국 마지못해 입에 넣긴 하지만, 이사벨이 떠난 사이 도로 뱉어버린다.
월레스는 목이 졸리고 사지가 탈골된 뒤 배가 갈려 산 채로 내장이 뽑혀지는 잔혹한 형벌을 당하지만 자비를 구걸하면 빠르게 죽여주겠다는 재판관과 월레스를 동정해 자비를 구하라고 외치는 군중[8][9] 에게 고통 속에서도 자비(Mercy)를 말하려는듯 하다가[10] 대신'''"자유(FREEDOM)!"'''라고 외치면서 영국에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천명하고 옛 부인의 환상을 군중 속에서 보며 죽는다.
병상에 누워 있던 왕 에드워드는 세자빈 이사벨에게서 '''"지금 내 뱃속에 자라고 있는 건 월레스의 아이이며, 당신의 핏줄은 당신 아들과 함께 끊긴다. 당신 아들도 왕좌에 오래 있진 못할 거다."'''[11] 라는 잔혹한 고백을 받게 되고, 월레스의 고함소리와 함께 숨이 끊기며 사망한다.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왕위 계승을 인정받으러 잉글랜드 대군과 만난 로버트를 보여주며 이어진다. 이제는 '''로버트 1세'''가 된 그는 굴욕과 회의감에 싸여 있었으나, 월레스의 유품을 본 후 결심을 굳히고 과거 월레스의 동료들을 설득한다.
그의 설득과 함께 첫 반란 때부터 그와 함께한 캠벨이 월레스가 사용했던 클레이모어를 던지고, 스코틀랜드군이 용감히 돌격하며, 땅에 꽂힌 클레이모어[12] 를 배경으로 월레스의 조용한 내레이션[13] 이 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때는 서기 1314년, 굶주리고 수적으로도 불리했지만, 스코틀랜드의 애국자들은 배넉번 들판에서 적들에게 돌진했다. 그들은 영웅 서사시처럼 용감히 싸웠고, 스코틀랜드인답게 싸워 마침내 '''그들의 자유를 쟁취했다.'''[14]'''"여러분은 월레스와 같이 피를 흘렸소. 이제는 나와 함께 흘립시다."'''
'''("You have bled with Wallace. Now bleed with me.")'''
5. 평가
6. 흥행
1996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을 비롯한 중요부분을 수상했다.[15]
미국 국내에서 흥행은 크게 성공하지 못하여 제작비에 약간 못미치는 수익을 거두었다. 비록 미국도 과거 식민지 시절 영국에 대해 자유를 쟁취하는 투쟁을 한 역사가 있지만, 잉글랜드와 같은 앵글로색슨계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잉글랜드를 악으로 그린 영화가 흥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16] 미국 흥행은 제작비도 못 건졌으나[17] 대신 다른 나라에서는 흥행을 거두었다. 한국에선 당시 전국 200만 관객이 넘는 상당한 대박을 거둬들였고 호주와 스코틀랜드에서도 성공했다. 국외 흥행 수익은 1억 4천만 달러에 달했다.[18] 그리고 미국 내에서도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을 포함한 켈트계 미국인들에게는 나름대로 인기가 좋았던 편이다. 이들은 조상 대에 잉글랜드와 악연이 있었고 후손인 자신들도 잉글랜드계 미국인들에게 차별을 받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잉글랜드에선 유달리 악평을 받았다. 역사 왜곡이라며 상영 금지 주장까지 나왔다. 개봉된지 10년이 지난 2005년에도 잉글랜드 영화 잡지 《엠파이어》는 그 해 3월호에서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최악의 영화로 이 영화를 선정했다.
한편 스코틀랜드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정당 SNP가 총선에서 승리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실제로 이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지금 스코틀랜드 자치의회의 제1당이다(...). 영화가 역사를 바꾼 셈이다.
7. 역사 고증 관련
윌리엄 월레스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다. 때문에 영화에서는 각색된 부분도 많다. 중세는 고대보다도 1차 사료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상으로도 고대 영화보다 중세 영화가 오히려 각색이 많이 되는 편이다. 게다가 스코틀랜드인인 월레스에 대한 기록은 더욱 부실하기 때문에 더욱 많은 부분이 상상력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적 소재를 다룬 영화에서 고증 관련 이슈가 점차 더 중요시되어 가는 추세에 있으며 실제로도 훌륭한 고증을 거친 후 나온 영화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고증과 관련한 비판은 앞으로 더욱 커질 공산이 높다.
7.1. 브레이브 하트
제목인 브레이브 하트(Braveheart)는 주인공 월레스가 아니라 그를 배신한 로버트 더 브루스(로버트 1세)의 별명이다. 단 이것이 윌리엄 월레스의 별명으로서 차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작중에서 로버트 더 브루스는 아버지 때문에 월레스를 한번 배신하긴 했지만 끝내 윌리엄 월레스의 용기에 감화되고 월레스 사후 그의 뜻을 이어 군대를 이끌고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쟁취하였기 때문에 제목이 브레이브 하트인 것이 문제는 아니다. 영화 말미에서 로버트 더 브루스와 스코틀랜드인들은 월레스의 용기와 뜻을 이은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도 로버트 더 브루스는 아버지에게 "I don't want to lose heart!'라고 외친다. 또 꼭 별명으로서 누군가를 지목하기 보다는 작중 여러 스코틀랜드인들의 의분(義憤)을 상징할 수도 있다.
7.2. 스코틀랜드의 복식/무장
작중에서 묘사되는 스코틀랜드인의 모습은 고증적으론 대부분 오류, 얼굴에 파란 물감을 워 페인트로 칠하는 것은 작중 시대보다 1000년 전에 살았던 고대 픽트족의 풍습이며, 극중 스코틀랜드인들이 모두 입고 있는 벨트와 플레이드(체크무늬) 킬트는 방향도 잘못 입었을 뿐더러 작중 시대보다 500년 후(16세기)에나 등장하고 유행한 복식이다.
스코틀랜드인을 야성의 민족으로 묘사하기 위해 로버트 브루스 외의 거의 모두가 거친 킬트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 야인으로 살았던 이들은 하이랜드의 부족들이고 영화에 등장하는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비교적 풍요로운 로우랜드인들로 잉글랜드 귀족과 비슷한 복식과 무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윌리엄 월레스 본인조차 전형적인 잉글랜드 귀족전사처럼 아밍 소드와 체인 메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무슨 야만인처럼 그려놨다. 오히려 당시에는 하이랜더들을 미개하다고 봤던 로우랜더들을 하이랜더처럼 입혀놓은 것은 굉장한 오류.
이어서 스코틀랜드 창병대 또한 무슨 야만 농민군같은 잡병 차림으로 나왔는데, 실제 스코틀랜드 창병대는 튼튼한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군대였다. 사실 월레스 본인부터 스코틀랜드에서 영향력이 꽤 있던 부유한 기사였으니 부하들의 장비가 허술했을 리 없다.[19]
월레스가 이끌던 군대는 잉글랜드군과 별 차이 없는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와 보병 군대였는데,[20] 영화 속에서는 얼굴에 푸른 물감을 칠한 고대 픽트족의 이미지로 월레스의 군대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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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자코바이트, 정확히는 1745년에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일어난 자코바이트 반란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 스코틀랜드 군을 그린 삽화를 보면, 작은 가죽방패와 검으로 경무장한 병사들과 킬트등 이 영화에 나오는 스코틀랜드군의 복식과 꽤 유사하다. 멜 깁슨 감독이 골수 가톨릭 신도였고, 18세기 자코바이트 운동이 특히 가톨릭을 믿던 하이랜드 지방에서 벌어졌고 실제로도 종교적 동기가 크게 작용했음을 감안하면 감독이 여기서 모티브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작중의 스코틀랜드인들을 고증에 맞게 로우랜더의 모습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흔히 스코틀랜드 하면 보편적으로 알려진 하이랜더의 이미지로 묘사하는 게 대중에 어필하기 좋다고 판단된 것으로 이를테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오리엔탈리즘 판타지로 내보내는 동양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스코틀랜드의 봉기는 어디까지나 당시 남의 나라였던 스코틀랜드의 왕위 계승이 개판이 되면서 잉글랜드가 거기에 한 몫 껴서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기 때문에 일어난 귀족/기사/봉건영주 계급 간의 다툼이지 일반 농노들이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중세가 중세/기사들의 시대이며 그들만의 전쟁이었다는 주장은 말그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모습에 불과했다. 원칙적으로 중세의 농노는 군사적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은 현실에서는 별로 지켜지지 못했다. 이론과 원칙대로라면 중세의 전쟁은 보병없는 100% 기병전이 되어야 하지만 실제 일반적인 중세 전쟁에서 기병은 전체 병력의 10~20%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농민/농노나 용병으로 구성된 보병들이었다.
중세 시대의 전쟁에는 여러 형태로 농노, 농민이 참여했다. 중세 전쟁은 비록 귀족들 간의 분쟁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민/농노들과 무관한 전쟁은 절대 아니었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측이 반대편 영주의 농노들을 약탈하는 경우가 일상적이었고, 때문에 특히 영국에서는 일반 농민/농노들도 전쟁에 필사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당시 전쟁이 농노와 무관한 전쟁이었다는 것은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주장이다.
7.3. 공주 이사벨라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필리프 4세의 3녀)가 월레스와 사랑하는 사이라서 몰래 그의 아기를 낳아 잉글랜드 왕으로 키웠다는 것도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데, 일단 윌리엄 월레스가 처형될 당시 이사벨라의 나이는 고작 10살이었으며 월레스가 죽은 지 4년 후에야 잉글랜드로 시집 갔다[21] . 다만 역사 속 이사벨라는 반란귀족 로저 모티머를 정부로 두고, 그와 손을 잡고 에드워드2세를 페위시킨 후 죽였다. 월레스 역시 반란 귀족이라 할 수 있으니 이사벨라가 월레스를 사랑한 설정은, 역사에서의 이사벨라와 로저 모티머의 관계에서 따온 듯.
영화에서 그녀는 순정적이고 선량한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노련한 정치가였다. 그녀는 왕비가 된 후 남편 에드워드 2세의 실책으로 왕권이 흔들리자[22] 기회를 노리고 외교 교섭차 프랑스로 건너가는데, 남편이 프랑스 왕의 조건을 거부하자 망명 귀족들을 규합해서 군대를 조직해 잉글랜드를 침략했고, 남편을 사로잡아서 유폐해 옥에서 죽게 만든 무시무시한 여걸이다. 일설에는 에드워드 2세를 부하를 시켜 마구 때려죽였다고도 하며 화장실에서 일보고 있던 에드워드 2세를 쇠꼬챙이로 찔러죽였다고도 한다.
단 이사벨라는 초장부터 에드워드 2세를 싫어했거나 시댁을 무너뜨리려고 암약했던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어느 시점까지는 남편의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그 노력이 제대로 보답을 받지 못하고 권력이 에드워드 2세의 측근들인 데스펜서 일가에게 넘어가자 더이상 참지 못하고 등을 돌려버린 것. 모티머와의 정치적 제휴 및 불륜도 이 시점 이후의 일이다.
7.4. 에드워드 1세의 잔혹성
에드워드 1세가 다소 표독스러운 폭군으로 묘사되다 보니 잉글랜드에서 반발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에드워드 1세를 잔악한 침략 전쟁, 인종청소 전쟁을 벌인 악랄한 폭군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잉글랜드인들에게 에드워드 1세는 명군 중 한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영화의 소재가 된 내용은 중세에는 흔히 있던 지배층들 간의 정치적 싸움인 영토 분쟁, 왕위 계승권 분쟁에 불과했다면서 에드워드가 당시 기준으로는 악랄한 인간이었다고 평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에드워드 1세의 정책이 인종청소 수준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고, 죄 없는 민간인이나 종교 시설은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에서 에드워드 1세와 관련된 부분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잉글랜드에서는 이를 근거로 역사 왜곡 영화이며, 상영 중단 요구까지 있었다. 에드워드 1세는 병마에 시달리다가 월레스의 고함에 급사한 것이 아니라, 월레스를 처형하고 2년 뒤에 죽었다. 다만 그 뒤 스코틀랜드인들은 로버트 1세를 중심으로 결집했으며, 에드워드는 더욱 강해진 스코틀랜드군에 맞서 싸워야 했다.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까지도 그 로버트 1세의 봉기를 진압하여 스코틀랜드를 재정벌하기 위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요크로 북상중이었으나 행군 도중 병으로 쓰러져 "내 시체를 스코틀랜드를 평정해서 거기다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1세가 당시 기준으로도 적에게 매우 잔혹했던 건 사실이다. 게다가 월레스에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심장을 꺼내도록 한 형벌은 당시에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반역자에게 행해지는 처형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형벌이었으며, 실제로 행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결정적으로 월레스는 본인의 주장처럼 반역자가 아니었다. 에드워드 1세는 정당한 명분이나 계승권없이 오로지 무력으로 스코틀랜드의 지배권을 가져간 것에 불과했고, 월레스와 스코틀랜드인들은 이에 대해 정당한 저항을 한 것이었다. 실제로 월레스는 처형되기 전 런던의 재판장들에게 자신은 에드워드 1세와는 주군 봉신 관계가 아니므로 그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때문에 자신은 반역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또 재판장에서 월레스는 에드워드 1세가 자신을 해한다면 자신의 주장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로 그가 죽은 후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에드워드 1세가 최악의 폭군은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다. 에드워드 1세의 전쟁이 가장 잔혹했던 것은 로버트 브루스의 봉기 이후의 정벌전이었는데, 이는 노년기의 스트레스와 로버트 브루스가 성역에서 정적을 살해하는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폭거를 저지른 것 때문에 격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분노가 조금 가라앉고 나자 군사령관들에게 친서를 보내어 '브루스의 반란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백성들은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했다. 즉, 중세 기준으로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대적하는 적에게는 잔혹했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려고 했던 왕이었다.
7.5. 초야권
역사적인 근거가 부족한데, 에드워드 1세가 초야권을 고분고분하지 않은 스코틀랜드인들을 피를 더럽혀 인종 개량해서 말 잘 듣게 하려는 수단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실제론 그냥 영주가 영민들에게 결혼세 같은 걸 뜯어내는 것이었고, 그냥 "농노는 영주의 소유다" 정도의 의미만 있는 제도. 게다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초야권을 발동했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사 왜곡에 대한 영화로 이 영화의 초야권 및 여러가지 왜곡을 자주 언급하는 책자들이 있을 정도이다.
7.6. 로버트 브루스(로버트 1세)
영화에서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이지만, 월레스의 용기에 감화되어 투쟁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 로버트 브루스는 사실 영화에 나오는 나병환자 아버지와 같은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로서 소시민과는 거리가 먼 노련한 정치꾼이었다. 월레스가 죽어갈 때도 로버트는 에드워드 1세 밑에 있다가[23] 기회를 노리다가 무능한 에드워드 2세가 즉위하자 군대를 일으켰고, 그 에드워드 2세가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을 배넉번 전투에서 격전 끝에 격파하여 스코틀랜드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24] 따라서 로버트 1세는 스코틀랜드를 독립시킨 명군이자 영웅이다.
사실 에드워드 1세한테 위협이 된건 브레이브 하트의 윌리엄 월레스보다는 <아웃로 킹>의 로버트 1세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실질적으로 쟁취하고 승전한 그 로버트가 그냥 찌질거리다가 마지막에 각성한 심약맨으로 나온다.
로버트 1세와 월레스를 친밀한 신뢰 관계로 묘사한 것도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결탁도 하고 경쟁했던 전형적인 정치적 경쟁자 관계.
7.7. 윌리엄 월레스
월레스가 당한 처형법은 반역자에게 적용하는 형벌로 중세 유럽에서 가장 끔찍한 형벌로 손꼽힌다. 물론 월레스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데는 변함이 없다. 유언은 개나 가축처럼 묶여서 순종하지 말고 자유롭게 처신하라는 것. 영화처럼 창자가 뽑히면서도 자유를 크게 외치지 않았지만 그 유언을 함축적으로 꽤 잘 나타낸 셈이다.
7.8. 스털링 & 폴커크 전투 장면
영화에서는 평지에서 만나 적의 기병을 장창으로 카운터하고 보병들이 난전중에 아군 기병이 포위섬멸하는 것으로 묘사된 스털링 전투는 원래 스털링 다리의 전투로, 다리를 건너던 잉글랜드군에 기습적으로 돌격해 혼란에 빠뜨려 승리한 싸움이다. 즉 돌격을 건 것은 스코틀랜드군 쪽이고, 그것도 매우 유효한 기습이었다. 고증이 유일하게 잘 된 부분이라면 얼빠진 잉글랜드군 지휘관. 사령관인 서리 백작은 전투 당일날 늦잠을 잤다. 다만 그는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에드워드 1세를 따라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은 노장이고 에드워드의 첫 스코틀랜드 침공 당시에도 던바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을 손쉽게 격파했었다. 아무래도 잉글랜드군의 수가 적군의 5배에 달하는데다 스코틀랜드 왕이 지휘하던 군대까지 손쉽게 박살낸 경험이 있으니, 왕도 없는 귀족들이 지휘하는 소수의 떨거지 쯤 별 것 아니겠지라는 오만에 빠져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영화에서 묘사된 스털링 전투는 실제 역사상의 로버트 1세의 대승인 배넉번 전투의 전개과정과 비슷하다. 잉글랜드 측의 성급한 기병 돌격을 장창-방패벽으로 저지한 뒤 보병 돌격으로 잉글랜드 보병진을 묶고, 그 사이 소수의 기병 우회 돌격으로 잉글랜드 궁병진을 격파한 후 포위섬멸하는 것은 배넉번 전투의 전개와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잉글랜드 측 지휘관이 도주하는 것까지 똑같다. 로버트 1세의 위업을 고스란히 복사 붙여넣기한 것. 스털링 전투의 전개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물론 폴커크 전투도 역사와 많이 다르다. 실제 전투에서는 잉글랜드군의 기사대가 스코틀랜드군의 기사와 궁수진을 격파한 뒤에 장창진을 공격하다가 물러나고 장궁병들이 단단한 장창병 방진을 사격전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잠시 물러났던 기사대와 보병이 재차 돌격하여 대열이 무너진 스코틀랜드군을 섬멸해버렸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기병은 고작 500명으로 2천명이나 되는 잉글랜드의 기병에 비하면 숫자에서도 매우 열세였고, 전투 경험도 부족했기에 잉글랜드군 기병대의 상대가 안됐다. 게다가 순수하게 전술, 전략만으로 윌리엄 월레스를 능가한 에드워드 1세의 군사적 유능한 면모를 보여준 폴커크 전투를 윌리엄 월레스의 전술에 말려서 발리다가 찌질하게 매수로 이긴 것처럼 묘사했다.
전체적으로 스코틀랜드 쪽에서 사실과 맞는 부분은 그들이 장창병(이 장창은 16-17세기에 사용된 파이크가 아니라 그보다 좀 더 짧은 중세식 창이다. 창 길이보다는 밀집한 보병의 조직력이 진짜 위력이었다. 그리고 영화상에 묘사된 통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창은 당연히 아니었다)을 애용했다는 점,[25] 그리고 수적으로 압도당한 상황에서 승리했다는 점밖에 없다. 게다가 양적, 질적으로는 딸리긴 해도 대부분 스코틀랜드의 병사들은 잉글랜드군처럼 갑옷과 검, 방패로 무장한 중세 귀족 기사였지,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영화마냥 킬트만 두른 야만인이 아니었다.
7.9. 모레이백 앤드류 폄하
윌리엄 월레스의 지지자이자 윌리엄 월레스와 함께 스털링 전투의 공동 지휘관으로 싸우다 전사한 모레이 백작 앤드류는 졸지에 폴커크 전투의 배신자이자 매국노가 되어 끔살되어 버렸다. 앤드류의 뒤를 이은 모레이 백작 랜돌프도 로버트 1세와 함께 싸우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이뤄낸인물이다.
8. 여담
- 스코틀랜드에서 워낙 알아주던 영웅이라 그런지 월레스가 죽고 무려 583년이 지난 1888년에서야 스코틀랜드에 동상이 세워졌음에도 당시 1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상 제막식을 보러 몰려들었다고 한다.
- 영화 중반 장창을 이용한 전투 장면을 보면 편집 과정에 순서가 꼬인 듯 한 장면이 있다. 윌리엄 월레스가 잉글랜드 보병들을 향해 돌격하는 장면에서 워 피크를 들고 있는 월레스가 워 피크에서 맨손이 된 다음 장검을 뽑고 달리다 다시 워 피크를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온 뒤 다시 장검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 1998년에 영화를 바탕으로 스코틀랜드의 한 듣보잡 업체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제작하였으나 철저하게 망해 알려지지도 않았다. 당시 해당 업체는 돈이 없어서 멜 깁슨 감독에게 사정을 설명하여 멜 깁슨 감독이 후불로 게임이 성공하면 돈을 받겠다고 게임 판권을 헐값으로 내줬으나 호되게 망해 업체가 문을 닫아서 후불로 받을 일은 없었다. 국내 당시 게임지에서도 소개되었는데 CG부터가 망할 징조로 엉망이었다.
- 2013년 1월 12일 밤에 EBS와 OCN이 겹치는 시간대에 이 영화를 HD로 내보내는 일이 일어났다. 먼저 방송을 내보낸 건 OCN이었지만 음성에 문제가 있었다.
- 워크래프트 2의 미션 승리 치트인 Unite the Clans가 바로 월레스가 로버트 1세에게 분열된 귀족 가문들을 이끌어 달라고 간청하는 장면의 명대사이다.
- KBS와 일본 방송국에서 더빙하여 방영한 적이 있는데, 성우진은 다음과 같다.
- 2019년 6월 8일 속편인 로버트 더 브루스의 트레일러가 공개되었는데, 주인공이 본 작품에서 로버트 브루스역을 맡은 앵거스 맥페이든[27] 이 다시 로버트 브루스 역을 맡는 것이 확인되었다.[28]
-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 아웃로 킹에서는 윌리엄 월레스의 처형을 계기로 로버트 브루스가 잉글랜드에 대한 저항을 시작한다. 스토리상으로나 시간대 상으로 사실상의 속편인 셈. 단 여기서 윌리엄 월레스는 영화 도입부 해설과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언급되며, 그 외에는 잘린 목과 팔이 나오는 정도다.
9. 관련 문서
[국내_개봉_포스터] [image][1] 이유가 참 가관인 게, 자기가 가면 바로 끔살(...)당할 테고, 그렇다고 무능하고 유약한 자기 아들을 보내면 오히려 반란의 기세를 올려줄 것이지만("내 연약한 아들놈은 안되지. 그 녀석의 꼴을 한 번 보기만 해도 이 나라를 통째로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테니"), 월레스가 여자는 죽이지 않을 거라 예상하여 이사벨을 대신 보낸 것. 뿐만 아니라 설령 이사벨이 월레스에게 살해당한다면, 스코틀랜드 반란군과 프랑스의 제휴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까지 깔려 있었다. 물론 자기도 예상만 했지, 세자빈이 멀쩡히 돌아올 줄은 몰랐다(...). [2] 영국사에서의 대표적인 암군으로 극중에서도 하는 일이라고는 늘 병풍처럼 서있다가 말 몇마디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질러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것이 전부. 실제 역사에서처럼 동성애적인 성향도 나오는데 아버지 에드워드 1세가 에드워드 2세가 동성애인을 군사고문이랍시고 데려오자 성의 창문 밖으로 던져(!) 죽여버린다(...). 에드워드 2세는 단검을 빼들고 아버지에 대들지만 금방 제압당한다.[3] 동행한 신하가 "야만인(월레스)의 거짓말을 듣지 말라"고 라틴어로 이사벨에게 말하자, 월레스가 바로 거짓말은 않는다며 라틴어로 받아쳤다. 당시 라틴어는 성직자와 상류층만이 아는 고급 언어였기 때문. 거기에 이어서 능숙한 프랑스어 실력까지 보여줬으니... 실제 역사상의 월레스는 교황청에서 스코틀랜드의 입장을 대변하는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도 라틴어 구사가 가능했을 것이다.[4] 이때 스코틀랜드군이랑 같은 켈트계인 아일랜드군이 배신하자 롱섕크가 아일랜드놈들이 그렇지하며 욕을 퍼붓는데, 재밌게도 롱섕크 역의 패트릭 맥고한은 아일랜드 국적에 유년기를 아일랜드에서 보냈다.[5] 첫 번째 대상자는 무려 그 귀족의 침실까지 '''말을 타고 가서 철퇴로 때려죽인다.''' 문제는 그게 실제 역사상 월레스와 함께 스털링 전투의 공동지휘관으로 싸우다 전사한 모레이 백작(...).[6] 이 과정에서 월레스에 대한 온갖 민간신앙과 소문이 퍼져나간다. 사실 그 자는 '''후장에서 번갯불이 나간다'''라든가, 한번 베어 가르면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이''' 잉글랜드 놈들을 쓸어버린다는 식으로(...).[7]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 전에는 문둥병 걸린 아버지에게 가까이 가지도 않던 로버트가 달려들어 멱살을 잡는다.[8] 앞서 서술했듯이 이루 말도 못할 정도로 잔혹한 처형이라서 월레스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몰래 군중 속에 섞여든 월레스의 동료들마저 "제발, 자비라고 외쳐. 딱 한 마디만...!"하고 되뇌일 정도다.[9] 처음에 군중들은 월레스에게 야유하는 등 적대적이었다. 전쟁에 참가한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있을테니 그 적의 수장인 월레스에게 동정적일리가 만무. 이들은 난쟁이들의 마임을 보고도 우스꽝스럽다는 듯 폭소를 터뜨렸다. 그런 이들이지만 형이 집행됨에 따라 점점 조용해지더니 끝내 그에게 동정적이 된 것. 이들의 반응을 보면 얼마나 잔인한 형벌인지 짐작할 수 있다.[10] 한글판에서는 자비를 말하려는 것처럼 자..로 시작해서 자유!를 외치는 초월번역을 보여준다.[11] 즉, 자신이 남편을 폐위시키거나 죽일 거란 이야기다. 실제 역사에서 이사벨라가 남편을 폐위시키고 죽였다는 것을 반영한 듯.[12]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윌리엄 월레스 캠페인 아이콘이 여기서 유래했다.[13] 다른 것들은 로버트 1세가 내레이션이었으나, 이 부분에서 만큼은 월레스의 내레이션으로 전환되는 인상깊은 연출이 나온다.[14] 다만 일부 시기를 제외하면 스코틀랜드 왕국은 잉글랜드 왕국에 대해 수세에 있었다. 국력이 잉글랜드에 비하면 미약한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계속 전쟁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로버트 1세 시절에는 에드워드 2세의 무능 때문에 시종일관 스코틀랜드가 공세를 취하는 입장이었다.[15] 당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영화는 아폴로 13이었고, 비평적으로는 이안 감독의 이성과 감성이나 꼬마 돼지 베이브, 일 포스티노 같은 영화를 브레이브 하트보다 높이 평하는 경우도 있었다.[16] 사실 잉글랜드에 대한 미국의 감정은 스코틀랜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그 긴 역사동안 계속해서 을의 위치였고, 해외에서도 "브리튼"하면 잉글랜드만 떠올리는 통에 잉글랜드에 대한 콤플렉스가 은근히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은 독립전쟁 자체도 실용적인 이유였고, 무엇보다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영국에 비해 비교도 안되는 강국으로 오랜 세월 군림한지라 영국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다.[17] 제작비 7,500만 달러에 미국 수익은 7,230만 달러 정도.[18] 호주는 멜 깁슨 감독이 호주 출신이고, 스코틀랜드야 자신의 역사 이야기이다. 한국의 경우 본작에서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 침략을 묘사한 게 일제강점기를 연상시킨 것이 흥행에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후술할 초야권은 이민족 남성이 토착민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모습이라서 일본군 위안부와도 비슷했다.[19] 스코틀랜드는 제임스 4세 때 병사들의 방어력 강화에 신경썼는데 스털링에 병기창을 건설해 갑주를 대량생산하여 일반 병사들에게도 지급할 정도로 보급에 힘썼으며 갑주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밀라노에서 질 좋은 갑주들을 수입했다. 그러다 보니 플로든 전투 때는 스코틀랜드군의 갑옷 착용 비율이 잉글랜드군과 대등할 정도로 높았다.[20] 스코틀랜드는 보병 중심이었다. 기병도 잉글랜드에 비하면 비중이 낮아 열세였다. 왜냐하면 스코틀랜드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말을 키울 만한 목초지가 부족해 말이 많지 않았으며 굉장히 비쌌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말이 비쌌지만, 목초지가 부족해서 말을 많이 키우지 못하는 국가일수록 말이 다른 국가들보다도 굉장히 비쌌으므로 기병을 양성하지 못하고 보병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산지가 많은 이탈리아, 스위스, 스페인은 스코틀랜드처럼 중세시대에도 여전히 보병 중심이었다. 일례로 배넉번 전투의 스코틀랜드군 1만 중에서 기병은 고작 350명밖에 되지 않았다. 동아시아의 사례이긴 하지만 흔히 기마민족으로 알려진 여진족도 험준한 산지에서는 기병 중심의 전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21] 더군다나 이 '아기' 는 역사상 에드워드 3세인데, 그는 잉글랜드 의회와 영어의 발전에 기여하고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시작한 인물이지만 스코틀랜드와도 신나게 치고받고 했던 인물이다. 특히나 치세 후기에는 유능한 군지휘관이었던 아들 에드워드에게 대 프랑스 전선을 맡기고 자신은 스코틀랜드군과 싸웠는데, 영화의 설정대로 따지면 스코틀랜드의 대영웅의 아들이 스코틀랜드와 지지고 볶고 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22] 동성애 상대를 벼슬자리에 앉혀 의회의 반발을 사고 배넉번 전투에서 대패해 스코틀랜드 독립의 단초를 제공했으며 대공 연합군이 왕에 저항해 봉기하는 등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 영화에서도 패전에 분노한 에드워드 1세가 에드워드 2세의 동성 애인을 탑에서 내던져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23] 에드워드에게 '굴종하는 척 하면서 기회를 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브루스 가문은 대대로 스코틀랜드 왕위에 야심을 품어온 가문이었고, 스코틀랜드 왕위를 준다면 에드워드 1세와 제휴할 의지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로버트는 어린 시절부터 에드워드 1세를 따라다니며 배운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인구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국력에선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의 상대가 안 된다. 그러니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게 함부로 덤벼들 수 없었다. 그리고 중세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여러 인맥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근대 국민국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된다.[24] 또한 로버트의 거병 및 즉위는 1307년으로, 월레스의 처형 2년 후이다.[25] 폴커크 전투에서도 잉글랜드 기병대가 장창병들의 진형을 뚫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26] 전투씬이 굉장히 잔혹하기에 제재를 받을 만한데 목이나 팔이 마구 잘려나간다. 오죽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전에 전쟁영화에서 가장 리얼한 전투 묘사"라는 평까지 있었을 정도.[27] 쏘우 3에서 제프를 맡은 배우다.[28]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