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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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게일어: Roibert a Briuis
노르만어: Robert de Brus
스코틀랜드 게일어: Raibeart Bruis
초기 스코트어: Robert Brus
영어: Robert I the Bruce
라틴어: Robertus Brussius
1. 소개
2. 생애
3. 평가
4.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5. 같이보기


1. 소개


스코틀랜드 왕국(1274 ~ 1329).
본명은 로버트 더 브루스(영어로는 Robert the Bruce, 현대 스코틀랜드 게일어로는 라퍼르트 브루스-Raibeart Brus).
스코틀랜드 노르만계 혈통의 귀족 가문인 브루스 가문 출신으로 한때 잉글랜드 왕국에 의해 복속된 스코틀랜드를 구한 영웅이다. '''데이비드 1세의 6세손으로 던켈드 왕가의 방계 왕족이었다.'''
현재에는 인명으로도 흔히 쓰이는 브루스라는 성은 노르망디 지명의 브릭스(Brix)가 유래라는 설이 있는데 불확실하다. 이 이름이 처음 나오는 건 둠즈데이 북에서 나오는 본 문서의 동명이인 남작 로버트 브루스인데, 당시에는 Bruis라는 철자로 썼다. 아마 당시에는 가문이 아니라 인물의 별명 쯤이었을 것이다.
로버트 브루스의 아들은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 1세의 친구였다고 하며, 그는 왕에게서 애넌데일의 영주로 서임되었고, 이후 그의 아들 로버트가 브루스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
여담으로 스튜어트 왕조의 왕들은 그의 후손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스튜어트 왕조의 개창자인 로버트 2세가 그의 외손자다. 결과적으로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인 그의 후손들이 잉글랜드 왕국의 왕까지 겸하게 된 것이다.

2. 생애


스코틀랜드의 왕 알렉산더 3세(Alexander III, Alasdair III)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그 후계자였던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가 어린 나이에 급사한 이후에 사실상 스코틀랜드 왕족이었던 던켈드 가문(Dunkeld, Dùn Chailleann)의 종통이 단절되었고 곧 유력한 귀족들은 왕위를 계승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때 잉글랜드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왕위 계승 분쟁을 이용하여 스코틀랜드를 지배하려 들었고 결국 스코틀랜드의 종주권은 에드워드 1세에게 넘어갔다.
로버트 1세는 당시 대부분의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에드워드 1세에게 굴복하였고 한때 그의 휘하에 있기도 하였으나 후에 다른 귀족인 코민 가문의 일원과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한 뒤 마음을 고쳐 스코틀랜드를 독립시키기로 결심한다.[1] 에드워드 1세의 지배에 맞서서 1306년에 스스로를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칭하고 나섰으나 에드워드 1세와 잉글랜드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먼저 프랑스계 귀족이자 기사였던 에이머 드 발랑스가 이끄는 주둔군이 로버트 1세와 맞닥뜨렸다. 그는 에이머에게 1대1 결투를 신청했으나 에이머는 그럴 생각이 없었고, 스코틀랜드군을 기습해서(메스번 전투)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에서 로버트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대거 사망했고 얼마후 로버트는 가족들이 포로로 잡혔으며[2] 본인은 아일랜드로 망명하는 등 위기를 겪었다.[3]
그렇게 섬에서의 은둔생활 1년 뒤 1307년, 에드워드 1세가 사망하자 로버트는 십여명의 지지자들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캐릭(브루스 가문의 영지)으로 돌아와 귀족들을 설득하여 지지세력을 확보한다. 이때 그의 어린 두 동생 토마스와 알렉산더를 잉글랜드군을 정탐시키기 위해 보냈으나 둘 모두 사로잡혀 처형당하였다. 그렇게 얼마후 라우든 언덕에서 휘하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군과 맞서 싸워 첫 승리를 맞이한다. 이후 북부의 귀족들의 충성을 받기위해 떠났고 에드워드 1세를 이은 에드워드 2세는 잉글랜드 내 세력 평정을 위해 잠시 스코틀랜드를 내버려 두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314년, 에드워드 2세는 2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2차 원정에 나서게 되고 로버트 1세도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우게 된다. 배넉번 전투에서 로버트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1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2세의 군대와 대결하게 되었다. 이때 적당히 청야전술을 사용하면서 기병을 이용한 기습과 보병 대열을 사용한 뛰어난 전술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고 불리하게 돌아가던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후에도 잉글랜드의 침략을 수차례 물리쳤다. 그리하여 결국 1328년 에드워드 3세 때에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받았으며 스코틀랜드 왕위 또한 정식으로 인정받았으나 이듬해에 사망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데이비드 2세는 결국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고 그의 딸 마거릿과 윌터 스튜어트 사이에서 태어난 외손자 로버트 스튜어트가 로버트 2세로 즉위하게 된다.

3. 평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에드워드 1세 때부터 에드워드 3세 때까지 3세대의 잉글랜드 왕들과 싸워 온 그야말로 근성의 사나이(...). 오늘날에도 스코틀랜드 독립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사실상 왕위 계승이 단절되어 잉글랜드에게 그대로 잡아먹힐뻔한 스코틀랜드를 구원한 구국의 영웅이므로 많은 활약상과 일화를 남겼다.
로버트 1세가 잉글랜드의 군대를 격파한 배넉번 지방에는 아직도 전투 당시에 로버트 1세가 직접 깃발을 세우는 데 사용했다는 '보어의 돌'이 남아있으며 1960년에 만들어진 스코틀랜드의 국가 '스코틀랜드의 꽃'은 배넉번 전투에서 그가 거두었던 승리와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노래한 것이다.
전략의 달인이며 본인의 무술 실력도 굉장히 뛰어났다. 도피생활 중 에드워드 1세의 추격자가 쫓아올 때나 배신자들이 잡으려고 들 때 상당한 무쌍을 찍은 적도 많고, 배넉번 전투 중에는 직접 군대를 사열하던 중 잉글랜드군의 귀족 출신 기사 헨리 드 보헌이 공격해왔을 때 '''일대일로 맞서 싸워 죽였고''' 같이 있던 종자까지 죽여버렸다. 왕이 직접 기사와 결투를 벌여 이기는 모습에 스코틀랜드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고 잉글랜드 측은 깜짝 놀랐다. 다만 함께 출정했던 귀족들은 칭찬하면서도 왕이 그렇게 몸을 막 굴리면 어떡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4]

4.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앵거스 맥페이든이 역을 맡아 주인공으로 등장한 스코틀랜드의 독립전쟁 영웅이었던 윌리엄 월레스의 동지로 묘사된다. 윌리엄 월레스의 높은 이상을 받들어 그를 후원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그를 배신하게 된다. 그러나 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윌리엄 월레스를 자신의 성으로 불러들여 재기시키고자 했지만 에드워드 1세와 그의 눈에 밉보일까봐 두려워하던 귀족들의 함정에 걸려 오히려 윌리엄 월레스를 붙잡혀 가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윌리엄 월레스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과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규합하여 배넉번에서 잉글랜드 군대를 격퇴하고 자유를 쟁취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역사를 각색했기에 그대로 믿으면 안되고 실제론 윌레스와 좀 복잡한 관계다. 일단 브루스 가문 자체가 스코틀랜드 혈통이 끊기고 왕위계승 분쟁이 심하게 일어나자 잉글랜드를 견제하는 아군으로서 서로 싸우지 않았으나 왕이 되려던 로버트 1세에겐 평민들과 하급기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윌레스가 다분히 방해되기도 하였고, 월레스와 정치노선이나 출신도 많이 차이나는 편이니... 애당초 둘간에 영화에서 보이던 무언가 끈끈한 접촉 같은건 별로 없었고, 필요하면 협력하고 필요없으면 소 닭보듯 하는 사이에 가까웠다.
한국 내에서 출간된 위인 일화집 중 로버트 1세의 일화를 담고 있는 내용이 있는데 거미가 계속해서 그물이 끊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그물을 쳐 결국 완성시키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게속 대항하기를 선택했다는 이야기.[5] 그러나 이 이야기는 본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더글라스 경의 설화였으나, 19세기 즈음에 로버트 1세의 이야기로 와전되었다고 한다. 애시당초 확실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거기에 이야기의 주인공마저도 와전된 것.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영국인들마저도 대부분 다 로버트 1세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다(...).[6]
수십년째 스코틀랜드 20 파운드화의 전속지폐모델(...)로도 활약하고 있다.
문명 6 확장팩 흥망성쇠에서 스코틀랜드의 지도자로 등장이 확정되었다.*
2018년 공개된 크리스 파인이 주역 로버트 브루스를 맡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웃로 킹’에서는 그의 즉위부터 라우든 전투 승리까지를 다루고 있다. 윌리엄 월레스가 폴커크 전투에서 패배한 뒤, 다른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함께 에드워드 1세에게 굴복하지만 기회를 노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침내 윌리엄 월레스가 처형당하자 다시금 저항의 의지를 불태우고 왕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잉글랜드군의 기습으로 세력을 잃고 가족도 포로로 잡힌다. 설상가상으로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은 그를 외면하거나 공격하기까지 한다. 온갖 위험을 극복하고 다시 세력을 모은 로버트는 라우든에서 에드워드 2세를 격파하고 훗날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쟁취한다.
제목인 아웃로 킹의 의미는 잉글랜드에 반기를 든 로버트를 두고 에드워드 1세가 부른 멸칭[7]이기도 하며, 또한 스토리 중간부터 기사도 따위 내다버리고 싸우는[8][9] 로버트 브루스의 행보를 의미하기도 한다.
배트맨 브루스 웨인의 이름 브루스를 로버트 브루스에서 따왔다고 밥 케인이 밝혔다. 참고로 웨인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의 장군 앤서니 웨인에서 따왔다고 한다.

5. 같이보기



[1] 코민 가문은 친잉글랜드파 귀족 가문이었기에 그를 죽였다는 것 자체가 잉글랜드 측에겐 반역이다.[2] 아내와 딸, 여동생, 남동생 닐(Neil)이 포로가 되었는데 닐은 참수당했다.[3] 지금의 북아일랜드 얼스터 지역의 래슬린 섬에 숨어 살았다.[4]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최고지휘관인 국왕이 함부로 최전선에 나서다 저격이라도 당하여 다치거나 죽을 경우 군대의 사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지휘체계가 붕괴되어 참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5] 티무르에게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패배하여 숨어든 곳에서 최후를 각오하고 비탄에 잠겨있을 때, 개미가 자기 몸보다 큰 먹이를 물고 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결국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재기의 희망과 용기를 되찾았다는 이야기.[6] 참조1 참조2[7] 무법자라는 뜻이다.[8] 변장하고 성에 숨어 들어 기습으로 성을 뺏고, 빼앗은 성을 불태워버리는 청야전술 등. 마지막 배넉번 전투 직전엔 병사들에게 “국가를 위해서건 가족을 위해서건 싸워만 준다면 이유 따윈 상관없다”고 아예 대놓고 질러버린다.[9] 다만 작중에서 기사도를 먼저 버린건 잉글랜드 쪽으로 이 때문에 로버트는 딸과 아내가 사로잡히고 동생을 참혹하게 잃었다.